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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권정은의 아이 그림 토크
아이 그림을 통해 아이와는 물론 어른과도 소통하고 싶은 권정은입니다.
아이들의 그림은 단순히 보여지는 그림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명화 뒷이야기만큼이나 재미난 것이 많습니다. 아이와 나눈 이야기를 어른들과 나누어 그 순수함의 힘으로 행복해지길 바랍니다.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저자
"어쩐지 쓸쓸해보이는... 그 분위기가 멋있어요" 재오가 그린 잘생긴 남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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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 정말 사람 그리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 그치? 매번 사람만 그리네.”

 “네.”

 “왜 그런 거야?“

 “사람은 감정과 표정이 있잖아요. 전 그게 재미있어요. 관심이 가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주로 사람을 그리기 시작하더니, 중학생이 된 지금까지 자유롭게 그림 주제를 고를 때면, 늘 선택하는 게 사람 그림인 재오의 이야기다.

 “동물은? 너 어릴 때는 동물도 가끔 그렸잖아.”

“동물은 그런데 표정이 잘 안 보여요. 다 똑같은 얼굴 같아요. 선생님은 보이세요? 전 동물은 그래서 별로 안 그리고 싶어요.”

 그리는 스타일도 한결같다. 섬세하게 사실적인 묘사를 하는 것은 전혀 관심이 없고, 휘갈기듯 하는 터치와 어찌 보면 어설퍼 보이는 선들과 형태다. 소묘를 배우고 있지만, 자기표현의 그림을 그릴 땐 절대로 그것을 무시하면서 그리는 아이다.

 어느 날, 역시나 멋진 외국 남자 배우 사진을 인터넷에서 고른다. 난 누군지 잘 모르는 사람인데,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란다. 너무 잘생긴 것 같다며 이 사람을 그리고 싶다고 사진을 프린트하더니 열심히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잘생겨서 고른 그 사람의 얼굴이 그림에서는 하나도 안 보인다. 얼굴은 뭉개져 있고, 푸른색과 회색, 초록색 그리고 주황색으로만 거친 붓질과 함께 남아있는 그림이다. 하지만, 그림은 정말 멋졌다. 표현이 살아있고, 생생했다. 그러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분명히 '얼굴이 잘생겨서' 선택한 사진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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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오 작

 “이 사람 잘생겨서 좋다고 그린다고 했잖아. 그런데 얼굴묘사는 하나도 안 했네?”

  “아~! 이 사람이 잘생기긴 했는데요, 이 사진이 맘에 든 건, 얼굴이랑 얼굴에 비친 그림자에서 오는 분위기가 특히 혼자 이렇게 서 있는 분위기가 어쩐지 쓸쓸해 보이고 약간 슬픈 듯해 보이는 게 멋있어서 그런 거예요. 얼굴 자체가 아니고요. 저는 그 분위기를 나타내고 싶었던 거지, 얼굴 자체를 그리는 데는 관심이 없어요.”

 “그래서 얼굴은 제대로 안 그리고 그 분위기를 푸른색과 초록색 회색으로만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긴 그림자까지요. 그런데 그렇게 그리다가 보니까 너무 우중충한 거 같잖아요. 너무 어둡게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래서 좀 생기를 주려고 주황색으로 가방을 그려 좀 환하게 만들었어요.”

 많은 아이가, 특히나 묘사 위주의 기술적 미술교육이 대세인 환경 아래에서는, 사람을 똑같이 따라 그리는 것에만 집중하는데, 재오는 독창적으로 인물을 재해석하고 자신의 해석을 색과 거친 붓 터치와 그림자에 담아 전달하려고 한다는 자체에 감동한 나는 아이 생각의 기특함으로 입꼬리가 한껏 올라갔다. 그리고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구나. 정말 잘했다. 너무 멋있어!”

 사람의 얼굴 자체보다는 표정에 관심이 많은 아이, 한 인물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와 사람 냄새, 그리고 정서에 관심이 많은 아이. 우리가 사람을 볼 때도 무엇부터 봐야 하는지 아이 그림으로부터 배우는 듯하다. 겉모습이 아닌, 그 사람의 정신과 역사가 만들어내는 그 사람만의 분위기와 성격, 마음, 가치관 등 말이다. 일주일 뒤, 아이는 또 누군가를 그려냈다. 강한 인상의 남자다움이 물씬 풍기지만 얼굴만 봐서는 누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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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오 作

 “이건 누구야?”

 “레옹(장 르노)요!”

 “아~!” 

 

권정은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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