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호 커버인터뷰 현장에서 느낀 것들

이제까지 600여 명의 인터뷰이를 만났다. 어떤 인터뷰이는 기사 작성과 동시에 이미지만 남기고 스스륵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가 하면, 어떤 인터뷰이는 지문처럼 선명하게 새겨져 내내 잊히질 않는다. 그리고 그 만남은 일상에 문득문득 영향을 끼쳐, 전과는 다른 존재가 되게 한다. 듣는 직업인으로서 인터뷰어가 누리는 커다란 축복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topclass 11월호 커버인터뷰인 <미스터트롯> 이찬원과의 만남은 단연 후자였다. 25세밖에 안 된 이 젊은 트로트 장인과의 만남은 많은 여운을 남겼다. 인터뷰란 기본적으로 묻고, 답변하는 장르이지만 이찬원과의 인터뷰는 언어만으로는 표현되지 않는, 비언어적 측면에서 감동과 놀라움을 많이 안겼다. 몸에 밴 예의와 깍듯함은 물론, 인간에 대한 배려가 말 한마디, 표정 하나하나, 행동거지마다 뚝뚝 묻어났다. 함께 한 4시간의 시간 자체가 따스하고 옹골찬 시간으로 기억되게 했다.  

우선 언어를 다루는 실력에서 감탄을 안겼다. 이찬원이 말솜씨가 유려하다는 사실은 진즉 알고 있었지만, 기대 이상이었다. 논리가 정연했고, 말의 핵심을 놓치지 않았다. 간혹 질문에 대한 답변의 부연 설명이 길어진다 싶으면 "제가 좀 딴 데로 샜지요?"라면서 어김없이 본론으로 돌아와 스스로 핵심에 대한 답을 내놨다. 인터뷰어가 말의 허리를 자르지 않아도 스스로 본론으로 되돌아와서 맥락을 잡아가는 경우는 흔치 않다. 말을 하면서 내내 맥락에 대한 의식을 놓치지 않는다는 증거다.  

2시간 여 인터뷰 후, 현장 기자들의 반응은 이랬다. 

"문답으로 가도 되겠는데요?"
"오우~ 대박인데요. 말을 어쩜 저리 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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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원은 4시간에 달하는 화보 촬영과 인터뷰 내내 현장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이끌었다.Ⓒtopclass

 

이토록 탄탄한 문답이라니!

'문답식 인터뷰'로 12p의 호흡을 간다는 건 쉽지 않다. 기자가 풀어쓰고 중간에 인터뷰이의 답변을 살리는 '서술식 인터뷰'가 흔한 이유다. '문답식 인터뷰'로 가는 경우는 첫째, 사안이 민감해서 인터뷰이의 첨예한 말의 맥락을 그대로 살려야 할 경우, 둘째, 대상이 화제성이 강해 어떤 말을 해도 의미가 있는 경우, 셋째, 자신만의 언어가 정립돼 있어 그대로 풀어써도 고유의 메시지가 살아있는 경우 등이다.

이찬원은 세 번째였다. 자신만의 삶에 대한 철학이 분명했고, 그 철학을 언어화할 줄도 알았다. 자신만의 언어가 정립된 사람은 생각보다 드물다. 질문에 대한 답변이 너무 평범해서 지루하거나,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생각의 언어를 흉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나 처음 받아본 질문에 대답하면서 말이 꼬이기 일쑤다. 그래서 한 분야의 일가를 이룬 인물이거나 책 한권 이상을 쓴 저자가 아니라면, '문답식 인터뷰'로 가기 어렵다. 

문답을 풀어쓴다고 인터뷰 기사가 작성되는 건 아니다. 인터뷰 기사도 하나의 드라마와 같아서 읽는 이의 마음을 붙잡아두려면 세 가지 중 하나가 있어야 한다. 재미나 흥미가 있든지, 새로운 정보가 있든지, 아니면 통찰력이 번뜩이든지. 하나마나한 답변이 가득한 인터뷰를 굳이 문답식으로 가려면 모험이 따른다. 독자를 잃을 각오를 하거나, 흥미를 위해 가공을 하거나. 소위 MSG가 적당히 버무려져야 한다는 얘기다.(영업비밀이지만) 

그래서 이찬원과의 인터뷰가 적잖이 충격이었다. 그와의 문답은 가공이 거의 필요없었다. 2시간 여의 인터뷰 녹취록을 풀어놓으니 A4로 10매. 덜어낼 부분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문답의 구조가 탄탄하고 꼭 필요한 말만 해서 버릴 말이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만의 철학이 분명한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찬원씨! 트로트란 뭔가요?"

나에겐 좀 짖궂은 질문 습관이 있다.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상대를 당황하게 하는 모습을 보는 작은 쾌감. '일'에 관한 소설을 쓴 소설가에게 "일이 무엇인가"를 묻고, 유행가 가수에게 "노래란 무엇인가"를 묻는 식이다. 인터뷰어로서는 쉬운 질문이지만, 인터뷰이로서는 난감한 질문이다. 고민의 수준과 바닥이 드러나기 십상이므로. 

이찬원은 고민의 깊이가 남달랐다. '트로트란 무엇인지' '이찬원에게 트로트란 무엇인지' 같은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은, 즉석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 한 화두를 오랫동안 품고, 그 화두를 곰곰 생각해, 언어화 할 준비가 된 상태의 곰삭은 말이었다. 말하자면 "이찬원에게 트로트란 뭔가요?"에 대한 그의 답변에는(여기에서는 생략)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고민과 방향성이 모두 담겨 있었다. 해당 기사의 맨 마지막에 쓴 인터뷰 총평, "한 생을 다 살아본 듯한 어떤 경지"가 느껴진다는 건 이런 차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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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질문에도 자신만의 정제된 언어로 표현할 줄 아는 이찬원.Ⓒtopclass


지면에 담지 못한 이찬원의 미담이 몇 가지 있다. 4시간 가까이 이어진 화보 촬영과 인터뷰 현장은 내내 축제 분위기였다. "와~ 좋다" "어머! 예쁘다"가 연신 터져나왔다. 스타가 예민하면 현장은 살얼음판이 되곤 한다. 스타의 표정 하나, 말 한 마디로 썰렁해지는 건 순식간이다. 하지만 이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과 여유, 배려를 보여줬다. 사소한 질문 하나에도 최선을 다해 답변했고, 스텝진의 요구에 늘 예의바르게 응수했다. 특히 툭 하면 튀어나오는 "감사합니다"는 몸에 밴 인사습관 같아 보였다.  

"얼굴은 애기인데, 말은 공자님"

무엇보다 감동을 안긴 건, 랜선 꼬마팬을 대하는 그의 자세였다. 마침 스텝진 중 한 분의 아홉 살 짜리 아이가 이찬원 광팬이었다. 스텝은 꼬마팬이 부른 '진또배기' 동영상을 이찬원에게 보여줬다. '이런 걸 보여줘도 될까?' 고민 끝에 슬쩍 보여준 참이었다. 이에 대한 이찬원의 반응은 고민을 무색하게 했다. 동영상을 감상하는 그의 자세는 <미스터트롯> 마스터들을 연상케할만큼 진지했다. 아이의 동작과 발성까지 꼼꼼히 보면서 총평을 해줬다. 여기저기에서 흐뭇한 미소가 번졌고, "계탔다"는 반응이 터져나왔다. 

늦게까지 이어진 화보촬영과 인터뷰 후에도 한 명 한 명 초근접 셀카 촬영에 응하고, 33자에 달하는 사인을 한 명 한 명 해줬다. 글씨체도 예상대로 딱 궁서체였다.  

나의 어머니는 이찬원 팬이시다. 그를 인터뷰 간다고 했을 때 어머니 반응은 이랬다. 

"얼굴은 애기인데, 말하는 건 공자님이야. 동자승 같다니까. 속이 꽉 찼어."

'유교보이'라는 팬들의 애칭에 진심으로 동감한다. 그의 선함과 바름, 밝음과 긍정의 에너지를 진심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쩌면 이찬원은 25년간 트로트 연습생 생활을 해왔는지 모른다. 집이라는 온기 어린 공간에서, 부모라는 따스한 코치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말이다. 그의 부모는 재능과 인성, 무엇보다 사랑을 주고 받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받은 사랑에 감사하고 그 사랑을 돌려줄 줄 아는 방법까지. 준비된 스타, 이찬원의 내일이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