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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뉴욕 변호사의 엑스팻 생활기
엑스팻(Expat)이란 외국에 장기 체류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엑스팻으로 반평생을 살아온 필자 이철재 변호사가 뉴욕에서의 엑스팻 생활을 풀어나가며 그곳의 일상적 모습 혹은 관광객들이 모르고 지나가는 곳들을 소개한다.
뉴욕, 제국이 되다 上 엠파이어스테이트 도약의 원동력, 이리운하(Erie Ca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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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3.26
Ⓒshutterstock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 중에 '제국의 역습'이 있다. 원제목은 'The Empire Strikes Back'이다. 엠파이어(Empire)는 제국이라는 뜻이다.

뉴욕시 맨해튼에 가면 32번가 코리아타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102층 높이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있다. 건물이 완공된 1931년부터 1970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유명했다.

뉴욕시에서 학교까지 다니며 살았던 사람으로서 약간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는 아직도 자유의 여신상을 한 번도 직접 가서 본 적이 없다. 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번거롭고 귀찮아서이다. 반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맨해튼 한복판에 있어 접근하기 수월하고, 입장하는 줄도 별로 길지 않다. 게다가 한국에서 온 손님들이 이구동성으로 가고 싶다고 해서 안내하고 함께 들어갔다. 나와 근처 '감미옥'에서 설렁탕 먹고 온 것이 5~6번은 족히 된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세계 최고층 빌딩의 왕좌를 내어 준 지 오래지만, 아직도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뉴욕의 도약과 영광의 상징으로 남아 뉴욕시의 ‘머스트 씨(Must See) 관광명소’로 꼽힌다.

엠파이어스테이트의 엠파이어는 제국이라는 뜻이고, 스테이트(State)라는 단어는 여러 의미가 있지만 여기서는 뉴욕주, 텍사스주 하는 미연방 주(州)라는 뜻이다. 엠파이어스테이트는 조금 의역하면 제국처럼 위엄 있는 주라는 뜻으로써 뉴욕주의 별칭이다. 그래서 뉴욕주의 영광과 도약의 상징으로 지은 빌딩의 이름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뉴욕시 맨해튼에 있지만, 뉴욕이 엠파이어스테이트가 되는 도약의 원동력은 업스테이트 뉴욕을 가로지르던 이리 운하(Erie Canal)이다.

뉴욕주 북동쪽에 있는 애더론댁 산(Adirondack Mountains) 서쪽 끝자락에서 시작하는 모혹강(Mohawk River)은 센트럴 뉴욕을 훑고 모혹 계곡(Mohawk Valley)을 지나 뉴욕의 젖줄인 허드슨강(Hudson River)으로 흘러 들어간다. 모혹강을 끌어안은 허드슨강은 계속 흘러 대서양으로 들어간다.


교통의 요지 모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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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업스테이트 뉴욕 지역에 대대로 살던 이로쿼이 원주민들이나, 17세기 이후에 뉴욕에 발을 디딘 유럽인들이 산세가 험한 업스테이트를 지나기에는 물길이 가장 편하고 빨랐다. 특히 유럽인들은 대서양을 항해해 뉴욕에 도착한 후 허드슨강을 따라 올라가다 모혹 강으로 갈아타면 뭍에 발을 디딜 틈도 없이 업스테이트의 센트럴 뉴욕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당시의 육상 교통수단보다 훨씬 빠르고 많은 짐을 나를 수 있었다.

이런 교통의 요지였던 모혹강 주변은 17세기와 18세기 이로쿼이 원주민, 네덜란드인, 영국인, 프랑스인 등이 모여 피 튀기는 각축전을 벌였다. 결국 영국이 뉴욕의 패권을 차지하고, 1776년 미국 독립전쟁 후 미국이 패권을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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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7년 뉴욕주 정부는 알바니 허드슨강에서부터 모혹계곡을 지나 시라큐스, 로체스터 등을 거쳐 뉴욕주의 서쪽 끝에 있는 도시인 버펄로의 이리 호수까지 363 마일(약 594㎞)의 육로에 운하를 건설했다. 업스테이트 뉴욕은 빙하기에 형성된 호수가 많고 눈이 많이 와 물이 흔한 곳이다. 주변 호숫물을 끌어다 물을 대고, 호수가 없는 곳은 웅덩이를 파 물을 모아 그 물로 물길을 만들었다. 해발 115m의 알바니에서 해발 183m의 버펄로까지 36개의 로크(Lock 수문 혹은 갑문)를 만들어 산에 올라가는 운하를 만든 것이다.

대서양에서 허드슨강을 거처 이리 운하로 들어가 이리 호수를 타고 오하이오주로 육로를 거치지 않고 가는 당시로써는 혁명적인 교통수단이었다.

뉴욕주 바로 서쪽에 있는 오하이오주는 오늘날 미국의 중서부(Midwest)라고 일컫는다. 서부 개척시대 미국에서 오하이오는 중서부가 아니라 서부 끝 오지였다. 1803년까지는 주도 아니고 그냥 개척지였다. 하지만 이리 운하 덕에 미국 내 생산품과 유럽에서 들어온 물건들을 쉽게 서부로 운반하게 되었다. 게다가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모두 이리 운하를 통해 서부 오하이오로 진출했다.

뉴욕은 이런 모든 행위의 길목이었고, 지나다니는 배에서 거둬들인 통행료만으로도 엄청난 수입을 올렸다. 뉴욕은 점차 미국 경제의 중심이 되었고, 마침내 제국이라는 별칭까지 얻게 된다.

지금도 업스테이트 뉴욕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I-90 번 고속도로가 이리 운하의 옛 코스를 그대로 답습해 뉴욕을 벗어나 오하이오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 이리 운하가 그 당시 미국 경제의 동맥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시라큐스의 모든 동네는 이리 블르바드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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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학자들은 미국이 모혹 계곡의 패권을 쥐지 못하고 이리 운하를 건설하지 못했다면, 현재의 미국 영토는 적어도 3~4개의 다른 나라로 쪼개져 존재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이리 운하는 미국의 오리지널 13개 주와 서부를 이어주는 역할을 해 오합지졸로 흩어져있던 주와 개척지들이 하나의 경제권으로 들어오고, 나아가 하나의 정치권을 이루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리 운하의 크나큰 성공으로 뉴욕주는 이리 운하가 지나가지 않는 뉴욕주의 도시들 주변의 호수들과 이리 운하를 연결하는 세 개의 지선 운하를 팠다. 채플린 운하(Champlain Canal), 오스위고운하(Oswego Canal), 카유가-세네카 운하(Cayuga-Seneca Canal)는 모두 이리 운하와 연결되고, 이 세 지선 운하와 이리 운하를 통칭 뉴욕주 운하 시스템(New York State Canal System)이라 부른다.

이리 운하는 아직도 사용하는 운하다. 매년 5월부터 11월까지 개장하여 작은 배들이 다니고, 이리 운하를 왕복하는 크루즈 회사들도 있다. 몇 년 전 이리 운하가 시작하는 알바니라는 도시에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그곳에 있는 7번 로크로 구경을 나간 적이 있다. 화창한 여름날이어서 그런지 작은 배들이 줄지어 서서 로크에 물이 차 수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한 가족은 캐나다의 케벡 주에서부터 자신들의 배를 운전하고 왔다고 했다.   

미국과 케벡 주에 걸쳐 있는 챔플린 호수를 타고 내려와 챔플린 운하로 갈아타 알바니까지 왔다. 앞으로 이리 운하를 타고 서진하다 중간에 이리 운하와 온타리오 호수를 연결하는 오스위고운하(Oswego Canal)로 갈아타 오스위고라는 동네까지 육로를 거치지 않는 여행 중이라고 했다. 자동차로 가면 5~6시간 정도면 여행할 수 있는 케벡에서 알바니까 지의 거리를 3일 걸려 왔다는 말을 듣고 질려서 오스위고까지는 얼마나 더 걸릴지 묻지도 않았다. 이리 운하의 운행 속도는 평균 시속 10마일 정도로 이리 운하의 동쪽 끝 알바니에서 서쪽 끝 버펄로까지 가는데 1주일에서 10일 정도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이 배들이 다니는 운하는 오리지널 루트가 아니라 큰 도시들을 우회해 지나가도록 변형된 것이다. 배보다는 자동차가 우선인 시대에 도시 한복판을 물길이 차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라큐스의 다운타운을 지나던 곳도 모두 복개했다. 하지만 도심 외곽에는 아직도 오리지널 운하가 자전거 공원으로 40마일 (약 64Km) 정도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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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를 덮은 아스팔트 위로 자동차가 달리지만, 이리 운하 흔적은 여기저기 여전히 남아있다.  그 하나가 이리 블르바드(Erie Boulevard, 블르바드는 큰길, 즉 '大路'라는 뜻)다. 운하가 시라큐스 다운타운을 지나던 곳으로 시라큐스에서 가장 크고 긴 길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던가. 시라큐스의 모든 동네는 이리 블르바드로 통한다. 길을 잃고 돌다 보면 어찌어찌 어느덧 이리 블르바드가 보인다. 나도 처음 시라큐스로 이사해 동네 길을 잘 모르던 시절 길을 잃고 헤맬 때면 늘 일단 이리 블르바드를 찾아 가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곤 했다.

또 다른 흔적은 이리운하 박물관이다. 이리운하에는 요즘으로 치면 톨게이트(Tollbooth)가 7개 있었다. 배를 로크에 가두고 물을 빼 배가 로크 바닥에 있는 저울에 내려앉으면 그 배를 들어 무게를 재고 그 무게대로 통행료를 계산해 받았다. 이를 영어로 무게를 재는 로크라는 의미로 웨이로크(Weigh Lock)라 불렀다. 시라큐스에 그 7개 웨이로크 중 하나가 있었다. 1850년에 지은 오리지널 건물이 아직도 시라큐스 시청 바로 옆에 서있다. 물길은 온데간데없이 아스팔트로 덮였지만, 이리운하 7개 웨이로크 중 유일하게 남아 이리운하 박물관(Erie Canal Museum)이 되었다.

 

* 다음 글에 <뉴욕, 제국이 되다-下>가 이어집니다

이철재 미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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