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고수들

〈트래블러〉 최창수 PD

‘풍경’보다 ‘과정’의 여행!

글 : 선수현 기자  / 사진제공 : 최창수 

1. 이제까지 총 ( 34 )개국 ( 300 )개 도시에 다녀왔습니다.

2. 나를 변화시킨 여행지는 어디며, 이유는요?
인도. 여행지에서 여행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온갖 일들을 겪고 나니 진정한(?) 여행자가 됐습니다.

3. 여행이 고플 때는 언제인가요?
매주 찾아오는 주말이 너무 지겨울 때.

4. 길을 잃었을 때 어떤 마음인가요?
일종의 ‘길 찾는 게임’에 임하는 마음으로 흥미진진하게 길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5. 여행 관련 추천하는 책이 있다면요.
최미애의 《미애와 루이 318일간의 버스여행》.

6. 당신에게 여행이란?
생각만 해도 자유로워지는 모든 기억.
스물다섯 청년은 제 몸만 한 배낭을 메고 세상의 서쪽으로 향했다. 1년 5개월 동안 국경을 넘고 또 넘고, 낯선 땅을 마주하며 삶을 배웠다. 청년은 무수한 고비를 넘기며 단단해졌다. 진한 여행을 거치자 비로소 자신을 알 것 같았다. JTBC 예능 프로그램 〈트래블러〉의 최창수 PD 이야기다.

여행의 발단은 사진 한 장이었다. 우연히 들어간 미니홈피 대문에는 파키스탄 훈자의 거대한 설산을 배경으로 함박웃음 짓는 누군가의 모습이 있었다. 가슴이 요동쳤다. 제대하고 뭘 해야 할지 고민하던 즈음, ‘이거다’ 싶었다. 동시에 머릿속이 멍해졌다. 홈피의 주인공이 세계여행을 하는 동갑내기였기 때문이다.

최창수 PD는 2006년 인도 여행에서 마음 맞는 한 살 아래 길동무를 만났다. 두 사람은 일주일간 여정을 함께했고, 언젠가 또다시 같이 여행을 하자고 약속했다. 시간이 흘러 한 사람은 방송국 PD, 또 한 사람은 저명한 사진작가가 됐다. 최창수 PD는 여행 프로그램 〈트래블러〉를 기획했고, 정정호 작가는 〈트래블러〉의 현장 스틸 촬영을 담당했다. 두 사람은 쿠바와 아르헨티나를 함께 여행하며, 오래전 인도에서 한 약속을 떠올렸다.
2006년 인도에서 최창수 PD(오른쪽 파란 티)와 정정호 작가.

2019년 아르헨티나에서 최창수 PD(왼쪽)와 정정호 작가.
“어려서부터 여행을 좋아했어요. ‘언젠가 한비야처럼 세계여행을 해야지’ 생각했는데, 막상 떠나는 모습은 상상을 못 한 거죠. 그런데 사진을 보고 각성했어요. 그냥 떠나면 되는 일이었는데, 왜 생각을 못 했나 싶었어요.”

그는 제대 후 장장 1년 5개월의 여정을 시작했다. 몽골을 시작으로 중국, 베트남, 인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 아시아를 거쳐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땅을 밟았다. 떠날 때 앞뒤로 가득했던 배낭은 여행이 무르익으며 가벼워졌다. 침낭은 여행 초반 진작 버렸다. 더러운 잠자리에서 잘 때면 침낭을 펴야 했는데,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에 비하면 깨끗한 잠자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네팔 여행이 끝나갈 쯤엔 파카마저 숙소에 두고 나왔다. 배낭의 무게를 덜어내니 자유가 찾아왔다.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었다. 생필품이나 옷가지는 필요할 때마다 현지에서 구입했다. 결국 돌아올 때 남은 건 카메라와 노트북, 속옷뿐이었다.


플랜 B의 달인


그가 여행지 추억을 이야기하자면 여행 기간 이상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몽골에서 지프를 타고 달려 도착한 초원에서는 밤하늘에 우유를 뿌려놓은 양 쏟아지는 별을 마주했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아름다운 별밤을 본 적이 없을 정도다. 중국 춘절 모든 교통편이 매진돼 무작정 서쪽으로 향하는 티켓을 여러 차례 끊어가며 상하이에서 티베트에 이르기도 했다. 한국으로 따지면 서울-부산 차편을 구할 수 없어 서울-천안-대전-대구-부산 식으로 조금씩 이동한 것이다. 또 아프가니스탄에서 만난 한국 건설업자가 고향에 두고 온 아들 생각이 난다며 끓여준 된장찌개,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장터까지 노래하며 걸어가는 에티오피아 여인들. 어느 하나 놓칠 순간이 없었다. 특히 인도에서의 일주일 트레킹 여정은 지난날을 돌아보게 했다.

“할 일이라곤 걷고 생각하는 것뿐이었어요. 걷고 또 걷다 보니 평소 잊고 지냈던 기억 속의 무언가가 올라왔죠. 학창 시절 친구를 놀린 일, 군대에서 실수한 일 등 잘못한 것만 떠올랐어요. 혼자 여행하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잖아요. 막연한 그 말의 의미를 조금은 이해하게 됐어요.”

인터넷으로 전 세계가 연결된 요즘과는 여행 풍경이 사뭇 달랐던 때였다. 길을 모르면 현지인에게 물어봐야 했고, 또 길을 잃으면 잃는 대로 기대하지 않은 곳에 도달하는 묘미가 있었다. 인터넷 카페를 어렵사리 찾아 이메일을 확인하고 한국에 전화하기 위해 1분에 몇 천 원의 요금을 감당해야 했다. 한국 여행자를 만나면 외장하드의 음악과 드라마를 교환하기 바빴다. 다소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여정. 그래도 최 PD는 “그게 하나의 재미였다”고 회고한다.

2006년 12월, 그는 한국에 도착했다. 긴 여행을 끝낸 청춘에 자신감이 생겼고 마음은 한결 정돈됐다. 무엇보다 예상치 못한 숱한 난관을 헤쳐오는 속에서 대처능력이 생겼다. 여행 중 숙소·교통편 계획이 틀어지면 불평보다 대안을 찾아야 했다. 발을 구르고 있다고 나아지는 건 없으니까. 비영어권 험지를 온몸으로 부딪히고 다니면서도 사고 없이 돌아올 수 있었던 건 수많은 고비를 넘겼다는 방증이다. 그는 이때의 경험이 몸에 쌓여 지금 큰 자산이 됐다고 확신한다.

“녹화에 차질이 생기거나 장비가 고장 나면 바로 다음 플랜이 떠올라요. 여행하면서 별별 경험을 하며 체화된 것 같아요. 문제가 생기면 본능적으로 임기응변 능력이 나오나 봐요.”


류준열은 그 시절 자신의 페르소나

JTBC 〈트래블러〉 쿠바 편(위)과 아르헨티나 편 화면 캡처.
최창수 PD는 여행을 기록한 글과 사진을 엮어 당시 《지구별 사진관》을 출간했다. PD가 되기 전이었지만 “언젠가 여행, 청춘, 사랑을 결합한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내용을 같이 적었다. 꿈은 실현됐다. 그는 관광 명소 중심의 풍광을 보여주는 기존 여행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진짜 여행을 담은 〈트래블러〉를 기획했다. 젊고 뜨거운 날의 소환. 〈트래블러〉의 여행은 숙소와 교통편 예약처럼 일련의 과정을 모두 담아, 보는 이로 하여금 각자의 소소한 여행 추억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아는 형님〉을 2년 반 하고 다른 프로그램을 하고 싶었어요. 이제 제가 항상 품고 있던 여행 프로를 시도해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여행은 저의 20대의 배낭여행을 닮아 있어야 했습니다. 장소 역시 제가 가보지 않은 곳이어야 했고요. 답사 때나 본 촬영 때나 배낭을 메고 출연자들과 함께 여행하는 기분으로 다녔는데, 역시나 너무 좋더라고요. 잠재돼 있던 여행 본능이 나온 거죠.”

첫 여행지는 쿠바. 평소 여행을 즐기며 사진 찍는 배우 류준열을 낙점했다. 최 PD는 류준열을 두고 “스물다섯 배낭을 멘 자신의 페르소나”라고 했다. 류준열의 파트너로는 허당 매력이 가득한 이제훈이 등장했다. 두 사람은 여행을 통해 한층 성장하고 끈끈해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2월 방영을 앞둔 〈트래블러〉 아르헨티나 편에서는 강하늘, 안재홍, 옹성우가 배턴을 이어간다. 평소 여행을 즐기는 분위기 메이커 강하늘, 요리에 일가견 있는 리더 안재홍,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막내 옹성우까지, 세 남자가 어떤 여행의 서사를 그려갈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최창수 PD는 〈트래블러〉를 통해 다시금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 여행을 주저했던 그때, 그냥 떠나면 됐다. 나머지는 길이 알아서 해줬다. 길에서 세상을 배우고 진정한 ‘트래블러’가 됐던, 인생에서 가장 뜨거웠던 시절. 태양을 닮은 청춘의 기록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지금도 어디선가 자신의 길을 걸으며 혼돈에 빠져 있을 청춘들을 응원한다.

최창수 PD의 여행 꿀팁


1. 사진은 가로로!
스마트폰으로 여행 사진을 잘 찍고 싶으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무조건 가로로 찍을 것. 사진을 배우지 않았어도 본능적으로 구도를 알아서 잡게 된다.

2. 자전거로 골목 투어
어느 도시에서든 자전거나 스쿠터를 꼭 빌려서 돌아다녀보자. 가이드북이나 인터넷 여행정보에 나오지 않는 나만의 여행을 만들 수 있다.


3. 현지 시장 방문은 필수
그 도시의 시장은 무조건 찾아가본다. 시장은 현지인들의 활기찬 일상을 가장 잘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오래된 재래시장이라면 금상첨화다.
  • 2020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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