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과 택이의 키스 신. ⒸtvN

영화나 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키스 신 중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다. 얼마 전 뒤늦게 시청한 《별에서 온 그대》에서 등장한 키스 신들은 특이해서 더 기억에 남는다. 화가 나서 다른 쪽으로 걸어가는 지구인 여자 주인공을 외계인인 남자주인공이 공중부양 해 자기 앞으로 데리고 와 키스를 한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잭과 에니스가 재회했을 때의 키스는 ‘저러다 질식사 하겠다’ 싶게 격정적이어서 기억한다. 《시네마 천국》에서 토토와 엘레나가 영사실에서 하는 키스는 청순하고 간절해서 기억한다.

또 하나 내 기억 속에서 잊히지 않을 것 같은 아름다운 키스 신이 있다. 《응답하라 1988》에서 택이와 덕선의 첫 키스 장면이다. 택, 덕선 그리고 한 무리의 친구들은 같은 해에 태어나 쌍문동 주택가 골목에서 함께 성장했다. 늘 연약했던 택을 든든하게 돌봐주던 덕선이었지만 어느덧 사춘기의 택에게 덕선이 여자로 보이기 시작한다.

어느 날 덕선과 택이 택의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택이 잠든다. 한참 곤히 자고 있는데 기타와 피아노가 연주하는 몽환적인 멜로디가 흐르기 시작한다. 택의 눈이 눈꺼풀 밑에서 움직이더니 천천히 눈을 뜨고 뿌연 세상을 본다. 그리고 옆에 덕선이 누워 잠들어 있는 것을 본다. 이내 덕선도 눈을 뜬다. 둘이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다 덕선이 눈길을 돌린다.

덕선의 시선이 멈춘 곳에 꼭 잡은 둘의 손이 등나무 줄기처럼 꼬여 하나가 되어 있다. 덕선이 잡고 있다 잠든 것일까? 잠에서 깬 택이 서로를 바라보며 잡은 것일까? 둘이 다 잠든 사이 서로 무의식적으로 잡은 것일까? 한참 그렇게 있다 택이 몸을 일으켜 덕선에게 입을 맞춘다. 덕선도 슬며시 눈을 감는다.

노래의 1절이 끝나기도 전에 그 꿈같은 키스 신은 끝나버린다. 택은 그 후로도 몇 년 동안 덕선이 무심결에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낼 때까지 그 키스가 꿈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이 아름다운 키스 신에서 흘러나온 노래가 조덕배의 <꿈에>이다.

 

이름 모를 너를 나는 못 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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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에는 인터넷이라는 것이 아예 없었고, CD도 누구 집에 가니 그런 것이 있더라는 이야기를 들을 뿐이었다. 그 대신 길에 걸어가면 무수히 많은 ‘레코드방’이라고도 부르던 레코드 가게들이 있어 그곳에서 좋아하는 LP판을 사거나 아니면 길거리 리어카에서 파는 카세트테이프를 사서 노래를 들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전 대한민국은 저작권 무법지대였다. 대학교에서 원서를 보려면 원서를 복사해 제본해 놓은 불법 복제판을 사서 봤다. 학교 앞 복사집들이 버젓이 만들어 팔고 그걸 제재하는 사람도 없고, 제재할 법적 근거도 빈약했다.
음악도 마찬가지여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 목록을 만들어 레코드 가게로 가지고 가면 그곳에서 자기들이 갖고 있는 판으로 그 노래들을 모아 카세트테이프 하나에 불법 복제해서 넣어 줬다. 쉽게 말해 카세트테이프 하나에 내가 듣고 싶은 노래만 모아놓은 아날로그 시대의 플레이리스트였다.  
어느 해 겨울 한국에 다녀온 같은 학교 학생이 이런 플레이리스트를 갖고 와서 자신의 자동차에서 틀고 다녔다. 당시 차가 없던 나는 늘 그의 차를 얻어 타고 이동을 할 때마다 그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을 들었다. 그때 처음 조덕배의 <꿈에>를 들었다. 차 주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가다 갑자기 흘러나오는 기타와 피아노 소리에 “이게 무슨 노래야?” 하고 물었다. 하던 말을 멈추고 잠시 노래 속으로 빠져 들었다. 단번에 나를 사로잡았던 전주가 끝나고 달콤하면서도 흐느끼듯 한 목소리가 살포시 말문을 열었다.
‘꿈에, 어제 꿈에 보았던 이름 모를 너를 나는 못 잊어.’
그래, 그럴 때가 있다. 꿈이란 대체로 꾸고 잊어버리기 마련이지만 어떤 꿈은 그 꿈에서 보았던 색깔, 주변 모습, 사람의 말소리까지 또렷이 기억난다.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그 꿈이 무슨 의미일까’ 골몰하게 만들기도 한다.
'본 적도 없고 이름도 모르는 지난 밤 만났던 여인.’
왜 그 여인이 내 꿈에 나타난 것일까? 나와 뭔가 접점이 있는 것일까? 놓지 못하고 잠자리에 누워서까지 곰곰이 생각한다. ‘아, 맞아. 어느 해 가을 만났던 그 여인….’ 그는 스르르 잠이 들고 꿈속에 다시 그녀를 만난다. 말 한 번 제대로 붙여보지 못한 채 멀어져 가는 그녀를 바라만 봤던 아픈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 기억이 너무 아파 저 깊은 속에 그녀를 묻어두고 살아왔건만. 오늘 그 기억이 되살아 온 것이다.
언젠가 미술 하는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기억은 결코 잊히는 것이 아니야. 우리의 마음속에는 작은 호리병들이 많아. 그 속에 우리의 기억들이 한 병에 하나 씩 차곡차곡 들어 있어. 우린 그걸 ‘잊었다’고 하는 거지. 어느 날 우연히 모르고 어떤 단추를 누르면 어느 한 호리병 뚜껑이 열리고 잊은 줄 알았던 그 안의 기억이 연기처럼 새어 나와 예전 그 모양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나는 거야.”
조덕배는 대체 어떤 단추를 눌렀기에 그녀를 담아 놓은 호리병이 열리고 그녀의 기억이 새어 나온 것일까? 어떻게 하면 그녀가 다시 호리병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그는 이제 다시 그녀를 잃지 않으려 눈을 꼭 감는다.
‘눈을 뜨면 꿈에서 깰까봐, 나 눈 못 뜨고 그대를 보네.’
이제는 놓치지 않으리 맘먹고 그녀에게로 가지만, 오호통재라, 이렇게 생생한 꿈들이 늘 그렇듯 잡으려는 순간 서서히 화면이 사라지고 소리만 들린다. 들리던 소리마저 점점 멀어져가고 그 아름답던 여인의 목소리, 스산한 가을바람 소리는 짜증스러운 알람 소리로 바뀌고 만다.
그래도 포기하지 못해 눈을 감고 아무리 청해도 잠은 다시 찾아오지 않고 보이는 것은 오직 텅 빈 화면, 들리는 것은 세상의 소음뿐이다. 결국 눈을 뜨는 순간 모든 것은 ‘물거품처럼’ 산산조각 깨지고 만다. 그녀가 사라지기 전 내일 밤 꿈에 다시 오겠노라 한 마디 소리라도 질렀으면 좋았을 것을. 이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노래 끝에 피아노 반주도 마치 붙잡기 직전 허공으로 사라져버리는 풍선처럼 하늘로 달아나 버린다.
 
잘 나가는 CEO에서 가수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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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배가 가수가 되어 <꿈에>를 발표해 스타가 될 때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하려면 아픈 1980년대 신군부시절 이야기를 해야 한다. 지금 ‘말표 신발’ ‘범표 신발’ 하면 알아들을 사람이 거의 없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신던 운동화 상표명이다. 학생들이 신는 신발은 그것밖에 없었다. 구두로는 ‘기차표 케미슈즈’라는 것이 있었다. 그 이외에는 시장에서 파는 아무 상표도 없는 신발을 신고 다녔다.
내가 고등학교 진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 나이키가 국내시장에 상륙했다. 당시 막 시작했던 프로야구 덕에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더 그랬는지, 신기해서 그랬는지 나이키 신발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나이키 신발 한 켤레에 만 원 정도 했으니 온 나라가 들썩거렸다. 그 당시 1만 원이었으면 지금 10만 원도 더 했을 것 같다. 신문 사회면이 어디 큰 화재라도 난 듯 요란했다.
이때 국내 기업이 조금 저렴한 고급 국내 브랜드를 선보였다. 국제상사에서 만든 프로스펙스였다. 지금도 용산역 근처에 가면 새로 들어선 초현대식 빌딩 숲 속에 아직도 위용을 잃지 않고 서 있는 국제빌딩이 있다. 바로 이 빌딩을 세운 기업이 국제상사의 모기업인 국제그룹이다. 국제그룹은 1984년 신군부 정권인 5공화국의 부실기업 정리라는 구호 아래 그리 투명하지 않은 절차에 의해 하루아침에 공중분해 되어 사라졌다. 언론도 들끓었고 여론도 좋지 않았지만, 당시 정부가 맘만 먹으면 할 수 없는 일이 없었다.
이때 국제그룹만큼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함께 뭉뚱그려 해체당한 그룹 중 하나가 삼호그룹이다. 오래전 조덕배가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에 의하면 조덕배는 삼호그룹 회장의 조카이다. 그룹 해체 당시 조덕배는 전국의 삼호아파트에 독점으로 외벽 칠을 하는 회사를 꽤 잘 운영하던 CEO였다. 어느 날 창업주의 아들인 사촌형이 ‘불려 들어가’ 백지 위임장에 사인을 하고 나왔다. 1978년 한 번 음악 앨범을 낼 정도로 늘 음악에 마음이 있었던 조덕배는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손에 들고 있던 3000여 만 원의 어음을 명동에서 현금으로 바꿔 그걸로 음반을 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그의 첫 히트곡인 <나의 옛날이야기>이다.
<꿈에>는 <나의 옛날이야기>가 히트하고 뒤이어 나온 2집에 실린 노래이다. 2집 앨범이 130만 장 팔리면서 오늘날까지 조덕배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곡이 <꿈에>이다. 요즘의 잣대로 보면 상상하기도 힘든 일로 인해 회사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지만, 그는 그로 인해 원하던 가수의 길을 가게 되었고 명곡들이 탄생했다. 전화위복이라고 하기도 힘든 부조리극의 한 장면 같은 일이다. 고백하자면 1980년대 신군부 정권이 없었다면 조덕배라는 가수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하는 것이 사실이다. 아무리 팬이라지만 파렴치 할 정도로 이기적인 생각이다. 그 정도로 조덕배의 노래를 좋아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얼굴없는 가수의 원조
<꿈에> 말고도 내가 좋아하는 조덕배의 노래가 몇 있다. <나의 옛날이야기>도 좋고,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도 좋아한다. 의외로 처음 들어본다는 사람들이 많은 <노란 버스를 타고 간 여인>은 아주 좋아한다. 인기가 오를수록 초조해지던 조덕배가 반 도피 겸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머물며 달랑 두 곡 써서 녹음해 왔는데 그중 한 곡이 <노란 버스를 타고 간 여인>이다. 과거 전국 삼호 아파트의 노란색 계열 외벽은 모두 자신이 시공한 것이라고 하더니 워낙 노란색을 좋아하나 보다.
삼바 리듬을 타는 보사노바풍의 리듬이 이색적이다. 프랑스에서 곡을 썼다는 말을 듣고 들어보면 프랑스 샹송풍이라는 말도 어울릴 법하다. 국내 가요계에서 샹송 스타일의 노래를 불러 한 시대를 풍미한 이미배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노란 버스를 타고 간 여인>에서 이미배의 분위기가 풍겨 나온다고 할 것이다.
<노란 버스를 타고 간 여인>은 처음 들어본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봐서 <꿈에> 같은 빅 히트는 아니었나 보다. 곡도 좋고, 가사도 좋고 조덕배가 즐겨 사용하는 기타와 건반악기의 반주에 여러 악기를 붙인 편곡도 훌륭하다. ‘얼굴은 하얀데다 버스는 노랗구나 눈물은 흘리면서 뭘 그래’ 하는 첫 소절 가사와 멜로디가 금방 뇌리에서 맴돈다.
조덕배는 힘들고 애절한 사랑을 여러 번 했나? 아니면 잊지 못할 한 번의 사랑이 있었나? 고백하지 못해 애태우거나, 사랑하는데 헤어지거나, 꿈에서 잠깐 보거나 그가 만들어 부르는 노래마다 애절하기 이를 데 없다. 모를 일이지만 잊을 수 없는 단 한 사람이 이 모든 노래의 주인공이 아닐까 한다. 그냥 그의 노래를 즐겨 듣는 사람으로서의 촉이다.
가수 신승훈이 조덕배 모창을 기가 막히게 한다. 심심할 때면 일부러 유튜브에서 찾아보기도 한다. 모창 말고 진지하게 조덕배의 노래들을 부르는 다른 가수들도 몇 번 본 적이 있지만 웬만해서는 내 성에 차지 않는다. 조덕배의 노래 대부분이 조덕배 내면의 연심과 이를 고백하지 못하는 자신의 안타까움을 노래하는 데다가 조덕배가 자신의 개성 있는 목소리에 맞게 작곡한 노래들이라 다른 가수들도 섣불리 부르기 부담이 될 것이다. 조덕배의 창법과 목소리를 전혀 흉내 내지 않고 순수하게 자신만의 노래로 만들어 부르는 것이 쉽지 않으니 그럴 바에는 오리지널 조덕배의 노래를 듣는 것을 선호한다. 이미배가 부르는 <노란 버스를 타고 간 여인>은 한 번 들어보고 싶다.
조덕배는 얼굴 없는 가수였다. 나도 일찍부터 그의 노래를 좋아했지만 처음 그가 노래하는 모습을 본 것이 1993년이었다. 그 당시 매주 토요일마다 인기리에 방송되던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초대 손님이 나와 노영심의 반주로 노래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소극장 콘서트 같은 토크쇼였다. 여기서 그가 노영심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기타를 치며 <꿈에>를 부르는 것을 처음 보았다.
그는 얼굴 없는 가수 전략에 대해 실은 소아마비에 걸린 자신의 몸을 보여주기 싫어 의도적으로 그런 전략을 세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2009년 뇌출혈로 쓰러지고 긴 재활을 거쳐 다시 노래를 시작한 무렵부터는 방송에도 종종 얼굴을 보인다. 재기에 성공했지만, 이후 그의 목소리는 많이 변했다. 소리가 탁해지고, 고음에서 갈라지는 일도 종종 있다.
그래도 그가 오랫동안 노래를 부를 수만 있다면 팬으로서 만족한다. 노래는 목소리로만 부르는 것은 아니니까. 아무리 소리가 예전 같지 않아도 그 사람이 부르니까 그 느낌이 좋은 이유도 무시 할 수 없다. 오직 조덕배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 그게 조덕배의 노래이니까.
이철재 미국 변호사, 《뉴욕 오디세이》 《나도 바흐를 즐길 수 있을까》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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