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지 않는 아이들

서핑에서 인생을 배우는 18세 함은세

“나만의 파도를 넘는 중입니다”

글 : 김민희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중2 소녀는 아팠다. 이유 없는 두통에 시달렸고, 약한 부정맥에 숨 쉬기 힘들 때도 더러 있었다. 의사가 내린 진단은 우울증과 불안장애, 공황장애였다. 이후 약을 입에 달고 살았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그는 툭 하면 쓰러졌다. 한 번 두 번…. 열 번 정도 쓰러졌을 때 소녀는 ‘자퇴’를 떠올렸다.

살아야 하는 의미를 찾지 못한 채 하루하루 버텨내던 삶에 큰 변화가 찾아온 건 서퍼들의 삶을 2주간 지켜본 이후다. 사회가 정해놓은 행복이 아닌, 자신만의 가치를 좇아 행복을 추구하는 서퍼들을 보면서 눈이 번쩍 뜨였다. 정해진 대열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걸어보고 싶었다. 자퇴를 결심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교직에 있는 부모는 흔쾌히 딸의 결정을 믿고 지지해줬다.

고1 과정을 마치고 학교를 그만둔 함은세의 이야기다. 자퇴의 시간은 천천히, 그러나 농밀하게 흘렀다. 책과 여행을 좋아하는 은세는 초밥집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어 동남아로, 러시아로 짬짬이 여행을 다녔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 지금은 검정고시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해 소외 계층에게 영정사진을 찍어주는 재능 기부도 틈틈이 한다. 길고도 짧은 1년간,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가장 큰 변화는, 건강을 되찾아 약을 끊게 된 것이다.

자퇴한 지 딱 1년 된 은세와 마주 앉았다. 아직 새초롬한 꽃샘추위가 남아 있는 3월 초, 은세는 얇고 화사한 아이보리색 재킷을 입고 나타났다.

“저요? 안 추워요” “하하하! 호호호!” 무엇이 그리 웃긴지 말끝마다 웃음이 터졌다.


인터뷰 약속 잡을 때 보니 바쁘던데요. “네, 하하. 햄버거 가게 알바 면접을 봤는데, 붙었거든요. 언제부터 출근하게 될지 몰라서요. 8월에 볼 검정고시 준비도 해야 하고요. 무엇보다 수학 공부할 게 많아요.”

자퇴 후 딱 1년이 지났지요. 지난 1년의 시간을 어떻게 표현하고 싶어요? “음. 나를 사랑해주는 시간? 그게 굉장히 안 되는 사람이었어요. 매사 부정적이고, ‘죽고 싶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거든요.”

놀라운 변화군요. “이런 시간을 가져본 적 없잖아요. 시간을 새로 쓰는 기분이었어요.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지만 공동체를 중시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나 자신에게 집중할 시간이 많지 않잖아요.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하다 보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처음 알았어요.”

어떤 사람이던가요. “원래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사람인 줄 알았어요. 친구 관계도 넓으면서 얕았고, 무조건 사람들 안에 섞여 있어야 안심이 됐어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생각보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더라고요. 지나고 보니 사람들 안에서 감정 소모를 너무 많이 했어요. 타인에게 친절하고 밝게 대하려 내 안은 문드러지는 상황이 많았죠. 한편으론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저를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깨닫게 됐고요. 이런 말 하면 다들 뭐라고 하는데. 큭큭, 말해도 돼요?”

무슨 말? “삶이 너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하. 수험생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요. “저는 학교 다니는 친구들이 다 존경스러워요. 다 저보다 대단한 것 같아요. 저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탈출한 거잖아요. 각자의 길이 다르다고 생각해서 탈출한 것이지만.”

탈출에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할까요, 버티기에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할까요. “글쎄요. 상황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용기로 보자면, 탈출에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그만두면서 많이 두렵고 무섭기도 했어요. 제도권 밖에 혼자 덩그러니 던져진 거잖아요.”

부모님과 선생님 반응은 어땠어요? “부모님은 두 분 다 교직에 계세요. 아빠는 대안교육, 엄마는 공교육 쪽에 계시거든요. 두 분 다 저에겐 멘토 같은 존재입니다. 아빠는 현재의 교육을 바꾸기 위해 행동하는 분이고, 엄마는 공교육에 계시다 보니 공교육이 얼마나 바뀌기 힘든지도 잘 아셔서 저를 이해해주신 것 같아요. 고1 때 선생님도 지지해주셨어요. 안 될 게 뭐가 있냐며, 사랑으로 지지해주셨죠.”


그의 아버지는 문학비평가이자 대안대학 ‘미지행’ 설립자인 함돈균이다. ‘세상에 없던 학교’를 표방한 미지행은 ‘좋은 삶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뿌리에 두고 세워졌다. 공공성에 기반한 시민, 자신의 삶을 역동적으로 만들어가면서 동시에 이 사회를 이끌 시민을 길러내는 데 목적이 있다. 함돈균 작가는 세계적인 교육공학자 폴 김(스탠퍼드대학교 교육대학원 부원장) 교수와 함께 《교육의 미래, 티칭이 아니라 코칭이다》 《교육의 미래 컬처 엔지니어링》을 펴내기도 했다. 은세의 어머니는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재직 중이다.


학교생활은 적응을 잘했군요. “네. 운이 좋은 편이었어요. 학교도 좋아했고, 모둠 활동도 재밌었고, 선생님들도 좋으셨고, 친구들과 사이도 좋았어요.”

그런데 왜 학교를 그만뒀어요? “일단 건강 문제가 가장 컸어요.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팠어요. 내 자신을 가장 힘들게 한 건 정신적 유약함이었던 것 같아요. ‘왜 나는 이것밖에 안 되지?’ 하는. 학교에 대한 불만이라기보다 제도권에 대한 불만이 컸죠. 의미 없어 보이는 쳇바퀴 같은 삶이 너무 이상하게 느껴지는데, 아무도 이상하다고 하지 않았어요. 다들 잘 버텨내는데 나만 버텨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어요.”

은세는 그 이상함을 참지 못했나 봐요. “제 별명이 프로불편러예요. 불편한 게 있으면 참지 못하고 그 불편을 해소하려 해요. 행동으로요. 저는 제가 프로불편러인 게 자랑스러워요. 참지 않고 바꾸려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해요. 오면서 지하철에서 읽은 노암 촘스키 책에도 그런 비슷한 구절이 있었어요. 작은 행동이 당장의 변화는 일으키지 못해도, 타격을 줄 수 있다고요.”

학교를 그만둔 후의 시간은 속도가 다를 것 같아요. “네. 너무 빨리 지나가요. 학교 다닐 때는 ‘왜 이렇게 시간이 안 가지?’ ‘어떻게 버티지?’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은 시간을 붙잡고 싶어요. 나를 위해 투자하다 보니 시간 가는 게 아까워요. 좀 더 빨리 자퇴했으면 하는 후회가 들어요.”

게을러지진 않았어요? “초반에는 건강을 회복한다는 핑계로 게으르게 지냈어요. 저 스스로도 원래 게으른 사람인 줄 알았고요. 그런데 하고 싶은 걸 찾고, 스스로 정해놓은 목표를 향해 생활하다 보니 건강하고 규칙적인 리듬을 찾게 됐어요.”

패턴을 찾기까지 얼마나 걸렸나요? “두 달 정도요.”

자퇴를 후회한 적은 없었어요? “단 한 번도요.”


자퇴하면서 그렇게 불안해하고, 초반에 널브러져 지냈는데도요? “네. 정말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어요. 물론 늘 행복한 건 아니에요. 어떨 땐 너무 슬프고, 또다시 우울의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대기도 했어요. 그런데 마음이 건강해지고 나를 좀 더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되니 그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알게 된 것 같아요. 빠져나와서 ‘어? 나왔네? 그럴 수도 있지 뭐’ 하고 넘길 수 있게 됐어요.”

예전엔 왜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을까요. “되게 어려운 질문이에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그땐 왜 나를 그렇게 혐오하고, 남과 비교하면서 불행을 자초했는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잘 모를 수 있어요. 다만 그만큼 나를 많이 사랑해주면 그때의 나를 다독여줄 줄 아는 사람은 될 거라고 믿어요. 그런 시간이 저를 성장시킨 동력이기도 해요. 그런 시간이 없었다면 스스로 성장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때의 은세와 지금의 은세, 가장 달라진 건 뭘까요? “우선 외모? 하하하. 예뻐졌대요. 살이 엄청 많이 빠지고 피부가 좋아졌어요. 약을 먹으면서 피부도 안 좋고 살도 많이 쪘거든요.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 여행 다니고 내가 살고 싶은 삶을 꾸려나가면서 마음이 충족되니까 배가 고프지 않아요. 과거엔 마음이 허해서 많이 먹었는데, 지금은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요. 세상에 재밌는 게 많아서 먹을 거 생각이 별로 안 나요. 일단 공부를 해야 해요. 영어와 수학. 학교를 많이 빠져서 진도를 못 나갔거든요. 재밌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행은 또 얼마나 재밌게요. 자퇴 후 동남아, 러시아를 다녀왔어요. 현지에서 독일, 덴마크 친구도 사귀었죠.”

여행이 왜 좋아요? “이유가 너무 많은데요, 친구들이 물어볼 때마다 하는 말이 있어요. 낯선 환경에 놓일 때마다 낯선 내가 보인다고요. 새로운 사람들과 낯선 얘기를 나누는 것도 좋아요. 그 과정에서 세 가지가 늘었죠. 악과 깡 그리고 짐 싸는 것. 새로운 환경에서 나를 지키려면 악과 깡이 있어야 하더라고요. 한국에서는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건너 건너 알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좋게 좋게 넘어갔는데, 외국에서는 좀 더 본질적인 부분에 집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나도 자퇴할까?’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자퇴는 절대 답이 아니에요. 자퇴한다고 모든 가능성이 열리거나 세상이 아름다워지거나 하는 건 아니거든요. 다만 저는 모든 상황이 맞아떨어졌어요. 자퇴 전, 나한테 진짜 필요한 게 무엇인지 고민해봐야 해요. 제 경우 건강상의 이유 때문에 휴식이 필요했죠. 만약 건강했다면 자퇴를 안 했을지도 몰라요.”

진로는 어떻게 그리고 있어요? “연극과 뮤지컬 쪽에 관심이 많아요. 교육청 예술영재로도 활동했고요. 잠깐이지만 예술 분야를 들여다보니 예술가들의 삶이 너무 힘들더라고요. 예술가들은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들이잖아요. 이들을 위한 시스템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요. 덴마크나 노르웨이처럼 복지 시스템이 잘돼 있는 곳의 구조를 배워 와서 한국에 펼쳐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유학 가려면 돈이 많이 들잖아요. 그래서 열심히 알바를 하려 합니다. 하하.”

유학비 걱정 없는 금수저로 태어났으면, 하는 생각은 안 들어요? “부모의 돈은 편리하게 사는 데 확실히 도움은 될 것 같아요. 하지만 저희 부모님은 그런 것과 비교되지 않는 경험을 하게 해주셨어요. 너무 값져요. 돈이 많다고, 지위가 높다고 자녀를 위한 멋진 선택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저는 가족과 부모님에 대한 프라이드가 있어요.”

청소년들을 위한 강연에서 인생을 서핑에 비유한 표현, 멋졌어요. “서핑은 자퇴를 하게 한 용기의 원천이었어요. 서핑숍에서 2주간 생활하고, 직접 서핑을 해보면서 인생이 서핑과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우선 세상이 정해놓은 행복이 아닌, 자신만의 행복을 만들어나가는 서퍼들의 삶에서 자극을 받았죠. 또 서핑 과정이 인생살이와 닮아 보였어요. 서핑을 하려면 파도가 오기 전 수없이 물살을 거슬러 가요. 그리고 때를 기다려요. 짧게는 10분에서 20분, 길게는 한 시간 넘게요. 성급하게 파도를 넘으려 하면 수십 번, 수백 번 물을 먹어요. 자연은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또 서핑에서 중요한 건 양보예요. 한 파도에 한 사람만 탈 수 있으니까요. 나보다 더 좋은 서퍼가 있다면, 또 나의 흐름이 아니라면 당차게 벗어날 줄 알아야 해요.”

은세의 1년, 2년 후가 궁금해지는군요. “저도 제 내일이 기대돼요. 신나게, 명랑하게 살고 싶어요.”

지금 신나요? “네! 신나요. 하하.”
  • 2020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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