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이 사람이 되면…

농구를 좋아하고 축구를 잘했던 그래서 운동장에서 살던 열여섯의 남자아이는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연예인 해볼 생각 없느냐”는 이야기를 듣는다. 축구감독이던 그의 아버지(최윤겸 충북청주FC 감독)는 아들이 선수 되는 걸 반대했다. 몸의 감각이 좋고 눈에 띄는 외모였음에도 ‘연예인’ 될 생각을 안 해본 건 늘 그보다 모든 걸 더 잘했던 두 살 터울의 형이 있어서다. 동네에서 유명했던 것도,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더 많이 받은 것도 그보다는 서울대 출신의 형이었다.

평생의 롤모델이던 아버지와 평생의 라이벌이던 형, 그러나 넘을 수는 없었던 둘의 존재는 그에게 승부욕이라는 DNA를 심어줬다. “성적을 올리면 오디션을 보게 해주겠다”는 부모의 제안에 그는 성적을 상위권으로 끌어올렸고, SM 연습생이 돼서 2008년 5월 열여덟이 되던 해 ‘누난 너무 예뻐’를 부르며 샤이니의 ‘불꽃 카리스마’ 민호로 데뷔했다.

반듯한 이목구비를 지닌 민호는 SM의 대표 ‘사슴상 연예인’인 동시에 슈퍼주니어의 최시원, 동방신기의 유노윤호에 이어 ‘SM 열정 3대장’이라 불린다. 그의 외모엔 한 번도 비수기가 없었고, 민호가 출연해서 우승하지 못한 〈아이돌스타 육상선수권대회〉도 없었다. 그는 〈아육대〉 초반 흥행 공신 중 한 명으로 높이뛰기, 허들 등에서 3관왕을 차지했다. 1위를 하고도 여유로운 모습은 〈아육대〉 관전 포인트 중 하나였다.

순정만화 주인공 같은 외모와 남다른 피지컬, 데뷔 15년 차에도 단 한 번도 물의를 일으킨 적 없는 바른 태도는 그를 ‘아이돌의 모범’으로 만들었다. 해병대에 자원입대하고 제대한 후엔 주연을 맡은 넷플릭스 드라마 〈더 패뷸러스〉와 솔로 앨범 〈체이스〉가 동시에 공개됐다. 그야말로 모범적인 행보다.

샤이니가 아닌 솔로 민호는 어떤 점이 다른가요.
“제가 멤버 중 가장 마지막으로 앨범을 냈어요. 태민의 〈에이스〉, 종현 형의 〈베이스〉, 키의 〈페이스〉와 온유 형의 〈보이스〉에 이어 마지막으로 나온 게 저의 〈체이스〉에요. 솔로이긴 하지만 서로 다 이어진 느낌이고요.”

샤이니는 떨어져 있어도 참 돈독한 느낌입니다.  특히 키 씨와는 이제 ‘노부부 케미’가 난다고도 하고요.
“평소엔 무뚝뚝한데 마음으로는 늘 함께인 기분이에요. 멤버들은 제가 출연한 드라마도 잘 안 봐요. 처음엔 서운했는데 지금은 그러려니 하죠(웃음).”

민호 씨는 어때요? 멤버들이 다른 활동을 할 때.
“저는 다 챙겨 보죠.(일동 웃음) 챙겨 보고 피드백도 보내는데 답이 잘 안 와요. 그것도 그러려니 해요. 이번 넷플릭스 드라마는 처음부터 제 노출신도 있고 스킨십도 있어서 주변에 보지 말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더 찾아서 보더라고요. 캡처해서 보내고.”

노출도 있고 스킨십도 있는 이번 작품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요.
“30대가 되면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작품을 통해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어요. 극 중 인물들이 제 나이랑 비슷해요. 일과 사랑 모두에서 많이 방황하고 흔들리죠. 그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어요.”

민호 씨도 그런가요? 30대가 되어 흔들리는 기분인지.
“저는 또래가 겪는 갈등을 20대에 이미 겪은 것 같아요. 열여덟에 데뷔하고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이게 맞는지, 이렇게 해도 되는지 고민했죠. 그 시기가 지나고 나니까 이제 좀 편안해진 것 같아요.”

이게 맞는지, 이렇게 해도 되는지는 이제 고민 안 해요?
“나 스스로를 너무 채찍질하고 의구심을 품는 시기가 있었어요. 고민만 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더라고요. 고민하기보다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쪽으로 태도를 바꿨어요. 제가 그때 고민했던 걸 친구들은 지금 하고 있더라고요. 사회생활 연차가 쌓이면서요. 제가 사는 세계랑 다르지만 ‘곧 지나간다’고 이야기해줘요. 언젠가 친구들의 시간과 저의 시간이 만나길 바라죠.”

늦은 나이에 해병대를 자원입대했는데요.
“당시에 잊히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한 번도 공백이 없었는데, 이렇게 자리를 비워도 될까 싶었고요. 고민만 할 바엔 어서 다녀오자는 마음이었어요. 기왕 간다면 강한 곳으로 가서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요. 마음을 다잡고 갔는데 막상 가니까 정말 힘들더라고요. 나는 멘탈이 진짜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더 강한 친구들이 많고요. ‘아, 군대라는 데가 어마어마한 곳이구나’ 싶었어요. 제가 스물아홉이었는데 대부분 스물, 스물하나인 친구들이랑 생활하면서 어린 친구들에게 에너지를 받고 배운 것도 많아요.”

뭘 배웠나요.
“10여 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렸고 그렇게 하는 게 맞고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뒤는 보지 않고 전진만 했죠. 처음으로 연예계가 아닌 독립된 공간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어요. 어린 친구들에게는 요즘 트렌드도 배우고요(웃음).” 

 

나 스스로를 너무 채찍질하고 의구심을 품는 시기가 있었어요.

고민만 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더라고요.

고민하기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쪽으로

태도를 바꿨어요.

제가 그때 고민했던 걸 친구들은 지금 하고 있더라고요.

‘곧 지나간다’고 이야기해줘요.

〈더 패뷸러스〉의 지우민은 워낙 패셔너블한 인물이라 막 전역한 예비역 느낌이 전혀 안 나더라고요(웃음).
“평소에 저는 거의 운동복을 입거나 블랙 아니면 화이트 계열만 입어요. 아무래도 이번 작품이 패션업계를 다루다 보니 다들 화려하죠. 제 평생에 가장 화려한 곳에 가보고 그렇게 꾸며본 것 같아요.”

지우민 캐릭터는 ‘열정 빼고 다 가진 인물’로 소개되죠. 열정돌인 민호 씨가 그 인물을 맡았고요.
“그래서 흥미로웠어요. 열정 없는 인물이 나한테 왔다고(웃음)? 나랑 반대니까 어떤 면에선 쉬울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어렵더라고요. 마음은 있는데 표현을 잘 하지 않는 것도 이해가 안 갔고요. 감독님은 캐릭터의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저를 캐스팅했다고 하셨어요.”

결국은 열정을 되찾는 캐릭터군요.
“이번 작품은 30대가 되고 첫 로맨스코미디라 그때만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동안 선배들과 작업했는데 이번엔 또래 배우들이라 같이 놀러 다니는 기분이었어요.”

극 중 우민과 지은(채수빈)처럼 친구였다가 연인이었다가 다시 친구가 됐다가 연인이 되는 건 어때요? 가능하다고 생각하나요?
“(손을 내저으며) 저는 전 여자친구랑은 친구가 되지 못할 거 같아요. 그건 저랑 좀 안 맞아요. 잘되기를 응원해줄 수는 있지만 다시 만날 순 없어요.”

실제 연애할 때는 어떤 스타일인가요.
“항상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후회가 안 남게 열심히 하자는 게 제 스타일이에요. 연애할 때도 그런 것 같아요. 밀당 같은 건 안 해요. 직진으로 표현하는 편입니다.”

평소 식성이 순대국, 육개장 이런 국밥류를 좋아한다고요.
“국밥이라면 매일도 먹을 수 있어요. 연습생 때부터 가던 국밥집이 있는데 지금도 가면 그렇게 행복해요. 해외에 가면 국물을 못 먹어서 힘들어요. 얼마 전에 영국에 다녀왔는데 국밥을 못 먹으니까 너무 먹고 싶었어요. 훠궈집을 찾아서 국물을 먹으니까 좀 살겠더라고요.”

데이트할 때 식성이 안 맞으면 어쩌죠?
“아, 그런 점이 안 맞을 수도 있겠군요. 저는 국밥이랑 백반만 먹거든요(웃음). 제가 청담동에 사는데도 집 근처에 그렇게 좋은 데가 많은 줄 처음 알았어요. 평생 갈 브런치 카페를 이번에 촬영하면서 다 가본 것 같아요.”

새로운 경험이었겠네요.
“클럽에서도 그렇게 노는지 처음 알았어요. 아니 아무리 신이 난다고 춤을 추다가 옷을 벗다니…. 저는 운동할 때도 꼭 옷을 입고 하는 편이거든요. 노출이 있다고 해서 현장에서 펌핑하면서도, ‘아니 정말로 이렇게 사람 많은 데서 옷을 벗는다고?’ 하면서 푸시업을 했어요(웃음).”

콘서트 때는 과감한 노출도 하던데요(웃음). 2015년 《코스모폴리탄》이 뽑은 ‘올해의 복근’ 순위에 아시아 스타로는 유일하게 포함됐고 그 영상은 여전히 화제예요.
“그건 준비한 무대니까요. 사실 군대에서도 몸을 열심히 만들었는데 보여줄 데가 없긴 했어요(웃음).”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네요. 최근에 하정우·주지훈·여진구 등 배우들과 여행 예능을 찍고 오기도 했죠.
“〈두발로 티켓팅〉이라고 코로나로 여행을 못 했으니까 한번 나가보자고 만든 프로그램이에요. 형님들이 고정 예능은 처음이라 긴장하셨는데, 제가 볼 때는 너무 잘하고 재밌어서 좋다고 계속 말씀드렸죠. 형들은 저를 귀여워해주셨고요.”

SM에서도 동방신기의 창민이나 슈퍼주니어의 규현 등이 최애 동생으로 뽑던데 형들이 좋아하는 캐릭터인가 봐요.
“제가 형들을 워낙 좋아해요. 형들이 뭐 하고 있으면 나가서 구경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촬영할 때도 보통 자기 신이 아니면 차에 있거나 다른 데서 대기하는데 저는 꼭 촬영하는 데 가 있어요. 궁금하기도 하고, 보고 싶어서요. 그런 모습을 좋게 봐주시는 거 같아요.”

내 촬영이 아닌데도 그런 열정을. 형들에 대한 사랑은 친형과 친밀한 관계에서 오는 걸까요.
“형은 제 평생의 라이벌이죠. 형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저 혼자요(웃음). 거기서 제 승부욕이나 열정이 온 것 같기도 해요. 어릴 적부터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은 형을 이기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거든요. 더 잘하고 싶은 자극을 주는 존재이기도 해요.”

솔로 앨범을 냈는데 오랜만에 무대에 서보니 어때요?
“확실히 연차가 쌓이니까 체력이 깎이긴 하더라고요. 리허설할 때도 전보다 힘들고, 아니 원래 이렇게 노래가 빨랐나 싶기도 해요(웃음). 그래도 마음은 똑같아요. 무대 설 때만큼은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신인이나 지금이나 그것만큼은 같은 마음입니다.”

늘 멤버들과 같이 서다가 솔로로 무대에 오르니 다른 점도 있겠어요.
“혼자서 다 하려니까 알겠더라고요. 그동안 멤버들이 이런 부분들을 맡아주고 있었구나. 고마운 마음도 들고, 대기실을 혼자 쓰니까 허전하기도 하고 그래요.”

15주년엔 완전체로 볼 수 있는 건가요.
“봐야죠. 그건 팬들과의 약속이니까요.”

한번 지나온 길은 되돌아보지 않는 법, 차라리 그 안에서 더 긍정적인 방향과 최선을 찾는 방식을 민호는 꽤 이른 나이에 깨쳤다. 계속 돌아본다고, 주저앉아 곱씹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가 〈아육대〉에서 허들 넘기나 높이뛰기에 강점을 보이는 건 몸과 마음이 일치된 결과인지도 모른다.

‘샤이니’라는 빛나는 아이돌로 살아오는 동안 그에게 늘 반짝이는 순간만 있었던 건 아니다. 소중한 동료를 하늘로 떠나보냈고, 멤버들은 남겨진 자가 됐다. 그래서 샤이니와 샤이니 월드 팬들은 서로 더 애틋하고 끈끈한 데가 있다. 그중에서도 민호는 가장 씩씩하고 든든한 존재다. 자신이 무너지면 안 된다는 걸 알아버린 것처럼 눈물도 삼킨다.

해병대를 제대한 후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민호는 여전히 불꽃같다. 드라마에서도 무대에서도 아낌없이 자신을 던진다. 그 한결같은 씩씩함이 샤이니를 다시 앞으로 가게 한다. 그게 오늘도 민호가 열정을 태우는 이유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