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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신지영의 언어탐험
일상을 탐험으로 만드는 언어 탐험가이자 언어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사회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인문학자. 베이스캠프는 고려대학교.
언어의 세계를 탐험하며 발견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내 귀에 ‘ASMR’, 꿀처럼 달콤했니 탐험대원 '박성수'의 언어탐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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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4.24

늘어지게 자고 싶은 일요일 아침이다. 정말 다 잊고 이불 속에만 파묻히고 싶은데, 며칠 전부터 앞집 공사 소음이 나를 괴롭힌다. 어쩔 수 없이, 이불을 박차고 세수를 한다. 그런데 소음이 항상 기분 나쁜 건 아닌가 보다. 최근 유튜브에선 백색 소음 또는 백색 잡음이라고도 불리는 'ASMR 영상'이 인기를 끈다. ASMR 영상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대중적인 건 속삭이는 소리를 통해, 소위 기분 좋은 소름을 끌어내는 콘텐츠다.

 

ASMR 하다 보면 목 아파요

속삭이는 소리는 음성학적으로 무성음이다. 무성음은 성대가 진동하지 않는 소리를 말한다. 성대는 여닫음을 반복하며 기류의 양을 조절하는데, 무성음은 성대가 열린 상태로 혹은 닫힌 상태로 소리가 난다. 따라서 무성음은 성대의 여닫음을 반복하는 유성음에 비해 여러 측면에서 비효율적이다 

우선 속삭임 발화는 공기가 열린 성대를 통해 유출되기 때문에 한숨으로 말할 수 있는 대화의 양이 한정적이다. 또한 속삭임 발화는 후두와 주변 근육의 긴장을 유발하기도 한다. 우리가 속삭이는 동안, 후두 주변 근육은 성대 뒤쪽을 계속 열기 위해 긴장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속삭임 발화는 모음의 발음 강도가 약해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초래한다. 모음은 성대의 진동을 조절하며 고유의 공명 주파수를 발생시키는 데 속삭임은 이러한 과정이 발생하지 않는 게 그 원인이다.  

숨을 많이 들이셔야 하고, 후두 근육의 긴장을 유발하며, 의미를 전달하기 쉽지 않아 발화에 많은 노력을 기해야 하는 속삭임 발화의 특성 때문에, 보통 30분을 넘기는 ASMR 영상의 전체를 속삭이는 소리로 채우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실제로 닥터프렌즈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이낙준 이비인후과 전문의는 지속적인 후두 근육의 긴장이 성대 결절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 때문인지 가끔은 평소 목소리로 영상을 찍고, 목소리 전체의 볼륨을 낮춰 ASMR 영상으로 내놓는 외국 유튜버들도 있다. ASMR에 대한 신선한 접근이지만, 과연 그러한 ASMR이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다가갈 지는 개인적으로 의문이다.

속삭이는 사진.jpg

모음보다는 자음이 중요

ASMR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건 자음이다. 공기가 아무런 방해없이 배출되는 모음에 비해 자음은 공기가 구강 통로에서 다양한 방해를 받는다. 이 방해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마찰음들이 ASMR에 매력을 더해주는 요소가 된다. 유투브 ASMR 영상들을 보다 보면 특정 소리들에 더욱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댓글들이 눈에 띄는데, ‘간질간질’, ‘소근소근’, 'sksksk'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유튜버들은 아예 이런 단어를 반복해 발음하는 영상을 올리기도 한다.

반복하는 단어들을 잘 살펴보면 마찰음이나 폐쇄음, 파찰음 등 공기가 구강을 지나면서 방해를 듬뿍 받아 소음이 발생하는 장애음에 속한 소리인 경우가 많다. ‘소근소근을 예로 들어보자. 초성 은 마찰음으로 공기가 혀와 치아 사이의 공간으로 빠져나오면서 소음이 발생한다. ‘간질간질의 경우에도 구강 통로를 막았다가 한 번에 공기를 내뱉는 폐쇄음 과 폐쇄와 마찰이 이어지는 파찰음 이 포함돼 있다. 기류를 조절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소음들이 ASMR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번은 ASMR 유튜버가 착용한 치아교정 유지 장치로 인해 발생하는 끈적이는 음성이 시청자들에게 긍정적 반응을 얻는 경우도 봤다. 끈적인다는 것을 명확히 정의하긴 힘들지만, 직접 영상을 본 시청자들에겐 교정기를 착용한 음성과 교정기를 뺀 음성 간에 차이가 크게 느껴졌었나 보다. 결국, 그 유튜버는 치아교정 기간이 끝났음에도 가끔 일부러 유지 장치를 낀 채, ASMR 영상을 찍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먹방 ASMR 영상 중에 젤리를 먹는 영상이 많은 이유도 젤리를 씹으면서 나는 쫀득거리는 소리가 더욱 자극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ASMR을 음성학적으로 접근한다면 이외에도 재밌는 지점이 더욱더 많을 거라 생각한다. 국내에서 ASMR을 음향학적이나 뇌과학적으로는 많이 살펴보지만, 음성학적으로는 아직 연구하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웠다. ASMR 유튜버들에게, 또한 시청자들에게도 ASMR의 음성학적 원리를 이해하는 건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박성수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15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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