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겨울 김장을 담그는 중이었다. 커다란 대야에 절인 배추와 썰어야 할 무가 가득이었다. 그러다 아랫배에 진통이 왔다. 쭈그려 앉아 김치를 담는 자세는 순산을 촉진하는 포즈이기도 하다. 스물넷의 새댁은 급히 병원으로 가야 했다. 아이가 나오리라는 예정일까지는 아직 보름 정도가 남아있었고, 어머니의 남편 그러니까 시아버지는 연말연시의 송년회로 아직 귀가하기 전이었다. 당연히 연락할 길도 없었다.

 1231일에 병원에 간 어머니는 이듬해인 198311일에 남편을 낳았다. 그 해 부산에서 태어난 네 번째 아이였다. 세 번째 아이까지는 지역신문에 실리기도 하고 출산지원금을 주기도 했는데 안타깝게도 남편은 네 번째였다. 어머니는 첫 아이를 낳고 어쩐지 마음이 울적했다. 지원금 때문은 아니었다. 어머니의 시어머니, 그러니까 함께 김장을 담그다 병원까지 동행해 첫 손자를 안은 남편의 할머니는 며느리를 근심스럽게 쳐다보며 어디가 안 좋으냐고 물으셨다. 어머님은 아이가 인물이..(너무 없어요)”라며 돌아 누웠는데, 시할머니는 아니, 건강하면 됐지!”라며 별걱정도 다한다는 듯 웃으셨다. 아이 얼굴은 열두 번도 더 변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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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이 낮았다던, 아들이 귀했다던, 일본식 가옥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남편은 무럭무럭 자랐다. 하지만 얼굴은 크게 변하지 않았고, 36년이 흘러 자신의 얼굴과 거의 같은 딸을 보게 됐다.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서 내려 또 차를 한참 타고 일산의 산부인과에 온 아이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내 손을 잡으며 몇 번이고 고생했다고 수고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신생아실에 누워 겉싸개에 꽁꽁 싸인 아기를 한참이나 바라보셨다.

 당시에는 별말 없이 과일을 가득 사주시고 용돈도 두둑이 주시고 저녁 기차로 가셨는데 하행선을 탄 두 분과 통화한 남편 말로는 어머니가 누가 듣을세라 작은 목소리로 니를 똑 닮아서 니 우짤래라고 하셨다고 한다. 아이를 묘사하자면 뭐랄까, 나는 도화지의 역할을 했고 남편이 그림을 그린 상이었다. 당시 나와 아이를 담당한 간호사 선생님은 아휴 마누(당시 태명)는 일산 롯데백화점 사거리에서 길 잃어도 걱정 없겠다. 사람들이 알아서 아빠한테 데려다주겠네라며 웃었다.

 다행히 아이의 얼굴은 열두 번 정도 바뀌어서, 두 돌이 되어가는 지금은 여기저기에서 늦은 고해성사를 듣는다. 남편의 막내 숙모님은, 얼마 전 아이를 보고 함박 웃으시며 이제야 마음을 놓겠다는 듯 사실 처음 태어났을 때는 걱정 마이 했다 아이가하시기도 했다. 내 눈에는 그 때나 지금이나 눈부시게 예뻤던 기억인데, 그런 나도 아이의 신생아 시절을 보면 흠칫 놀란다. 그제야 왜 사람들이 갓난시절 아이를 보면 한참 위아래를 훑어보다가 잠시 정적 후 아이고. 머리숱이 많네”, “아이고 아빠 닮아 잘 살겠다라고 해주었는지 알 것도 같다. 그건 비 오는 날 결혼하면 잘 산단다같은 근거는 없지만 위로가 되는 격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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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어깨는 괜찮아. 응 그럼.

 아이의 얼굴이 바뀌는 동안 아이를 변함없이 아니 매일 더 많이 어여삐 여겨준 아이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종종 아이의 아빠가 태어났을 때 이야기를 하신다. 몸을 푼 며느리를 위해 매일 미역국을 푸짐하게 끓여주시던 시할머니 이야기. 매일 보면서도 더 보고 싶어 하시던 시할아버지 이야기. 평소에는 전혀 표현이 없으시던 어른이 아이만 보면 달라지시던 그 표정과 말투며, 찬장에 몰래 숨겨 둔 과자를 문을 걸어 잠그고 남편 입에 몰래 넣어주셨다는 이야기까지. 남편이 장가가서 아이 낳는 것까지 보시겠다던 시할아버지는 남편이 초등학교 때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는 이야기한다. “그때는 왜 그렇게 아이를 보고 싶어 하시는지 이해를 못했어. 이제야 알겠다. 이게 끝없는 외사랑인 걸.”

 아들이 귀한 집에 어중간한 순서의 딸로 태어난 나에게는 신기한 풍경이다. 하지만 내게도 외할머니가 우리 강아지라며 등을 두드려준 기억이나, 외갓집 앞 전빵에서 밀키스 같은 걸 사주신 기억은 심심할 때 꺼내 먹을 눈깔사탕만큼은 있다. 내리사랑은 그저 쏟아지는 사랑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는 그 사랑이 소나기처럼, 누군가에겐 봄비처럼 내렸겠지. 아빠를 닮은 아이는 열대우림기후 같은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란다.  

 

유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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