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라이프

7개 키워드로 읽는 언택트 라이프

‘비대면’을 뜻하는 언택트(untact)는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접촉이란 뜻의 콘택트(contact)에 부정의 의미를 지닌 접두사 언(un)을 붙인 신조어 ‘언택트’가 등장한 건 3~4년 전쯤이다. 1인 가구가 증가하고, 디지털 기술이 진화하면서 언택트 라이프는 이미 거대한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여기에 코로나19가 언택트 라이프에 트리거(trigger, 방아쇠)가 됐다. 서서히 접근해오던 언택트 라이프는 우리 선택의 여지와 상관없이 광속으로 다가와 일상의 풍경을 바꿔놓고 있다.
1. 캐시리스 금융, 현금이 사라진다

현금 없는 사회는 금융의 미래다. 지폐나 동전 없이 신용카드나 디지털 화폐로만 결제하는 세상은 언젠가 우리가 맞게 될 미래의 모습이다. 북유럽 국가는 상당 부분 현금 없는 사회에 근접해 있다. 스웨덴의 경우, 2019년 기준 은행에서 현금 수납을 하지 않는 곳이 70%가 넘고, 대형 은행인 SEB는 전국 지점 118곳 중 단 7곳에서만 현금을 취급한다.

우리나라도 현금 없는 매장이 꽤 있다. 스타벅스 한국 매장에서는 2019년 기준 1300여 개 매장 중 64%에 해당하는 860개 매장에서 현금을 취급하지 않는다. 온라인 쇼핑 비중이 30%에 달할 정도로 디지털 화폐가 일반화되는 와중에 팬데믹 쇼크는 이 움직임을 가속화했다. 특히 카카오 택시와 T맵 택시 등 택시 앱과 배달의 민족, 요기요와 같은 배달 앱의 대중화는 현금 없는 세상을 앞당기고 있다. 택시 이용자의 35%가 앱을 통해 호출하고, 이 중 35%는 등록해놓은 신용카드로 자동 결제한다. 택시를 타서 목적지를 말하지 않아도 되고, 내릴 때 지갑을 꺼낼 일도 없어 100% 언택트로 택시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2. 키오스크와 드라이브 스루의 진화

키오스크(KIOSK)는 원래 작은 매점, 자판기 등을 뜻하는 말이었으나, 점차 무인안내기 혹은 무인자판기로 개념이 변하고 있다. 주문부터 결제까지 가능한 무인결제시스템 기기라는 개념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영화관, 패스트푸드점, 빵집, 마트 등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부터 1인 창업 매장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추세다. 이외에도 독서실, 스터디카페, 서점에서도 키오스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최근엔 삼성화재가 CU편의점 내 택배 기기를 통해 펫보험을 가입할 수 있는 ‘언택트 펫보험’을 선보였다. 키오스크의 최전선은 소비자가 쇼핑 후 걸어 나오기만 하면 자동으로 결제되는 ‘아마존 고’의 ‘저스트 워크 아웃’이다. 국내에서는 현대백화점에서 올해 내로 이 기술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물건을 구입하는 드라이브 스루(Drive-Through, 이하 DT)가 새로운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카페는 물론 스타의 팬 사인회와 초등학교 입학식, 결혼식과 장례식에도 DT가 등장했다. 지난 3월 말레이시아에서는 한 커플이 자신들은 앉아 있고, 차에 탄 하객들을 맞이하는 방식으로 DT 결혼식을 올렸고, 일본에서는 렉스트 아이(Lext Ai)라는 업체에서 DT 방식의 장례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조문객은 차에 탄 채로 접수대 뒤 창문을 통해 빈소를 보며 조의를 표하고, 상주는 모니터 화면을 통해 조문자를 보는 식이다.


3. ‘안전 감수성’이라는 새로운 기준, 끼리끼리 문화 강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소비의 대전제가 ‘안전’이 되어가고 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한가를 따지는 ‘안전 감수성’이 새로운 소비 코드로 부상한 것. 최근 미국 매킨지 컨설팅 보고서는 회사에 최고안전책임자를 두라는 권유를 하기도 했다. 안전 감수성은 낯선 이와의 접촉을 멀리하고, 지인이나 믿을 만한 그룹과의 커뮤니티를 더욱 공고히 하게 만든다. 살롱문화 역시 더 유행할 것으로 보인다. 서로 수준이나 취향이 비슷하며 검증된 이들끼리의 관계에 집중하게 된다.

다중이 밀집하는 곳 대신 제한된 이들만 출입하는 곳을 선호하다 보니 vip 서비스는 수요가 더 많아졌다. 1인실 사우나나 프라이빗 룸 같은 폐쇄되고 격리된 공간을 선호하는 것이다. 실제로 코로나19 이후 백화점의 명품 브랜드의 프라이빗 서비스와 퍼스널 쇼퍼 예약률이 높아졌으며, 초호화 전용기 수요 역시 많아졌다. 휴가철에도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밀집 시설 대신, 이용자 리스트가 분명한 시설을 선호한다. 프라이빗 비치가 있는 리조트 예약률이 눈에 띄게 높아졌고, 여름철 물놀이도 가족이나 팀 단위의 예약제로 운영되는 곳이 늘고 있다.


4. 불편한 친절 대신 편안한 단절

연결이 많을수록 연결될 타인을 세심하게 가리는 것은 생존을 위한 본능이다. 초연결 시대의 역설이다. 연결에서 오는 불필요한 갈등과 감정 소모, 피로를 거부하면서 자발적 단절을 추구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과거에는 오프라인에서 낯선 사람과 직접 부딪쳐가며 문제를 해결할 상황이 많다 보니 친절이 미덕이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친절이 무기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서비스를 주고받을 때의 감정 소모에 피로감을 느끼는 이들은 타인의 친절을 부담스러워하며, 차라리 침묵 서비스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

온라인 소통을 선호하는 밀레니얼과 Z세대 중에는 대면 소통과 전화 소통을 불편해하는 이들이 꽤 있다. 전화 통화를 두려워하는 ‘콜포비아’를 겪기도 한다. ‘타다’ 택시가 내세운 ‘침묵’ 서비스와 오프라인 매장의 ‘혼자볼게요’ 바구니에서 보듯, 말 걸지 않는 것이 서비스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최근 패션브랜드 한섬에서는 옷을 구매하기 전에 집으로 배달해 입어볼 수 있는 홈피팅 서비스 ‘앳홈’을 출시했다. 최대 세 벌까지지 입어볼 수 있으며, 배송 받은 후 48시간 이내에 구매를 결정하면 된다.


5. 리모트워크, 가짜 일은 사라지고 일의 본질 추구


언제 어디서나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일을 할 수 있는 리모트워크(Remote Work, 원격 근무)가 코로나19로 급속하게 퍼지고 있다. 집이든 카페든 도서관이든, 내가 있는 곳이 곧 사무실이 된다. 미국, 네덜란드, 치앙마이 등에서는 리모트워크가 꽤 높은 비율로 정착해가고 있는데, 눈도장 문화가 중요한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리모트워크 비율이 낮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반강제 리모트워크를 하면서 이에 대한 시선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출퇴근 시간을 절약하고, 동료와의 잡담 시간을 줄이며,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안 하게 되면서 효율성이 높다는 평가가 많다. 리모트워커를 위한 근태 관리 시스템도 속속 구축되고 있다. 카카오톡으로 근태 기록 및 관리가 가능한 ‘메이크봇’, 근태 관리는 물론 메일과 전자결제까지 가능한 ‘지투웍스’, 블루투스를 기반으로 실시간 근무 현황을 조회할 수 있는 ‘콩체크’ 등이 대표적. 기업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근태관리시스템도 늘고 있다.

리모트워크가 확산되면서 《이제부터 일하는 방식이 달라집니다》의 저자 강승훈은 다섯 가지 가짜 일이 사라지고, 일의 본질에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섯 가지 가짜 일이란 △보여주기 △시간 끌기 △낭비하기(의전 등 명목으로 조직의 자원 낭비) △다리 걸기(내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내부 총질) △끌고 가기(혼자 책임지지 않기 위해 주변인을 끌어들이기) 등이다.


6. 에듀테크의 폭발적 증가, 학교와 교사의 역할 변화

감염병에 가장 취약한 장소 중 하나가 바로 학교다. 밀집 생활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학생들은 온라인 수업과 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하는 환경에 놓이게 됐다. 이로 인해 교육은 물론 ‘데이케어’의 기능을 함께 지닌 학교라는 공동체의 역할과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데, 특히 대학 교육에 대한 무용론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온라인을 통해 양질의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길이 많아진 데다, 대학 교육이 기업에 필요한 적절한 교육을 제공하지 못하면서 더욱 구석에 몰리게 됐다. 무엇보다 코딩 분야의 미스매치가 심각하다. 애플의 경우, 2018년 미국에서 고용한 직원의 절반 정도가 4년제 학위가 없었다. 국내에서는 SK가 자사에 필요한 인재를 직접 길러내기 위해 올해부터 사내 대학인 ‘SK유니버시티’를 운영한다.

교육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기회의 평등이 상당 부분 실현되고 있다. 아프리카 최빈국에서도 인터넷만 연결되면 무크(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 대규모 온라인 공개강좌)를 통해 하버드대 최고 석학의 강의를 들을 수 있고, 유튜브를 통해 각종 외국어를 재밌게 배울 수 있으며, 학위도 취득할 수 있다. 조지아공대는 무크 플랫폼인 유다시티(Udacity)를 통해, MIT 경영대학원은 에덱스(edX)를 통해 학위 취득의 길을 열어놓았다. 국내에서는 애드클래스. 클래스101, 탈잉, 유데미 등을 통해 누구나 배우고 싶은 강의를 무료 혹은 저렴한 가격으로 수강할 수 있다.


7. 투명사회와 빅브라더

연결 사회에서는 평판 관리가 중요하다. 직접 대면한 적이 없어도 몇 단계를 거치면 다 알게 되는 세상이 됐다. 언택트 라이프에서는 온라인 연결망이 더욱 촘촘해져서 누군가에 대한 평판을 알아내기 더 쉬워졌다. 가까운 사람에게서 인정받는 사람이 바깥에서도 인정받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 스펙만 요란한 허풍쟁이와 약속을 안 지키는 거짓말쟁이는 금세 탄로 나고, 영업점의 허위 과장 광고는 오히려 역풍을 맞는다. 직접 만나서 하는 접대 비즈니스, 쥐도 새도 모르게 뒤에서 이뤄지는 짬짜미는 확연히 줄어들 전망이다.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하고 돈을 어디에 썼는지, cctv와 데이터에 다 근거가 남기 때문이다. 오직 실력만으로 승부하는 투명사회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갈 것으로 보인다.

투명사회와 빅브라더는 양날의 검이다. 모든 기록이 남는 사회는 투명사회를 불러오는 한편 사생활 침해라는 부작용을 낳는다. 진화한 디지털 기술력은 인간의 안전과 생명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촘촘한 감시와 통제를 유발한다. 중국에서는 대중교통 실명제를 실시하고, 드론을 통해 탑승자와 차량의 이동을 추적해 출입을 통제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스마트 헬멧’도 등장했다. 체온을 실시간으로 감지해 37.5°C 이상 고열이 나는 사람이 있으면 경고음이 울리고, 안면인식 기술로 개인정보까지 뜬다. 마스크 쓴 사람의 신원을 99% 정확도로 읽어낸다.
  • 2020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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