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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권정은의 아이 그림 토크
아이 그림을 통해 아이와는 물론 어른과도 소통하고 싶은 권정은입니다.
아이들의 그림은 단순히 보여지는 그림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명화 뒷이야기만큼이나 재미난 것이 많습니다. 아이와 나눈 이야기를 어른들과 나누어 그 순수함의 힘으로 행복해지길 바랍니다.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저자
"눈동자에서 하나의 작은 우주를 보는 것 같구나!” 열한 살 리엔이가 그린 깨진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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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3.13
박리엔 作

 “이건 새싹이 씨앗을 뿌리는 거예요. 씨앗에는 여러 생명체가 담겨있고, 그 아래 무지개 같은 것은 생명체들을 담은 씨앗들이 쌓여서 내는 색들이고 그것들이 넘치면, 아래로 흘러내려 맨 아래에 있는 둥그런 지구에 다다라서 생명이 돼요.”  

 “그리고 이건 깨진 하늘이예요. 하늘이 공기 오염 등으로 깨진 거예요. 그래서 여러 빛으로 흩어져서 조각 난 모습이에요.”

 열한 살 리엔이가 자기 그림을 보여주면서 내게 설명을 한다.  

 리엔이는 혼자서만 그림을 그리는 친구이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하기에 나도 굳이 내게 그림을 배우러 올 필요 없다고 어머니께 조언을 드렸다. 대신 가끔 이렇게 만나서 자기가 그린 그림만 보여준다. 그림 토크를 위한 티 타임이다.

 “리엔아! 그런데 새싹이 떨어지는 모습도 꼭 빛이 흩어지는 모습 같아. 빛처럼 보이게도 하고 싶었던 거니? ”

 “네.”

 순간, 화가 들로네(Delaunay)의 작품이 떠올랐다. 빛과 색, 패턴이 하나가 되어 어우러지는 그의 그림을 보여주면 아이가 더 좋은 영감을 받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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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리엔 作

 “선생님! 저는 이 그림이 마음에 들어요. 특히 이 사람이 그린 동그란 패턴 같은 거랑 무지개 같은 게 제 그림과 많이 비슷한 것 같아서 좋아요.”

 “그런데 이 작가는 그림만 그리지 않고 그림을 옷에 연결하여 발전시키기도 했어. 볼래? 그림이 이렇게 옷으로도 변할 수도 있어. 재밌지? 너도 너 그림을 다른 형태로 발전시킬 수도 있어. 재밌지?” 그러면서 들로네의 회화가 물들어 있는 많은 패션 작품들을 함께 보여주었더니, “와~!” 하면서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신기해한다.

 그때 어머니가 옆에서 말씀하신다. “리엔이가 유난히 빛에 관심이 많은 듯해요. 가끔 전시회 데려가는데요, 예전에 마크 로스코(Mark Rothko) 전시를 데려간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떤 검정 추상 그림이 있기에 저는 ‘이 그림은 왜 이렇게 까맣지?’ 했더니 리엔이가 ‘엄마! 이건 까맣지가 않아. 빛이 보이잖아!’ 하는 거예요.”

 “리엔아! 선생님은 네가 무슨 말 하는지 알아. 그 검정 그림 뒤로 푸른 빛이 보이는 것 같지 않았니? ”

 “네, 맞아요!”

 “맞아. 로스코는 사실 성스러운 어떤 빛을 표현한 화가야. 그래서 그 사람 그림의 경계는 다 부드럽게 번지듯 되어 있는데 그것도 그런 것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었어. 그리고 그 사람의 그림을 보고 너무 감동받아서 그 캔버스의 빛을 실제 공간에서 표현하고 싶다고 생각한 예술가가 있었거든. 그 사람 이름은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이라는 사람인데, 같이 한번 볼래.” 그리고는 터렐의 작품을 검색해서 보여줬더니 리엔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림이, 특히 본인이 관심을 두는 빛의 그림들이 패션으로도, 공간에 설치미술로도 발전되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에 신선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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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리엔 作

 리엔이가 빛 외에 또 관심을 두는 것은 눈이다. 사람의 얼굴에서나 동물에서도 유난히 눈을 강조한다. 눈동자를 바라보면 블랙홀 같이 빨려드는 것 같은 힘을 느낀단다. 또한, 여러 빛이 그 안에 보여서 아름답다고 한다.

 “그럼 너는 눈동자에서 하나의 작은 우주를 보는 것 같구나!”

 내 말에 리엔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보면, 리엔이의 그림은 꽃, 씨앗, 눈, 빛, 태양, 하늘, 새 등 우주의 낱알 들인 자연에 관심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을 그려도 단순하게 보이지 않고 이중적으로 숨은 그림처럼 보이게 그리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햇빛이 나오는 것도 꽃처럼 그린다거나, 눈동자도, 말도 복잡한 패턴 안에 숨겨놓아 하나의 무늬처럼 그려놓는다거나 해서, 사람들이 단번에 알아챌 수 없게 하고 싶어 한다. 그러면 보는 사람이 궁금증이 더해져서 그림을 더 바라보고 생각할 것 같단다.

 “리엔아! 히치콕이라고 하는 유명한 영화감독이 있어. 그런데 그 사람은 영화에 나오는 소리를 너처럼 만들었거든. 영화에는 대사도 나오고, 음악도 나오고, 그 외 여러 소리가 들리는 음향효과라는 게 있어. 그런데 이 사람은 그 세 가지 소리의 요소를 막 뒤섞어서 뭐가 대사이고 뭐가 음악 소리고, 음향효과인지 애매하게 만든 거야. 예를 들어, 까마귀 새 떼가 사람을 공격하려고 날개를 퍼덕이며 나는 순간의 소리를, 놀라 도망가는 아이들 발자국 소리의 두두두두두 하는 소리와 겹치게도 하고, 바이올린의 높은 소리를 끽끽 대면서 사람이 내는 비명 같이 만들기도 했어. 그리고 새 울음소리들을 음악처럼 사용하기도 했거든. 이처럼, 그림뿐만 아니라, 소리도 네가 원하는 것처럼 확실히 이게 뭐구나 하고 알아채지 못하게 할 수 있단다. 네가 그리는 그림은 꼭 그 히치콕 감독의 소리표현이랑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아. 그치?”

 리엔이는 행복해 보였다. 자기표현의 기회가 더 많아질 수 있다는 것에 신기해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다음에 또 몇 달 후 만났을 때, 리엔이는 오늘의 대화를 통해 얼마큼 더 자극받아서, 그 위에 자기관찰과 사색을 더 해 또 얼마나 성장을 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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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리엔 作

 마지막으로, 눈만 잔뜩 그려져 있는 그림이 궁금해 물어봤다.

 “이건 뭐야? 네가 눈에 관심이 많은 건 아는데 여긴 왜 이렇게 눈이 많아?”

 “아~! 이건 전깃줄에 감전된 눈이에요.”

 “?”

 “만화 같은 데 보면 전기에 감전된 장면이 자주 나오잖아요. 몸이 찌릿하게 재밌게 표현되는데, 그 순간 눈은 잘 안 보여요. 전기에 감전되는 순간, 눈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전 그게 궁금한데, 만화에선 몸 전체만 나와요. 그래서, 궁금해서 여러 표정의 놀란 눈들을 생각해보며 그려본 거예요. 헤헤헤.” 

 

권정은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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