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잘러의 4요소 MPRI는 무엇?

업무는 AI로 빨라지고, 멘탈/관계는 더 중요해진다

출판계는 AI의 위기를 비교적 일찍 체감한 편이다. 6~7년 전부터 구글과 파파고 번역이 일상에서 사용되면서, 번역자의 위기론이 제법 심각하게 퍼졌다. 그럼에도 이번에 챗GPT의 충격은 몇 배 더 강력하다. 6년 전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을 때도, ‘코로나 바이러스’의 출현도 강력한 출간 아이템으로 재빠르게 바꿔낸 한국 출판계로서는 그 격변기에 ‘4차산업혁명’, ‘AI와 직업’ 등 트렌드서 출간이 성황을 이루었을 뿐, 우려의 목소리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챗GPT를 얘기하기 전에, 사실 출판계는 AI번역 도구 DeepL에 놀라는 한편 진심으로 떨고 있다. 독일 기업이 만든 DeepL은 기존 도구들과 달리 매끄러운 말솜씨를 자랑한다. 일단, 나로서는 ‘빠르고 정확한 번역 천재’ DeepL을 잘 활용하고 있고 아직까지는 감사한 마음이 더 크다. 매주 쓰는 보고서에 챗GPT에서 끌어온 요약과 설명도 활용하는데, 이를테면 “미국의 리터러시 교육의 역사를 500자로 요약해줘.”라고 질문하면, 챗GPT는 몇 초 만에 답을 출력해준다. 

이런 소소한 활동 외에, 챗GPT가 쓴 책도 벌써 몇 권째 출시되고 있다. 논란이 될 저작권 문제는 아직 미제로 미뤄두고, GPT의 답변을 모아서 책으로 출판하는 곳도 있다. 기술이 가장 느리게 적용될 것 같은 출판계도 이 정도이니, 다른 분야는 파급효과가 얼마나 클까? 사용자에게 AI의 정확도를 가늠할 안목이 있어야겠지만, 중‧저품질의 요약 해설 업무는 AI 수월성에 기댈 수밖에 없는 시대가 왔다.  

 

AI의 것은 AI에게, 인간의 것은 인간에게 

《대학을 졸업하면, 멋진 인생이 펼쳐질 줄 알았다》는 최신 ‘일 잘하는 법’이다. 타깃 독자가 신입사원부터 2~3년차인 만큼, 일과 생산성에 관한 지금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저자 옴스는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아온 선배이자 코치다. 그의 손을 거쳐서 입사에 성공한 많은 이들이, 정작 회사에 들어가서는 예상치 못한 현실에 부딪히고 좌절하는 것을 보면서 이 책을 썼다. 지금 Z세대는 어떻게 해야 일을 잘한다는 얘기를 들을까? 

옴스는 일잘러의 4요소로 MPRI(멘탈, 피지컬, 릴레이션십, 인사이트)를 꼽는다. 이중에서 피지컬(Physical)이야말로 챗GPT의 도움을 받아서 업그레이드 할 요소다. 미래의 AI의 능력이 어디까지 향상될 지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지금의 AI는 똑똑한 요약 비서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통계 서치, 요약 등 비교적 단순한 서류 업무는 AI를 적극 활용해서 나의 피지컬을 다져야 한다. AI가 할 일을 빠르게 AI가 처리하게 하고, 우리 ‘인간’은 다음 레벨로 넘어가야 한다.  

MBTI로 자신을 알았다면, MPRI로 일의 퀘스트에 성공하자.  ⓒ세종서적
MBTI로 자신을 알았다면, MPRI로 일의 퀘스트에 성공하자. ⓒ세종서적

전화 받기, 엑셀, 파워포인트, 워드 등의 자료정리 및 보고서 작성, 이메일 작성 등은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기본적인 툴에 해당한다. 간혹 기본업무스킬이 뛰어난 이들이 기고만장한 경우가 있으나 이는 잡일을 빠르게 수행하는데 필요한 기초 체력에 해당할 뿐이다. 드리블과 헤딩을 잘한다고 축구게임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건 아니다. 기본업무스킬은 등차가 1인 등차수열의 형태로 느리게 실력이 상승한다. 느리게 쌓이지만 한번 몸에 밴 기본업무수행능력은 평생간다. 잡일을 많이 처리하는 낮은 연차일수록 Physical의 중요도가 높고, 관리자 레벨 로 갈수록 Physical의 중요도는 떨어진다.

《대학을 졸업하면, 멋진 인생이 펼쳐질 줄 알았다》 중에서

 

관계도 인사인트도 ‘스토리’가 중요해진다 

우리가 30년 사이에 전화번호와 주소를 외우는 기능이 약화된 것처럼, 좋든 싫든 앞으로 정확성은 AI의 몫이 커질 것이고 브리핑 능력은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질 것이다. 그러면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마음, 스토리, 창의성’이다. 스토리는 내 생각을 타인의 관점으로 바꾸는 일종의 번역 과정이다.  

‘시리야~’ 대신에 ‘챗GPT’를 부르면 될 뿐. ⓒ셔터스톡
‘시리야~’ 대신에 ‘챗GPT’를 부르면 될 뿐. ⓒ셔터스톡

입사 지원자들과 상담을 진행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억지스럽게 포장된 키워드에 끼워 맞추거나 주요 이력과 성과만을 어필하는데 집중한다는 점이에요. “마케팅에 필요한 분석력과 커뮤니케이션을 키워왔습니다.”, “다양한 공모전에 참여하여 입상한 이력이 있고, 인턴 수행 과정에서도 담당 임원에게 최고의 사원이라는 극찬을 받은 바 있습니다.” 대표적인 어필 사례예요. 분석력과 소통이 필요하지 않은 회사, 직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좋은 성적과 인정받은 이력이 있다는 것만으로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믿어주는 사람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죠. 

소개팅에서 “저는 명문대를 나왔고, 진취적인 사고와 배려심을 두루 갖춘 멋진 이성입니다”라고 얘기하는 상대방을 좋아할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요. 내가 지금 말도 안 되는 어필에만 집중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수 있는 객관성(타인의 관점)이 중요할 것 같아요.

(...)

회사는 ‘탐구하고 고찰’하는 곳이 아니라 ‘문제를 빠르게’ 해내야 되는 곳이에요. 내 경험이 부족해도 선배와 동기에게 필요한 참고자료를 받아서 불필요한 작업을 줄일 수 있다면, 그것도 실력이에요. 

- 옴스 저자, 교보문고 인터뷰 중에서  

 

지치지 말고 계속하기 

창의성의 다른 이름은 ‘실패’다. 시도 끝에 새로운 게 나오기 때문이다. 실패는 누구든지 고통스럽다. 지치지 않고 계속해나가는 것,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 말고 ‘절친’ ‘단짝 동기’가 아니더라도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생활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서 너무나 소중하게 얻은, 세상에 자신을 빛내고 기여할 기회 중의 하나인 ‘내 일’을 부차적인 이유들로 걷어차 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참고 : 《대학을 졸업하면, 멋진 인생이 펼쳐질 줄 알았다》, 옴스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