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랏말싸미>의 슬픈 운명에 대하여

싸늘한 역사 왜곡인가, 뜨거운 영화적 고뇌인가

유슬기 기자 |  2019.07.30

시나리오를 쓰기로 결심했을 때, 그러니까 세종을 한 인간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 곧바로 이런 의문이 들었다. 과연 세종 치세가 태평성대였을까? 이미 태평성대를 일군 행복한 왕이 뭐가 답답해서 중국과 신하들 눈치를 보며 새 문자를 만든단 말인가? 세상에 없던 문자 체계를 새로 만든다는 게 왕성한 지적호기심과 여유로운 취미생활로 가능한 일인가? 영화 일을 하면서 얻은 작은 깨달음이 있다. 행복한 인간은 결핍을 느끼지 않으며 절박한 결핍이 없으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없다는 역설. 슬프지만 진실이다. 훈민정음이 위대한 창작물이라면 그 뒤에 거대한 결핍이 없을 리 없다. 이것이 드라마로 세상을 보는 방식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의구심을 품고 실록을 들여다봤다.-29~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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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랏말싸미> 7월 24일 개봉

 

영화 <나랏말싸미>의 각본을 쓴 이송원 작가가 730일 발간된 나랏말싸미 맹가노니-이야기의 탄생에 적은 글이다. 이송원 작가는 영화 <사도>도 각본가로 참여했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 뒤에 숨겨진 결핍과 아픔을 탐독했다. <사도>의 이준익 감독과 이송원 작가, 그리고 <나랏말싸미>의 조철현 감독은 오랜 벗이다. 이들은 낡은 호프집에 모여 세종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을 나누었다고 한다. 그리고 조철현 감독은 지난 봄 광화문의 촛불시위와 그들을 우러러보는 세종대왕의 동상을 보면서, ‘이제 이야기를 해도 될 때라고 느꼈다고 했다.

 

이송원 작가, 위대한 창작물 뒤에는 거대한 결핍이 있다    

조철현 감독은 영화계에서 배급, 제작, 각본 등으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나랏말싸미>는 그의 감독 입봉작이다. 그는 영화 제작에 앞서 세종에 대한 기록들과 신미대사에 대한 자료들을 모두 찾아보았다고 했다. 그 중 박해진 작가가 쓴 훈민정음의 길: 혜각존자 신미 평전은 한글창제에 알려지지 않은 인물로 스님인 '신미'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영화와 가장 그 궤가 가깝다. 그 때문인지 책의 출판사인 나녹은 영화 개봉 전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출판사의 허락없이 영화가 책의 내용을 가져다 썼다는 내용이었다. 법원에서는 이 신청을 기각했고, 영화는 올해 7월 개봉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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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헌왕후 역을 맡은 고 전미선 배우

 

그러나 개봉 즈음 또 한 번 황망한 소식이 들렸다. <나랏말싸미>의 삼각편대 중 한 축을 담당하는 소헌왕후 역을 맡은 전미선 배우의 부고였다. <나랏말싸미>는 송강호, 전미선, 박해일 세 배우가 <살인의 추억> 이후 16년 만에 다시 만나 또한 화제가 된 작품이었다. 고 전미선 배우가 맡은 소헌왕후는 왕실에 의해 자신의 일가가 몰락하는 비극을 겪었으나, 세종의 끝까지 곁을 지켰고 그와 한 무덤에 묻힌 왕비다. 영화 속에서는 백성도 읽고 쓸 수 있는 글자를 만들겠다는 세종의 의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지하는 인물이자, 그럴 수 있는 방도를 찾아내고 한글의 반포에도 힘을 싣는 주체적인 여성이기도 하다. 배우는 생전에 시대극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넓은 인물을 맡아 기쁘다고 했었다.

 

송강호, 이 영화의 슬픈 운명인 것 같다      

영화제작사 측은 배우를 애도하는 마음으로 개봉 외의 홍보일정을 중단했다. 송강호 배우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소헌왕후의 천도제 촬영이 있었다고 운을 떼며, 전미선 배우가 함께 하지 못하는 현재를 이 영화의 슬픈 운명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부디 영화는 슬픈 운명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영화의 운명은 개봉 이후에도 순탄치 않다. 영화를 본 관객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영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반영하지만 그와 구별되는 하나의 가능한 세계. 남은 목숨과 바꿔서라도 쉬운 문자를 만들려는 분투 끝에 위대함의 반열로 진입하는 인간 이도(세종의 본명)의 험난한 여정을 우리는 그리고자 했다. 그 길의 동반자로 신미(信眉)라는 실존인물에 주목했으며, 세종과 맞서고 협력하고 격돌하는 영화적 캐릭터로 탈바꿈시켰다. 신미 캐릭터는 세종의 내면에 도사린 그림자를 분리하여 인격화한 또 다른 자아(alter ego)’. 세종의 마음속에서 벌어졌을 치열한 싸움을 외면화한 상대역으로 신미를 바라볼 수 있다는 얘기다.” -이송원

   

이송원 작가와 조철현 감독은 신미를 세종의 또 다른 자아로 보았으나, 관객에게 신미의 존재는 불편했다. 먼저 신미가 훈민정음에 참여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영화의 전제부터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이 전제는 세종의 업적을 뿌리부터 뒤흔드는 일이었고, 이를 영화적 상상력이나 인간의 고뇌차원에서 보기에는 한글의 역사 뿐 아니라 조선왕조의 역사까지도 흔들리는 일이었다. 배우들의 연기는 나무랄 데 없었으나, 흔들리는 역사관 앞에 펼쳐지는 인물의 고뇌에 감정을 이입하기에 세종은 너무나 가까운 인물이었고 신미는 너무나 먼 인물이었다. 세종의 무기력과 신미의 도발을 이해하기엔 현실과 영화의 온도가 너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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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조철현 감독

 

조철현 감독, 진심이 오해받아 가슴 아프다      

이런 낙차를 의식했는지, 감독은 이례적으로 영화관계자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진심을 알아달라는 내용이었다. 아무리 영화판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감독이라도, 감독과 배우 제작진의 혼을 갈아 넣은 영화역사왜곡의 질타를 받으며 관객의 외면을 받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메일에서 조철현 감독은

   

저는 수십 년간 세종대왕과 한글을 마음에 품고 살아왔습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 대해 반감을 표하는 분들의 마음을 압니다. 그러나 제작진의 마음과 뜻은,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을 폄훼하고자 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위대한 문자인 한글을 탄생시키기까지, 가장 과학적인 원리로 만들고자 했으며, 가장 배우기 쉬운 문자를 만들기 위해 직접 글자의 디자인 원칙을 제시하고 디자인 과정을 주도했으며, 누구나 배우기 쉬운 글자를 만들기 위해 글자 수까지 줄이고자 했던 세종대왕의 모습과, 신분과 신념의 차이에 연연해하지 않고, 제왕의 권위까지 버리면서 백성을 위해 처절하게 고민했던 세종대왕의 인간적인 면모를 그리고자 했습니다. 그의 위대함이 어떤 희생을 딛고 나온 것인지, 그렇기에 한글이 얼마나 위대한 업적인지 그리고자 했습니다. 진심을 전달하고자 하는 소통과 노력의 부족으로 이런 점이 충분히 전달되지 못했던 점을 너무나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라고 썼다. 그의 말대로 이 영화는 고뇌와 상처, 번민을 딛고 자신의 목숨을 단축시켜가면서까지 문자를 만들려 했던 세종의 애민정민을 담는다. 그리고 그 창조의 과정의 어려움과 가치도 담는다. 그러나 지금 관객이 냉담해지는 지점은 그가 신격화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역사의 검증에서 당연히 가져야 하는 냉정하고 객관적인 분석보다 영화화 과정에서 드러내고자 했던 인간 세종의 뜨거운 고뇌에 저울의 추가 기울어졌고, 이 뜨거움을 만드는 불쏘시개로 쓰인 신미의 존재가 여전히 학계와 종교계에서 논란을 야기하고 있어서다. 논란의 인물로 논란을 만드는 방식은, 영화적으로 뜨거운 이슈를 낳거나 냉담한 외면을 낳는다. 애석하게도 <나랏말싸미>는 후자다. 영화가 하나의 신념이 되면, 스토리는 하나의 구호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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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를 본 영화인들의 반응은 관객과는 달리 다정하다. <사도>의 이준익 감독은 품격의 영화. 의미가 재미를 넘어선다고 평했고, 임순례 감독은 한글 창제의 베일이 한 꺼풀 벗겨지는 신선한 스토리텔링이 좋았다. 연출의 묵직함과 유머가 절묘한 균형을 보였으며, 공간 등의 미술적 리얼리티는 사극의 격조를 보여준다. 한글의 위대함을 다시금 각인 시켜주는 영화라고 했다. <나랏말싸미>의 촬영현장을 찾기도 했던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에는 역사상 가장 경이로운 창조의 순간을 코앞에서 목격하는 짜릿함이 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극장을 나서며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기 위해 핸드폰의 한글 자판을 하나하나 두드릴 때, 세종이라는 고독한 천재를 향해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고 싶어진다고 했다    

영화인의 울타리 안에서 이 영화는 담고자 했던 한 인간의 드라마영화적 상상력이 눈에 밝히 들어오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관객에게 다가가기엔 담벼락이 높다. "그래서 신미가 한글을 만들었다는 거야?"라는 1차적인 질문을 넘어서지 못한다. 만듦새는 훌륭하지만, 허구라 하기에도역사라 하기에도 애매한 이 영화는 마음을 주기도 마음을 주지 않기도 어렵다. 이것이 <나랏말싸미>의 슬픈 운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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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걸망짊어진나그네   ( 2019-07-31 ) 찬성 : 0 반대 : 0
신미대사는 누구인가?
 https://youtu.be/1MdskqgY_eI
  leonard   ( 2019-07-30 ) 찬성 : 0 반대 : 0
한글창제는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의 연구결과라는게 정설. 한국은 역사적 기자조선(고려.조선시대에는 기자조선 인정)을 거쳐, 지금도 정사인 위만조선.한사군 이후 수천년 유교나라임
 
 http://blog.daum.net/macmaca/2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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