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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권정은의 아이 그림 토크
아이 그림을 통해 아이와는 물론 어른과도 소통하고 싶은 권정은입니다.
아이들의 그림은 단순히 보여지는 그림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명화 뒷이야기만큼이나 재미난 것이 많습니다. 아이와 나눈 이야기를 어른들과 나누어 그 순수함의 힘으로 행복해지길 바랍니다.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저자
패턴으로 그린 어지러운 세상 열한 살 박리엔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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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3.26
박리엔 作

“어지러운 세상을 그린 거예요.”

초등생인 아이가 어지러운 정치나 세계문제를 이야기하는 건 아닐 것 같고, 무슨 뜻인지 나는 다시 물었다.

“뭐라고?”

검은색과 흰색으로만 이뤄진 추상적인 그림은 얼핏 보면 물고기같이 보이기도 하고, 유명한 디자이너가 새로 내어놓은 신상에 들어갈 멋진 추상 패턴처럼 보이기도 한다. 간단한 그림이지만 아이가 그렸다고 보기엔 무척 세련된 아름다움이 있어서 신기함에 뭘 그린 거냐고 물은 나의 질문에 답한 아이의 말이었다.

“제가 어느 날 횡단보도를 건너가는데, 검정과 흰색으로 칠해진 횡단보도 무늬가 어지러워 보였어요. 그리고 고개를 드니, 세상이 그런 식의 무늬로 다 어지럽게 펼쳐진 것을 느꼈어요. 그 인상을 그린 그림이에요. 세상이 어지러운 무늬로 막 돌아가는 거요.”

단순한 횡단보도에서 이런 영감을 받는 아이의 시각적 예민함에 나는 감탄했다. 아니, 어쩌면 많은 사람도 그런 것을 느낄 수는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걸 마치 수학 공식처럼 하나의 패턴으로, 그 인상을 집약해서 끄집어내어 표현하는 능력은 분명 하나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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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리엔 作

 

이 아이는 유난히 패턴을 만들어내고 그걸 이용해 그림을 그리기 좋아한다. 어지러운 패턴 때문에 정작 그려진 그림은 숨은그림찾기처럼 잘 안 보이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중 하나가 파브르 곤충기를 읽고 먹이사슬의 생각을 하게 되어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먹이사슬에 얽혀있는 많은 동물이 아파트처럼 층을 쌓으며 그려져 있는데, 서로 다른 동물들이 커다란 패턴의 흐름 안에 공생하고 있다.

그래서 약육강식의 무시무시한 생존 법칙보다는 이것이 자연의 흐름이라고 알려주는 듯한 조화로움의 미가 더 돋보인다. 그래서일까! 악어는 무섭기보다는 아름답고 귀엽기까지 하다. 전체의 조화 안에서 모든 동물은 각자의 역할이 있고, 그 역할을 잘 수행하며 살아가는 것이 자연이고 아름다움이라는 느낌을 주는 그림이다. 인공적인 도시의 패턴이나 자연의 먹이사슬 패턴이나 아이의 손끝에 닿아서 풀어 내지기 시작하면 그것은 모두 예술이 된다. 평범한 횡단보도도 예술이 되고, 가까이서는 무서운 것만 보이는 악어도 전체 조화 안에선 예술이 된다.

아는 후배가 커피 전문점에서 줄을 서 주문을 기다리는데, 바리스타들이 받은 주문을 커피 종류와 크기 별로 외치는 소리가 하나의 리듬으로 들렸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리듬을 따라 하나의 패턴이 보이면서 하나의 디자인이 눈 앞에 어른거려서 집에 오자마자 디자인을 했다고 한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감성적으로 예민한 사람들에게 특히 일어나는 일이겠지만, 우리도 한번 일상 속에서 재미있는 구조를 발견하고 그것을 나만의 언어로, 나만의 패턴으로 끄집어내는 놀이를 시작해보면 어떨까! 평범한 일상에서도 (아니 사실, 아이가 말한 뜻과는 다른 뜻으로 어지럽기만 한 세상에서도) 우리는 재미난 패턴을 찾아내어 그것을 아름다운 그림으로 발전시켜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시각적인 아름다움의 패턴뿐만 아니라, 즐거운 행복의 패턴이 되고, 더 나아가, 어지럽고 약육강식이 팽배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소소하게나마 ‘어지러움 속에서도 즐겁고 감사한 패턴 찾아보기’의 긍정 마인드 훈련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예술이 별건가! 긍정적인 마음들이 모여 커다란 아름다운 패턴을 만들어내면 그게 예술이 아니겠는가.  

 

 

권정은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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