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절대 안 꿀려 So~ 제시

글 : 선수현 기자  / 사진제공 : P NATION 

참 오래 걸렸다. 예능을 통해 ‘쎈언니’로 대중에게 기억된 제시. 정작 그의 음악은 큰 반향이 없었다.
그런 제시가 드디어 일을 냈다. 최근 발매한 ‘눈누난나’가 음원차트에서 10주 이상 상위권에 자리하고 있는 것.
이효리를 시작으로 티파니, 박재범, 유재석, 비, 에릭남 등이 참여한 ‘눈누난나’챌린지는 연일 화제를 모았다.
데뷔 15년 만에 이룬 결실이다. 제시는 결국 음악으로 자신의 존재를 입증했다.
가수 제시의 매력은 허스키하고 힘 있는 목소리다. 그의 음색과 그루브는 억지로 흉내 낼 수 없는 강한 힘이 있다. 미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제시의 음악선생님은 그 잠재력을 일찍이 알아챘다. 흑인 선생님은 제시의 노래를 듣고 “얼굴 안 보고 목소리만 들으면 흑인 목소리를 듣는 것 같아. 네 목소리에서 흑인의 소울이 느껴져”라고 말했다. 흑인 선생님이 동양 소녀에게서 흑인의 소울을 엿봤다니. 평범한 아이의 가슴에 무언가 꿈틀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소녀는 가수가 되기 위해 홀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 이름 호현주와 미국 이름 제시카를 더해 ‘제시카 H.O.’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나이 열여섯이었다. 여기에 힙합그룹 업타운 객원 보컬로 발탁돼 윤미래 자리에서 특유의 소울을 뿜어내며 힙합, R&B를 소화했다. 하지만 현실은 혹독했다. 업타운 활동에 제약이 걸렸고, 솔로 활동도 반응이 없었다. 한국 문화는 낯설기만 했고 어린 제시카 H.O.를 속이고 이용하는 어른도 있었다.

그는 결국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음악을 포기할 순 없었다. 또다시 한국을 찾아 신곡 ‘인생은 즐거워’를 발표했지만, 정작 그의 인생은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포기할 만하면 간절해지고, 간절함에 다시 도전하면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렇게 한국과 미국을 무려 여섯 번이나 오가며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삼켰다.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응석받이 막내딸은 세상의 가시밭길을 걸으며 강해지기 위해 자신을 다잡았다. 음악에 대한 갈증은 더 커져갔다.

활동명을 제시로 바꾸고 심기일전한 사이, 판도를 바꿀 프로그램이 그를 찾았다. 여성 래퍼들이 대결을 펼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언프리티 랩스타〉였다. 언더그라운드 참가자가 주를 이룬 가운데, 이미 여러 장의 음반을 낸 제시는 참여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에겐 기회가 필요했다. 정말 마지막이란 각오를 가슴에 새겼다.

“누구랑 비교해요? 경연보다 음악으로 나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대신 ‘깽판을 칠 거다’ 하고 마인드 세팅을 하고 나가기로 했죠. 거짓 표정을 짓고 싶지 않았어요. 어차피 마지막 촬영인데.”


니가 뭔데 나를 판단해?

그의 생각처럼 실력 차이는 확연했다. 거침없는 성격도 연일 화제에 올랐다. 특히 걸그룹 멤버와 갈등을 일으킨 사건은 충분한 상황 설명 없이 방송되며 자기중심적이란 비난이 쏟아졌다. 제시는 음악 외적인 평가는 거부했다. 이 과정을 “니가 뭔데 나를 판단해”란 말에 담았을 뿐이다. 이후 다른 프로그램에서 해명 기회가 몇 차례 주어졌지만 그는 “하고 싶은 말 한 거다. 별도의 역할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리얼이었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정작 제시 자신은 달리 변명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오랜 시간 친하게 지내온 소녀시대 티파니가 방송을 통해 그의 입장을 대변했다. “제시가 다 내려놨고 음악으로 승부하고 싶다고 했어요. 일부에서는 오해를 하는데 제시는 데뷔 10년 차였고 언더그라운드 친구들과 경쟁하는 것도 민망하고 웃긴 상황이잖아요”라고.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요즘, 당시 티파니의 설명처럼 제시의 모습이 재평가받고 있다. 함께 출연했던 걸그룹 멤버의 행동이 논란을 일으키며 제시가 상대적으로 다시 보이게 된 것. 제시는 처음부터 솔직했고 변하지 않았다. 받아들이기에 따라 거침없는 성격이 불편할 수 있지만 적어도 보이는 모습이 전부인, 앞뒤가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그 안의 진심을 알아본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빛을 발하지 못했을 뿐, 제시의 실력은 이미 탁월했다. 랩과 노래 실력 모두 손색없었다. 데뷔 전 직접 만든 데모 테이프를 듣고 다수의 기획사가 러브콜을 보내왔다. 음악 작업에서 까다롭기로 명성이 자자한 박진영조차 ‘언니쓰’를 프로듀싱할 당시 “댓 워즈 퍼펙트(완벽해)” “너 노래 진짜 잘한다” “목소리가 메리 제이 블라이즈 같아” 등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바쁜 스케줄로 연습을 충분히 하지 않은 제시에게 화가 났던 박진영은 제시의 가창력에 바로 누그러졌다.

제시는 〈언니들의 슬램덩크〉 〈진짜 사나이〉에 잇달아 출연하며 자신을 알려갔다. 최근에는 후배들의 예능 잠재력을 끌어내기로 유명한 유재석의 ‘픽’을 받고 있기도 하다. 예능 〈식스센스〉에서 제시가 개그의 선을 넘나드는 동안 유재석이 이를 조율하고, 〈놀면 뭐하니?〉에서는 유재석이 제작자로 참여한 가운데 엄정화, 이효리, 화사와 함께 ‘환불원정대’로 활동하고 있다. 영수증 없이도 분위기에 압도당해 당장이라도 환불해줄 것 같은 이들 조합에서 제시는 전혀 뒤지지 않는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최근에는 SBS 유튜브 플랫폼 모비딕에서 〈제시의 쇼!터뷰〉 진행을 맡으며 전에 없던 스타일의 인터뷰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어 실력은 부족해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유쾌한 매력으로 상대를 즐겁게 한다.

“언젠가 MC 되는 게 꿈이에요. 게스트를 편안하게 만들고 싶어요. 원래 성격이 나오게. 게스트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걸 원해요. 여기서는 막말하고 하고 싶은 말 다 해도 돼요. 솔직하고 재밌을 거예요.”


불편한 사람들 맞출 생각 없어


가수 싸이는 기획사 피네이션(P NATION)을 설립하며 “꿈을 위해 땀 흘리는 열정적인 선수들의 놀이터”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 1호 선수가 바로 제시다. 제시가 그저 쎈언니들 중 한 명이었다면 1호 선수로 선택받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현실과 부딪치며 정면 승부한 시간이 결국 제시의 진가를 세상에 알리게 했다. 제시는 세상에 수군거림이 떠다녀도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지난해 9월 발표한 ‘Who Dat B’에서 제시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평소 그를 두고 “쟤 뭐야?”란 이야기에 대한 대답을 담은 곡이다.

“쥐어짜지 않아도 알 사람들은 알아 they already know/ Gossip gossip 마치 사실 마치 전부인 양 다들 떠들어/ 불편한 사람들 맞출 생각 없어 그냥 되게 버릇없는 女…/ 세상 어디를 가든 동양 여자로서 나는 절대 안 꿀려/ 하지 말라고 할수록 나는 더 하고 싶어져 even more”

제시는 오늘도 땀 흘리며 정말 열정적으로 ‘눈누난나’ 놀고 있다. 누구보다 스스로를 믿기에 당당하다. 이게 진짜 제시다.
  • 202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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