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믐달 같아서

장 강 명 

연세대를 졸업하고 건설회사에서 일했다. 언론사 공채로 《동아일보》에 입사해 11년간 기자로 일하다가 장편소설 《표백》으로 등단했다. 이후 전업 작가로 10여 권의 단행본을 냈고 수림문학상, 제주4·3평화문학상과 오늘의 작가상, 문학동네작가상, 젊은작가상, 이상문학상, 심훈문학대상, SF어워드 우수상 등을 받았다. 최근 장편소설 《재수사》를 펴냈다.  

 

김 혜 정

연세대를 졸업하고 호주에서 유학하며 회계학을 배웠다. 이후 외국계 회사에 입사해 15년을 근무했다. 현재는 남편 장강명 작가와 함께 지식공동체 ‘그믐’을 운영하며 대표로 재직 중이다.  

 

 

누군가에게 ‘영상만 보지 말고 책을 좀 읽어봐’라고 말하는 게

지금 시대에 안 맞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저는 가치 있는 일을 위해 저항하고 싶어요.

책 읽는 사람들이 사라지면

정말 세상은 암흑이 될 거라 생각하거든요.

지금의 대세, 큰 흐름에 맞지 않더라도

레지스탕스처럼 달려보려고요.”

(김혜정)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대학 과 행사에서였다. 도시공학과 94학번 장강명 작가는 행사의 사회를 맡았고, 97학번 김혜정 대표는 사회 보는 선배를 유심히 지켜봤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건 2001년이다. 둘 다 술자리에 가면 끝까지 있는 스타일이었고, 그러다 보니 신촌 구석구석을 누비며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음악도 많이 듣고 책도 많이 읽던 두 사람, 무엇보다 술을 많이 마시던 둘은 그해 여름 연인이 됐다.

2004년 두 사람은 헤어졌다. 김혜정 대표가 시민권 취득을 목표로 호주로 유학을 떠나서다. 이유는 “이곳이 싫어서”. 이 이야기는 2015년 《한국이 싫어서》라는 소설책으로 출간됐다. 4년 뒤 김 대표가 돌아왔고 2009년 두 사람은 마포구청에서 혼인신고서를 제출했다. 여름이었다.

 

내 생각에는 전형적인 한국식 결혼식은 빼빼로데이와 매우 비슷하다. 언젠가부터 점점 호사스러워지고 있고, 장식이 본질을 압도하고 있으며, 이제는 거대 산업이 되어버렸다. 업체들이 호사스러움을 부추기고 있으며, 소비자들은 모두 그게 허세이고 바보 같다는 걸 알면서도 그 상술에 넘어가고야 만다. 왜 이런 미친 짓거리가 사라지지 않을까? 내 생각에 그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이 미친 짓거리에 협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미친 짓거리에 협조하지 않는 자들을 “걔 원래 좀 특이하잖아”라며 이단자 취급하기 때문이다. 그 미친 짓거리를 성대하게, 무의미하게 치러낼수록 찬탄을 사고 그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기 때문이다.

- 장강명, 《5년 만에 신혼여행》 중 

 

그리고 2014년 두 사람은 보라카이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이 3박 5일의 여정은 2016년 《5년 만에 신혼여행》이라는 에세이로 세상에 나왔다. 작가의 연인 혹은 아내로 산다는 건 그의 순간들이 활자로 각인되는 일인지 모른다. 장강명 작가가 11년 동안 근무한 일간지 기자를 그만두고 2011년 장편소설 《표백》으로 등단했을 때, 김혜정 대표는 “남편이 소설가로 등단하는 일은 평생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다”고 고백했다. 이후 장강명 작가는 “연쇄수상마”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숱하게 문학상을 휩쓸었다. 한 작품으로 두 개의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받은 상금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무료 서평집 발간. 제목은 〈한국 소설이 좋아서〉였다. 읽히지도 않고 사라지는 소설들, 재미있지만 그 재미를 알리지 못한 작품을 소개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2017년 당시 각 서점 전자책 베스트셀러 부문 1위에 올랐다.

장강명 작가도 다독가지만, 김혜정 대표도 못지않다. 특히 소설을 애정하는 건 아내 쪽이다. 철학, SF, 인문학, 자연과학 등을 아우르는 장강명 작가의 독서와 달리 김혜정 대표는 문학 쪽을 깊이 판다. 책을 보는 눈썰미도 좋아, 그가 추천한 책에 장강명 작가가 흠뻑 빠진 적도 많다. 그러다 보면 궁금했다.
“이렇게 좋은 책이 왜 이렇게 알려지지 않았지?”

“이유는 단순했어요. 수상을 못 했거나,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거나, 문예지의 평론 대상이 되지 못해서였죠.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도 부커상 후보가 되기 전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잖아요.”(장강명)

“한 사람이 한 작품을 써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읽는 이들도 적고, 아무 반향도 일으키지 못한다면 힘이 빠질 것 같더라고요. 베스트셀러인데도 재미없는 책이 있는가 하면, 정말 재미있는데도 사람들이 모르는 책이 있거든요. 그 책을 읽은 독자들이 목소리를 내고, 그 목소리가 입소문이 될 수 있다면 좀 더 건강해지리란 생각을 했죠. 제가 그런 갈급함이 있었고요.”(김혜정)

장강명 작가의 작품이 입소문이 나고 그의 인지도가 높아질수록 그의 아내를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는 작품 갈피갈피에 아내와의 대화, 아내의 배려, 아내의 생각 등을 녹여 넣었다. 어떤 책은 두 사람이 공저자처럼 보였다. 하지만 김혜정 대표는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호주에서 회계학을 공부한 그는 한국에 돌아와 외국계 기업에 입사했고, 15년을 근면히 일했다. 그러다 번아웃이 왔다. 침대에 누워 일어날 힘이 없었다. 남편은 지친 아내를 살뜰히 보살폈고, 한 달간 함께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지만 기력은 쉬 회복되지 않았다.

“부모님이 여전히 나를 사랑해준다는 사실, 남편이 여러모로 애써주고 있다는 사실은 명확하지만 그게 저를 일으켜주지는 못 하더라고요. 그때도 저를 붙잡아준 건 책이었어요. 그 와중에 읽었던 책들이 삶의 방향성을 알려줬고요. 내가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 어떤 일이 가치 있는지에 대해서요.”(김혜정)

“지금 보면 작년의 그 사람이 맞나 싶어요(웃음).”(장강명)

김혜정 대표는 아닌 게 아니라 활기로 완충돼 있었다. 긴 장편을 탈고한 뒤 인터뷰와 행사를 하느라 녹초가 된 장강명 작가와 텐션이 달랐다. 최근 장강명 작가와 김혜정 대표는 한국 독서생태계 부활에 뜻을 모은 이들과 함께 ‘그믐’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독서생태계는 쓰는 이와 읽는 이, 애서가들과 애독자들이 생태계의 군집을 촘촘히 이룬다. 이들의 끈끈함과 열기가 주변에도 전파된다. 지금은 어딘가 헐거워졌다. 읽는 이들의 총합이 줄어든 것은 물론이고,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들도 많지 않다. 궁금한 게 생기면 인터넷을 클릭하고 그나마 긴 글은 요약본을 찾는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댓글로, 게시판으로, SNS로, 유튜브로 남긴다. 문장은 점점 더 짧아지고, 영상은 초단편으로 편집된다.

장강명 작가는 ‘책 중심 사회’를 열망한다. “책이 의사소통의 핵심 매체가 되는 사회, 많은 저자들이 ‘지금, 여기’의 문제에 대해 책을 쓰고, 사람들이 그걸 읽고, 그 책의 의견을 보완하거나 반박하기 위해 다시 책을 쓰는 사회”다. 장 작가가 ‘쓰기’를 독려해 생태계의 군집을 확장한다면, 김 대표는 ‘읽는’ 이들을 모아 이야기를 키운다. 9월 29일 문을 연 지식공동체 ‘그믐’은 독자끼리 모여 이야기하는 공간이다. 유명한 책들의 대부분은 ‘유명인의 언급으로 유명’해진 경우가 많다. 영화화됐다든지, 아이돌이나 연예인이 드라마나 SNS에서 들고 있었다든지 하는 식이다. 부부는 독서 공동체가 자력갱생하길 바란다. 책을 실제로 읽은 이들이 책을 추천하고 각자의 심금을 울린 문장에 밑줄을 긋고, 서로의 인생책을 함께 읽으면서.

“그믐달은 새벽이 돼야만 나와요. 모두가 잠든 시간이라 실제로 보기도 쉽지 않죠. 동쪽 하늘에 등장했다가 곧 사라져버리거든요. 참고로 초승달이랑은 다릅니다(웃음). SNS며 유튜브며 틱톡이며 볼 것도 많고 할 것도 많은 시대에 꿋꿋하게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저는 꼭 ‘그믐달’ 같다고 생각해요.”(김혜정)
 

그믐이라 그래. 그믐달은 아침에 떠서 저녁에 지거든. 그래서 쉽게 볼 수 없지. 해가 뜨기 직전에만 잠깐 볼 수 있어. 남자가 말했다. 낮에는 너무 가느다랗고 빛이 희미해서 볼 수가 없어.

- 장강명,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중 

 

장강명 작가·김혜정 대표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