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친정 엄마한테 볼 일이 있어 잠깐 친정집을 들렀습니다.

거실에 들어서니 집이 조용했습니다. 엄마, 엄마를 부르며 이 방 저 방 문을 열어보는데 안방에서 엄마가 혼자 TV를 보고 계셨어요. 왜 불러도 대답도 안 하시고 어두운데 불도 안 켜고 계셨냐고 하며 막 불을 켜려는데, 엄마가 됐다고 불 켜지 마라시더군요. 엄마의 목소리가 좀 이상해서 얼굴을 들여다보니 아니 이게 웬일입니까? 엄마가 대낮에 혼자 울고 계셨던 거예요.

무슨 일이 있는 줄 알고 놀래서 물으니 엄마가 TV를 가리키며 노래를 너무 잘해서 듣다가 눈물이 났다는 겁니다. '국민 영웅' 트롯 가수 임영웅 씨가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열창하고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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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저와는 달리 매우 이성적이고 단단하신 분인 데다 TV도 잘 안 보시고, 트롯은 더더군다나 안 들으셨던 분인데, 트롯 가수의 노래에 눈물을 흘리고 계셔서 의아했습니다. 더 이상 말 걸기가 어색해서 옆에 앉아 같이 듣다 보니 저도 눈물이 흐르더군요. 워낙 제가 좋아하는 김광석 씨의 노래라 수도 없이 들었지만 임영웅 씨의 목소리로 듣는 그 노래는 또 다른 특별함이 있었습니다. 얼음 공주인 저희 엄마가 왜 우셨는지 이해가 됐어요.

임영웅 씨의 목소리가 엄마의 지난 추억을 소환하고, 엄마의 단단한 마음속에 파고들어 눈물을 만들어 낸 겁니다. 그날 이후 엄마는 드라마보다 트롯맨들의 공연을 더 열심히 찾아보시고 들으십니다.

엄마가 달라졌습니다. 그래요. 음악이 이렇습니다. 듣는 사람에게서 웃음과 눈물, 기쁨과 슬픔, 추억과 기억, 위로와 행복을 모두 소환했어요. 누군가는 그들의 노래에 울고 웃으며 힘을 얻고 마음을 적셔요. 7인의 트롯맨들이 왜 지금 이렇게 한국의 어른들을 감동시키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우린 모두 그들의 음악을 선물 받고 있어요.

 

언덕 위에 세운 이슬람 왕의 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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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가 있는 노래만큼은 아니지만 클래식에도 이렇게 추억을 소환해서 눈물을 머금게 만드는 곡이 있습니다.

기타의 명불허전! 타레가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입니다. 프란치스코 타레가는 1852년에 태어나 1909년에 죽은 스페인의 기타 연주가이자 작곡가로, 드뷔시(1862-1918, 프랑스)와 비슷한 연배입니다. 타레가라는 이름은 처음이어도, 그가 작곡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누구나 다 알죠.

스페인에 있는 알함브라 궁전을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사진이나 영상에서 자주 봤던 석양 무렵의 궁전은 정말 예술입니다. 그라나다의 최고 멋진 곳이고, 도시 전체를 한번에 바라볼 수 있게 언덕 위에 세운 이슬람 왕의 별궁이죠.

스페인 마지막 이슬람 왕조 때인 13세기 후반에 공사를 시작해서 14세기에 완성이 됐습니다. 비록 이슬람 왕조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 후에 그리스도 교도들이 손상을 입히지 않고 잘 보존한 덕택에 19세기 이후에는 완전히 복원됐습니다.

알함브라는 아랍어로 '붉은 성'이라는 뜻인데 해 질 녘 노을빛에 붉게 물드는 성채의 모습에서 유래된 이름이랍니다. 빨간 성이라고 하면 무서운데, 붉은 성이라고 하니 운치 있습니다. 이국적인 이슬람 문화가 굉장히 매력적이죠.

 

타레가가 소환시키는 애틋한 추억 

타레가는 스페인 민족주의 대표 음악가로 음악사에서는 근대 기타 연주법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데, 1906년 그는 54세의 나이에 오른팔이 마비되어 그 후 연주생활을 계속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그는 작곡에 뛰어난 솜씨가 있어서 기타 독주곡인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과 연습곡 등을 많이 남겼고, 바흐와 베토벤의 작품을 기타용으로 편곡하기도 했습니다.

타레가의 이 곡은 처음 ‘트레몰로’로 시작합니다. 트레몰로란 '떨린다'는 뜻을 가진 단어인데, 연주할 때 음이나 화음을 규칙적으로 떨듯이 되풀이하는 주법이에요. 마치 사람 마음이 누군가 때문에 떨리는 느낌입니다. 아마 첫 음의 트레몰로가 없었다면 이 음악이 그리 애절하게 들리지 않았을 겁니다. 떨리는 첫 음에서 곡의 느낌이 완벽하게 전달됩니다. 임영웅 씨의 노래 첫 소절에 눈물이 뚝 떨어졌던 것처럼 말입니다.

1896년 타레가는 제자인 콘차 부인을 짝사랑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타레가의 사랑을 거부하자 슬픔에 잠겨 여행하다 알함브라 궁전에서 기타곡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작곡가들의 감정은 기승전 작품으로 발현됩니다. 사랑이 없이는 작품이 나오기 힘들죠. 

 

애틋한 마음이 들 때 기타 연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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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석양 아래에서 들어야 더 운치가 살아날 것 같아요. 붉은 성에서 붉은 태양과 기타. 상상만으로도 황홀합니다. 이런 곡은 대부분 클래식 기타로 연주하는데, 보통 우리가 듣는 가요나 포크송은 통기타로 연주합니다. 통기타로 연주하면서 노래 부르는 싱어 송 라이터들 덕에 기타 붐이 일기도 했죠.

스페인 작곡가들의 이름은 낯설지만 스페인하면 기타가 딱 떠오릅니다. 기타는 많은 사람들에게 추억이 있고 애틋한 정서를 불러일으키죠. 악기가 휴대도 간단하고, 어디서든 꺼내서 연주할 수 있어서 더 좋습니다. 영화 ‘금지된 장난’에 흐른 ‘로망스’는 기타 배우면 제일 먼저 연주해서 자랑하고 싶은 곡입니다.

기타 하면 브랜드 ‘세고비아’도 유명하죠. 세고비아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스페인 기타리스트입니다. 전설적인 기타리스트로는 세고비아, 예페스가 대표적 인물이고 지금 살아있는 호주 출신의 존 윌리암스가 있습니다.

그리고 작곡가이면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던 타레가와 로드리고도 중심인물입니다. 스페인이라는 나라는 열정으로 가득하면서도 그 이면에는 사라진 존재들에 대한 애잔함도 공존하는 곳입니다. 누군가에게 애틋한 마음이 들 때 전 기타가 듣고 싶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애틋함을 불러 올 음악으로 기타 곡 어떠세요?

 

타레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기타 연주- 존 일리암스

영화 ‘금지된 장난’ 주제가 ‘스페인 로망스’ 

 

조현영 피아니스트,아트앤소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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