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도는 쌀, 화장품으로 해결한다

얼굴에 붙이는 마스크 팩을 우적우적 씹어 먹는 남자가 있다. 천연 식·의약 소재 연구개발 전문기업 파미니티의 김성수 대표다. 그는 우리 쌀을 이용해 만든 ‘쌀 마스크 팩’으로 해외 진출을 노리고 있다.
“쌀, 이젠 먹고, 마시고, 바르고, 즐깁시다!”

농식품 아이디어 공모전 심사가 진행 중인 농협미래농업지원센터. 천연 식·의약 소재 연구개발 전문기업 파미니티의 김성수 대표가 심사위원 앞에 섰다. 그는 “우리 쌀 소비 촉진을 위해 쌀 추출물을 넣은 마스크 팩을 개발했다”며 얼굴 모양의 시트 한 장을 꺼내더니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그가 개발한 마스크 팩이 우리 쌀을 넣어 만든 천연 기능성 물질임을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였다. 의미가 통했을까. 김 대표가 이끄는 파미니티 팀이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우리 쌀을 천연 식·의약 소재와 결합해 다양한 산업에 활용할 수 있는 사례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를 받았다.

경기도 과천에 있는 파미니티 사무실에서 만난 김성수 대표에게 ‘마스크 팩 맛이 어땠느냐’ 물었더니 ‘퍼포먼스였을 뿐’이라며 껄껄 웃는다. 그는 “천연 소재로 만들기 때문에 먹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며 “파라벤, 광물성 기름, 알코올, 합성색소, 벤조페논 등 다섯 가지 화학성분을 쓰지 않아 인체에 무해하고, 유칼립투스 나무에서 추출한 100% 천연 소재를 사용하기 때문에 먹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쌀 마스크 팩’이라고 하니까 단순하게 쌀로 만든 화장품이라 생각하겠지만, 팩 한 장에는 생명공학 기술이 집약돼 있다. 마스크 팩의 주요 성분인 식물 줄기세포는 오랜 기간 임상을 통해 검증된 천연 기능성 물질로 피부 결점을 개선하면서도 노화 방지 기능을 가진다. 여기에 우리 쌀 추출물을 넣어 피부 정화 효과를 낸다고 한다.

쌀 소비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쌀을 소비시킬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쌀 마스크 팩’은 분명 쌀 생산 농가를 위한 ‘효도 상품’이다. 김성수 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남아도는 쌀이 지난 10년간 연평균 28만 톤이라고 한다. 그는 “현재 벌어지는 남아도는 쌀 문제는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생긴 일”이라며 “앞으로의 천연 기능성 물질을 쌀과 혼합해 복합제품을 만든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 쌀 마스크 팩’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빨랐다.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에서의 반향도 컸다. 농협 측은 농식품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이 상품을 업무차 방문한 외국 손님들에게 선물했다. 그 가운데 화장품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인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이를 계기로 유럽으로의 수출 판로가 열리기도 했다.

최근에는 미국에서도 러브콜을 받고 있다. 농업기술실용화재단이 지난 6월 미국 네브래스카 이노베이션 캠퍼스(NIC)와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국내 농업벤처 창업기업 4개사를 미국으로 진출시켰는데, 그중에 파미니티도 선정됐다. 미국 진출 여부가 확정되면 앞으로 미국 현지에서 창업보육, 국제공동연구, 투자유치 지원, 외국법인 설립, 법률 및 회계 지원, 유통·판로 개척과 각종 정보 및 인적 교류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우리 쌀을 이용해 만든 쌀 마스크 팩이 유럽과 미국을 거쳐 전 세계로 뻗어 나갈 날이 머지않았다는 말이다. 김 대표는 “앞으로도 천연 기능성 물질을 쌀 이외의 다른 농산물과 혼합해 복합 제품을 만들고, 우리 고유문화와 융·복합을 통해 농민들의 소득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카이스트 나온 박사가 사업가로
파미니티가 개발한 천연 식·의약 소재 제품들.

김성수 대표는 사업가 이전에 교수이면서 과학자다. 그의 주전공은 뇌, 즉 뉴로사이언스(neuroscience)로, 신경과학 분야에서 치매나 기억력과 집중력을 향상시키는 천연물 연구를 오랫동안 해왔다. 카이스트에서 의생명과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 후 과정을 마쳤고, 중앙대 의대에서 교수 재직 시절 학내 바이오벤처를 운영하며 이 분야 국책 사업의 총책임을 맡아 왔다. 파미니티는 학내 벤처회사로 출발했다. 본격적으로 천연 소재 제품을 생산해보고자 2006년 독립 회사를 차렸다.

김성수 대표는 “전 세계적인 화두가 두뇌와 항노화에 집중되어 있다”며 “앞으로 뇌와 항노화 관련 부문은 전 세계 보건의료 시장과 천연 소재 시장, 농업 시장에서 최후의 가치가 될 것”이라고 했다.

천연 소재에 대한 그의 연구는 10여 년 만에 결과물을 냈다. 지난 2013년 남성호르몬 개선 효과가 있는 ‘MR–10’과 여성 건강에 유용한 ‘MS–10’, 치매 예방과 기억력을 증진하는 ‘BF–7’ 등 기능성 소재를 개발했다. 모두 천연물을 이용한 건강기능식품으로, 특히 ‘BF–7’은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 및 ‘국가신성장동력’으로 선정되며 국내외 보건의료 산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건강기능식품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장 표창을 받았고, 11월 농림부 장관상과 농협 대상, 2017년 4월 보건사업기술진흥 유공표창을 받았다.

그는 해외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2010년 세계적 권위의 국제학술지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가 그의 연구 결과를 중요하게 다룬 데 이어 2013년에는 《월드 바이오메디컬 프런티어스(World Biomedical Frontiers)》에 소개돼 의학자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월드 바이오메디컬 프런티어스》는 세계적인 최신 의학 정보를 소개하는 잡지다.

파미니티가 자체적으로 만든 제품은 열댓 가지지만, 이들의 기술력을 접목해 완전 제품으로 만든 것은 80개 정도다. 유수의 제약회사나 건강보조식품 업체에서 이들의 기술력을 가져가고 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지금의 성과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라 20여 년에 걸친 노력의 산물’이라고 했다.

“바이오메디컬 산업은 오랜 기간의 연구 축적이 필요합니다. 천연 소재가 어떤 효능을 갖는지 입증하는 기간이지요. 임상시험을 통해 수십, 수백 가지의 천연 소재를 적용해보고도 확신이 서기까지는 오래 걸리죠. 이 분야에서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나왔다는 것은, 그 이면에 오랜 연구 기간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학교에서 줄곧 연구만 해왔던 김 대표는 처음 사업에 뛰어들며 회사 운영이 익숙지 않아 우여곡절도 많았다고 한다. 자금 운용에 따른 회계는 물론 제품 수출과 판매 등에서 실수도 잦고 어려움도 수없이 겪었다. 회사를 10여 년 운영하다 보니 차츰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의 장점이자 단점이라면 너무 트렌디하고 빠르게 바뀐다는 점”이라며 “유행이 바뀌면 국가 지원의 방향도 바뀌기 때문에 지원금에 따라 연구 분야를 바꿔야 하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한국에서 노벨상이 안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가와 사회에서 바이오벤처와 의학 관련 부문은 오랫동안 기다리고 지원해줘야 한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김 대표는 바이오메디컬 연구가 곧 국가 경쟁력이라고 확신한다.

“IT나 자동차, 우주항공은 사람이 만들어가지만 생명공학은 달라요. 자연이 가진 가치를 발견해내는 과정이죠.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제조업을 기반으로 선진국의 기술을 받아 성장할 수 있었지만, 더 큰 발전을 위해서는 우리가 창조한 1등 기술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새롭게 창조하는 천연물 연구는 핵심 미래 산업임이 틀림없습니다. 앞으로 식품이나 건강기능식품 시장이 자동차나 IT보다 전망이 좋고 더 큰 시장이 될 것입니다. 바이오벤처를 이끄는 소명을 가지고 올곧이 이 길을 걷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