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진숙 미술평론가

떨어져서 보면 그림, 가까이 다가가면 유머러스한 글자들

유승호
1973년 충남 서천 출생. 한성대 회화과 졸업. 1999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7회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국립현대미술관, 취리히 미키위키 갤러리, 킹스린 아트센터, 모리미술관, 퀸즐랜드 아트갤러리, 토탈미술관, 광주비엔날레, 부산시립미술관, 타이페이 시립미술관 등의 주요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1998년 제5회 공산미술제 공모전 우수상과 2003년 제22회 석남미술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장흥 아틀리에 레지던시 작가로 선정되어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http://yooseungho.kr
“유럽 여행은 어떠셨어요?”

“네, 많이 보았습니다.”

지난 8월 중순, 서울 소격동에 위치한 갤러리 플랜트에서 4년 만에 국내 개인전을 마친 화가 유승호는 바로 다음날 독일로 떠났다. 그느 뒤셀도르프와 베를린 등의 현대 미술관을 둘러보며 새로운 작품을 위한 구상과 아이디어로 꽉 충전한 뒤 돌아왔다.

장흥 아틀리에 레지던시 작가로 선정되어 작업실도 옮기고 홈페이지도 새로 꾸미는 등 이 젊은 중견 작가는 새로운 변화를 위한 자기 쇄신의 기운에 충만해 있었다.
代代孫孫 - 나는 니가 아니야 I am different from you_ink on paper, 200x100.5cm, 2006~2007.

유승호라는 이름을 한국 미술계에 알린 것은 ‘문자 산수’인데, 그는 이 작업을 대학 3학년이던 1997년에 시작했다. 당시의 일을 작가는 “작가로서 작업의 방향을 빨리 찾았던 것 같아요. 이 작업을 시작하고 아주 설레었죠. ‘이런 글자로 그린 그림이 미술이 될 수 있을까?’라고 말이죠. 주변의 반응도 좋았고 자신을 가지고 했습니다”라고 회상한다. 1998년 공산미술제를 통해 데뷔하고, 이듬해 졸업과 동시에 첫 개인전을 가졌다. 2002년에는 광주 비엔날레에 초빙되고, 2003년에는 석남미술상을 홍영인과 공동 수상하면서 작가로서의 경력을 착실히 쌓아나갔다. 도쿄 롯폰기에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현대 미술관인 모리미술관은 2005년부터 ‘모리 아트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아시아 현대 예술작품을 컬렉션하기 시작하면서 2008년 여름, 컬렉션한 작품들로 전시를 열었다. 이 전시에 한국 작가로는 유일하게 유승호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후 해외 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이런 탄탄한 경력 덕분에 사람들은 유승호가 나이가 좀 있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1973년생인 그는 마흔이 되려면 3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젊은 작가다. 화가로서 그는 원숙하지만, 새로운 시도가 두렵지 않을 만큼 충분히 젊은 것이다.

그의 작업실 문에는 ‘유화백’이라는 명패가 붙어 있다. 삐뚤빼뚤한 필체로 씌인 명패는 CEO의 권위에 찬 명패를 패러디한 것이다. 21세기에 ‘화백’이라니! 베레모를 쓴 고바우 영감이 떠오르는데 이 명패를 붙인 데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고 물으니 ‘그저 재미로’ 그렇게 해본 것이라고 한다.

“유치한, 유머, 바보로서의 유치함, 참된 바보로서의, 위장된 바보가 아닌,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머리의 나사를 좀 풀어주자, 자유롭게 날아가도록. 하지만 유머 뒤에는 반드시 그 무엇이 있다. 얄딱구리한 그 무엇”이라고 그는 작가노트에 쓰고 있다. 이전 인터뷰에서도 그는 스스로 ‘바보’임을 기꺼이 자처했다. 그가 ‘바보’ 행세를 하고, 요새 유행하는 말로 세련된 ‘아티스트’가 아니라 우스꽝스러운 ‘유화백’이라고 자처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바로 “자유롭게 날아가도록, 머리의 나사를 좀 풀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자유분방한 생각이 없었다면 유승호의 그림은 없었을 것이다.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동양화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 동양화적인 이미지를 그리면서도 동양화의 필선에 의존하지 않고 묘사의 단위를 문자나 점으로 대체하는 것, 이 문자의 소리값(청각적 요소)이 이미지(시각적 요소)와 자유롭게 충돌하는 것은 그의 이런 ‘나사가 좀 풀린’ 자유로운 발상에서만 가능하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이미지는 범관, 곽희, 김홍도, 윌렘 드 쿠닝 등 대가들의 작품에서 차용한 것인데, 이 이미지들을 구성하는 요소와 제목들은 “우수수수” “야~호” “으-씨” “으이그 무서워라” “힘줘. 여기는 힘 빼고” “뭉실뭉실” “쉬~” 등 구어적이고 더러는 점잖지 못한(?) 키치적 언어들이다. 유승호의 작품은 일종의 이중화(二重畵)다. 멀리서 보면 산수 이미지나 다른 큰 이미지가 보이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면 이 이미지들은 앞서 말한 의성어・의태어를 볼펜이나 제도용 펜으로 하나하나 쓴 글자로 이루어졌다. 깨알 같은 글자들이 겹쳐서 촘촘히 윤곽이 만들어지고, 형상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떠올리면 작품에 쏟아부었을 작가의 노고가 태산같이 느껴진다.
으-씨 echowords_ink on paper, 160x122cm, 2002~2003.

뇌출혈 natural_ink on paper, 200x182.5cm, 2007~2009.

 
'으-씨'란 글자로 다시 그린 윌렘 드 쿠닝의 여인상

한참 제작 중인 작품은 멀리서 보면 조선시대 화가 단원 김홍도의 그림을 기초로 해서 그려지고 있었다. 여기에 겹쳐지는 말은 1980년대 남궁옥분이라는 가수가 불러서 유행했던 ‘사랑사랑 누가 말했나?’라는 노래가사다. 두 시대가 겹쳐지고, 동양화와 포크송이 엉뚱하게 결합하면서 김홍도의 산수화는 사랑, 그 설렘의 물결이 일렁이는 그림이 되었다. 유승호는 이미지와 문자를 매치시키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윌렘 드 쿠닝의 저 유명한 ‘여인’이라는 작품은 ‘으-씨’라는 말로 이루어졌다. 20세기의 가장 위협적이고, 불쾌감을 자아내는 여인상으로 유명한 윌렘 드 쿠닝의 작품을 남자들이 보면 실제로 “으-씨” 할 것 같고 그림 속의 여자는 그런 남자들을 보면 “으-씨” 할 것 같다. 언어와 그림이 교묘하게 만나고 언어의 세속적이고 구어적인 특징이 이미지들의 권위를 해체하면서 ‘볼거리인 동시에 읽을거리’를 만들어준다. 작품은 그가 말하는 ‘얄딱구리한 그 무엇’의 재미로 충만하다.
내 목 좀 풀어줘 my neck please_acrylic on canvas, 160x80cm, 1997.

최근 전시에 출품한 작품들은 점을 하나하나 찍어서 만든 작품으로 ‘땡땡땡 그림’이란 이름을 붙였다. 점이나 도트 같은 세련된 표현을 마다하고 해학적인 용어를 선택한 것이다. 이 시리즈 중 하나인 ‘수줍은 사과’는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기도 하고 남녀의 성기를 연상시키는 묘한 그림이다. 이미지의 자유로운 변조와 자유로운 연상은 그의 작품의 핵심이다. 그가 보여주는 드로잉 작업에서 그 비밀을 훔쳐볼 수 있다. ‘Jeff wall’(미국의 사진작가)이라는 영어가 조금씩 지렁이처럼 변해가다가 로봇의 팔로, 다시 한자로 되었다가 태극의 형상으로, 이것이 다시 병든 개의 형상이 되었다가 ‘dog ill’(병든 개)라는 영어가 되었다. 그 발음 그대로 ‘독일’이라는 나라가 되어 독일 깃발의 그림으로 끝난다. 이미지-문자-형상이 서로 넘나들면서 무한히 증식하는 것이 그의 연상이다. 그의 작품 전체는 아무런 논리적인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바보’ 같은 스토리텔링에 입각한 것이다. 그의 드로잉들은 독특한 필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것들은 왼손으로 그린 것이라 한다.
이창 Rear Window_dimensions variable, binocular, tripod, fishing line, plastic, acrylic, 2009.

“처음에는 어눌하고 어색하게 그렸지만 나중에는 숙달되어서 잘 그렸어요. 잘 그리는 게 싫은데…. 이젠 입으로 그려야 하나, 발로 그려야 하나 생각해요.”

너무 잘 그리면 재미가 없단다. ‘바보’라는 주장의 철저한 실천의 연장선에 있다. “뭔가 완성태가 아닌 그런 느낌”은 변화의 과정에 있는 만물의 상태일 것이다. 이 자유로운 변화와 전환의 이미지를 그는 간략하게 동요로 표현한다. “바윗돌 깨뜨려 돌멩이, 돌멩이 깨뜨려 모래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분관으로 개조될 예정인 기무사에서 있었던 전시에 출품되었던 작품의 내용이기도 했던 이 동요는 “한 개체가 깨지고 새로운 개체로 생성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를 설명하는 일종의 테마송이다. 바윗돌이 돌멩이가 되고, 돌멩이가 다시 모래가 되는 무한 변전의 과정이 그의 작품에 담긴 기본 태도다.

“이전 작업이 개인적이었다면 요즘 작업은 좀더 확장시켜서 문화나 사회적인 것으로 확장시키고 성찰하는 작업을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는 새로운 유승호를 보여주기 위한 여러 계획을 가지고 있다. 올해 12월 테이크아웃드로잉 갤러리에서는 그만의 창작의 비밀을 보여주는 드로잉 전을 갖는다. 또 독일 헹켈 사의 후원으로 2011년 3월에 이동기, 홍경택과 3인전을 가질 예정인데, 여기서는 평면 작품뿐 아니라 설치작품도 새롭게 선보일 예정이며, 토탈미술관 더룸에서도 전시가 잡혀 있다. 내년에는 아주 많은 ‘유승호’가 우리 곁에 있을 것 같다.

사진 : 김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