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상상해보자. 456억 원이란 큰돈이 손에 들어온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전망 좋은 곳에 집을 사서 잉여인간의 나날을 보내고 가족·친구들에게 근사한 선물도 하고. 아, 도움이 필요한 곳에 값지게 쓰일 몫도 떼어놓지 않을까. 이런저런 꿈에 부풀어 행복감에 도취된 찰나, 누군가 말한다. 거액을 얻으려면 게임에 참가해 우승해야 한다고. 단, 한순간이라도 탈락하면 목숨을 잃는다는 조건이 붙는다. 456억 원을 향한 도전, 그래도 할 것인가.

넷플릭스 콘텐츠 〈오징어 게임〉은 인생의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이 최종 상금 456억 원을 향해 목숨 건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를 서비스 중인 세계 83개국에서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키자 작품에 등장하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설탕 뽑기(달고나)’ ‘오징어 게임’ 등 놀이가 덩달아 재미를 안겼다. 어린 시절 골목 곳곳에서 해가 저무는지도 모르고 즐겼던 놀이. 하지만 〈오징어 게임〉 속에서는 어른들이 생존을 위해 벌이는 처절한 사투일 뿐이다. 게임 참가자 중 상우 역할을 맡은 박해수는 동심과 처절한 현실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했다.


엘리트가 괴물이 되기까지…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게임에 추억이 있어요. 어렸을 때 몸 쓰는 게임을 많이 해서 오징어 게임은 물론이고 술래잡기, 돈가스 게임, 방방도 좋아했어요. 달고나 뽑기는 몸을 쓰는 게임은 아니지만 차분하게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아서 지금 해도 재밌더라고요. 작품에서 게임을 하면서 그리움과 동시에 이상한 긴장감도 느껴졌어요. 내가 살기 위해 상대를 무너뜨려야 하니 심리적 압박이 들더라고요. 누군가 죽여야 하는 게임이란 걸 알고부터는 마음의 부담도 있을 테고, 많은 사람이 죽은 장소에 서 있다는 자체에서 에너지 소모가 컸을 테니 연기하면서 그 지점을 많이 고민했어요.”

〈오징어 게임〉에서는 실력이 없거나, 운이 없거나 낙오되면 구제받을 수 없다. 가차 없이 목숨을 잃는다. 머니게임이란 단순한 플롯이지만 게임 참가자들을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목표를 위해 이해관계가 맞는 집단을 구성하고, 생존을 위해서라면 타인을 짓밟는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내가 베푼 호의가 칼날이 되어 돌아오는 일도 적지 않다.

박해수가 연기한 상우는 평범한 인물이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시작과 끝의 심리 상태가 가장 급변하는 인물이다. 동네 수재로 자라 서울대를 졸업하고 증권사에 입사해 잘나가는 펀드매니저가 된 상우. 실상은 고객 돈을 유용해 거액의 빚더미에 앉은 걸 보면 경쟁 사회에서 이기기 위해 누군가에게 상처 준 일이 처음은 아닐 거란 추측이 가능하다.

“〈오징어 게임〉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시나리오가 갖고 있는 힘과 조상우가 심리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에 끌렸어요. 인간의 심리 변화가 도드라지잖아요. 서바이벌 게임이 거듭되면서 상우의 선택 기준이 변하고, 그 기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는 모습이 매력 있더라고요.”


상황에 이끌리는 입체적 인물


상우는 지극히 무던하다가도 어느 순간 리더가 되기도 한다. 생존을 위한 처세술이다. 튀지 않고 적당한 그룹을 만들어 살아남고, 힘이 세면서 자신의 말을 잘 들을 것 같은 알리에게 선의를 베풀다가 이용해 먹는다. 이처럼 순간순간 변하는 상우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박해수는 “상우 입장에서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는 합리적 선택과 결정이 무엇일지를 고민했다”고 했다.

그의 고민이 잘 묻어나는 지점이 있다. 첫 번째 게임이 끝난 후 재개 여부를 묻는 장면. O·X 버튼을 눌러 거액의 상금을 받을 희박한 확률과 생존의 확실한 확률 사이에서 상우는 어떤 선택을 할까. 제작 과정에서 감독은 상우가 O를 누르는 장면과 X를 누르는 장면 둘 다 촬영했다. 변해가는 상우의 심리 과정이 보다 잘 드러나는 선택을 고르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상우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상우는 비난과 동시에 왠지 모를 씁쓸함으로 공감을 샀는데 어쩌면 지탄받을 만한 그의 선택이 지극히 현실적인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상우가 최후의 승자가 돼 456억 원을 차지했다면 어땠을까. 빚을 청산하고 평생 고생하며 살아온 어머니를 위해 사용했을까, 아니면 피 묻은 돈을 섣불리 건드릴 수 없었을까.

“저도 엄청 많이 생각해봤어요. 정작 게임에서는 인정사정없이 싸웠지만 상우는 돈을 쓰지 못했을 거예요. 게임 의도 자체가 과연 돈을 쓰라고 준 걸까요? 455명을 죽이고 살아남으면 트라우마가 생겨 돈을 쓸 수도 없는 폐인이 됐을 거예요. 만약 저였어도 금액이 너무 커서 내 돈 같지 않을 것 같네요. 가족을 위해 쓸 돈을 조금 제외하고 기부하지 않을까 싶어요.”


기대하게 만드는 〈키마이라〉 〈종이의 집〉

박해수는 2007년 연극 〈미스터 로비〉로 데뷔해 공연 무대에서 먼저 이름을 알렸다. 틈틈이 영화·드라마에도 단역으로 출연해 존재감을 넓혀가던 중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통해 대중적인 인지도를 갖게 됐다. 야구선수 김제혁 역할로 등장한 그를 두고 처음에는 ‘어디서 봤지?’라며 궁금해했지만 대중은 금세 박해수란 배우에게 빠져들었다. 이후 그는 영화 〈양자물리학〉을 통해 청룡영화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연극 무대에서 다져온 실력을 인정받았다.

박해수의 진가는 묵직하게 공기를 휘감는 배역에서 한층 더 드러난다. 넷플릭스 영화 〈사냥의 시간〉에서 주인공을 쫓는 추격자는 박해수 말고 대체할 만한 인물이 떠오르지 않는다. 매서운 눈매와 표정이 대사보다 많은 것을 말한다. 정작 현실의 박해수는 느릿느릿하고 감정의 진폭이 크지 않은 걸 보면 연기 공력이 가늠된다. 그는 방영을 앞둔 드라마 〈키마이라〉에서 연쇄폭발 살인사건, 키마이라의 진실을 쫓는 강력계 형사 재환을, 넷플릭스 〈종이의 집〉 한국판 리메이크 작품에서는 베를린 역을 맡아 또 한 번 진가를 보여줄 예정이다.

“저는 말주변도 없고 평소 별 생각을 안 하고 살아요. 귀도 얇은 편이고, 누가 얘기하면 ‘어, 그래?’ 하고 반응도 느려요. 그런데 대척점에 있는 인물을 연기하면서 새로운 나를 발견해요. ‘상대적으로 나는 이런 면이 있구나, 이런 점이 부족하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연기를 하며 스스로 불만이나 자괴감도 많았는데 그게 저를 성장하게 만들었네요. 누구나 자신이 하는 일에 목숨 걸고 하지 않나요? 저 역시 연기에 삶과 시간을 걸고 귀중하게 살기 위해 그래왔어요.”

〈오징어 게임〉 속 상우가 목숨 걸고 게임에 임한 것처럼 박해수는 오랜 시간 연기에 욕망을 품고 배우로 활동했다. 연극을 하며 경제적으로 포기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항상 열정을 가졌다. 무대에 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런 하루하루가 쌓여 세계가 주목하는 오늘에 이르렀다. 그에겐 상금 456억 원보다 더 값진 결과다. 무대에 서기 위해 숱한 오디션을 보고 몸이 부서져라 연습한 그가 이룬 마땅한 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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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박해수
“목숨 걸고 연기합니다”
선수현
잠시 상상해보자. 456억 원이란 큰돈이 손에 들어온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전망 좋은 곳에 집을 사서 잉여인간의 나날을 보내고 가족·친구들에게 근사한 선물도 하고. 아, 도움이 필요한 곳에 값지게 쓰일 몫도 떼어놓지 않을까. 이런저런 꿈에 부풀어 행복감에 도취된 찰나, 누군가 말한다. 거액을 얻으려면 게임에 참가해 우승해야 한다고. 단, 한순간이라도 탈락하면 목숨을 잃는다는 조건이 붙는다. 456억 원을 향한 도전, 그래도 할 것인가.

넷플릭스 콘텐츠 〈오징어 게임〉은 인생의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이 최종 상금 456억 원을 향해 목숨 건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를 서비스 중인 세계 83개국에서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키자 작품에 등장하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설탕 뽑기(달고나)’ ‘오징어 게임’ 등 놀이가 덩달아 재미를 안겼다. 어린 시절 골목 곳곳에서 해가 저무는지도 모르고 즐겼던 놀이. 하지만 〈오징어 게임〉 속에서는 어른들이 생존을 위해 벌이는 처절한 사투일 뿐이다. 게임 참가자 중 상우 역할을 맡은 박해수는 동심과 처절한 현실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했다.


엘리트가 괴물이 되기까지…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게임에 추억이 있어요. 어렸을 때 몸 쓰는 게임을 많이 해서 오징어 게임은 물론이고 술래잡기, 돈가스 게임, 방방도 좋아했어요. 달고나 뽑기는 몸을 쓰는 게임은 아니지만 차분하게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아서 지금 해도 재밌더라고요. 작품에서 게임을 하면서 그리움과 동시에 이상한 긴장감도 느껴졌어요. 내가 살기 위해 상대를 무너뜨려야 하니 심리적 압박이 들더라고요. 누군가 죽여야 하는 게임이란 걸 알고부터는 마음의 부담도 있을 테고, 많은 사람이 죽은 장소에 서 있다는 자체에서 에너지 소모가 컸을 테니 연기하면서 그 지점을 많이 고민했어요.”

〈오징어 게임〉에서는 실력이 없거나, 운이 없거나 낙오되면 구제받을 수 없다. 가차 없이 목숨을 잃는다. 머니게임이란 단순한 플롯이지만 게임 참가자들을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목표를 위해 이해관계가 맞는 집단을 구성하고, 생존을 위해서라면 타인을 짓밟는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내가 베푼 호의가 칼날이 되어 돌아오는 일도 적지 않다.

박해수가 연기한 상우는 평범한 인물이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시작과 끝의 심리 상태가 가장 급변하는 인물이다. 동네 수재로 자라 서울대를 졸업하고 증권사에 입사해 잘나가는 펀드매니저가 된 상우. 실상은 고객 돈을 유용해 거액의 빚더미에 앉은 걸 보면 경쟁 사회에서 이기기 위해 누군가에게 상처 준 일이 처음은 아닐 거란 추측이 가능하다.

“〈오징어 게임〉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시나리오가 갖고 있는 힘과 조상우가 심리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에 끌렸어요. 인간의 심리 변화가 도드라지잖아요. 서바이벌 게임이 거듭되면서 상우의 선택 기준이 변하고, 그 기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는 모습이 매력 있더라고요.”


상황에 이끌리는 입체적 인물


상우는 지극히 무던하다가도 어느 순간 리더가 되기도 한다. 생존을 위한 처세술이다. 튀지 않고 적당한 그룹을 만들어 살아남고, 힘이 세면서 자신의 말을 잘 들을 것 같은 알리에게 선의를 베풀다가 이용해 먹는다. 이처럼 순간순간 변하는 상우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박해수는 “상우 입장에서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는 합리적 선택과 결정이 무엇일지를 고민했다”고 했다.

그의 고민이 잘 묻어나는 지점이 있다. 첫 번째 게임이 끝난 후 재개 여부를 묻는 장면. O·X 버튼을 눌러 거액의 상금을 받을 희박한 확률과 생존의 확실한 확률 사이에서 상우는 어떤 선택을 할까. 제작 과정에서 감독은 상우가 O를 누르는 장면과 X를 누르는 장면 둘 다 촬영했다. 변해가는 상우의 심리 과정이 보다 잘 드러나는 선택을 고르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상우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상우는 비난과 동시에 왠지 모를 씁쓸함으로 공감을 샀는데 어쩌면 지탄받을 만한 그의 선택이 지극히 현실적인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상우가 최후의 승자가 돼 456억 원을 차지했다면 어땠을까. 빚을 청산하고 평생 고생하며 살아온 어머니를 위해 사용했을까, 아니면 피 묻은 돈을 섣불리 건드릴 수 없었을까.

“저도 엄청 많이 생각해봤어요. 정작 게임에서는 인정사정없이 싸웠지만 상우는 돈을 쓰지 못했을 거예요. 게임 의도 자체가 과연 돈을 쓰라고 준 걸까요? 455명을 죽이고 살아남으면 트라우마가 생겨 돈을 쓸 수도 없는 폐인이 됐을 거예요. 만약 저였어도 금액이 너무 커서 내 돈 같지 않을 것 같네요. 가족을 위해 쓸 돈을 조금 제외하고 기부하지 않을까 싶어요.”


기대하게 만드는 〈키마이라〉 〈종이의 집〉

박해수는 2007년 연극 〈미스터 로비〉로 데뷔해 공연 무대에서 먼저 이름을 알렸다. 틈틈이 영화·드라마에도 단역으로 출연해 존재감을 넓혀가던 중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통해 대중적인 인지도를 갖게 됐다. 야구선수 김제혁 역할로 등장한 그를 두고 처음에는 ‘어디서 봤지?’라며 궁금해했지만 대중은 금세 박해수란 배우에게 빠져들었다. 이후 그는 영화 〈양자물리학〉을 통해 청룡영화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연극 무대에서 다져온 실력을 인정받았다.

박해수의 진가는 묵직하게 공기를 휘감는 배역에서 한층 더 드러난다. 넷플릭스 영화 〈사냥의 시간〉에서 주인공을 쫓는 추격자는 박해수 말고 대체할 만한 인물이 떠오르지 않는다. 매서운 눈매와 표정이 대사보다 많은 것을 말한다. 정작 현실의 박해수는 느릿느릿하고 감정의 진폭이 크지 않은 걸 보면 연기 공력이 가늠된다. 그는 방영을 앞둔 드라마 〈키마이라〉에서 연쇄폭발 살인사건, 키마이라의 진실을 쫓는 강력계 형사 재환을, 넷플릭스 〈종이의 집〉 한국판 리메이크 작품에서는 베를린 역을 맡아 또 한 번 진가를 보여줄 예정이다.

“저는 말주변도 없고 평소 별 생각을 안 하고 살아요. 귀도 얇은 편이고, 누가 얘기하면 ‘어, 그래?’ 하고 반응도 느려요. 그런데 대척점에 있는 인물을 연기하면서 새로운 나를 발견해요. ‘상대적으로 나는 이런 면이 있구나, 이런 점이 부족하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연기를 하며 스스로 불만이나 자괴감도 많았는데 그게 저를 성장하게 만들었네요. 누구나 자신이 하는 일에 목숨 걸고 하지 않나요? 저 역시 연기에 삶과 시간을 걸고 귀중하게 살기 위해 그래왔어요.”

〈오징어 게임〉 속 상우가 목숨 걸고 게임에 임한 것처럼 박해수는 오랜 시간 연기에 욕망을 품고 배우로 활동했다. 연극을 하며 경제적으로 포기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항상 열정을 가졌다. 무대에 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런 하루하루가 쌓여 세계가 주목하는 오늘에 이르렀다. 그에겐 상금 456억 원보다 더 값진 결과다. 무대에 서기 위해 숱한 오디션을 보고 몸이 부서져라 연습한 그가 이룬 마땅한 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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