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이렇게 말했다. “잘 부른 노래에는 칭찬이 달리고, 명곡에는 사연이 달린다”고. 선우정아가 부른 ‘도망가자’ 댓글에는 숱한 이들의 애달픈 사연이 이어졌다. 직업이 장례지도사인 어떤 사람은 “무겁다면 굉장히 무거운 직업이라 이따금, 살짝 내려놓고 싶을 때 이 노래로 위안을 받는다”며 불러줘서 고맙다는 댓글을 남겼다. 항암치료를 받는 어떤 이는 “도망가버리고 싶지만 버티겠다. 씩씩하게 돌아와 다시 댓글 쓰겠다”고 했다. 또 어떤 이는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며 힘들었는데, 가사처럼 ‘괜찮아. 좀 느려도. 천천히 걸어도 나만은 너(아이)랑 갈 거야’ 할 수 있게 됐다”고 썼다.

저마다 나름의 이유로 고달픈 이들이 그의 노래를 듣고 용기를 내어 자신의 삶을 나누고 마음을 추스른다. 2019년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그가 부른 ‘도망가자’는 현재(9월 기준) 조회수 291만 회를 기록 중이다. “어디든 가자”고, “넌 금방이라도 울 것 같다”고, “실컷 웃고 다시 돌아오자”고, “거기서는 아무 생각 말자”라고 말하는 선우정아의 노래를 듣는 동안 비록 우리 몸은 여기에 있을지라도 마음은 멀리 다녀온 듯 숨 쉴 틈을 얻는다.

“평소에 남편이 저에게 많이 하던 말이었어요. ‘잠깐만 갔다 올까?’ 대신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작은 회피에 함께해준다는 말만으로도 위안이 되더라고요. 정규 3집을 마무리할 때쯤 많이 지쳐 있었는데, 저도 저지만 제가 앨범 말고는 아무것도 신경 쓸 수가 없어서 그도 참 힘들어 보였어요. 그래서 저도 그에게 ‘우리 가자’고 해주고 싶었어요. (노래에는) 누가 먼저 가자고 했든 기꺼이 함께 도망가줄 수 있는 마음, 그런 마음이 심어진 것 같아요.”


내 삶이 음악으로 뒤덮이기를


선우정아는 얼마 전 JTBC 〈바라던 바다〉의 비 내리는 고성 바닷가에서도 ‘도망가자’를 불렀다. 그저 첫 소절 “도망가자…”를 했을 뿐인데, 손님들 찬거리를 준비하느라 주방에서 분주하던 이동욱도, 김고은도, 수현도, 이지아도 일순 움직임을 멈췄다. 무언가를 하며 들을 수 있는 노래가 있고, 노래가 시작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노래가 있다. 선우정아의 노래는 후자다. 이지아는 물었다. “당신의 삶은 어떠했기에, 도대체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거냐”고.

사실 그의 음악 인생은 동화처럼 시작됐다. 미취학아동 시절 세종문화회관에서 뮤지컬 〈피터팬〉을 봤는데 그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어릴 적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봤을 때의 감동도 지금까지 고스란하다.

“이 작품들을 보고 생각했어요. ‘아, 내 삶도 저렇게 음악으로 뒤덮였으면 좋겠다’ 하고요. 정확하게 이 표현을 써서 기억하고 있어요. ‘뒤덮였으면’. 마치 본능처럼 근원적인 목적을 찾은 기분이었어요. 그때는 가수라는 개념을 잘 몰랐어요. 클래식 피아노를 배우고 있었고 뮤지컬 형식을 가진 작품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온갖 감정과 감상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소망했던 것 같아요.”

그 후로는 치열했다. 삶을 온통 음악으로 꽉 들어차게 하기 위해 분투했다. 1985년생 선우정아는 열여덟 살이던 2002년 KMTV 〈주영훈의 오픈캐스팅〉 결승전에 진출했고 같은 해 MBC 표준FM 〈별이 빛나는 밤에〉(이하 별밤) 분기 장원전에 나갔다. 이렇다 할 오디션이 없던 당시, 〈별밤〉은 노래 좀 한다 하는 이들이 다 모이는 ‘별들의 전쟁’이었다.

“열여덟 살… 정말 뜨거운 고교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밴드 사운드와 록에 심취해서 학교에 밴드부를 창설하고, 신촌과 홍대 라이브클럽 오픈마이크 무대도 찾아다녔어요. 청소년가요제, 온갖 대회도 참가해서 상도 열심히 받고 다녔습니다. 공부도 적당히 하고, 집에서는 컴퓨터로 시퀀싱 프로그램을 익히며 곡도 썼고요. 지금까지 제 인생에서 가장 부지런하고 건강했던 시기 같아요.”


격조 있는 대중 명품을 만들겠다

선우정아 ‘동거(in the bed)’ 뮤직비디오.
스물둘이던 2006년 선우정아는 정규 1집으로 데뷔했다. 데뷔 앨범 제목은 〈Masstige〉, 대중(Mass)과 명품(Prestige)을 합친 말이다. 첫 앨범은 그의 음악이 어디를 지향하는지 알려주는 안내판이기도 하다. 대중을 무시하진 않지만, 격조 있는 ‘명품’을 만들겠다는 의지도 굽히지 않으려는 다짐. 실제로 수록곡 ‘미쳤대도 좋아’에는 “미쳤대도 좋아 비웃어도 좋아 / 내 인생 내가 살지 누가 사나”라는 패기가 담겨 있다. 당시 한 음악평론지는 “이제 막 데뷔한 신인의 앨범임에도 자기 색깔이 뚜렷하다. 음악적 아이덴티티를 놓치지 않으면서 보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기를 원하는 미래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아 보인다”고 평했다.

이후 선우정아는 그의 활동을 눈여겨본 YG엔터테인먼트의 제안으로 프로듀서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2NE1, GD&TOP, 이하이 등의 앨범에 작사·작곡·편곡·프로듀싱으로 참여했다. 이 시절 선우정아는 “듣기 쉬운 곡을 만드는 것도 어렵구나”를 배웠다. 정규 앨범 2집은 무려 7년 뒤인 2013년에 나왔다. 싱어송라이터 선우정아에 대한 업계의 평판과 입소문이 대중에까지 이어지는 시절이었다. 그는 이때부터 “메이저와 마이너의 감성을 아우르는 뮤지션”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저 자신을 프로듀싱하는 것과 타인을 프로듀싱하는 것의 차이는 선택과 결정을 누가 책임지느냐의 차이예요. 제 것을 할 때도 회사와 많은 상의를 하지만, 가장 많은 결정을 내리고 가장 큰 책임감을 갖게 되는 건 저예요. 내가 그린 그림을 실현하며 흐름을 지휘해나가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지만 부담 또한 어마어마하죠. 종종 길을 잃을 때 다시 궤도에 오르기까지 데미지가 큽니다. 타인을 프로듀싱하는 경우는 의뢰한 아티스트 혹은 회사가 앞에 말한 역할을 하게 되고요. 다양한 의견들 속에서 저의 의견을 설득시키기도 하고, 다른 이의 의견에 따르며 제가 몰랐던 것들을 배우고 경험하게 돼서 좋아요. 여러모로 부담도 적고 즐거운 반면 아무래도 제 작업을 할 때처럼 펑 하고 터지는 열정은 덜 한 것 같아요. 제 성격이 절박한 데서 의욕을 크게 느끼는 걸까요(웃음).”

그를 두고 메이저냐 마이너냐, 인디냐 커머셜이냐를 구분 짓는 건 큰 의미가 없다. 차라리 선우정아의 음악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 없느냐로 나누는 게 자연스럽다. 한 번이라도 그의 음악을 들은 사람은, 그 이름 넉 자를 잊을 수 없을 테니까.


든든한 벙커, 18년지기 남편

선우정아의 노래는 처절할 정도로 솔직하다. 정직하지 않으면 한마디도 할 수 없는 사람처럼 곡을 만든다. ‘도망가자’와 같은 앨범에 수록된 곡 ‘인터뷰’를 보자. 선우정아는 마음의 컨디션이 좋지 않던 날 인터뷰를 마치고 난 뒤의 소회를 음악으로 만들었다. “어느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던 날 / 모든 말 그 날의 모든 말 / 어느 누구도 듣지 않았음 했던 말”이라고 적었다.

인터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제한된 시간에 인터뷰이가 한 말이 그의 전부인 것처럼 포장되거나 편집되어 나간다. 그게 도무지 내가 아닌 것 같아도 한 번 인쇄된, 한 번 뿌려진 이야기는 다시 거둘 방법이 없다. 그는 그 허탈한 마음 역시 음악에 담았다.

“저도 제 음악의 특징 중 하나가 ‘솔직함’이라고 생각해요. 평소엔 다 내보일 수 없는, 조금은 날이 서 있는 질감의 솔직함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나면 속이 시원하긴 해요. 일시적이긴 해도 문제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고요.”

그렇다고 그가 그렇게 날선 이야기만 담는 건 아니다. 그의 노래 ‘백년해로’에는, 평소엔 표현하지 못하는 반려자에 대한 심상을 담았다. “절대 먼저 떠나지 말라”는 당부와 “지겹게 내 곁에 있어주라”는 고백이다. 이 애틋한 마음을 들은 남편의 반응은 비록 “사기 치지 말라”였지만.

“안타깝게도 그분(남편)이 공연을 보러 오시면 제가 긴장을 많이 해서, 제가 못 오게 하는 편입니다. 대신 라이브 콘텐츠나 방송 모니터는 저보다 먼저 꼼꼼하게 해주세요. ‘사기 치지 말라’는 말은 ‘백년해로’를 듣고 했다기보다, 그 노래를 내고 활동할 때 비하인드나 가사 설명을 하고 다니다 보니 남편 지인분들이 엄청 사랑받고 사는 것 같다고 했대요. 저는 평소에 잘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을 노래에 열심히 담는 편입니다. 남편 입장에서는 조금 사기성으로 느낄 수 있겠어요(웃음).”

음악을 꿈꾸던 열아홉부터 같이한 남편은 여전히 가장 가까운 동료이자 가장 어려운 관객이다. 두 사람은 10년의 교제 후 가족이 됐다. 그에게는 “도망 다니는 나를 든든하게 보호해주는 이동식 벙커”이기도 하다.


아이유, 폴킴, 정세운, BTS의 우상


한편 작사가 김이나는 선우정아를 “음악계의 큐레이터” “4D 뮤지션”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아이유, 폴킴, 정세운, BTS 등이 팬심을 숨기지 않는 “뮤지션들의 우상”이라고. 선우정아는 이에 대해 “그냥 좀 일찍 제 음악에 관심을 가져주신 감사한 분들이고, 마음이 열려 계신 분들”이라고 겸손하게 답했다.

실제로 폴킴은 선우정아의 공연을 보고 그 앞에 무릎을 꿇기도 했다. 같은 공연이 모든 회차마다 편곡, 악기 구성, 퍼포먼스가 바뀌는 것을 보고 감동한 폴킴은 공연이 끝난 뒤 선우정아와 마주쳤고, ‘저 사람에게 뭔가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다짜고짜 무릎을 꿇고 “나를 제자로 받아달라”고 했다는 것. 선우정아는 놀라 뒷걸음질 치며 “이러지 말고 일어나라, 나중에 연락 주겠다”고 했고, 나중에 만난 두 사람은 “사실 그때 너무 무서웠다”는 이야기를 웃으며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됐다.

“(뮤지션의 뮤지션이라는 말은) 굉장히 민망하고 부끄러우면서 동시에 뿌듯하고 감사한 수식어입니다. 동료들에게 좋은 말을 듣는 것은 대중에게 사랑받는 것과 또 다른 기쁨이고 영광이에요. 여전히 활동 중인 선배 뮤지션들, 아름다운 흔적을 만들어가는 동료 뮤지션들이 다 저의 뮤지션이에요. 활동 이력이 늘어갈수록 동시대 활동하는 모든 뮤지션들에게 갖는 경외심이 더 커지더라고요.”

그가 초현실적인 요정처럼 바라보는 뮤지션은 아이슬란드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비요크(Bjork)다. 음악에 클래식부터 펑크, 재즈까지 담는다는 점, 미셸 공드리와 뮤직비디오를 만들 정도로 비주얼과 영상미에 공을 들인다는 점은 선우정아와도 맞닿아 있다. 그는 노래를 표현하는 데 사용되는 헤어, 메이크업, 의상과 영상, 퍼포먼스에도 정성을 쏟는다. 다양한 머리(가발)를 시도하기 위해 반삭으로 바꾼 적도 있다.

“촬영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방향이 바뀌거나 새로운 걸 찾아내는 경우가 있지만, 어찌 됐건 (모든 퍼포먼스는) 계획하에 진행됩니다. 확신을 갖고 진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자기 비하가 아니라 냉정하게 제가 비주얼적으로 유리한 조건은 아니기 때문에 더욱 치열하게 고민합니다. 음악이라는 무형 에너지를 만들어 제공하는 생산자로서 그것을 담는 그릇 또한 함께 고민하고 신경 쓰는 건 모든 뮤지션들이 비슷할 것 같아요.”


어제는 울었지만 오늘은 당신 땜에 내일은 행복할 거야


선우정아는 2014년 한국대중음악상 종합분야 ‘올해의 음악인’상을, 2021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알앤비&소울 음반상을 받았다. 2021년 그를 선정한 심사위원은 “선우정아는 남다른 경지에 올랐다”라며 “기본기를 출중히 갖추면서도 분명한 개성을 드러내기란 대단히 어렵다. 선우정아는 이를 탁월하게 해냈다”고 말했다.

선우정아가 이 경지에 오르리라는 걸, 누군가는 알고 있었다. 가수 김동률은 “개인적으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모르는 사이지만” 2018년 선우정아의 공연을 본 뒤 이런 글을 남겼다.

“관객들이 공연을 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뭘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아티스트가 얼마나 정성스럽게 공연을 준비하는가를 봅니다. 아마 오늘 그의 공연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닐 겁니다. 물론 타고난 음악적 재능도 당연히 큰 몫을 했겠지만, 늘 주어진 상황에서 120%, 150%를 해내려는 집요한 노력과 정성이 쌓여서 만들어진 결과일 거라 짐작합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십 년쯤 후 그의 공연이 무척 궁금해지네요.”

선우정아의 120%, 150%는 운이나 컨디션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부단한 탐구와 경계를 허무는 도전에서 비롯된다.

“실제 작업과 공연 활동을 해나가면서 필요한 것들에 대한 공부는 그때그때 조금씩 하게 돼요. 장비나 소프트웨어들이요. 새로운 것들이 너무 빨리 많이 나와서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는데 이젠 필요한 것들이 추려지더라고요. 추려진 소수의 것들을 꽤 깊게 파고듭니다.”

그가 데뷔 시절부터 독립영화 〈오늘은 내가 요리사〉 〈죄 많은 소녀〉, 상업영화 〈너는 내 운명〉 등의 음악 작업을 같이하고,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에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걸 두고 일각에서는 그를 “괴물 뮤지션”이라 불렀다. 활동 영역이 무한대로 넓어서다. 이런 노력은 스스로 틀에 갇히지 않고 장르에 구애받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영상 작업은 음과 리듬, 사운드의 텍스처들을 평소보다 세밀하게 느끼고 컨트롤하는 걸 배울 수 있어요. 전 그다지 섬세하지 못한 감수성을 갖고 있어서 대중음악을 다룰 때 여러 번 해야 겨우 느끼는 어떤 지점들이 있었는데 영상음악 작업을 하면서 많이 좋아졌어요. 서사도 워낙 좋아해서 그 이야기에 바람을 불어넣는 느낌이라 그저 행복합니다.”


〈바라던 바다〉의 고성 바닷가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부른 노래는 심수봉의 ‘사랑밖에 난 몰라’였다. 같은 노래인데 선우정아를 통과하면 달라진다. 그의 온몸은 오직 노래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머리 한 올부터 발끝까지 집중해 있고, 그 소리는 누수 없이 듣는 이의 폐부로 스며든다. 김고은은 눈을 쓱 닦으며 “이렇게 울릴 것까지야”라고 작게 탄식했다. 노래 한 곡을 들었을 뿐인데, 가슴 밑바닥이 후련하게 정화된 기분. 말 못 할 사연을 그의 노래 앞에 다 털어버린 마음. 우리는 어쩌면 앞으로도 선우정아와 함께 울겠지만, 그 때문에 내일은 조금 더 행복해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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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의 뮤지션 선우정아
유슬기
혹자는 이렇게 말했다. “잘 부른 노래에는 칭찬이 달리고, 명곡에는 사연이 달린다”고. 선우정아가 부른 ‘도망가자’ 댓글에는 숱한 이들의 애달픈 사연이 이어졌다. 직업이 장례지도사인 어떤 사람은 “무겁다면 굉장히 무거운 직업이라 이따금, 살짝 내려놓고 싶을 때 이 노래로 위안을 받는다”며 불러줘서 고맙다는 댓글을 남겼다. 항암치료를 받는 어떤 이는 “도망가버리고 싶지만 버티겠다. 씩씩하게 돌아와 다시 댓글 쓰겠다”고 했다. 또 어떤 이는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며 힘들었는데, 가사처럼 ‘괜찮아. 좀 느려도. 천천히 걸어도 나만은 너(아이)랑 갈 거야’ 할 수 있게 됐다”고 썼다.

저마다 나름의 이유로 고달픈 이들이 그의 노래를 듣고 용기를 내어 자신의 삶을 나누고 마음을 추스른다. 2019년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그가 부른 ‘도망가자’는 현재(9월 기준) 조회수 291만 회를 기록 중이다. “어디든 가자”고, “넌 금방이라도 울 것 같다”고, “실컷 웃고 다시 돌아오자”고, “거기서는 아무 생각 말자”라고 말하는 선우정아의 노래를 듣는 동안 비록 우리 몸은 여기에 있을지라도 마음은 멀리 다녀온 듯 숨 쉴 틈을 얻는다.

“평소에 남편이 저에게 많이 하던 말이었어요. ‘잠깐만 갔다 올까?’ 대신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작은 회피에 함께해준다는 말만으로도 위안이 되더라고요. 정규 3집을 마무리할 때쯤 많이 지쳐 있었는데, 저도 저지만 제가 앨범 말고는 아무것도 신경 쓸 수가 없어서 그도 참 힘들어 보였어요. 그래서 저도 그에게 ‘우리 가자’고 해주고 싶었어요. (노래에는) 누가 먼저 가자고 했든 기꺼이 함께 도망가줄 수 있는 마음, 그런 마음이 심어진 것 같아요.”


내 삶이 음악으로 뒤덮이기를


선우정아는 얼마 전 JTBC 〈바라던 바다〉의 비 내리는 고성 바닷가에서도 ‘도망가자’를 불렀다. 그저 첫 소절 “도망가자…”를 했을 뿐인데, 손님들 찬거리를 준비하느라 주방에서 분주하던 이동욱도, 김고은도, 수현도, 이지아도 일순 움직임을 멈췄다. 무언가를 하며 들을 수 있는 노래가 있고, 노래가 시작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노래가 있다. 선우정아의 노래는 후자다. 이지아는 물었다. “당신의 삶은 어떠했기에, 도대체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거냐”고.

사실 그의 음악 인생은 동화처럼 시작됐다. 미취학아동 시절 세종문화회관에서 뮤지컬 〈피터팬〉을 봤는데 그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어릴 적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봤을 때의 감동도 지금까지 고스란하다.

“이 작품들을 보고 생각했어요. ‘아, 내 삶도 저렇게 음악으로 뒤덮였으면 좋겠다’ 하고요. 정확하게 이 표현을 써서 기억하고 있어요. ‘뒤덮였으면’. 마치 본능처럼 근원적인 목적을 찾은 기분이었어요. 그때는 가수라는 개념을 잘 몰랐어요. 클래식 피아노를 배우고 있었고 뮤지컬 형식을 가진 작품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온갖 감정과 감상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소망했던 것 같아요.”

그 후로는 치열했다. 삶을 온통 음악으로 꽉 들어차게 하기 위해 분투했다. 1985년생 선우정아는 열여덟 살이던 2002년 KMTV 〈주영훈의 오픈캐스팅〉 결승전에 진출했고 같은 해 MBC 표준FM 〈별이 빛나는 밤에〉(이하 별밤) 분기 장원전에 나갔다. 이렇다 할 오디션이 없던 당시, 〈별밤〉은 노래 좀 한다 하는 이들이 다 모이는 ‘별들의 전쟁’이었다.

“열여덟 살… 정말 뜨거운 고교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밴드 사운드와 록에 심취해서 학교에 밴드부를 창설하고, 신촌과 홍대 라이브클럽 오픈마이크 무대도 찾아다녔어요. 청소년가요제, 온갖 대회도 참가해서 상도 열심히 받고 다녔습니다. 공부도 적당히 하고, 집에서는 컴퓨터로 시퀀싱 프로그램을 익히며 곡도 썼고요. 지금까지 제 인생에서 가장 부지런하고 건강했던 시기 같아요.”


격조 있는 대중 명품을 만들겠다

선우정아 ‘동거(in the bed)’ 뮤직비디오.
스물둘이던 2006년 선우정아는 정규 1집으로 데뷔했다. 데뷔 앨범 제목은 〈Masstige〉, 대중(Mass)과 명품(Prestige)을 합친 말이다. 첫 앨범은 그의 음악이 어디를 지향하는지 알려주는 안내판이기도 하다. 대중을 무시하진 않지만, 격조 있는 ‘명품’을 만들겠다는 의지도 굽히지 않으려는 다짐. 실제로 수록곡 ‘미쳤대도 좋아’에는 “미쳤대도 좋아 비웃어도 좋아 / 내 인생 내가 살지 누가 사나”라는 패기가 담겨 있다. 당시 한 음악평론지는 “이제 막 데뷔한 신인의 앨범임에도 자기 색깔이 뚜렷하다. 음악적 아이덴티티를 놓치지 않으면서 보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기를 원하는 미래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아 보인다”고 평했다.

이후 선우정아는 그의 활동을 눈여겨본 YG엔터테인먼트의 제안으로 프로듀서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2NE1, GD&TOP, 이하이 등의 앨범에 작사·작곡·편곡·프로듀싱으로 참여했다. 이 시절 선우정아는 “듣기 쉬운 곡을 만드는 것도 어렵구나”를 배웠다. 정규 앨범 2집은 무려 7년 뒤인 2013년에 나왔다. 싱어송라이터 선우정아에 대한 업계의 평판과 입소문이 대중에까지 이어지는 시절이었다. 그는 이때부터 “메이저와 마이너의 감성을 아우르는 뮤지션”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저 자신을 프로듀싱하는 것과 타인을 프로듀싱하는 것의 차이는 선택과 결정을 누가 책임지느냐의 차이예요. 제 것을 할 때도 회사와 많은 상의를 하지만, 가장 많은 결정을 내리고 가장 큰 책임감을 갖게 되는 건 저예요. 내가 그린 그림을 실현하며 흐름을 지휘해나가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지만 부담 또한 어마어마하죠. 종종 길을 잃을 때 다시 궤도에 오르기까지 데미지가 큽니다. 타인을 프로듀싱하는 경우는 의뢰한 아티스트 혹은 회사가 앞에 말한 역할을 하게 되고요. 다양한 의견들 속에서 저의 의견을 설득시키기도 하고, 다른 이의 의견에 따르며 제가 몰랐던 것들을 배우고 경험하게 돼서 좋아요. 여러모로 부담도 적고 즐거운 반면 아무래도 제 작업을 할 때처럼 펑 하고 터지는 열정은 덜 한 것 같아요. 제 성격이 절박한 데서 의욕을 크게 느끼는 걸까요(웃음).”

그를 두고 메이저냐 마이너냐, 인디냐 커머셜이냐를 구분 짓는 건 큰 의미가 없다. 차라리 선우정아의 음악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 없느냐로 나누는 게 자연스럽다. 한 번이라도 그의 음악을 들은 사람은, 그 이름 넉 자를 잊을 수 없을 테니까.


든든한 벙커, 18년지기 남편

선우정아의 노래는 처절할 정도로 솔직하다. 정직하지 않으면 한마디도 할 수 없는 사람처럼 곡을 만든다. ‘도망가자’와 같은 앨범에 수록된 곡 ‘인터뷰’를 보자. 선우정아는 마음의 컨디션이 좋지 않던 날 인터뷰를 마치고 난 뒤의 소회를 음악으로 만들었다. “어느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던 날 / 모든 말 그 날의 모든 말 / 어느 누구도 듣지 않았음 했던 말”이라고 적었다.

인터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제한된 시간에 인터뷰이가 한 말이 그의 전부인 것처럼 포장되거나 편집되어 나간다. 그게 도무지 내가 아닌 것 같아도 한 번 인쇄된, 한 번 뿌려진 이야기는 다시 거둘 방법이 없다. 그는 그 허탈한 마음 역시 음악에 담았다.

“저도 제 음악의 특징 중 하나가 ‘솔직함’이라고 생각해요. 평소엔 다 내보일 수 없는, 조금은 날이 서 있는 질감의 솔직함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나면 속이 시원하긴 해요. 일시적이긴 해도 문제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고요.”

그렇다고 그가 그렇게 날선 이야기만 담는 건 아니다. 그의 노래 ‘백년해로’에는, 평소엔 표현하지 못하는 반려자에 대한 심상을 담았다. “절대 먼저 떠나지 말라”는 당부와 “지겹게 내 곁에 있어주라”는 고백이다. 이 애틋한 마음을 들은 남편의 반응은 비록 “사기 치지 말라”였지만.

“안타깝게도 그분(남편)이 공연을 보러 오시면 제가 긴장을 많이 해서, 제가 못 오게 하는 편입니다. 대신 라이브 콘텐츠나 방송 모니터는 저보다 먼저 꼼꼼하게 해주세요. ‘사기 치지 말라’는 말은 ‘백년해로’를 듣고 했다기보다, 그 노래를 내고 활동할 때 비하인드나 가사 설명을 하고 다니다 보니 남편 지인분들이 엄청 사랑받고 사는 것 같다고 했대요. 저는 평소에 잘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을 노래에 열심히 담는 편입니다. 남편 입장에서는 조금 사기성으로 느낄 수 있겠어요(웃음).”

음악을 꿈꾸던 열아홉부터 같이한 남편은 여전히 가장 가까운 동료이자 가장 어려운 관객이다. 두 사람은 10년의 교제 후 가족이 됐다. 그에게는 “도망 다니는 나를 든든하게 보호해주는 이동식 벙커”이기도 하다.


아이유, 폴킴, 정세운, BTS의 우상


한편 작사가 김이나는 선우정아를 “음악계의 큐레이터” “4D 뮤지션”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아이유, 폴킴, 정세운, BTS 등이 팬심을 숨기지 않는 “뮤지션들의 우상”이라고. 선우정아는 이에 대해 “그냥 좀 일찍 제 음악에 관심을 가져주신 감사한 분들이고, 마음이 열려 계신 분들”이라고 겸손하게 답했다.

실제로 폴킴은 선우정아의 공연을 보고 그 앞에 무릎을 꿇기도 했다. 같은 공연이 모든 회차마다 편곡, 악기 구성, 퍼포먼스가 바뀌는 것을 보고 감동한 폴킴은 공연이 끝난 뒤 선우정아와 마주쳤고, ‘저 사람에게 뭔가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다짜고짜 무릎을 꿇고 “나를 제자로 받아달라”고 했다는 것. 선우정아는 놀라 뒷걸음질 치며 “이러지 말고 일어나라, 나중에 연락 주겠다”고 했고, 나중에 만난 두 사람은 “사실 그때 너무 무서웠다”는 이야기를 웃으며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됐다.

“(뮤지션의 뮤지션이라는 말은) 굉장히 민망하고 부끄러우면서 동시에 뿌듯하고 감사한 수식어입니다. 동료들에게 좋은 말을 듣는 것은 대중에게 사랑받는 것과 또 다른 기쁨이고 영광이에요. 여전히 활동 중인 선배 뮤지션들, 아름다운 흔적을 만들어가는 동료 뮤지션들이 다 저의 뮤지션이에요. 활동 이력이 늘어갈수록 동시대 활동하는 모든 뮤지션들에게 갖는 경외심이 더 커지더라고요.”

그가 초현실적인 요정처럼 바라보는 뮤지션은 아이슬란드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비요크(Bjork)다. 음악에 클래식부터 펑크, 재즈까지 담는다는 점, 미셸 공드리와 뮤직비디오를 만들 정도로 비주얼과 영상미에 공을 들인다는 점은 선우정아와도 맞닿아 있다. 그는 노래를 표현하는 데 사용되는 헤어, 메이크업, 의상과 영상, 퍼포먼스에도 정성을 쏟는다. 다양한 머리(가발)를 시도하기 위해 반삭으로 바꾼 적도 있다.

“촬영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방향이 바뀌거나 새로운 걸 찾아내는 경우가 있지만, 어찌 됐건 (모든 퍼포먼스는) 계획하에 진행됩니다. 확신을 갖고 진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자기 비하가 아니라 냉정하게 제가 비주얼적으로 유리한 조건은 아니기 때문에 더욱 치열하게 고민합니다. 음악이라는 무형 에너지를 만들어 제공하는 생산자로서 그것을 담는 그릇 또한 함께 고민하고 신경 쓰는 건 모든 뮤지션들이 비슷할 것 같아요.”


어제는 울었지만 오늘은 당신 땜에 내일은 행복할 거야


선우정아는 2014년 한국대중음악상 종합분야 ‘올해의 음악인’상을, 2021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알앤비&소울 음반상을 받았다. 2021년 그를 선정한 심사위원은 “선우정아는 남다른 경지에 올랐다”라며 “기본기를 출중히 갖추면서도 분명한 개성을 드러내기란 대단히 어렵다. 선우정아는 이를 탁월하게 해냈다”고 말했다.

선우정아가 이 경지에 오르리라는 걸, 누군가는 알고 있었다. 가수 김동률은 “개인적으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모르는 사이지만” 2018년 선우정아의 공연을 본 뒤 이런 글을 남겼다.

“관객들이 공연을 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뭘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아티스트가 얼마나 정성스럽게 공연을 준비하는가를 봅니다. 아마 오늘 그의 공연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닐 겁니다. 물론 타고난 음악적 재능도 당연히 큰 몫을 했겠지만, 늘 주어진 상황에서 120%, 150%를 해내려는 집요한 노력과 정성이 쌓여서 만들어진 결과일 거라 짐작합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십 년쯤 후 그의 공연이 무척 궁금해지네요.”

선우정아의 120%, 150%는 운이나 컨디션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부단한 탐구와 경계를 허무는 도전에서 비롯된다.

“실제 작업과 공연 활동을 해나가면서 필요한 것들에 대한 공부는 그때그때 조금씩 하게 돼요. 장비나 소프트웨어들이요. 새로운 것들이 너무 빨리 많이 나와서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는데 이젠 필요한 것들이 추려지더라고요. 추려진 소수의 것들을 꽤 깊게 파고듭니다.”

그가 데뷔 시절부터 독립영화 〈오늘은 내가 요리사〉 〈죄 많은 소녀〉, 상업영화 〈너는 내 운명〉 등의 음악 작업을 같이하고,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에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걸 두고 일각에서는 그를 “괴물 뮤지션”이라 불렀다. 활동 영역이 무한대로 넓어서다. 이런 노력은 스스로 틀에 갇히지 않고 장르에 구애받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영상 작업은 음과 리듬, 사운드의 텍스처들을 평소보다 세밀하게 느끼고 컨트롤하는 걸 배울 수 있어요. 전 그다지 섬세하지 못한 감수성을 갖고 있어서 대중음악을 다룰 때 여러 번 해야 겨우 느끼는 어떤 지점들이 있었는데 영상음악 작업을 하면서 많이 좋아졌어요. 서사도 워낙 좋아해서 그 이야기에 바람을 불어넣는 느낌이라 그저 행복합니다.”


〈바라던 바다〉의 고성 바닷가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부른 노래는 심수봉의 ‘사랑밖에 난 몰라’였다. 같은 노래인데 선우정아를 통과하면 달라진다. 그의 온몸은 오직 노래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머리 한 올부터 발끝까지 집중해 있고, 그 소리는 누수 없이 듣는 이의 폐부로 스며든다. 김고은은 눈을 쓱 닦으며 “이렇게 울릴 것까지야”라고 작게 탄식했다. 노래 한 곡을 들었을 뿐인데, 가슴 밑바닥이 후련하게 정화된 기분. 말 못 할 사연을 그의 노래 앞에 다 털어버린 마음. 우리는 어쩌면 앞으로도 선우정아와 함께 울겠지만, 그 때문에 내일은 조금 더 행복해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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