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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권정은의 아이 그림 토크
아이 그림을 통해 아이와는 물론 어른과도 소통하고 싶은 권정은입니다.
아이들의 그림은 단순히 보여지는 그림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명화 뒷이야기만큼이나 재미난 것이 많습니다. 아이와 나눈 이야기를 어른들과 나누어 그 순수함의 힘으로 행복해지길 바랍니다.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저자
“밝은 게 제일 좋잖아요!” 재오가 그린 <지하철 안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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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2.27
12세 심재오作 <지하철 안의 사람들>

“선생님, 다 그렸어요.”
“와! 정말 멋지다. 어? 그런데 한 사람은 색을 안 칠했네?”
“이 사람은 존재감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 색을 안 칠했어요.”

존재감이 없는 사람? 아이에게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음… 예를 들면 가수가 되고 싶은데 아직은 노래를 잘못해서 연습 중인 사람이요. 그리고 판사, 검사 같은 직업을 갖고 있어도 그렇게 똑똑한 판결을 내리지 못해서 사람들의 인정을 못 받는 사람이요.”
“그럼 부정적인 느낌이 있는 거야?”
“아뇨. 그게 꼭 부정적인 것은 아니고, 좋아질 수도 있는 사람?”
“미완성의 상태? 아직 부정적이지도 긍정적이지도 않은 상태?”
“네 맞아요. 그러니까 색이 없는 거예요.”

그럼 옆에 색이 칠해진 네명의 사람들은 아이의 눈에 어떻게 비춰졌을까.   

“왼쪽에서 신문 보는 사람은 좀 우울해요. 화려하지 않은 파란색을 테두리에 넣어서 우울한 기분을 표현하려 했어요. 이 사람이 왜 우울하냐면 방금 신문에서 안 좋은 기사를 읽었거든요. 너무 나쁜 기사요. 게다가 회사 시험도 방금 떨어졌어요. 그리고  옆에 있는 노란색으로 둘러싸인 사람이 주인공이에요. 영화를 봐도 꼭 주인공이 있잖아요. 여러 명 중에 주인공을 만들고 싶었어요. 지금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어서 기분이 좋아요. 밝은 사람이에요. 노란색은 태양처럼 밝고 환하잖아요. 그래서 노란색을 빛나게 그린 거예요. 그 옆에 있는 사람은 기분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런 사람이에요. 그래서 검은색으로 그림자를 넣었어요.  그냥 보통사람처럼 보이게요. 특별한 색이 없으니까. 그리고 가장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정말 절망적이에요. 완전 절망 상태라서 어두운 보라색으로 덮여 있어요. 만화를 보면 절망적인 장면이 나올 때 보라색으로 위를 무겁게 덮잖아요. 이 사람이 왜 절망적이냐면, 눈이 좀 나쁘게 생겼지요? 그려놓고 보니 눈이 '나쁜 사람'처럼 보이더라고요.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정말 눈이 너무 나쁘다고 아주 절망적으로 이야기를 해준 거예요. 게다가 방금 친구의 장례식에 다녀오는 길이고요.”

이야기도 천연덕스럽게 잘도 만들어낸다. 지하철을 몇 번 타봤는데 거기 앉아서 보니 사람들이 그렇게 여러 모습으로 보였단다.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을 그리고 싶었던 재오에게는 그래서 지하철 안의 사람들이 그것을 표현하기 제일 좋은 소재였다.

“그런데 재오야, 주인공인 사람은 밝은데 다른 사람들은 좀 우울한 사람들이 더 많다. 그건 왜 그런 거야?”
“그건 주인공을 밝은 사람으로 하고 싶은데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좀 슬퍼야 주인공이 돋보이잖아요. 밝은 사람이 또 나오면 주인공이 별로 돋보이지 않을까 봐요. 헤헤.”
“아! 그럼 넌 결국은 밝은 사람을 그려 넣고 싶은 게 제일 중요했구나! 슬픈 사람들이 많아도 넌 밝은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제일 강조하고 싶었던 거야?”
“네. 밝은 게 제일 좋잖아요. 여러 사람이 있지만 그래도 밝은 게 제일 좋으니까. 전 밝은 게 좋아요. 전 밝게 살 거예요. 하하하~!”

아이의 호탕한 웃음에 나도 따라 웃는다.

“사람들 위에 있는 그림은 지하철 안에 있는 광고지?”
“아니요?”

아이가 어떻게 그걸 광고로 볼 수 있냐는 듯이 무척이나 억울한 음성과 표정이다.

“창문이에요! 이건 창밖에 보이는 노을 지는 풍경이에요!”
“그래? 지하철 창문은 훨씬 크잖아. 난 크기가 작아서 광고인 줄 알았어.”
“크게 창문을 그리고 풍경을 그리면 사람들이 주인공인데, 풍경이 주인공인 줄 알까 봐 작게 그렸어요.”
“창밖 풍경을 낮의 파란 하늘로 그리면 기분이 좋아 보이고, 밤을 그리면 우울해 보이잖아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기분이 다 다른데 그러면 말이 안 맞잖아요. 그런데 노을은 어느 때 보면 되게 예뻐 보이고, 어느 때 보면 좀 슬퍼 보이는 것 같고 볼 때마다 기분이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노을이 이 사람들 표현하는 데 제일 좋은 것 같아서 선택한 거예요.”

나는 아이를 말없이 안아 주었다. 아직도 얼굴은 어린아이인데, 이 많은 생각을 지하철의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했다니, 그리고 그것을 이렇게 영화 한 편처럼 그림으로 풀어냈다니 감동적이었다.
오늘도 나는 아이로부터 배운다. 지하철 안의 모든 사람의 표정을 다 합쳐놓아야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이 되겠지만 그런데도 밝은 게 제일 좋다는 재오의 말처럼, 행복과 불행이 교차하는 우리의 인생에서 그래도 밝은 노란 색으로 둘러싸인 내가 되도록 긍정적으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권정은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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