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고통일까? 영화 <종이꽃>이 말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진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되길”

선수현 기자 |  2020.10.26

유진은 ‘전직 요정’으로 불린다. 20세기 남성들의 마음에 금가루라도 뿌렸던 걸까. 가수도, 배우도, MC도 아닌 요정이 직업이었다니. 최근 개봉한 영화 <종이꽃>에 출연한 유진에게서는 그 어떤 요정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딸의 엄마가 된 지금의 모습과 더 닮아 있다.

영화 <종이꽃>은 사고로 거동이 불편해진 아들과 살아가는 장의사 성길이(안성기) 옆집으로 이사 온 모녀를 만나면서, 잊고 있던 삶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되는 이야기다. 영화 제목이자 장의사 성길이 망자에게 마지막으로 선물하는 종이꽃을 통해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장치다.

유진은 상처가 있지만 밝고 씩씩한 ‘은숙’ 역을 맡았다. 내면의 상처를 지녔지만 딸을 돌보며 누구보다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캐릭터. 성길의 옆집으로 이사온 은숙은 그의 아들 지혁(김혜성)을 간호하면서 이들 부자를 변화시킨다. 죽음과 장례를 다루며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영화에 유진은 특유의 밝은 숨을 불어넣는다. 요정 때와는 다른 종류의 금가루다.

<종이꽃>은 저예산 작품이지만 유진의 연기에 대한 갈증을 풀어내기 충분했다. 영화는 개봉 전부터 ‘제53회 휴스턴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외국어영화상에 해당되는 백금상과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기쁜 소식부터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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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유진 ⓒ(주)로드픽쳐스

11년 만에 스크린 복귀네요.

영화를 워낙 좋아해서 어려서부터 장르 가리지 않고 영화를 봤어요. 주말이면 비디오를 빌려 4~5번씩 돌려보곤 했을 정도예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영화 작업은 또 다른 면이 있어요. 스크린에서 날 볼 수 있다는 점이죠. 언젠가 좋은 기회가 오길 기다렸어요.

영화 <종이꽃>에 출연한 계기가 있나요?

무거운 주제지만 음산하지 않고 즐겁게 풀어가는 영화예요. 주제를 표현하는 방법이 마음에 들었어요. 은숙이란 캐릭터도 연기해보고 싶었고요. 안성기 선배님이 출연하시는 점도 너무 좋아 시작하게 됐어요.

안성기 씨와 호흡은 어땠나요?

한 마디로 감동이었어요. 선배님이 왜 대배우가 될 수밖에 없는지 알 것 같더라고요. 연기에 임하는 태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 모든 면에 배려가 묻어있었어요. 나이나 경력이 많으면 나도 모르게 권위감이 표출될 수 있는데 그런 게 전혀 없으셨어요. 그분의 평소 성품 같아요.

은숙은 아픔을 갖고 있지만 밝은 성격의 인물이던데, 캐릭터에 어떻게 접근했나요?

은숙의 밝음은 예상치를 넘는 수준이었어요. 처음부터 밝게 접근하긴 했는데 감독님은 ‘더 밝았으면 좋겠다’고 요청하시더라고요.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할 정도로요. 얼굴의 흉터가 이상하게 보일 만큼 밝으니 이미지가 대조되면서 차차 납득이 갔어요.

그 모습이 영화와 잘 어울렸어요.

극도의 밝은 모습을 보여주다가 은숙의 어두운 과거 장면이 나올 때 감정이입이 될까 싶었는데 훨씬 깊게 들어가지더라고요. 가정폭력에 시달린 은숙은 완전히 주저앉아 삶을 포기하고 싶은 상황에서도 오히려 희망을 찾아요. 어두운 방에 갇혀 빛이 새어나는 곳을 바라보고, 바깥 소리에 귀를 기울이죠. 영화에 내재된 건 결국 희망이에요. 마지막 장면은 긍정적이고 강인하고 희망적인 은숙의 캐릭터가 잘 묻어나는 장면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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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종이꽃> ⓒ(주)로드픽쳐스

유진 씨의 평소 성격도 엄청 밝은 편이죠?

저도 타고난 밝음이 있어서 은숙 연기가 가능했겠지만 은숙만큼은 아니에요. 살다 보면 범접불가의 밝은 사람이 있잖아요.

영화가 장례, 죽음 등을 다루고 있어요. 관련해서 새롭게 느낀 게 있나요?

저는 이 주제를 어렸을 때 생각해봤어요. 그래서 새로운 깨달음보다는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죠. 죽음은 누구나 직면해야 하는 현실이니까 젊어서 한 번 생각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이 영화를 보고 생각해봐도 좋고요. 삶의 방향성, 가치관이 달라질 거예요.

유진 씨는 어떻게 생각했는데요?

저는 신앙적으로 접근을 했어요.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이 세상을 여행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게 되니 여유가 생기고 욕심 부릴 필요가 없겠더라고요. 그렇지 않았으면 저도 방황하거나 악착같이 살았겠죠. 최고가 되기 위한 욕망도 컸을 거고. 그랬으면 삶이 참 고단했을 거예요. 저는 행복을 찾기 위해 욕심내기보다 삶 자체에 감사하며 살아요.

관객들이 영화를 어떻게 보길 바라나요?

영화가 담고 있는 주제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남녀노소 불문하고 한번쯤 이 주제를 생각해보는 것도 도움될 거예요. 그러면서도 영화는 희망을 다루고 있어요. 요즘 같은 시기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받고 마음이 따뜻해지면 좋겠어요.

다음에 출연하고 싶은 장르가 있나요?

코믹, 타임슬립, SF, 스릴러 장르물을 좋아하는데 고민되네요. 요즘은 감정적으로 힘든 건 피하게 되더라고요. 특히 아이가 생기고는 아이 관련 스릴러는 쳐다보고 싶지도 않아요.

최근 출연하는 드라마 <펜트하우스>는 스릴러잖아요.

저는 욕망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 좋아하는 류는 아닌데 촬영하니 재미는 있더라고요. 잔잔한 내용이 아니니까 감정도 올라가고 전개도 훅훅 진행되고. 힘들지만 즐겁게 촬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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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유진 ⓒ(주)로드픽쳐스

 

동시대 활동했던 동료들이 ‘환불원정대’에 나오는데, 어때요?

멋있고 재밌어요. “나도 껴줘!” 하고 싶을 정도로. 정화 언니도 나오는 걸 보니 보기 좋았고요. 어릴 때는 나이 드는 게 무섭고 실었는데 정화 언니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저렇게 나이들 수 있다면야 괜찮지’ 하고. 언니는 지금도 똑같던데요?

유진 씨 딸 로희도 가수가 되고 싶다고 하던데?

뭘 하든 괜찮아요. 다만 그 일을 해야 하는 이유와 열정이 있음 좋겠어요. 단순히 돈을 버는 것보다 아이의 철학이 있으면 응원할 거예요. 극중 딸 노을이처럼 장의사를 한다고 해도 괜찮아요.

마지막으로, 유진 씨는 배우와 가수 어떤 게 더 만족스럽나요?

둘 다 재밌어요. 어느 하나 고르는 건 힘들어요. 무대에 서는 건 삶의 일부였고 지금도 올라가고 싶어요. 가수를 시작으로 배우로 가고 있을 뿐이죠. 연기는 너무 재밌고 할수록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둘 다 성격에 잘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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