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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이 서울대 동문, 이적 엄마 박혜란의 육아법

잘 키우겠다고 너무 오버하지 말자

유슬기 기자 |  2021.10.28

스스로는 파트타임 주부, 명랑할머니 라고 소개하지만 사회에서는 이적 엄마로 유명한 여성학자 박혜란, 그가 수확의 계절특집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했다. 그가 1996년 펴낸 육아서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25년간 45만 독자가 읽었다. 그는 아들 셋을 공짜로 서울대에 보냈는데그 이야기를 써서 돈을 많이 벌었다며 웃었다. 그는 사실 아이들이 크기 전 까지는 위험 천만한 엄마라고 불렸다. 아이들에게 사교육도 시키지 않고, 공부하라고 잔소리도 하지 않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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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아들은 "저라도 서울대 안 갈까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tvN

나는 아이들을 키울 생각을 하지 않고 아이들이 저 혼자 무럭무럭 커가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는데 다시 말해 엄마로서 근무 태만의 죄를 범했다는 데 일종의 죄책감을 갖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보통 어려운일이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하는 대신 공부했다. 그는 <동아일보> 기자 출신의 경력단절 여성이었는데 셋째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40대에 늦깎이 공부를 시작했다.

 아이는 믿는 만큼 스스로 자란다 

어느 날 자정 넘어서까지 거실에 앉아서 공부를 하다가 너무 속이 상해서 혼자 밥상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 ‘어쩌면 이렇게 돌대가리일 수가 있을까. 어쩌면 이렇게하고 자탄하면서. 그렇게 한참을 엎드려 울고 있는데 조그만 몸이 내 등 뒤에 실려 왔다. 둘째였다. 오줌이 마려워 깼다가 엄마의 그런 모습을 보고 놀랐나 보다.

엄마는 우리한테는 꼭 1등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해 놓고 엄마는 지금 욕심대로 안 되니까 속이 상한 거지? 엄마, 1등 안 해도 돼. 그냥 열심히 하면 되는 거야.” -믿는만큼 자라는 아이들 中

언제부터 싹수가 보였나요?

사람들은 묻는다. 가수 이적이 도대체 몇 살 때부터 싹수를 보였는지. 좀 더 적극적인 사람들은 음악에 대한 기초교육은 어디서 어떻게 시켰는지 궁금해 한다. 엄마의 솔직한 답은 모르겠다이다. 이 책을 쓰기 위해 기억을 되살려보니 세 아들 중 둘째였던 이적은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흥이 많은 아이였다. 세 살 때 당시 아이들에게 인기였던 [마루치 아라치]라는 만화영화를 보러 갔는데 노래가 나올 때마다 벌떡 일어나 목청껏 따라 부르는 것이었다. 주위 관객들이 웃어도 아랑곳하지 않아 옆에 앉은 형은 동생이 창피해 죽고 싶은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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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들 이적

동네 아이들이 집에 모여 함께 놀면 엄마들이 노래를 시키곤 했는데, 이적은 언제나 대기상태였다. 시키기만 하면 쏜살같이 나가서 입을 짝짝 벌리며 온 힘을 다해 노래했고 엄마들은 그 모습에 환호했다. 이미 그때 가수의 씨가 자라고 있었던 거라고 엄마는 뒤늦게 회고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돼 거실 바닥에 엎드려 커다란 모조지에 피아노 건반을 그리고 입으로 딴따따 따소리를 내며 베토벤의 [운명]을 연주하는 시늉을 내는 걸 보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식한 엄마가 음악신동을 방치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 집에 돈이 없는 걸 알고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말도 못 꺼낸 아이를 그 길로 동네 피아노 학원에 보내고, 중학교 2학년 때는 기타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 역시 동네상가의 학원에 몇 달 보낸 게 음악 기초교육의 전부였다.

창의적인 부모는 창의적인 환경을 만든다

아이들이 자랄 때 그는 TV 시청을 제한하거나 만화책이라고 못 보게 하는 일이 없었다. 오히려 만화잡지를 구독하게 해 줄 정도였다. 저자 자신이 어릴 때부터 여러 만화를 섭렵하며 자랐고, TV 시청을 좋아해서 TV가 바보상자라거나 아이들의 정서에 해를 끼친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시간을 제한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하루 종일 TV만 보게 되어 공부에 방해가 될 거라는 말에도, 아이들 스스로 조절하게 된다고 믿으며 귀 기울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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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격식에 매이지 않는 부모에게서 아이들은 불필요한 참견은 물론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듣지 않으며 자랐다. 공부는 스스로 하는 거라는 저자 자신의 경험에 근거한 신념대로 아이들을 키웠을 뿐인데, 부모가 어떻게 키웠느냐고 묻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적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부모님은 절 아주 자유로운 영혼으로 키우셨어요라고.

아이들은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어서 어떤 아이는 그 싹을 조금 빨리, 또 다른 아이는 조금 늦게 틔울 뿐 부모가 강요하고 재촉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창의적인 아이로 키우기 위해 부모가 할 일은 자유로운 환경을 만들어 아이가 자신의 적성을 찾도록 도와주는 일이며, 절대 하지 않아야 할 일은 외부의 기준에 맞춰 아이를 재단하고 비교해서 상처주지 않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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