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p 로고
칼럼진
뉴욕 변호사의 엑스팻 생활기
엑스팻(Expat)이란 외국에 장기 체류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엑스팻으로 반평생을 살아온 필자 이철재 변호사가 뉴욕에서의 엑스팻 생활을 풀어나가며 그곳의 일상적 모습 혹은 관광객들이 모르고 지나가는 곳들을 소개한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관람기 上 바이올린 선생님 내외분과 함께 <토스카>를...
topclass 로고

<플로리아 토스카(Floria Tosca)는 로마 최고의 인기 가수다. 아름답고, 도도하고 질투심 많은 그녀가 세상에 둘도 없이 사랑하는 연인 마리오 카바라도시(Mario Cavaradossi)는 성당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다. 마리오와 알콩달콩 사랑을 키우던 토스카의 행복한 삶은 어느 날 마리오가 정치범 안젤로티를 숨겨주고 도주를 도우면서 산산조각이 난다. 이 일로 로마의 경찰청장 스카르피아는 마리오를 체포하여 온갖 고문을 가한다.

스카르피아는 토스카에게 흑심을 품고 있다. 그는 마리오를 미끼로 그녀를 차지하려 한다.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저녁 초대 한 스카르피아는 그녀에게 마리오를 살리고 싶으면 자신과 하룻밤을 보내라고 한다. 토스카가 보는 앞에서 부하 스폴레타에게 마리오의 총살형을 명하면서도 총탄을 넣지 말고 거짓 사형을 집행하라고 명한다.

토스카는 탄식하며 울부짖다 결국 승낙 한다. 그 대신 자신과 마리오가 동이 트자마자 로마 밖으로 떠날 수 있도록 통행증을 써달라고 한다. 스카르피아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통행증을 써 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토스카는 스카르피아를 칼로 찔러 죽이고 달아난다.

한편 토스카가 자신을 떠났으리라 짐작한 마리오는 감옥에서 죽을 날만을 기다리며 슬픔에 젖는다. 그때 토스카가 나타나 가짜 처형이 끝나면 곧 스카르피아가 써준 통행증을 갖고 로마를 빠져나갈 수 있다며 총을 쏘자마자 쓰러져 죽은 척 하라고 시킨다.

토스카의 말만 믿고 사형대에 섰건만 스카르피아가 살해당한 것을 알아차린 스폴레타가 실탄을 장전해 마리오를 죽인다. 마리오가 진짜로 죽은 것을 안 토스카는 절규하지만 곧이어 그녀를 체포하러 달려온 스폴레타를 피해 성벽으로 올라가 스카르피아, 신 앞에서 만나자(심판 받자)”라고 외친 후 뛰어 내려 목숨을 끊는다. >

 

뉴욕메트1.png
ⓒ이철재

 

출장차 맨해튼에 와 업무를 마치고 어린 시절의 바이올린 선생님과 만나 새벽 1시까지 옛이야기를 나누다 호텔에 돌아와 토요일 아침 8시 반까지 잤다. 피곤이 좀 풀리는 듯했다. 선생님 내외분과 함께 보기로 한 메트의 오페라 <토스카> 낮 공연이 1시에 시작하기 때문에 서둘러 아침 먹고 12시 반에 선생님 내외분과 링컨센터 광장에서 만났다.

링컨센터는 서울의 예술의전당처럼 연주 홀과 문화공간이 어우러져있는 복합공간이다. 광장에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성악인의 꿈의 무대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 줄여서 뉴욕 메트. 오리지널 메트 건물은 39가와 브로드웨이가 만나는 곳에 있었다. 무대 뒤 공간이 비좁아 고민하다가 1955년부터 링컨센터 단지가 개발되면서 링컨센터로 이전을 결정했다. 메트는 1966-1967 시즌부터 현재의 자리로 옮겼고, 올드메트(Old Met)1967년 철거되어 그 자리에 현재 사무실 빌딩이 들어서있다. 건물도 아름답고 음향이 훌륭했기 때문에 연세든 분들은 아직도 올드 메트 이야기를 많이 한다.

뉴욕시에서 학교 다니던 시절 메트는 나의 놀이터나 마찬가지였다. 우리 학교의 맨해튼 캠퍼스는 링컨센터 바로 옆 블록에 있다. 그곳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다 링컨센터 건너편, 지금은 없어진 오페라엑스프레스(Opera Express)라는 식당에서 오페라 케이크라는 초콜릿 케이크와 에스프레소를 한 잔 먹고 들어가 오페라를 보곤 했다. 내가 처음 메트의 공연을 보러 간 것은 뉴욕으로 이사와 얼마 되지 않은 가을날이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목소리를 실제로 들어보고 싶어 갔다. 오페라의 제목은 도니제티 작곡의 <사랑의 묘약>이었다.     

그날도 오페라엑스프레스에서 케이크와 에스프레소를 먹고 들어가 5층의 제일 저렴한 자리 그것도 맨 뒷줄에 앉아있었다. 오페라 전주가 끝나고 합창이 잠시 나온 뒤 파바로티의 일성이 튀어나왔다. 이 후로도 <사랑의 묘약>을 필두로 지금껏 수 십 년 메트를 드나들며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가수들의 공연을 무수히 봤다. 하지만 그날의 그런 경험은 다시없었다. 파바로티의 첫 음이 5층 맨 뒷자리에 앉아있던 내 이마를 정통으로 쳤다. 갑자기 얻어맞은 기분에 어안이 벙벙했다. 맨 뒷자리에 앉아 파바로티가 개미처럼 작게 보이는데 마이크도 대지 않은 그의 목소리는 대체 뭘 타고 거기까지 날아 와서 내 이마를 친 것일까? 3천명이 들어가는 크나큰 홀의 5층 맨 뒷자리까지 파고드는 그의 목소리, 과연 헛소문이 아니었다.     

그때는 이미 파바로티도 한물가기 시작했다는 평이 조용히 돌기 시작할 때였다. 초반부에서 약간 음정이 불안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오페라 후반부 파바로티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아리아 <남 몰래 흐르는 눈물(Una furtiva)>이 끝나자 관객들의 환호가 그치지 않아 오케스트라가 다음 연주를 시작했다 멈추기를 두세 번 한 후 관객들이 모두 잠잠해 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한물 갔다던 파바로티는 그로부터 20년을 더 세계 정상의 테너로 활동했다. 그리고 아쉽게도,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났다.

ⓒ셔터스톡
shutterstock_474248377-1.jpg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외관.ⓒ셔터스톡

 

 

메트 무대에 자막이 없는 이유

호텔에서부터 천천히 걸어가니 딱 12시 반에 링컨센터 플라자에 도착했다. 이미 도착해서 주변을 둘러보던 선생님 내외분과 만나 입장했다. 두 분은 메트 관람이 처음이라 내가 몇 가지 설명을 드렸다. 두 분 모두 메트의 특징이자 자랑거리인 메트타이틀(Met Title)을 신기해 하셨다. 메트에는 오랫동안 자막이 없었다. 메트의 전설적 음악감독 제임스 리바인이 무대장치 이외에 그 어느 것도 무대에 올리는 것을 반대해서다. 하지만 오페라 극장 측에서는 관객이 오페라 내용을 쉽게 이해해야 극장을 더 자주 찾을 것이기 때문에 리바인과 대 협상을 했다.

1995년 메트는 270만 달러라는 거금을 투자해 자막을 설치했다. 무대 위 자막 대신 각 객석 앞에 개인용 자막 3천여 개를 설치했다. 바로 메트타이틀이다. 각각 취향에 맞게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의 자막을 선택할 수 있고, 아예 꺼 놓을 수도 있다. 반사 방지 장치가 있어 옆 사람은 내가 자막을 틀어 놓았는지 꺼 놓았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메트의 또 하나의 특징은 이제 많은 오페라하우스에서 자취를 감춘 프롬터를 아직도 쓰고 있다는 것이다. 프롬터는 무대 아래에서 머리만 뻐끔 내밀고 가수들에게 가사의 첫머리를 큰소리로 불러주는 사람이다. 무대 위에 프롬터의 머리를 가릴 정도의 작은 장막을 쳐서 프롬터의 머리가 관객들에게 보이지 않게 한다. 이를 프롬터 박스라고 한다. 나의 아버지가 소장했던 오래된 LP 음반 중에 토스카니니가 지휘 한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의 실황 녹음에는 유명한 소프라노 릴리 퐁즈(Lily Pons)“Sempre libera”라고 이탈리아어로 노래하기 직전 프롬터가 “Sempre libera”라고 읽어주는 소리가 고스란히 녹음되어 있었다.

선생님께 메트타이틀과 프롬터 박스를 보여드리는데 천장에 샹들리에들이 서서히 올라가 천장에 딱 달라붙었다. 메트의 또 다른 자랑거리 샹들리에가 천장에 길게 늘어져 있다가 서서히 올라가 천장에 딱 붙으면 곧 공연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관객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하다가도 샹들리에가 올라가기 시작하면 슬슬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기 시작한다.

 

메트송2.jpg
뉴욕 메트 오페라하우스 내부(왼쪽)와 샹들리에. 샹들리에가 올라가기 시작하면 관객들은 하나 둘 착석한다. ⓒ이철재

 

 

메트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곧 불이 꺼지고 지휘자가 등장했다. 그리고 토스카의 전주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끝나고 나니 우뢰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사실 메트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메트타이틀도, 프롬터의 전통도, 오르락내리락 하는 샹들리에도 아니다. 바로 보석과도 같은 메트 오케스트라이다. 메트 오케스트라를 오페라 반주하는 오케스트라에서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키운 사람은 바로 제임스 리바인이다. 1976년 음악감독으로 부임한 그는 2016년까지 40년 동안 메트의 오케스트라를 카네기홀에서 연주하고, 세계 유수의 레코드사와 녹음 하는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키웠다    

푸치니 작곡의 토스카는 이탈리아 정통 베리즈모 오페라이다. 19세기 말부터 이탈리아 오페라에는 극을 좀 더 사실적으로 꾸미자는 사조가 생겼다. 이를 베리즈모(Verismo) 즉 사실주의 오페라라고 한다. 푸치니의 베리즈모 오페라들은 엄밀히 말해 아리아가 따로 없이 한 막이 끝날 때까지 쉼 없이 연주를 계속한다. 하지만 베리즈모 오페라 안에도 더 유명한 노래가 생기고, 그 노래들이 끝나면 사람들이 박수를 치게 마련이다. 토스카에는 두 개의 유명한 노래가 있다. 2막에서 스카르피아가 집요하게 유혹하자 토스카가 절규하며 부르는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Vissi d’arte, vissi d’amore)>3막에 토스카가 자신을 떠났다 생각한 마리오가 절망에 빠져 죽을 날을 기다리며 부르는 <별은 빛나건만(E lucevan le stelle)>이다.

 

메트송1.jpg

 

성악 전공한 어머니의 18번지 <노래에 살고>

<노래에 살고>는 나에게 매우 친숙한 노래다. 나의 어머니는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 하셨다. 대학교에 들어가 처음으로 배운 오페라 아리아가 바로 이 노래였다. 처음 공부한 아리아이고 워낙 좋아하셨기 때문에 어머니는 늘 이 노래를 부르셨다. 지금도 이탈리아어 가사를 모두 기억해 종종 부르신다. 한번은 어머니가 방에서 이 노래를 흥얼흥얼 하시는 것을 듣고 쫓아가 같이 이탈리아어로 따라 불러 어머니를 놀라게 했다. 평생을 듣다보니 나까지 저절로 가사를 외웠다.     

이번 메트 공연에서 토스카를 부른 제니퍼 라울리는 성량은 풍부한데 음정이 매우 불안정해서 실망했다. 내가 너무 효자인지 몰라도 우리 어머니 젊은 시절 목소리로 듣던 <노래에 살고>가 훨씬 더 좋았다. 추운지방에서 굵은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나온다는 속설이 있다. 평안도 신의주 출신의 어머니는 젊은 시절 추운지방 출신답게 어둡고, 굵고, 우렁찬 드라마틱 소프라노 목소리였다. 목청껏 <노래에 살고>를 부르자 방안 전등의 장식이 '팅!' 소리를 내며 떨어진 적도 있다.     

내게 가장 친숙한 노래는 <노래에 살고>이지만 내가 토스카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별은 빛나건만>이다. 애절한 클라리넷 솔로가 끝나면 곧이어 마리오가 독백을 하듯 노래를 시작한다. “별은 빛나고, 대지는 향기로운데 달콤한 사랑의 꿈은 모두 사라지고 나는 절망 속에 죽는다. 아, 삶을 이렇게 사랑해 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사랑해 본 적이 없는데.”

m13.jpeg
토스카의 투신자살로 오페라가 끝나자 사람들이 기립박수를 쳤다. 나도 얼떨결에 쳤다.ⓒ이철재

 

이날의 남자주인공으로 분한 조세프 칼레야(Joseph Calleja)는 소리도 아름답고, 음정도 정확했는데 별 개성이 없는 소리다. 그리고 음을 반음이나 한음 정도 낮춰 부른 듯 했다. 오페라 가수에게 고음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탈리아 오페라를 들을 때 남자가수건 여자가수건 고음에서 빵빵 터져주는 맛이 있어야 흥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칼레야의 <별은 빛나건만>은 여러 가지 면에서 사탕처럼 달콤한 발라드였지 죽음을 앞두고 삶을 놓지 못하는 사람이 심장을 후벼 파며 부르는, <미스트롯> 송가인이 부르는 듯한 그런 노래는 아니었다.     

토스카의 투신자살로 오페라는 끝나고 사람들이 기립박수를 쳤다. 예전에는 기립박수라는 것이 예외적인 것이었는데 요즘은 끝나면 무조건 모두 일어나 박수를 친다. 나처럼 기립박수를 치고 싶은 마음이 없던 사람도 앞이 보이지 않으니 일어날 수밖에 없다. 어정쩡 일어나 내키지 않는 박수를 치다 생각했다. ‘그래, 메트 무대에 서려고, 이 세 시간 토스카와 마리오가 되려고, 얼마나 많은 세월 울고 웃고 좌절하고 자신을 채찍질 했습니까? 노래 잘 되는 날도 있고, 그렇지 못한 날도 있죠.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생각 하니 내 박수소리도 점점 커졌다.    

 

 

이철재 미국 변호사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