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부 배려석, 그 냉정과 온정 사이

강요할 수 없어서 더욱 애틋한 배려

유슬기 기자 |  2019.07.04

배려란 단어는 짝 배()’생각할 려()’를 쓴다. 내 짝이란 마음으로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이다. 때문에 배려는 자발적으로 우러나오는 마음을 기반으로 한다. 일단 내 짝’, ‘내 사람이라는 애틋하고 소중한 마음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제서야 스르르 풀려 나오는 게 배려다.

 

주체적으로 살던 삶이 별안간 끝나고

임신부들이 처음 겪는 난처함은 신체의 변화와 호르몬의 급습 때문에 일어난다. 그러나 이는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한 바 있다. 하나의 몸 안에 두 개의 심장이 뛰는 경험은 하나의 세계가 바뀌는 '트랜스포밍'이기도 하다. 임신부 뿐 아니라 그를 둘러싼 세계도 바뀐다. 성인 여성은 임신부가 되면서 자신의 힘으로 언제든, 어디든, 무언가를 해낼 수 있었던 주체적인 존재에서 보호와 배려가 필요한, 타인의 자발성에 기대야 하는 의존적 존재가 된다. 이는 예상의 범위 바깥에 있었기에 퍽 난처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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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초기에 임신부의 몸은 유산에 취약하다. 외부의 작은 자극과 충격에도 몸 안의 작은 생명의 불빛은 사그라질 수 있다. 때문에 병원에서는 절대 안정무조건 조심을 당부한다. 하지만 조심은 혼자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골목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오토바이와 자동차, 육중한 자재들이 운반되는 도로 위 공사장, 횡단보도와 정류장에서 급히 지나는 사람들에게 치이는 일이나 갑작스러운 경적과 소음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일도 인력으로는 막을 수 없는 일들이다.

다행히 요즘 사회의 분위기는 많이 개선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존재하지만 사용되지 않던 제도들이 지금은 당연하게 쓰이는 것도 달라진 분위기다.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뿐 아니라 임신부 단축 근로제도 그렇다. 아직 전부는 아니지만, 점점 더 눈치 보이지 않는 분위기에서 배려받는 추세다. 함께 근무하는 동료들은 임신부를 처럼 생각해준다. 내가 받지 못한 배려라도, 현재 임신부에게 배려해주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제도와 함께 이런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는 게 희망적인 사인이다.

 

불특정 다수와 만나야 하는 바깥 세상의 통로, 지하철

문제는 불특정 다수와 만나야 하는 바깥 세상이다. 영화 <기생충>은 한국 사회의 구성원을 지하철 타는 사람들지하철 탈 일 없는 사람들로 나누기도 했는데 전자에 속한 이들 중에는 물론 임신부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에게 임신부 배려석의 존재는 뭐랄까, 조심스럽다. 임신 전에 본 배려석은 타인을 위한 좌석이었다. 지금의 배려석은 나를 위한 공간이다. 그럼에도 섣불리 다가가기 힘들다. 누군가가 앉아있으면, ‘비켜달라는 무언의 압박이 될까봐 그렇고, 빈 좌석에 앉아있으면 내가 임신부임을 증명해야 할 것 같아그렇다. 그 옛날 이상우의 노래처럼 다가서면 멀어지고, 떠나기엔 가까운핑크 좌석은 여전히 곱기만 하다.

'임산부 배려석'은 보건복지부가 서울시 등 지자체와 협의하여 2013년부터 서울 지하철에 노약자석과는 별도로 지정해 임산부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정책이다. 기존에 임산부들은 지하철 객실에 빈 좌석이 없으면 노약자석을 이용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노인의 비중이 늘어나 노약자석에 앉기 힘들게 되었고, 유산 위험성이 가장 높지만 배부른 티가 안 나는 초기 임신부는 노약자석에 앉을 수도 없기에 사회적 배려 차원에서 생긴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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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 중에 피곤하지 않은 사람은 없고, 빈자리가 아쉽지 않은 사람은 없다. 내가 타는 그 지하철 안에서 임신부를 만날 확률은 낮아진 출산율만큼이나 낮다. 그러니 핑크 좌석은 그저 수많은 좌석 중 하나로 쓰일 때가 있다. 아직 나타나지 않은 임신부를 위해 비워두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으니, 나타나면 비워주겠다는 마음으로 잠시 엉덩이를 붙인 이들을 악의적이라 비난할 수도 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 낮은 확률로 임신부가 지하철에 탔을 때다. 대부분의 임신부는 본능적으로 사람이 붐비는 곳보다는 조금이라도 공간이 남아있는 쪽으로 몸을 향한다. 혹시나 배에 압박이 올까봐서다. 한산한 시간대가 아니고서야 사람들을 비집고 나아가 (더구나 사람이 앉아있는) 핑크 좌석에 가기까지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니 대부분은 포기하게 된다. 이것이 효율적이지 않더라도 좌석이 비어있어야 하는 이유.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난 직장인과 연로한 어르신들, 밤새워 공부한 후 지하철에 오른 학생들 중 임신부가 단연 가장 피곤한 처지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는 약속이다.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가 아니더라도, ‘오늘 모든 자극과 변화에 조심해야만 하는한 존재를 배려하자고 만든 자리다. 배려에 필요한 건, 효율성보다는 자발성이다.

 

더 적어질, 미래의 임신부들에게  

그러나 사람이 겪어보지 않은 일에 자발적인 배려심이 솟아나기는 어렵다. 지난 65호선에서는 한 남자가 임신한 것을 증명해보라며 임신부 배려석에 탄 임신부를 폭행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7월 춘천에서 열린 한 전시에서는 임신부 배려석이 있다면, 임신시킨 남자를 위한 좌석도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그림이 전시되기도 했다. 도무지 왜 배려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이들에게 배려를 제안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임신한 이들의 상황을 자기 일처럼 여기는 이들은 핑크 좌석이 아니더라도 기꺼이 자기 자리를 내어준다. 이들의 선의를 대가없이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임신부가 받는 선물이다. 이렇게 보호에 기대야 하는 약자가 되어서야, 역시 다른 약자들을 헤아려보게 된다. 휠체어를 탄 이들과, 유모차를 끄는 이들이 더 이상 하나의 풍경으로 보이지 않는다.

임신부 배려석에 인형을 놓아 앉지 못하게 하자는 아이디어도 있고, 임신부가 도착하면 저절로 핑크 라이트가 켜지는 시스템을 운영하는 지자체도 있다. 여전히 임신부 배려석은 하나의 구호가 되어 혹은 논란을 싣고 달리고 있다. 제도보다 중요한 게 분위기다. 출산율이 떨어진다는 건, 임신을 직접/ 간접적으로 경험한 이들이 더 적어진다는 뜻이다. 이보다 더 적어질 미래의 임신부들은, 그들을 짝처럼 생각하는' 그 애틋하고 소중한 마음을 품은 이들이 더 적어지지 않을까. 괜한 걱정을 하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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