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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의사생활2>의 판타지가 불편한 이유

슬의생의 99즈를 위해 산화하는 빌런들

유슬기 기자 |  2021.07.02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는 매번 새로운 기록을 쓴다. 71일 방송은 시청률 10.6%, 순간 최고 12.9%를 기록하며 지상파 포함 전 채널에서 동시간대 1위에 올랐다. 마라맛 드라마가 창궐하는 이 험한 업계에서 자극도, 치정도, 복수도, 사람이 죽었다 살아나는 일도 없이 오직 20년 지기 친구들의 우정과 의술로 승부해 슬기로운 결과를 냈다. <슬의생>은 제작진은 물론, 배우들, 시청자들도 슬의생을 아낀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만드는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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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런총량의 법칙에 예외인 99즈의 활약 

하지만 모든 조직과 시스템에는 빌런 총량의 법칙이 있다. 드라마가 5명의 99학번 의사이자 교수 이익준(조정석), 안정원(유연석), 김준완(정경호), 양석형(김대명), 채송화(전미도)에게 소명의식을 바탕으로 프로다운 매력을 선보이며 선한 에너지를 몰아주는 동안 세계를 지탱하는 반대편의 에너지 즉, 불친절과 무례 이기심과 비호감의 역할은 다른 역할들이 전담한다. 때로 이 빌런들은 99즈의 선량함을 극대화하기 위한 도구로 산화된다. <슬의생2>의 판타지가 불편해지는 지점이다.

시즌 1부터 등장해 김준완(정경호)과 대비되는 교수로 온갖 악행을 일삼고 있는 천명태 교수가 대표적이다. 드라마는 그를 흉부외과의 막말제조기’, ‘잘 뛰던 심장도 얼어붙게 하는 공포의 3분 진료’, ‘인터넷에선 기피의사로 유명하다고 소개한다. 시즌 1에서 그는 환자를 불친절하게 대하다가 환자의 지인을 맞선 자리에서 만나 대차게 차이는 인과응보식 수모를 겪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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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회에서도 천명태 교수는 응급실에 실려온 국회의원의 처치를 맡겠다고 호들갑을 떨다가 기본적인 처치마저 하지 못해 , 이게 왜이러지?” “이상하다, 이게 왜이래?”라는 말을 남발하며 환자에게 극심한 공포와 불안, 통증을 선사한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수술이라도 남다른 책임감과 명철함으로 성공하는 99즈에게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산모도 같고 전공의도 같고 교수님만 바뀌었는데 차팅이 몇시간만에 완전히 바뀌었어요

2회 산부인과 전공의 추민하(안은진)의 대사다. 1회부터 산부인과에는 19주차에 들어섰으나 아기가 위험한 산모가 등장했다. 처음 맡은 주치의는 아기와 산모의 위험을 고려해 아기를 포기하시라 권한다. 시험관으로 아이를 어렵게 만난 산모는 눈물을 흘리다 블로그를 통해 양석형(김대명) 교수를 알게 되고, 주치의를 바꾸어 달라고 요청한다. 석형은 아기를 포기하지 않기로 하고 산모와 함께 23주를 버틴다. 결국 아이를 구하지는 못했지만 산모는 석형에게 고마움의 편지를 남기고 퇴원한다.

환자가 병원에서 양석형(김대명) 교수, 김준완(정경호) 교수 같은 실력과 인품을 갖춘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건 당연지사다. 생사를 오가는 절박함 속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흉부외과에서 천명태 교수를 만난다면? 산부인과에서 양석형 교수를 만나지 못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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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삶을 끝내는 인생의 축소판이라 불리는 병원에서 평범한 듯 특별한 하루를 살아가는 20년지기 친구들의 케미스토리를 담는다고 했다. 초대형 메디컬 블록버스터 대신, 특별한 이들의 평범한 매일을 담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 친구들의 케미를 위해 다른 인물들은 속절없이 소비된다.

99즈에게 좋은 것을 몰빵하면 일어나는 일 

사실 슬의생의 99즈는 평범한 의사라기에는 저마다 비범함이 더 눈에 띈다. 조정석의 이익준은 항상 클럽에 다니며 놀고 싶은 건 다 놀고도 의대에서도 수석을 도맡아 하던 사기캐릭터인데 의사이자 교수가 된 이후에도 온갖 어려운 수술은 다 성공하면서도 환자와 병원 내 소식은 모르는 게 없고 그 와중에 모두와 친하게 지내며 노래도 잘 부르고 기타도 잘 친다. 3회에서는 익준을 이기고 싶어서 스스로 클럽 티켓을 끊어 익준에게 건넨 의대 동기이야기도 나오는데, 이 이야기는 익준이 너무 스트레스를 잘 풀어서 또 수석을 했다는 믿기 힘든 이야기로 끝난다.

병원의 실소유주이자 재벌의 아들인 유연석은 어떤가. 그는 어린 환자들과 보호자들에게는 헬렌켈러이자 테레사 같은 존재다. 실제로 자신의 사비를 털어 키다리 아저씨를 운영해 온 보석같은 존재다. 부모의 유산에는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고, 병원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젠틀하기로 유명하다. 심지어 그의 엄마(김해숙)의 친구이자 병원 이사장(김갑수)의 자식들은 화면에 한 번 등장하지 않고도 부모의 유산을 탐내며, 부모의 안부에는 관심도 없는 인물로 이들의 속을 뒤집어 놓는다. 이는 곧 김갑수의 세상에 정원이 같은 아들없다는 대사로 정점을 찍는다.

메디컬 블록버스터는 아니어도, 어벤저스는 맞다 

서울과 강원도를 오가며 수술과 외래도 완벽하게 해내며, 후배 의사들에게는 존경을 보호자들에게는 러브콜을 받는 강철체력과 강철멘탈의 채송화(전미도)까지 보고 나면 이들의 이야기는 자극없이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를 담겠다는 제작진의 호언과는 달리 어벤저스 못지 않은 비현실적인 히어로즈의 이야기가 된다. 익준과 준완이 초딩처럼 싸우는 모습이나, 정원이 쪼잔하게 별걸 다 기억하는 모습, 석형의 마마보이같은 모습은 이들의 매력을 더욱 부각하는 반전의 양념이다. 이들에 대한 최종평판은 이 병원에 꼰대 아닌 사람은 채송화와 친구들 밖에 없어요라는 수련의의 말로 정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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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슬의생의 조물주인 작가는 꼰대도 아니고, 인성도 좋은데, 실력도 좋고, 환자들도, 후배들도 모두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들 미도와 파라솔을 창조하고 이들에게 좋다는 건 다 들어부었다. 그리고 그 대척점에 빌런들을 배치해 소비한다. 어떤 면에서는 막장보다 더 위험한 판타지다. 악역의 얼굴을 하고 악행을 저지르는 저 마라맛 악당들과는 달리, 평범한 일상 인물들이 빌런으로 산화돼서다. 이런 구도는 내 앞의 평범한 이들을 의심하게 만들고 비범한 ‘99를 선망하게 만든다. 더구나 찰떡처럼 캐릭터를 소화하는 배우들을 캐스팅한 덕에 이런 위험은 흰백의 가운으로 다 덮어진다. 

롱디커플 익순마저 빌런화되는가 

심지어 지난 회는 익준 못지 않은 개그감과 특전사 다운 인싸력을 뽐내던 익준의 동생이자 준완의 여자친구인 익순(곽선영)이 런던에서 남사친과 여행을 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에피소드로 마무리 됐다. 익순이 늘 가장 친한, 한 건물에 사는 절친이라 다른 커플과 함께 여행한다던 세경은 준완과 보는 이들의 예상과는 달리 남자였다. 준완은 이를 쿨하고 젠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화를 낼 틈도 없이 익순의 안위에 안절부절 못하는 준완이 다음화 예고에 등장했다. 준완의 통큰 면모를 위해 익순마저 빌런으로 소비되는가. 안절부절한 마음으로 다음화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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