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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유슬기의 스타의 사소한 습관
인터뷰를 좋아해 기자인 게 감사합니다. 귀로는 이야기를 듣고 눈으로는 행간을 읽으려 애씁니다.
아주 사소한 습관에 마음의 내용이 담겨있다고 믿어서요.
그런 찰나를 만나면 보물을 발견한 듯 심장이 두근!
비밀로 간직한 보물 이야기,토프를 대나무숲 삼아 털어봅니다.
#3. 배우 정우성의 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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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2.27

 정우성 인스타그램_UN 난민 친선대사인 그는 이 사진으로 '시리아 내전'에 관심을 촉구했다

인터뷰를 위해 카페에 도착하니, 기다란 사람이 서 있었다. 검은 목폴라에 진회색 체크무늬 자켓을 입은 그는 한 손에 탄산수를 들고 카페 안을 거닐고 있었다. 보통 인터뷰를 위해 카페를 대관하면, 배우를 위한 공간과 기자를 위한 공간이 자연스레 구분된다. 배우는 주로 카페의 맨 안쪽에 있는 내실(內室)’같은 공간에 머문다. 인터뷰 외의 시간에는 주로 마주칠 일이 없다. 그런데 그 경계를 허물고 허물없이 움직이는 배우를 보니 나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더구나 그는 웬만한 인파 안에서는 잘 섞이지 않는 정우성이었다.  

그는 심상히 카페 안을 걷다가, 찬바람이라도 쏘이려는지 카페 밖으로 걸어 나갔다. 문을 열고 나가면서 뒤따라오는 사람이 없는지 흘끗 바라봤다. 나가려던 사람이 황송한듯(?) 고맙다는 목인사를 하고 나갔다. 그가 나가기까지 가만히 문을 잡고 있던 정우성의 손가락은 마디가 굵고 길었다.

2016년이었고 당시 그가 출연한 영화는 <아수라>, <더 킹> 등이었다. <비트>의 김성수 감독과 20년 만에 조우한 <아수라>에서나 조인성과 함께 출연해 화제가 된 <더 킹>에서 정우성은자신이 어떻게 생긴지 모르는 사람처럼연기했다. 특히 악인과 악인의 대결이었던 <아수라>에서 그의 얼굴에 복면을 씌우고 안면을 가격하는 모습은 정우성씨, 얼굴 그렇게 쓰실 거면 저 주세요라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장면이었다. 실제로 그 즈음 영화의 후기에는 도대체 정우성 얼굴에 뭐하는 짓이냐는 성토가 이어지기도 했다.

더킹_정우성.jpg

<더 킹>에서 괴물검사 한강식을 맡은 정우성_스틸     

청춘의 자화상으로 살았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 이미지에 갇히기보다 자신의 이미지를 비틀고, 또 우스워지는데 거리낌이 없었다.나이가 들면 사회를 비판하는 것보다 현재 만들어진 사회에 책임을 져야한다던 평소의 말들을 작품으로 살아냈다. <더 킹>에서 부패한 검사 한강식을 맡았을 때 그는 아주 우아한 얼굴로 우스꽝스러운 부조리를 연기했다. 정우성의 한강식이 볼품없이 몰락할수록, <더 킹>이 주는 낙차는 컸다. 한 때 왕이었던 남자가 스스로 왕보다는 광대를 선택했다.

   

당시 함께했던 배우 조인성과 류준열은 한결같이 정우성같은 선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학창시절 우상이었던 배우 정우성과 함께 한 화면에 담기는 영광스러움 못지않게 카메라 바깥에서 인간 정우성이 주는 감동이 컸다. 그는 아주 막내 스태프까지 살뜰히 챙겼다. 현장의 분위기 전체를 훈훈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 내리사랑은 정우성에서 조인성으로, 조인성에서 류준열로 전해져 내려왔다. 류준열의 인터뷰 현장에 일부러 찾아와 그를 살피던 조인성은 내가 정우성 등 선배들에게 받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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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참견 시점>에 등장한 정우성_(형이 거기서 왜 나와?)_캡쳐

얼마 전 <전지적 참견 시점>에 등장한 정우성의 낙지 먹방을 보면서, 그 카페 안의 남자가 떠올랐다. 그와 함께 9년을 함께 한 매니저는 정우성을 배려가 몸에 밴 사람이라고 했다. 상대방이 정우성이라는 존재에 느낄 압도적인 느낌을 적절히 중화시키면서, 그에 대해 갖는 환상적인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사람. 정우성과 이영자의 만남이 유쾌했던 이유는, 한 세기가 흘러 만난 두 사람이 모두 사려 깊고 유연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의 존재감을 지키면서, 망가져야 할 때 몸을 사리지 않는 균형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모든 아침, 자신이 입을 옷을 직접 고른다고 말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와 이부자리를 말끔히 정돈하는 게 제일 먼저 하는 일이라고 말이다.배우란 비정규직이면서도, ‘24시간 근무이기도 해서 자기를 지키는 사소하고 작은, 바른 습관이 생각보다 중요하다고. 최근 개봉한 영화 <증인>에서 정우성은 한 때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분투했지만, 이제는 현실의 무게만 남은 피로한 중년 남자를 연기한다. 그의 회색 양복에는 뜻밖의 생활의 짠내가 배어 있었다. 이제 그는 어떤 옷을 입든, 그 옷에 맞는 배우다 광화문 네거리에 백팩을 메고 나타나도, 순조롭게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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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증인>에서 변호사 순호 역을 맡은 정우성_스틸 

한 때는 배우 외에 다른 길을 생각할 수 없는 삶을 살다가, ‘배우라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듯한 답답함을 느낀다는 그는 이 둘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어느 날 거리를 걷다가, (혹은 어느 허름한 부산의 비빔밥집에서) 따라오는 이가 문에 부딪힐까봐 손잡이를 느슨히 잡고 있는 정우성의 굵고 긴 손을 만나게 된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정우성_매너다리.jpg

사진 밑으로는, 그의 매너다리가 있습니다.  

 

 

 

 

 

 

유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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