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경영체제 돌입 위기의 KBS, 진짜 위기는 콘텐츠에 있다

<여름아 부탁해>,<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vs<단 하나의 사랑>,<퍼퓸>

유슬기 기자 |  2019.07.18

#1. 주인공에게는 의대생인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자 남자친구 대신 그를 간병하며 뒷바라지 한 덕에 남자친구는 성형외과 의사가 된다. 결혼 후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두 사람은 임신을 위해 노력하지만 여러 시술로도 되지 않자 입양을 결심한다. 그 사이 남편은 병원장의 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긴다. 남편은 이혼도 하기 전에 병원장 집안과 상견례를 한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입양한 아이 여름이를 아무도 모르게 보육원에 데려다 준다. 그 사이 병원장 딸은 아이를 유산하고 이를 숨긴 채 결혼을 강행한다  

   

#2. 딸 셋 중 둘째로 자란 주인공은 이 악물고 노력한 끝에 고학력, 고스펙으로 뭐하나 빠질 것 없이 승승장구하는 알파걸이다. 회사 내에게도 인정받는 능력자인데 신입사원과 사랑에 빠진다. 신입인 줄 알았던 남자 주인공은 알고 보니 대기업 총수의 막내 아들, 그를 자식처럼 키운 회사의 대표는 알고 보니 여자 주인공의 친어머니다. 여자 주인공은 이 사실을 숨기고 남자와 결혼한다. 그를 친 딸처럼 키운 어머니는 가부장적인 남편과 독사 같은 시어머니와 가난의 3종 세트를 갖춘 전형적인 한국 엄마인데 지금은 큰 딸의 육아 도우미 겸 가사도우미까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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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이야기는 KBS1에서 방영되는 일일연속극 <여름아 부탁해>, 두 번째 이야기는 KBS2에서 방영되는 주말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이하 세젤예)>이다. <여름아 부탁해>는 현재 19.4%, <세젤예>30.4%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한 자릿 수 시청률을 기록하는 드라마도 숱한 요즘 안정적으로 20~30%를 기록하는 드라마가 있다는 건 방송사에게도 든든한 카드일 것이다.  

 

공영방송의 일일드라마와 주말드라마를 보는 '불편함'        

하지만 드라마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드라마가 과연 공영방송에서 가족 모두가 시청할 시간대에 방영되는 가족 드라마인가 근본적인 물음이 든다<여름아 부탁해>의 여름이는 앞서 말했듯 입양한 아이의 이름이다. 이 아이는 유치원에서 너는 너희 부모님의 진짜 아들이 아니니까 우리 엄마가 놀지 말랬어라는 놀림을 당하고, 그의 외할머니는 딸을 위해 어쩔 수 없다며 아이를 보육원에 데려다 준다.

여름이는 이미 파양의 아픔을 겪은 아이다 방송사 홈페이지를 보면 프로그램 정보는 이 드라마를 입양으로 엮이는 가족들의 모습을 따뜻하고 유쾌하게 담아낸 힐링 가족드라마라고 하는데, 어디가 따뜻하고 유쾌한지 알 수 없다. 난임부부의 아픔에 조심스레 접근하는 섬세함이나 입양을 대하는 신중함은 기대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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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1 <여름아 부탁해> 중

 

여름이는 입양아라는 이유로 유치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학부모들은 공공연히 아이를 따돌리게 부추긴다. 입양을 부주의하게 다루는 대신, 불륜에 대한 묘사는 적극적인데다 상세하다. 여기에 이 불륜을 가장 먼저 알아채고 이를 이용해 한 몫 챙기려는 남편의 친모의 존재, 주인공과 그의 남편의 관계를 이간질하려는 불륜녀의 술수가 이야기의 한 축을 이룬다      

<세젤예>도 매회 고구마를 유발하기는 마찬가지다. 낳아준 엄마와 키워준 엄마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도 모자라, 대기업 총수의 숨겨진 젊은 부인까지 등장하면서 드라마는 점점 산으로 가고 있다. 더구나 이 젊은 부인은 주인공의 친엄마에게 숨겨진 딸이 있다는 약점을 잡고 자신의 오빠와 함께 주인공과 주인공의 친모에게 매회 패악을 부린다. 이들의 친정 식구들은 하나같이 무능하거나 부패하거나 불량하다홈페이지의 프로그램 정보는 이렇다. ‘전쟁 같은 하루 속에 애증의 관계가 돼버린 네 모녀를 통해 모든 엄마와 딸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드라마’.

 

건전하게 만들면 지루하거나 경쟁력이 없다?   

물론 아침드라마나 일일드라마, 주말드라마 중에는 이보다 더 한 내용도 많았고, 현재도 그렇다. 사람이 죽거나, 죽었다가 살아나는 일도 쉽게 일어난다. 복수를 위해 점 하나 찍는 일이나 김치로 뺨을 때리는 장면 등은 지금도 회자된다얼마 전 열린 MBC 새 아침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는 담당 PD아침에 숟가락을 던질 만큼의 극성과 김치 싸대기, 주스폭포 등을 능가할 오물 신이 있다. 비료를 밟는 장면 등도 매회 나올 거다. 절대로 놓치지 말고 매회 보시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시청률이 절대반지가 된 시대의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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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럼에도, ‘공영방송은 다르다. 적어도 시청자의 수신료로 방영되는 프로그램은 시청률이라는 절대권력 앞에서도 바람직하고 건전한 콘텐츠를 만들 방패막이 있다.  위의 드라마들이 방영되는 시간대에 실시간 댓글을 보면 아이와 함께 보다가 화들짝 놀랐다”, “주말 가족 드라마로 보기에는 민망하다등의 의견이 있다. 적어도 초저녁, 공영방송을 틀었을 때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장면들로 점철되는 이야기가 쉼없이 이어지는 건 그 자체로 한편의 부조리극 같다

건전하게 만들면 지루하거나 경쟁력이 없는가. 95년 방영된 김수현 작가의 <목욕탕집 남자들>, 2008년 방영된 <엄마가 뿔났다>2012년 방영된 소현경 작가의 <내 딸 서영이>는 모두 시청률과 작품성에서 모두 호평받은 ‘KBS 주말드라마. 현재도 왕성한 활동 중인 김운경 작가는 <서울 뚝배기>를 문영남 작가는 <바람은 불어도><정 때문에>를 쓰며 KBS 일일드라마 명작시대를 열기도 했다. 당시는 9시 뉴스 전 드라마를 보는 일이, 하루의 고단함을 푸는 시간이기도 했다        

KBS의 드라마는 지금 정체성을 잃은 듯 보인다. 그럼에도 평일에는 KBS1에 주말에는 KBS2에 채널을 고정해둔 충성도 높은 시청자들 덕분에 일일에도, 주말에도 안정적인 시청률이 나온다. 그런 시기는 계속될까이미 tvN, OCN 등의 신생채널은 장르 드라마의 명가로 자리잡았고 스타 작가와 톱배우는 지상파가 아닌 전문채널에서 자신의 신작을 선보인다. 공중파 드라마의 입지는 점점 더 좁아질 것이다. 지금처럼 정체성에 대한 고민 없이 말초적인 자극 안에 안주한다면 더욱 그렇다.

 

<단 하나의 사랑>과 <퍼퓸>이 보여준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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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와 '막장' 없이도 잘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KBS 미니시리즈

 

지난 7월 초, KBS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5월부터 사내 경영악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활동한 TF팀은 향후 5년간 추정 손익을 계산한 결과 사업손실이 매년 100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콘텐츠와 관련된 사업 조정 부분을 살펴보면, 드라마 부문에서는 월화 드라마 편성 시간을 70분에서 50분으로 줄이고, 지상파 유일한 단막극이었던 드라마 스페셜’은 존폐 여부를 논의하게 됐다

단막극을 없애고 방영시간을 줄이면 제작비는 분명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콘텐츠는? 현재 방영되는 월화 미니시리즈 <퍼퓸>과 얼마 전 종영한 수목 미니시리즈 <단 하나의 사랑>은 오히려 수백억을 쏟아 부은 타채널의 대작보다 의외의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고, 톱배우와 톱PD를 앞세워 같은 요일 방영된 타사 드라마 시청률을 앞서기도 했다.

이 두 드라마에 그 흔한 막장요소나 고구마는 없었다. 참신한 기획과 유연한 아이디어가 있었을 뿐이다. 더구나 단막극은 신인 작가가 자신의 기량을 펼치고 신인 배우가 자신의 능력을 보일 수 있는 유일한 등용문이다. 그 문을 닫는 게 장기적으로 KBS 콘텐츠의 경쟁력에 도움이 될까. ‘믿고 본다는 데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KBS믿고 보는이들이 공영방송의 무엇을 믿고 있는지 기억해주기를, 이들의 뼈를 깎는 노력이 부디 좋은 결실을 맺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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