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서울에 내 방 하나》 펴낸 권성민 PD

절대 가볍지 않은 자립(自立)의 무게

글·사진 : 서경리 기자

“진짜 자립은 내 의지로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누군가와 함께하기로 결정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저 몸이 편한 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자리를 내어줄 수 있을 만큼 온전히 자기 다리로 서 있는 것.
그렇게 잘 디디고 서 있어야 다른 이의 손까지 부드럽게 잡을 수 있다.”
- 《서울에 내 방 하나》 중
어른이 되는 기준은 무엇일까. 온전히 내 힘으로 자립할 수 있으면 어른이 되는 걸까. 그렇다면 자립이란 무엇인가. 경제적 독립을 이루면 자립인가. 불완전한 시기를 보내는 청춘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본 고민이다. 전 MBC 예능 PD 권성민은 삶을 꾸려나가며 생기는 크고 작은 문제를 혼자서 해결하고 책임질 수 있을 때 ‘진짜 어른’이 된다고 말한다.

권성민 PD는 고향인 천안을 떠나 서울에 거주하며 스무 해 가까이 ‘자취하는 인간’으로 살아왔다. “겪어보니 별거 아닌” 순간들이 쌓여 현재의 삶을 그리기까지, 단단하게 꾸려온 삶의 기록을 책 《서울에 내 방 하나》에 담았다. 절대 가볍지 않은 자립의 무게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온전히 내 힘으로, 서울에서 집도 아닌 내 방 하나 갖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래서 제목만 보고도 그가 지나온 자립의 시간이 가늠된다. 책은 독립을 준비하거나 ‘온전한 자립’을 위해 분투하는 이들에게, 그 길을 먼저 지나온 형으로서 건네는 따뜻한 위로다. 동네 아는 형이 이야기하듯 다정하게 읽힌다.

권성민 PD는 잡담이라곤 할 줄 모른다. 그가 하는 거의 모든 이야기에는 기승전결이 있다. 인터뷰에서도 그랬다. 마지막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긴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대화하다 종종 그의 에세이를 오디오북으로 듣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생각이 많고, 그만큼 하고픈 이야기도 많은 사람이다.

《서울에 내 방 하나》는 2018년 가을에 집필을 시작해 올해 5월 발간됐다. 그 사이 권 PD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다. 방 한 칸짜리 자취방에서 벗어나 두 칸짜리 집으로 자립했고, 무엇보다 “혼자서도 잘 지낼 때 기꺼이, 시간을 함께 쓰고 싶은” 지금의 아내와 6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일에도 변화가 있었다. 〈가시나들〉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첫 단독 연출을 맡았다. ‘가장 시작하기 좋은 나이들’의 줄임말로, 평생 글을 모르고 살아온 할머니들이 한글을 배우는 문해학교가 소재다. 지금은 8년간의 MBC 생활을 마치고 카카오M으로 적을 옮겨 모바일 기반의 콘텐츠 시장을 개척해가고 있다.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창작자이자 ‘좋은 어른’이 되기를 바라며 콘텐츠를 만들어가고 있다.


‘자립’을 주제로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있나요?

“출판사에서 처음 제안한 주제는 ‘꼰대’였어요. 하지만 타인에 대한 비판을 함부로 하는 건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조심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꼰대와 반대로 내가 만난, 내가 생각하는 ‘좋은 어른’에 대해 쓰면 어떨지 제안했죠. 결국 할 수 있는 이야기란 내 이야기잖아요. 저도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그동안 만난 좋은 어른들을 보며 닮아가고 싶다고 생각했고요. 글을 쓰며 ‘좋은 어른은 무엇일까?’ ‘온전한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됐어요.”


성장에 대한 고민이군요. 어른의 기준은 뭘까요?

“스물세 살에 서울역에 있는 서점에서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라는 제목에 끌려 그 수필집을 읽은 기억이 나요.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혼자 모든 걸 책임지고 살았으니 ‘나도 지금 어른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는데,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알았어요. 처음으로 어른 됨을 깨달았을 때는 스물네 살, 창작물에 대해 평가를 하면서예요. 어려서부터 콘텐츠를 만들어 무대에 올리는 일들을 일상적으로 해왔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에게 ‘아직 배우는 중이라 미숙한 점이 많지만 예쁘게 봐주세요’라는 말을 꼬리표처럼 붙였어요. 문득 ‘미숙함과 어리다는 이유로 부족함을 핑계 삼을 수 있는 나이는 끝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부터는 내가 만든 무언가가 어설프고 부족하다면 내 결함이지, 용서받을 나이는 지난 것 같다’고요.”


서울에서 대학 다니며 일찍이 자립을 경험했지요. 대학 생활은 어땠나요?

“‘아싸’와 ‘인싸’ 사이에 있는 ‘그럴싸’ 정도? 하하. 저는 대학 다닐 때 비자발적인 아웃사이더였어요. 등록금을 벌어야 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학점 관리도 필요하니 하루 네다섯 시간만 자면서 학교를 다녔어요. 사람들과 어울릴 시간이 없었죠. 신방과 다른 친구들은 스타일이 화려했지만, 전 단장을 잘하지도 못할뿐더러 꾸밀 여유도 없었어요. 그저 혼자 책 보고 그림 그리고 글 쓰고 잔디에 누워 공상하고….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과에서 꽤 유명했더라고요. 혼자 80년대 대학생처럼 산다고요. 하하.”



권성민 PD는 MBC 예능국 안에서도 ‘프로 불편러’를 자처해왔다. 입사하자마자 금주 선언을 해 선배들을 놀라게 하는가 하면, 딴따라를 자처하는 예능국에서 고지식함을 유지했다. 또 노조 투쟁에는 숨지 않고 앞장섰다. 예민하고 유난스러운 그를 사람들은 ‘원래 그런 애’라 불렀다. 유별난 사람이 ‘원래 그런 애’로 받아들여지는 순간, 모든 상황은 편해진다. 그는 “일종의 인정과 수용”이라고 했다. 거기서부터 새로운 관계 조율이 시작된다고. 그는 말한다.

“가식도 10년 하면 진심이고, 위선도 결과가 좋으면 박수 받아야 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남들과는 다르다고 느꼈어요.

“사람들은 냉소하고 조롱하고 비난하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해요. 예를 들어 좋은 의도로 도입한 정책이지만 뭔가 부족해서 잘 안 되면 지적하고 개선해나가는 게 아니라 ‘그럴 줄 알았어’라고 냉소를 던지죠. 실망할까 봐 기준을 더 낮추고, 비웃고. 이런 것들이 세상을 나쁘게 만들어요. 가식이나 위선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전제가 있는 것 같아요. ‘사람은 선하지 않다’ ‘진심이 아닌 행동은 하면 안 된다’. 두 가지를 합쳐보면 ‘이게 뭐야?’ 싶죠.”


사람은 원래 착하지 않으니, 어떤 사람도 착한 일을 하면 안 된다는 논리네요.

“결국 선은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에요. 예를 들어 정치인이 돈 백만 원 들고 보육원 가서 사진 찍는 행위를 보고 사람들은 ‘쇼’라고 하지만, 누군가는 그 돈으로 따뜻한 겨울을 나요.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죠. 다른 저의를 두고 판단하고 손가락질할 필요가 없어요. 그런 생각들이 세상을 점점 힘들게 만드는 건 아닐까 싶어요.”


살면서 중요하게 가져가는 가치가 있을까요?

“하나의 가치를 강렬하게 추구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그 가치에 미치지 못하거나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는 계기가 되죠. 자연스러운 욕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탐욕스럽게 취급하고요. 프레임에 따라 세상을 바꾸려 하는 데서 인류는 비극을 맞아왔어요. 절대적으로 옳고, 평생 추구해야 할 가치를 갖는 데 조심스러운 이유예요.”


하지만 누구나 삶에서 추구하는 방향성은 있죠.

“다만 ‘이건 좀 아니지 않나?’ 하는 부분에 집중하려 해요. 가치 추구가 긍정의 방향이라면 저는 부정적인 것을 안 하는 방향으로, 부정에 부정을 하는 거죠. 영웅이 되지는 못할지언정 양아치는 되지 말자는 마음이랄까요?”


MBC 재직 시절 만든 예능 프로그램 〈가시나들〉은 문해학교 할머니들이 연예인과 한글을 배우는 내용이었죠. 예능이지만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생각했어요.

“다큐에 가까운 예능이죠. 〈가시나들〉에서 직접적으로 노인의 빈곤이나 복지, 교육에 대해 신경 쓰자고 말하진 않았어요. 다만, 문해학교라는 게 있고, 노인들의 삶도 있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우리가 피상적으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입체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만 했죠. 한국이 전 세계에서 문맹률이 가장 낮다고 하지만, 여전히 문자 문화로부터 소외된 사람들도 있으니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정도로요. 나머지는 보는 사람의 자유예요. 예능은 가르치려 들면 위험해요. 질문과 그에 대한 해결책은 보는 사람에게 달린 거죠. 그 정도의 역할만으로도 충분해요.”


2011년에 썼던 PD 합격 수기가 워낙 유명했죠.
그걸 읽고 2030세대가 취업을 상담한다고 들었어요.



“취업도 운이에요. 소위 ‘언론 고시’라 불리는 PD 채용 시험은 사법고시나 임용고시처럼 지식의 양으로 점수를 매기진 않아요. 매일 스터디 나가서 공부하고 시험 준비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죠. 만약 시험 합격을 인생 목표로 두고 달려들면, 달릴수록 불행해져요. 1000명 중에 1명이 붙는 시험에서 떨어지는 건 이상한 게 아니에요. 모든 일은 계획이라는 틀에 맞추려 할 때 문제가 생겨요. 계획은 변수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전제를 가져야 하는데, 시험에 목숨 거는 순간 그 변수를 허락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되거든요. 시험에 떨어진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요.”


봉준호 감독도 영화 〈기생충〉에서 역설적으로 말하죠. ‘가장 좋은 계획은 무계획’이라고. PD 지망생에게는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요?

“‘왜 PD가 되고 싶은가’를 고민해야 해요. PD가 돼서 콘텐츠를 만들고 그걸 통해 사람들과 교감하고 싶은 게 목적이라면 지금 당장 하면 돼요. 지금은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고 플랫폼에 올려 소통할 수 있는 시대잖아요. 나의 문법으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콘텐츠로 만들어낸다면, 누가 봐도 매력적인 경력이 돼서 취업시험 볼 때도 눈에 띄는 요소가 되겠죠.”


책을 쓰며 던졌던 질문으로 돌아가볼까요.
‘온전한 어른’이 뭘까요?


“온전한 어른은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내 기준으로 상대를 대하는 게 아니라, 나는 나, 그는 그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의 부족과 결핍 때문에 누군가를 만나면 반드시 삐걱거릴 수밖에 없어요. 상대방을 온전한 주체로 바라봐야 해요. 혼자서도 외롭지 않을 때, 너무나도 잘 지낼 때, 저 사람과 기꺼이 시간을 쓰고 싶다는 확신이 서야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어요. 배고플 때 장 보면 안 된다는 말도 있잖아요? 내가 온전해야 상대를 온전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어른’은 어떤 어른일까요?

“‘행복이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답하기 어렵지만, ‘어떨 때 행복해?’라고 물으면 할 이야기가 많죠. 똑같아요. 저도 ‘좋은 어른은 뭘까’라는 질문엔 답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다만 닮고 싶은 좋은 어른은 있어요. 평생 옳은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조심스러워요. 하지만 상황에 따라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에서 망설이지 않을 수 있는 확신을 가진 어른의 모습을 봤을 때 존경했어요. 저도 그런 어른이고 싶어요. ‘이만하면 나는 좋은 어른인 것 같아’라고 말하는 사람은 이미 좋은 어른이 아닐 수도 있어요. 결국 죽을 때까지 우리는 좋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지 않을까요.”
  • 2020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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