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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권정은의 아이 그림 토크
아이 그림을 통해 아이와는 물론 어른과도 소통하고 싶은 권정은입니다.
아이들의 그림은 단순히 보여지는 그림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명화 뒷이야기만큼이나 재미난 것이 많습니다. 아이와 나눈 이야기를 어른들과 나누어 그 순수함의 힘으로 행복해지길 바랍니다.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저자
따뜻한 그림의 온도는? 열두 살 유진이의 핑크 폭포와 여덟 살 제나의 황금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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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4.03
12세 송유진 作

“유진아! 그거 폭포 아냐?”
“네”

“와! 근데 폭포가 핑크네? 여태껏 폭포를 핑크로 칠한 친구는 선생님이 본 적이 없었어. 왜 유진이는 핑크로 칠하고 싶었던 거야? ”
“음... 폭포를 보면 기분이 좋거든요. 그래서 기분 좋은 느낌으로 이걸 표현하고 싶었는데요, 음, 근데, 전 핑크가 따뜻하고 좋아서요."

“그랬구나. 시원한 느낌보다는 넌 기분 좋은 느낌이 더 중요했구나!”
“네. 만일 시원하게 한다고 파란색이 들어가게 폭포를 그리면, 차가워서 볼 때 기분이 따뜻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 전 따뜻한 폭포를 그리고 싶었어요. 따뜻한 게 기분이 좋은 거라서요. 벽에 걸어놓고 계속 볼 때 기분 좋은 폭포 색은 핑크일 것 같았어요.”

미술을 기술적으로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는 아이여서일까. 또래 그림을 좀 그린다는 친구들이 묘사를 기술적으로 잘 그리는 데에 집중하는 것에 반해, 올해 열두 살이 된 유진이는 그저 순수하게 자기감정이 닿는 대로 색을 칠하고, 붓질을 대담하게 쓱쓱 거침없이 그어 내려갔다. 그리고 그림의 주제인 폭포를 과감하게 핑크로 그려내었다.

'핑크 폭포'뿐이 아니다. 그와 함께 주황빛의 노을 진 하늘, 초록빛 산, 그리고 거친 붓질로 빚어낸 폭포 옆 암벽까지 하나의 하모니를 이루며 이 그림은 ‘이게 진짜 자연이야’ 하며 말하듯이 찬란한 색들을 뿜어내고 있었다. 아이의 설명이 없이도 보기 좋은 그림이었지만, 핑크를 칠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듣고 나니 이 그림은 더 돋보였다.

마치, 쌩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장미 같았다고 할까! 지구에는 수많은 장미가 있지만, 어린 왕자가 물을 주고 바람을 막아주고 하며 ‘나만의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장미’로 그것을 만들어 버린 것처럼. 이 지구의 많은 폭포와 폭포 그림 중에서 유진이의 폭포는 하나밖에 없고 유진이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아주 특별한 폭포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따뜻한 온기는 보는 이에게도 온전히 전달되었다.

 

온기, 따뜻함을 내 가슴에 불러오게 하는 것

바라만 봐도 행복한 기분이 드는 것. 그 온기를 느끼게 하는 그림을 또 다른 여덟 살 아이가 얼마 전 그려냈다. 제나가 그린 새 그림이다. 그림 그리기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이 아이는 그림 그릴 때 몰입도가 얼마나 높은지, 나이답지 않게 말 한마디 안 하고 눈에서 레이저라도 발사되는 듯한 집중력으로 그림을 그려댄다.

그런 아이에게 색칠하는 것은 단순히 수채화 물감으로 평평하게 색을 칠하는 것뿐 아니라, 다양한 방법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울퉁불퉁한 질감을 내며 그릴 수 있는 아크릴 물감의 미디엄을 소개해 주고, 아크릴이 마른 뒤에 다른 색을 또 올리면 색이 안섞이고 독립적으로 칠해지는 이 물감 만의 특색을 이용해 할 수 있는 여러 효과를 알려주었다. 아이는 신세계를 만난 듯이 눈이 휘둥그레 지면서 새가 앉아있는 나무 기둥 하나를 그리는 데만 거의 한 시간을 썼다.

물감을 발랐다가 나이프로 긁어내며 그 밑에 숨겨졌던 색을 다시 드러내게 하기도 하고, 나이프로 여러 색이 캔바스 위에서 막 섞이게도 하고, 미디엄을 두껍게 물감과 섞어 발라서 나무껍질의 느낌도 나게 하기도 하며, 그렇게 칠하고 뭉개고 다시 새로 칠하고 다시 뭉개며 실험을 계속해 나아갔다. 아주 어린 아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림과 하나가 되는 듯이 보였다. 그리고 결국, 그림은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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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 제나 作

황금빛 태양 아래, 제나처럼 예쁜 새 한 마리가 나무 위에 앉아있고, 태양의 황금빛은 나무 결 위에도 뚝뚝 떨어져 함께 빛이 난다. 그 아래는 따뜻한 봄의 꽃들이 분홍색으로 툭툭 튀어나오며 춤을 추고 있다. 찬란한 봄이 노래 같다. 그런데 진짜 봄의 노래는 그 뒤에 아이 가슴에서 불러 졌다. 일주일 뒤, 다시 그림 그리러 나온 아이가 그림을 안 그리고, 로비에 세워놓은 그 새 그림 앞에 앉아만 있는 것이다. 아이는 무릎을 세우고 두 팔로 그 무릎을 감싸 안은 채, 바닥에 앉아서 가만히 자기 그림만을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제나야 왜 그렇게 오래 이 그림을 보고 있어?”
“........”
아이는 대답도 안하고 아니, 내 질문이 들리지도 않은 사람처럼 강렬하지만 평온하게 자기 그
림을 응시하고 있었다. 

“제나야 왜 그래? 그림을 보니까 좋아?”
“네. 내 그림이 좋아요.”
아이는 그제서야 일어나서 다시 그림을 그리러 들어갔다. 그러나 잠시 후 다시 나와서 또 똑같은 자세로 자기 그림을 응시한다.

“제나는 이 그림만 계속 보는구나? 맘에 들어?”
귀여운 아이의 모습에 웃으며 묻는 내 질문에, 아이는 표정도 없이, 넋 나간 사람처럼 말한다.

“나... 이 그림 좋아요. 보고 있으면 계속 기분이 좋아져요.”
따뜻한 빛들로 주변이 가득 찼다.

 

권정은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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