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 왜 이제 잡혔나

연극 <날보러 와요>, 영화 <살인의 추억>,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모티프

유슬기 기자 |  2019.09.19

주인공 용식(강하늘)이 나고 자란 지방의 소도시, 옹산엔 몇 년 전 연쇄살인 사건이 있었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시간은 흐르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질 때쯤, 옹산 연쇄살인마 까불이를 다룬 영화가 제작된다는 소식이 들린다. 사람들은 술렁인다. 옹산이 간장게장으로 유명세를 타서 이제 외지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는데, 다시 살인의 도시로 보일까봐서다. 하지만 용식은 언젠가 까불이를 잡겠다는 투지를 불태운다. 옹산파출소의 변소장도 늘 사람좋은 웃음을 하고 있지만 그는 알고 있다.

내 촉에, 까불이는 아직 옹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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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8일 첫방송된 드라마 <동백꽃 필무렵>

 

지난 918일 첫방송된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한 장면이다. 공효진이 3년 만에 주인공 동백을 맡아 드라마로 컴백하고, 강하늘이 제대 후 처음 선택한 작품이라 눈길을 모았다. 첫방 후 반응은 호평이다. 동시간대 드라마 중 시청률 1위에 오르며 승기를 잡았다. 로맨스와 코미디 여기에 스릴러까지 더해졌다. 이 중 스릴러를 담당하는 게 옹산 연쇄살인 사건이다. 남자 주인공은 경찰이고, 여자 주인공은 옹산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며 동백이라는 술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늘 늦은 밤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향하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그림자가 그를 따라 다닌다. 범인이 아직 마을에 있다면, 피해자는 언제든 나올 수 있다. 동백이는 무사할 수 있을까.

 

연쇄살인사건은 범인이 잡히지 않는 한, 끝나지 않는다         

드라마의 첫방송이 있던 날, 뉴스를 채운 소식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이 밝혀졌다는 내용이었다. 19869월부터 19914월까지 경기 화성 일대 반경 3km 지역에서 부녀자 10명이 살해됐다. 주로 해가 진 뒤 길을 걷던 여성들이 희생됐는데 첫 희생자의 나이는 70, 마지막 희생자의 나이는 13세였다. 범인은 자신의 물건은 전혀 쓰지 않고 희생자의 속옷, 스타킹, 양말 등으로 몸을 결박하고 재갈을 물려 범행을 저질렀다. 시신은 농로, 수로, 야산 등에서 발견됐고 CCTV가 없던 시절이라 수사는 미궁에 빠졌다. 이 중 가까스로 도망친 피해자 1명과 목격자 1명의 증언으로 용의자의 몽타주가 만들어졌다. 나이는 24~27, 신장은 165~170정도, 호리호리한 체격에 스포츠형 머리, 눈매가 날카롭다는 인상착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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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초연한 연극 <날보러 와요> ⓒ뉴시스

 

경찰은 연인원 200만명을 투입했지만 검거에 실패했다. 이 사건은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이형호군 유괴사건과 함께 국내 3대 미제사건으로 남았고, 그 범죄 수법이 잔인하고 희생자도 많아 세계 100대 살인사건에 꼽히기도 했다. 1996년 극작가 김광림은 이 사건을 소재로 연극 <날보러 와요>를 만든다. 국내에서 10여 차례 재공연되면서 누적 관객수 10만 명을 넘겼다. 이는 또 2003년 영화 <살인의 추억>의 모티프가 된다.

 

2019년 7월 시작된 재수사, DNA로 범인을 찾다

김광림 작가와 봉준호 감독은 모두 범인이 이 작품을 볼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고, 미제사건으로 묻히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치밀하게 취재했다. 연극의 제목이 날 보러 오라는 메시지를 남은 이유도, 영화의 마지막에 박두만 형사(송강호)가 화면을 응시하면서 끝난 이유도, ‘우리는 당신을 잊지 않고 있다는 범인을 향한 외침이다. 하지만 2007년 이전 살인사건의 경우, 공효시효는 15년이다. 1991년 화성에서 마지막 희생자를 낸 사건은 결국 2006년 공소시효가 끝났다.

뜻밖에 범인을 찾아낸 건 20197월 경찰이 재수사를 시작하면서다. 경찰은 당시 증거품 분석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맡겼다. 그 결과 화성에서 일어난 10건의 살인 사건 중 5, 7, 9차의 현장증거물에서 용의자의 DNA가 검출됐다. 용의자는 현재 부산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56세 이 모씨였다. 그는 1994년 청주로 당시 스무 살이던 자신의 처제를 토스트기를 가져가라며 부른 뒤 수면제가 든 음료를 먹여 성폭행하고 살해한 뒤 인근 야적장에 시신을 버렸다. 당시 범행의 수법은 화성의 그것과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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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제작된 영화 <살인의 추억>

 

이 사건 역시 뚜렷한 증거가 없어 묻힐 뻔 했다. “사건 당일, 이씨의 집에서 물소리가 났다는 한 마디의 증언이 불씨가 됐다. 제보를 듣고 이씨의 집을 찾은 경찰은 욕실 세탁기 받침대에서 피해자의 DNA를 찾아냈다. ‘충북에서 최초로 DNA가 증거로 채택된 사례였다. 이 때 체포돼 수감된 이씨는 무기징역을 확정판결 받아 교도소에서 25년째 복역 중이었다. 그는 복역 기간 중 단 한 차례의 문제도 일으키지 않아 4등급의 수감자 중 1급 모범수로 분류됐다. 무기징역이 아니었다면, 이미 가석방이 됐을 것이라고 교도소 관계자는 말했다.

    

고통과 기억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 20명의 사람을 죽여 사형을 언도받은 유영철은 살인중독은 자신의 힘으로 멈출 수 없다화성연쇄살인범은 죽었거나, 교도소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쇄살인의 경우 본인 의지로 범행을 중단할 수 없기때문이다. 실제로 용의자로 지목된 이씨는 1994년부터 교도소에 있었다    

<살인의 추억> 개봉 당시 봉준호 감독은 기억하는 것이 범인에 대한 응징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영화는 암흑같은 터널을 비추며 열린 결말로 마친다. DNA 분석으로 5, 7, 9차 살인의 실마리는 찾았지만 나머지는 아직 미궁 속이다. 심지어 8차 사건은 이 사건에 대한 모방범죄였다. 피해자의 가족은 아직 고통 속에 살고 있고, 기억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범죄와의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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