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재 변호사의 라떼가요
노래는 개인과 사회의 기억과 역사를 담고 있다. 어느덧 라떼 세대가 된 필자가 좋아했던 노래들의 아름다운 노랫말을 곱씹고 노래에 얽힌 기억들을 회상한다. 우리 가요와 사회의 반세기 이야기가 풍요롭게 펼쳐진다.
나이 든다는 건 기억이 풍성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김광석이라는 음유시인이 있었다. 기타를 어깨에 메고, 하모니카를 목에 건 채 전국의 소극장을 돌며 거칠 것 없이 뻗어 나오는 목소리로 인생과 음악을 노래했던 가수.

인터넷이 없던 시절, 한국 대중문화를 거의 접하지 못한 채 6년간 미국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만 해도 김광석이란 가수를 전혀 몰랐다. 귀국 직후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초봄, 우연히 친구 따라 갔던 대학로 소극장 공연에서 잊지 못할 두 곡의 노래를 들었다. 김광석이 부른 ‘이등병의 편지’와 안치환이 부른 ‘소금인형’이었다. 군대에 가서 훈련 도중 사망한 형의 이야기와 함께 들려준 ‘이등병의 편지’는 곧 병역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내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몇 년 전 〈응답하라 1988〉에도 삽입됐던 ‘사랑이라는 이유로’도 좋았다. 이등병 시절이라 대놓고 음악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안 듣는 척하면서 속으로 가사와 멜로디를 모두 외웠다. 단전의 심층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에너지가 그 무엇에도 걸리지 않고 솟구쳐 비강의 울림통을 통해 터져 나오는 그의 목소리는 갑갑한 내 이등병 생활과 상반되는 자유 그 자체였다.

군 복무를 마칠 때쯤 김광석은 ‘서른 즈음에’를 발표했다. 그는 이 노래를 1년여 부르더니 서른두 살이 되기 전 황망히 우리 곁을 떠났다. 만개하려던 찰나 떨어져버린 꽃잎같이 떠난 김광석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개인의 삶 같은 가사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가 겪는 이야기라서 그럴까? 언제부터인가 이 노래는 김광석의 노래 중 가장 즐겨 듣고 부르는 노래가 됐다. 분명 서른을 노래했는데, 나이 들수록 좋아지고 인생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멀어져가는 날들을 아쉬워하며

그때 난 김광석처럼 조숙하게 인생을 관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서른 무렵 ‘나도 서른이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잠시 들기는 했지만, 내게는 앞으로 뻗어 나갈 날이 더 많았다. 멀어져가는 날들을 아쉬워할 겨를이 없었다.

‘서른 즈음에’가 마음 깊이 다가온 것은 마흔이 넘어서였다. 어느 날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부르다가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라는 대목에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언제 세월이 이렇게 흘렀지?’

‘언제까지나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청춘의 마지막 날은 언제였을까?’

언제가 끝이었는지도 확실치 않게 청춘은 그렇게 스르륵 사라져버리고 불혹의 난 마이크를 쥐고 노래하고 있었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다고.

영어에 ‘Life throws you a curveball’이라는 말이 있다. ‘인생이 당신에게 커브볼을 던진다’는 뜻이다. 인생에는 직구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 커브볼, 즉 예기치 않은 일들이 일어나 인생의 방향이 뜻하지 않게 바뀔 때가 있다. 뭔가 해보려던 차에 인생이 연속해 커브볼을 던지며 선택을 강요하기도 한다.

40대엔 유난히도 커브볼이 많이 들어왔다. 그 시절 어려운 결정을 많이 해야 했기에 때로 ‘그때 그 결정이 옳았던가?’라고 자문해보곤 했다. 그렇게 돌아보다 보면 세상을 내 손안에 쥐고 있던 것마냥 여겼던 청춘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그래서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라는 부분만 들으면 가슴이 시렸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는 우리

쉰이 되면서 처음 ‘아, 나도 늙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쉰한 살 생일을 두 달 앞두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려서부터 가장 두려워하던 부모님의 죽음이 현실로 닥친 것이다. 다른 사람의 부모님은 돌아가셔도 내 부모님은 영원히 살 것 같은 것이 자식들 마음일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와는 또 다르다. 일종의 가림막이 사라진 느낌이다. 쉰이 넘은 나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마저 돌아가시는 날엔 난 고아가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쉰에서 쉰한 살로 넘어가는 그 1년 동안 ‘아, 이렇게 늙는 거구나’와 ‘아, 이렇게 우리 모두 죽는 거구나’ 그리고 늙고 죽는 것 사이의 모든 것을 체험했다.

이제 내 가슴을 후벼 파는 대목은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가 됐다. 이별은 아동기, 청년기 식으로 단위별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매일 같은 일상일지라도 어제의 일상은 절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는 다시 못 올 1분 1초와 끝없이 이별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일상의 이별을 깨달으면서 망각의 치유도 알게 됐다. 대학생 때쯤이었을까? 어느 여름날 아버지와 단둘이서 옥상에 돗자리를 깔고 밤하늘을 바라보며 시원한 바람을 쐬고 누워 있던 적이 있었다. 그날 아버지는 당신 할머니, 즉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의 슬픔을 이야기하면서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망각인 것 같다”고 했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과연 나도 망각의 선물을 받았을까?’라고 일말 궁금해하면서도 두렵기도 했다. 신은 공평해서 내게도 망각의 선물을 주셨다. 후에 당해보니 그냥 살아졌다. 죽음 때문이든 결별 때문이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것은 마음만 아픈 것이 아니라 몸도 돌에 맞은 것처럼 아프다. 망각의 치유가 없다면, 우리는 무수한 이별 때문에 사지가 마비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 지낼지도 모른다.

잊는다는 것은 매정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잊히는 것은 슬프기도 하지만 그건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한 기억을 잊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잃은 아픔을 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가 마음을 휘저어놓을 때마다 “조금씩 잊혀져간다”를 떠올린다. ‘이 돌팔매도 시간이 흐르면 끝나리.’


이은미 그리고 임영웅 버전

© TV조선
‘서른 즈음에’는 나의 노래방 버전을 포함해 여러 버전으로 들었는데 세 명이 부른 노래가 기억에 남는다. 첫째는 물론 오리지널 김광석의 노래다. 두 번째는 이은미가 부른 것이다. 이은미는 김광석만큼이나 좋아하는 가수다. 특히 5집 《노블레스》에 실린 〈내가 있을 거야〉와 〈길〉, 《녹턴》 앨범에 실린 오보에 전주가 아름다운 〈기억 속으로〉는 늘 즐겨 듣는 곡이다. 이은미가 《노스텔지아》라는 앨범에 여러 노래를 리바이벌해서 실었는데 거기 들어 있는 ‘서른 즈음에’도 상당히 좋아한다.

얼마 전 오래도록 따라가며 듣고 싶은 ‘서른 즈음에’를 발견했다. 〈미스터트롯〉 TOP 7이 노래를 불러주는 〈신청곡을 불러드립니다-사랑의 콜센타〉에서 임영웅이 부르는 ‘서른 즈음에’를 들었다.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노래에 과시욕이 없기 때문이다. 가장 감동적인 노래는 가사를 말하듯 들려주는 노래라고 생각한다. 임영웅의 노래가 그렇다.

그날 임영웅이 부른 ‘서른 즈음에’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맨 끝에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였다. 임영웅은 그의 장기인 긴 호흡을 바탕으로 어느 한 단어를 일부러 잡아끄는 것 없이 이 구절을 한숨에 담담히 불렀는데, 그래서 더 감동이었다. 올해 서른이 된 임영웅이 자신의 30년을 돌아보듯 조곤조곤 들려주는 노래로 인해 그의 30년이 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임영웅이 마흔 살이 되고 쉰 살이 됐을 때 이 노래를 어떻게 부를지 한번 들어보고 싶다. 그때는 또 어떤 구절이 그의 심금을 울릴까? 나도 그때까지는 살아 있겠지? 아니 나도 60, 70, 80이 되면 이 노래의 어느 구절이 내 마음을 사로잡을지 궁금하다. ‘서른 즈음에’는 인생을 찾아가는 노래인가 보다.
ⓒ topclass.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톡보내기
메일보내기
그 노래, ‘서른 즈음에’
이철재
이철재 변호사의 라떼가요
노래는 개인과 사회의 기억과 역사를 담고 있다. 어느덧 라떼 세대가 된 필자가 좋아했던 노래들의 아름다운 노랫말을 곱씹고 노래에 얽힌 기억들을 회상한다. 우리 가요와 사회의 반세기 이야기가 풍요롭게 펼쳐진다.
나이 든다는 건 기억이 풍성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김광석이라는 음유시인이 있었다. 기타를 어깨에 메고, 하모니카를 목에 건 채 전국의 소극장을 돌며 거칠 것 없이 뻗어 나오는 목소리로 인생과 음악을 노래했던 가수.

인터넷이 없던 시절, 한국 대중문화를 거의 접하지 못한 채 6년간 미국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만 해도 김광석이란 가수를 전혀 몰랐다. 귀국 직후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초봄, 우연히 친구 따라 갔던 대학로 소극장 공연에서 잊지 못할 두 곡의 노래를 들었다. 김광석이 부른 ‘이등병의 편지’와 안치환이 부른 ‘소금인형’이었다. 군대에 가서 훈련 도중 사망한 형의 이야기와 함께 들려준 ‘이등병의 편지’는 곧 병역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내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몇 년 전 〈응답하라 1988〉에도 삽입됐던 ‘사랑이라는 이유로’도 좋았다. 이등병 시절이라 대놓고 음악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안 듣는 척하면서 속으로 가사와 멜로디를 모두 외웠다. 단전의 심층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에너지가 그 무엇에도 걸리지 않고 솟구쳐 비강의 울림통을 통해 터져 나오는 그의 목소리는 갑갑한 내 이등병 생활과 상반되는 자유 그 자체였다.

군 복무를 마칠 때쯤 김광석은 ‘서른 즈음에’를 발표했다. 그는 이 노래를 1년여 부르더니 서른두 살이 되기 전 황망히 우리 곁을 떠났다. 만개하려던 찰나 떨어져버린 꽃잎같이 떠난 김광석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개인의 삶 같은 가사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가 겪는 이야기라서 그럴까? 언제부터인가 이 노래는 김광석의 노래 중 가장 즐겨 듣고 부르는 노래가 됐다. 분명 서른을 노래했는데, 나이 들수록 좋아지고 인생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멀어져가는 날들을 아쉬워하며

그때 난 김광석처럼 조숙하게 인생을 관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서른 무렵 ‘나도 서른이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잠시 들기는 했지만, 내게는 앞으로 뻗어 나갈 날이 더 많았다. 멀어져가는 날들을 아쉬워할 겨를이 없었다.

‘서른 즈음에’가 마음 깊이 다가온 것은 마흔이 넘어서였다. 어느 날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부르다가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라는 대목에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언제 세월이 이렇게 흘렀지?’

‘언제까지나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청춘의 마지막 날은 언제였을까?’

언제가 끝이었는지도 확실치 않게 청춘은 그렇게 스르륵 사라져버리고 불혹의 난 마이크를 쥐고 노래하고 있었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다고.

영어에 ‘Life throws you a curveball’이라는 말이 있다. ‘인생이 당신에게 커브볼을 던진다’는 뜻이다. 인생에는 직구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 커브볼, 즉 예기치 않은 일들이 일어나 인생의 방향이 뜻하지 않게 바뀔 때가 있다. 뭔가 해보려던 차에 인생이 연속해 커브볼을 던지며 선택을 강요하기도 한다.

40대엔 유난히도 커브볼이 많이 들어왔다. 그 시절 어려운 결정을 많이 해야 했기에 때로 ‘그때 그 결정이 옳았던가?’라고 자문해보곤 했다. 그렇게 돌아보다 보면 세상을 내 손안에 쥐고 있던 것마냥 여겼던 청춘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그래서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라는 부분만 들으면 가슴이 시렸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는 우리

쉰이 되면서 처음 ‘아, 나도 늙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쉰한 살 생일을 두 달 앞두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려서부터 가장 두려워하던 부모님의 죽음이 현실로 닥친 것이다. 다른 사람의 부모님은 돌아가셔도 내 부모님은 영원히 살 것 같은 것이 자식들 마음일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와는 또 다르다. 일종의 가림막이 사라진 느낌이다. 쉰이 넘은 나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마저 돌아가시는 날엔 난 고아가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쉰에서 쉰한 살로 넘어가는 그 1년 동안 ‘아, 이렇게 늙는 거구나’와 ‘아, 이렇게 우리 모두 죽는 거구나’ 그리고 늙고 죽는 것 사이의 모든 것을 체험했다.

이제 내 가슴을 후벼 파는 대목은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가 됐다. 이별은 아동기, 청년기 식으로 단위별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매일 같은 일상일지라도 어제의 일상은 절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는 다시 못 올 1분 1초와 끝없이 이별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일상의 이별을 깨달으면서 망각의 치유도 알게 됐다. 대학생 때쯤이었을까? 어느 여름날 아버지와 단둘이서 옥상에 돗자리를 깔고 밤하늘을 바라보며 시원한 바람을 쐬고 누워 있던 적이 있었다. 그날 아버지는 당신 할머니, 즉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의 슬픔을 이야기하면서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망각인 것 같다”고 했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과연 나도 망각의 선물을 받았을까?’라고 일말 궁금해하면서도 두렵기도 했다. 신은 공평해서 내게도 망각의 선물을 주셨다. 후에 당해보니 그냥 살아졌다. 죽음 때문이든 결별 때문이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것은 마음만 아픈 것이 아니라 몸도 돌에 맞은 것처럼 아프다. 망각의 치유가 없다면, 우리는 무수한 이별 때문에 사지가 마비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 지낼지도 모른다.

잊는다는 것은 매정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잊히는 것은 슬프기도 하지만 그건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한 기억을 잊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잃은 아픔을 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가 마음을 휘저어놓을 때마다 “조금씩 잊혀져간다”를 떠올린다. ‘이 돌팔매도 시간이 흐르면 끝나리.’


이은미 그리고 임영웅 버전

© TV조선
‘서른 즈음에’는 나의 노래방 버전을 포함해 여러 버전으로 들었는데 세 명이 부른 노래가 기억에 남는다. 첫째는 물론 오리지널 김광석의 노래다. 두 번째는 이은미가 부른 것이다. 이은미는 김광석만큼이나 좋아하는 가수다. 특히 5집 《노블레스》에 실린 〈내가 있을 거야〉와 〈길〉, 《녹턴》 앨범에 실린 오보에 전주가 아름다운 〈기억 속으로〉는 늘 즐겨 듣는 곡이다. 이은미가 《노스텔지아》라는 앨범에 여러 노래를 리바이벌해서 실었는데 거기 들어 있는 ‘서른 즈음에’도 상당히 좋아한다.

얼마 전 오래도록 따라가며 듣고 싶은 ‘서른 즈음에’를 발견했다. 〈미스터트롯〉 TOP 7이 노래를 불러주는 〈신청곡을 불러드립니다-사랑의 콜센타〉에서 임영웅이 부르는 ‘서른 즈음에’를 들었다.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노래에 과시욕이 없기 때문이다. 가장 감동적인 노래는 가사를 말하듯 들려주는 노래라고 생각한다. 임영웅의 노래가 그렇다.

그날 임영웅이 부른 ‘서른 즈음에’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맨 끝에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였다. 임영웅은 그의 장기인 긴 호흡을 바탕으로 어느 한 단어를 일부러 잡아끄는 것 없이 이 구절을 한숨에 담담히 불렀는데, 그래서 더 감동이었다. 올해 서른이 된 임영웅이 자신의 30년을 돌아보듯 조곤조곤 들려주는 노래로 인해 그의 30년이 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임영웅이 마흔 살이 되고 쉰 살이 됐을 때 이 노래를 어떻게 부를지 한번 들어보고 싶다. 그때는 또 어떤 구절이 그의 심금을 울릴까? 나도 그때까지는 살아 있겠지? 아니 나도 60, 70, 80이 되면 이 노래의 어느 구절이 내 마음을 사로잡을지 궁금하다. ‘서른 즈음에’는 인생을 찾아가는 노래인가 보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topclas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메일 보내기 닫기
보내는 사람
보내는 사람 메일
받는 사람 메일
제목
메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