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추악한 공간 n번방, 유포자 조주빈 신상공개

그들은 왜 텔레그램을 사용했나

선수현 기자 |  2020.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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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n번방의 '박사방'의 운영자 조주빈. 사진=경찰청

서울지방경찰청은 텔레그램 ‘n번방 사건’과 관련, 3월 24일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를 열고 이른바 ‘박사방’ 운영자로 지목된 조주빈(25) 씨의 신상공개를 결정했다. 위원회는 “피의자는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노예로 지칭하며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 유포하는 등 범행 수법이 악질적·반복적이고, 아동·청소년을 포함해 피해자가 무려 70여 명에 이르는 등 범죄가 중대할 뿐 아니라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인적·물적 증거가 충분히 확보됐다”며 “국민의 알권리, 동종범죄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차원에서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종합적으로 심의해 피의자의 성명과 나이, 얼굴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n번방은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해 성착취물을 공유하는 비밀 대화방이다. 추적을 피해 수시로 방을 옮기는 과정에서 1번방, 2번방, 3번방 형식으로 변형돼 n번방이란 명칭이 붙었다. n번방 범죄의 타켓이 된 건 ‘일탈계’. 자신의 은밀한 신체 사진을 SNS에 재미 삼아 올리는 퇴폐문화를 ‘일탈계’ 혹은 ‘살색계’라 하는데 최근 10~20대를 중심으로 번지고 있다. n번방 운영자는 공공기관을 사칭, 조사가 필요하다면서 이들에게 접근해 개인정보를 요구하고, 빼낸 개인정보와 은밀한 사진을 빌미로 성적 영상을 촬영하도록 협박했다. 피해자가 보내온 성적 영상은 n번방을 통해 공유됐다.

조 씨는 n번방 중 하나인 ‘박사방’을 유료로 운영했다. 박사방은 시범 영상을 무료로 시청한 후 더 자극적인 영상을 원하면 1단계 25만원, 2단계 55만원, 3단계 155만원에 이용 가능했다. 특히 3단계는 영상 속 여성에게 특정 행위를 직접 요구할 수 있었으며 이때 가학적 성착취, 변태적 요구 등이 이어졌다. 경찰이 파악한 박사방의 피해자는 74명, 이 가운데 미성년자가 16명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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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텔레그램

n번방이 추적을 피하기 위해 사용한 프로그램은 텔레그램. 보안이 철저한 메신저로 알려진 텔레그램은 2013년 8월 러시아의 니콜라이와 파벨 두로프 형제가 만든 무료 메신저다. 광고 없는 서비스를 표방하며 보안성을 자신하고 있다. 운영비용은 이용자들의 기부금으로 충당한다.

텔레그램이 보안 메신저로 자리 잡은 데는 두로프 형제의 철칙이 반영돼 있다.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브리콘탁테(VK)’를 운영하던 형제는 2012년경 러시아 정부로부터 ‘반부틴 시위’ 가담자들의 정보를 요청받지만 거절했다. 오히려 국가가 개인정보를 요구했다는 폭로를 하며 맞섰다. 러시아 정부의 요구를 거부한 형제는 러시아를 떠나 독일을 기반으로 서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다.

텔레그램의 일반 대화는 클라우드 방식으로 서버에 모두 저장돼 완벽한 보안을 자부한다고 할 수는 없다. 보안에 특화된 건 비밀대화 서비스다. 메신저 사용자 A의 기기와 B의 기기 모두에서 메시지를 암호화함으로써 메시지가 오가는 중간 서버에서 내용을 읽는 게 불가능하다. 사용자 A와 B의 기기가 아니라면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단 뜻이다. n번방은 이와 같은 텔레그램의 비밀대화 서비스를 사용했다.

카카오톡 메신저 역시 비밀대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카카오톡은 2014년 사찰 진통을 겪은 바 있다. 이때 국내 카카오톡 사용자가 대거 텔레그램으로 이동하기도 했다. 이후 텔레그램은 드루킹 사건, 안희정 전 충남지사 스캔들, 청와대 특별감찰관 사건 등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했는데 모두 극도의 보안을 요하는 내용이 텔레그램을 통해 전해졌다. 어떤 기관에도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텔레그램의 정책 고수가 배경으로 작용한 것.

이번 n번방 사건 수사에서도 텔레그램 서버를 활용할 수 없었다. 경찰은 텔레그램의 IP를 추적하는 방식의 수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n번방의 최초 운영자인 ‘갓갓’ 역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쫓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텔레그램 n번방의 유포자 외에도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를 요구하는 글에 180만명 이상이 동의한 상황. 성착취물 동영상 수요자에 대한 신산공개가 이뤄진다면 경찰은 비트코인 거래소에 남은 흔적을 토대로 암호화폐로 결제한 박사방 유료 회원 명단을 밝힐 수 있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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