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 위스키 블렌더가 만든 와인, 오미나라

경북 문경의 오미나라 와이너리에 도착했을 땐 해가 산봉우리 쪽으로 한참이나 내려온 늦은 오후였다. 전시장 겸 와이너리로 쓰이는 건물 앞마당에는 추석 때 밀려든 주문에 맞춰 택배 상자를 옮기는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그 틈으로, 각종 기사를 통해 익숙해진 분의 모습이 보였다. 로제와인을 떠올리게 하는 분홍색 셔츠를 받쳐 입은, 어딘지 학자를 떠올리게 하는 풍모. 대한민국 술의 산증인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오미나라의 이종기 대표였다. 

우리나라에서 술 좀 마셨다는 사람 치고 이 대표의 손을 거친 술을 마셔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국내 최초의 원액 100퍼센트 위스키였던 패스포트부터, 썸씽 스페셜, 윈저, 골든블루 같은 술들이 모두 그의 코와 혀끝을 거쳤다. 특히 패스포트는 나에게도 추억이 깊은 술이다. 학군단 과정을 마치고 초급 장교로 복무하던 시절, 가장 기다려지는 것은 분기에 한 번꼴로 나오는 면세 주류 티켓이었다. 이걸 가지고 피엑스에 가면 700밀리리터짜리 패스포트 한 병을 1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다. 성인이 돼 처음으로 내 의지로 구매하고, 최대한 음미하며 마시려고 애썼던 양주 한 병. 그 술을 시장에 내놓은 분을 직접 만나게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렜다.

이종기 대표가 경북 문경에 자리를 잡고 거듭된 연구 끝에 세상에 내놓은 술이 바로 오미로제 스파클링와인이다. 국내 최고의 위스키 마스터 블렌더에서 지역 특산 재료로 만든 와인 와이너리 대표로 변신하기까지, 그 간극이 궁금했다.

“달고 시고 짜고 쓰고 신맛이라는 뜻의 오미(五味)는 결국 ‘모든 맛’이라는 뜻과 통합니다. 오미자에는 허브 향과 과일 향, 향신료의 향이 다 섞여 있습니다. 게다가 술을 만들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매력적이고 신비한 색이 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명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오미자만 한 재료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처음 맛을 본 것은 새롭게 출시된 스파클링와인 오미로제연이었다. 기존에 판매하던 오미로제 스파클링 제품은 과거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서 샴페인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와 동일한 방법(샹파누아즈 방식)으로 만들었다. 일일이 손으로 하는 작업이니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병에 담아 숙성시키는 과정에서 가스가 조금이라도 많이 발생한 것들은 가차 없이 터져나간다. 고급 주종의 가치와 품격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미나라의 생존을 위해서는 대중화를 통한 채산성 향상도 놓칠 수 없는 부분이었기에 새로이 만들게 된 것이 바로 오미로제연이라는 설명이었다. 

“한번 직접 따보시겠어요?”

이 대표가 병을 건네며 말했다. 주둥이는 철사와 코르크 마개로 단단히 봉해져 있었다.

“이게 압력이 일반 자동차 타이어의 두 배 정도 됩니다. 사람이 없는 쪽으로 코르크를 누르면서 천천히….”

뻥!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코르크 마개가 천장을 향해 솟아올랐다. 반쯤 풀린 쇠줄만 손에 남았다.

잔에 따른 오미로제연은 무엇보다 색으로 눈길을 붙잡는 술이다. 상쾌하면서도 그것이 다가 아니라고 은근한 말을 전해오는 향이 코에 감긴 것은 그다음이었다. 잔 바닥에서는 끊임없이 별 무리가 표면을 향해 솟아올랐다. 입에 머금었을 땐, 화려하지만 침착한 고급 샴페인의 맛 끝에 프랑스 쉬라 품종 포도로 만든 레드와인 같은 스파이시함이 느껴졌다. 

이어진 잔은 샴페인이 태어났을 당시의 그 방법 그대로 만들고 있는 오미로제결이었다. 새롭게 오미로제연을 만든 뒤에, 기존의 오미로제에는 ‘결’이라는 이름을 붙여 차별화한 것이다. ‘연’과 ‘결’. 이 술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싶은 이 대표의 뜻이 느껴졌다. 잔에 따른 술에서 풍겨오는 향은 ‘연’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색에서 살짝 붉은 기가 덜한 듯했다.

이 술을 입에 넣었을 땐, 이 표현 말고는 생각나는 말이 없었다.

“저는 지금 별을 마시고 있습니다.”

이 말은 지구상에서 샴페인을 처음 만들어 마신 프랑스의 수도사 돔 피에르 페리뇽(Dom Pierre Pérignon)이 남긴 말이다. 병이 터져나가게 만들어 양조인들을 괴롭히던 병 내 2차 발효 현상을 역이용해 입안에서 별이 반짝이는 것 같은 아름다운 술을 만들어낸 돔 페리뇽의 감탄사야말로, 도저히 술이 될 것 같지 않던 오미자의 복잡한 향을 이용해 탄생한 걸작을 맛볼 때 가장 어울리는 헌사가 아니었을까.

 

*본 편은 도서 《우리술 익스프레스》(탁재형 지음, EBS BOOKS 발행)의 일부를 발췌 및 편집한 것입니다. 상세한 내용은 책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