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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신지영의 언어탐험
일상을 탐험으로 만드는 언어 탐험가이자 언어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사회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인문학자. 베이스캠프는 고려대학교.
언어의 세계를 탐험하며 발견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불쌍함에서 아름다움이 되는 마법 탐험대원 '하릅'의 언어 탐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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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2.25
우리말의 어원을 찾아 들어가면 다양한 것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다. 어원에 대해 알아가면 전혀 몰랐던 사실에 대한 쾌감도 느낄 수 있지만, 동시에 당대 사람들의 생각과 사회를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 조그마한 말에 담긴 무수한 이야기는, 많은 것에 대해 성찰하게 만들어주어 그동안 도달하지 못한 영역에 데려다주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도 지금부터 떠나려고 한다. 어원이라는 연료 하나로 그간 도달하지 못했던 미지의 영역을 향해서.

이 이야기는 다음 두 글을 비교하여 읽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려 한다.  


어여쁘다.png

                                      훈민정음 언해본 원문                                   현대역   (출처: 네이버 훈민정음 언해본 텍스트로 전문보기)

   (https://hangeul.naver.com/2012/unhaebonViewer.nhn )

익숙할 테지만, 위의 두 글은 차례로 <훈민정음 언해본> 서문의 원문과 현대역이다. 원문의 어엿비가 현대역에서는 불쌍하게라고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중학교에서 이 구절을 처음 읽었을 때가 기억에 선하다. 이 구절을 보며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어여쁘다가 이런 뜻이었다고? 정말 우리말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표준국어 대사전>에는어여쁘다 ‘’예쁘다를 예스럽게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참으로 의아하다. 왜 옛날에는불쌍하다는 뜻을 가졌던 말이 오늘날에는생긴 모양이 아름다워 눈으로 보기에 좋다는 뜻으로 탈바꿈한 것일까?

이 단어가 어떤 변화 과정을 거졌는지 알아보고 싶어서 <우리말샘>의 역사정보를 찾아보았다. <우리말샘>의 역사정보에는 다음과 같이 그 변화 과정이 풀이되어 있다.

 현대 국어어여쁘다의 옛말인어엿브다 15세기 문헌에서부터 나타난다. 중세국어에서어엿브다불쌍하다, 가련하다의 의미를 지녔는데, 근대국어 이후로 이 의미와 함께아름답다, 사랑스럽다의 의미로도 쓰이다가 현대 국어에서는아름답다의 의미만 남게 되었다. <우리말샘 역사정보>  

하지만 역사정보를 읽어도 여전히 우리들의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는다. ‘어여쁘다’의 개념적 의미가 바뀌게된 이유는 거기에 풀이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함께 생각해보면 어떨까? ‘어여쁘다’의 원형인 ‘어엿브다’가 ‘불쌍하다, 가련하다’의 의미를 지녔다는 부분에서, ‘가련하다’에 초점을 맞춰보자.

  고사성어를 보면, 사실 여성과 가련한 이미지는 과거부터 친했음을 알 수 있다. 중국 제일 미녀인 ‘서시’는 가슴앓이 병을 가지고 있었고, 통증을 느낄 때마다 눈썹을 찡그리는 습관이 있었다. 이를 매력으로 여긴 것인지, 눈썹을 찡그리는 것이 유행하였고, 결국 ‘못생긴 여자가 이를 흉내 낸다’라는 뜻의 ‘동시효빈(東施效矉)’이 탄생하였다. 병에 걸린 모습까지 유행한다니!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스꽝스럽다.

  당대 여성들에게는 ‘불쌍하고 가련한 모습’ 또한 매력 포인트가 되었다. 상황에 따라 ‘너 정말 어엿브다!’라는 말은 칭찬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관습이 근대로 전해오면서 ‘어여쁘다’의 의미가 ‘사랑스럽다, 아름답다’로 변모한 것이 아닐까?

  이런 이유 때문인지, ‘가련하다’는 ‘가엾고 불쌍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나, 칭찬 투의 긍정적인 말과 연관이 깊다. 대표적인 예시로 ‘청순가련하다’가 있으며 ‘가련하고 어여쁘다’라는 의미의 ‘애염하다’에서도 이를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음 표현들은 주로 어떤 대상을 형용하는 데 쓰일까? 이 단어가 쓰인 예문들을 찬찬히 읽어보자. 무엇에 대해 형용하고 있는지를 기록하면서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어여쁘다
작은 아씨는 마음이 어여쁘다. (표준국어대사전)
그녀의 꽃처럼 어여쁜 얼굴이 유리창 너머로 보였다. (고려대한국어사전)
*가련하다
늙고 병든 노인의 처지가 매우 가련하다. (표준국어대사전)
불의의 화재로 어린 자식들을 잃고 통곡하는 여인의 모습이 너무도 가련했다. (고려대한국어사전)
*청순가련하다
청순가련하고 애처로워 보이는 소녀. (표준국어대사전)
그 여배우의 상품화 전략은 청순가련한 이미지이다. (고려대한국어사전)
*애염하다
그 자태가 애염하여 예부터 선비들이 난초를 좋아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고려대한국어사전)

 

 사전의 예문들이 형용의 대상으로 삼은 것들을 차례로 나열해보자. ‘아씨, 그녀, 노인, 여인, 소녀, 여배우, 난초이다. 대부분이 여성을 형용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성이 아니더라도 노인과 난초처럼 보호의 대상이 되는 나약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가련하고 어여쁜이미지 아래에서 여성은 나약한 존재들과 동일선상에 있다.

  이러한 사실은 지금 우리에게 어떠한 화두를 던지고 있을까? ‘불쌍하고 가련한 모습’이 아름다움이 되는 이상한 현상은 호랑이 담배 피울 시절의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의 생각이기도 하다.

  나약해야 아름다운 여성이 되는 세상, 그것은 불행히도 지금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성이 반드시 강인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나약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마냥 듣기 좋다고 생각했던 ‘어여쁘다’는 관습적인 생각의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 ‘당신, 너무 어여쁘네요’라는 말이 들려주는 이면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과연 이 말을 칭찬으로 들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오늘 우리는 ‘어여쁘다’의 어원에서 시작하여 새로운 생각의 영역에 도달하였다. 단어 하나가 우리에게 남긴 파장은 생각보다 커질 수 있다. 다음은 어떤 단어를 통해 거대한 이야기의 시작을 만들어 볼 수 있을까? 혹시 마음에 담아두었던 궁금증이 있다면 주저 없이 남겨보자! 그 파장은 무척이나 아름다울 수 있을 테니까.

하릅(필명)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8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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