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_영화 <미나리> 세계인의 마음을 훔친 비결은 바로

윤여정은 그렇게 '글로벌 그랜마'가 되었다

유슬기 기자 |  2021.02.20
*영화내용 포함돼 있습니다.

<미나리>는 개봉 전부터 유명해진 영화다. 세계 유수 영화제가 먼저 이 영화를 알아보고 호평에 호평을 보냈다. 이 영화는 2021년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고 전 세계 영화제와 주요영화비평가협회의 상을 휩쓸며 68관왕에 올랐다. 특히 순자역을 맡은 윤여정은 22개 영화제에서 조연상을 받았다.

mn2.jpg
3월 개봉 예정인 영화 <미나리>의 시사회에 다녀왔다

 

각본, 연출 뿐 아니라 캐스팅까지 탁월했던 정이삭 감독의 안목 

하지만 국뽕에 빠지긴 이르다. 이 영화는 미국인 감독이 미국 제작자와 함께 만든 미국 영화다. 영화는 <옥자>에 출연한 스티븐 연이 <옥자>를 제작하기도 한 브래드피트의 제작사 A24에 작품을 추천하면서 제작됐다. 1980년대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 가족의 이야기는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골든글로브에서는 외국인영화상 후보에 올랐다. 등장인물들이 절반 이상 한국어를 쓴다는 이유다.

한국어가 모국어인 한국인들이 보기도 전에, 외국인 관객들에게 이토록 호평을 받은 이유는 한번이라도 모국을 떠난 이들이라면 느꼈을 보편의 정서를 담아서다. 이들 역시 타국에서 살며 모국과 타국의 경계에서 겪은 바를 <미나리>는 영민하게 담았다.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말한 바 있듯 자막이라는 ‘1인치의 장벽을 넘으면 우리는 모두 더 너른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언어만 다를 뿐 한 때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었던 이들은 그 드넓은 대지에서 척박한 땅을 개간하며 내 한 몸, 내 가족이 뿌리내릴 땅을 찾았다. 캘리포니아에서 10년간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던 제이콥의 가족은 아칸소로 이주한다. 태풍이 불면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 바퀴달린 집에 따스한 햇살은 내리쬐지만 이들의 일상은 그렇게 따스하지만은 않다.

 

1인치의 장벽을 넘어서 

아이들에게 뭔가를 이루어내는 걸 보여주고 싶은아버지(스티븐 연)와,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좀 더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은 어머니 모니카(한예리), 그리고 정신없이 일해야 하는 부부를 대신해 큰 딸 앤과 둘째 데이빗을 봐주기 위해 태평양 건너 낯선 나라로 온 외할머니 순자(윤여정). 부부는 이게 모두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 하지만, 아이들은 부모의 언성이 높아지면 조용히 방안에 들어가 종이 비행기를 접는다. ‘Don’t fight(싸우지 마세요)‘라는 글씨를 써서.

mi2.jpg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항상 미국 아이들에게 낯선 시선을 받는 데이빗은 감독의 어린 시절이자 이야기의 화자이기도 하다. 그의 눈에 비친 세계는 이상한 것 투성이인데, 그 중 가장 이상한 건 한국에서 미나리 씨앗을 가지고 온 외할머니 순자다. 그는 다른 할머니들처럼 아이들을 위해 쿠키를 구워주지도 않고, 예쁜 말만 하지도 않는다. (도리어 화투를 치면서 툭하면 욕한다) 엄마가 큰 맘 먹고 낸 헌금을 몰래 다시 빼내기도 하고, 항상 뛰지 말라는 어른들과는 다르게 마음껏 뛰라며 눈감아 주기도 한다. 

손자 데이빗은 할머니를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엄마 모니카와 관객들은 영화를 감싸는 순자의 사랑을 느낀다. 할머니의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생에 아무리 비극적인 일이 닥쳐도 호들갑 떨지 않고 그럴 수도 있다며 안심시키고, 누가 뭐래도 내 새끼가 최고라고 등을 두들겨 주는웬만한 이민 2세보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윤여정은, <미나리>에서 영어는 잘 하지 못하(는척 하)지만 누구보다 하고 또 진한 그랜마의 존재를 구현해낸다

 

mn1.jpg
독립영화는 힘들어서 안한다는 윤여정은, 저예산 <미나리>에 합류해 고급 연기를 보여준다. 기막힌 언행불일치다.

 

미국에서는 <워킹데드>로 유명하지만 한국 관객에게도 <옥자><버닝>으로 친숙한 스티븐 연은 대륙의 한 복판에 자신의 보금자리를 만들고자 한 한 가장의 분투를 온몸으로 그려낸다. 햇볕에 그을린 그의 어깨와 붉은 모자는 그 때 그 시절 우리 아버지들의 젊음과 그 젊음이 감당하기 버거웠던 삶의 고역을 묵묵히 담아낸다

모니카 역을 맡은 한예리는 북한 사람, 중국 사람 등으로 분했던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살아보지 않았을 세상'을 마치 다 살아낸 사람같은 '인생 2회차'의 내공을 보여준다. 어떤 장면은 그의 표정 하나로 설명이 끝난다. 영어를 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감독의 페르소나인 손자 데이빗의 존재감이 탁월하다. 순자의 입을 빌려 묻고 싶다. "데이빗아(데이비사), 산에서 내린 이슬(극중 데이빗이 좋아하는 음료 '마운틴듀'를 그는 이렇게 부른다)을 먹으면 그렇게 연기를 잘하게 되니?" 

영화 속 데이빗은 어리고, 우리가 어렸을 때, 우리의 부모도 어렸다. 그럼에도 이들은 부모였고, 어떻게든 주어진 생을, 무릎 아래의 자식들을 책임져야 했다. 그 책임이 서툴러 어린 자식들에게 보여선 안 될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것이 이들의 최선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그건 꼭 이민을 가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젊은 남녀가 가정을 이루고 그 가족을 지키는 일은 마치 타국에서 정착해 사는 일만큼이나 서럽고 어려운 일이니까. 

 

돌아가신 할머니가 보고싶어지는 영화 

<미나리>는 보편의 아메리카 드림뿐 아니라, 우리 부모들의 청춘 역시 담고 있다. 그리고 아마 세계 어디에서 태어났든 이들의 외할머니도 그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어디서든 마실 물을 찾아내고, 쌈지돈을 털어 자식에게 보탬이 될 귀퉁이를 찾아내던.

mn3.jpg
모니카(한예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이겨나는 삶을 꿈꾼다

 

할머니 앞에서 우리는 모두 내 강아지였고, 강아지는 쉬를 해도 아무리 버릇이 없어도 할머니 눈에는 그저 내 새끼일 뿐이다. 그 무조건적인 사랑과 긍정이 그리운 모두에게, 배우 윤여정은 가장 한국적인, 그리고 가장 윤여정다운 모습으로 모두의 할머니가 되었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today's pick

magazine 인기기사

topp 인기기사

daily 인기기사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