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빈 수퍼빈 대표

“쓰레기 먹고 돈을 토해내는 인공지능 로봇 만들었어요”

글 : 이선주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쓰레기를 모아서 엄마 생일선물 사줄 거야.”

KBS2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윌리엄이 한 말이다. 윌리엄과 벤틀리 형제는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모은 페트병과 캔을 예쁜 그림이 그려진 기계 속에 집어넣었다. 페트병과 캔이 하나하나 포인트로 적립되고, 2000점 이상이 모이면 현금으로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이런 분리수거 기계를 전국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다. 재활용 쓰레기 문제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스타트업, 수퍼빈이 개발한 인공지능 순환 자원 회수 로봇 ‘네프론’이다.

네프론은 현재 서울시, 경기도, 충청남도, 경상북도, 전라남도, 제주도 등 전국 75곳에 설치돼 있다. 네프론이 설치된 곳에서는 ‘쓰레기도 돈’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서 주민들이 재활용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김정빈 수퍼빈 대표는 “쓰레기도 가치가 있다는 인식을 확산하는 게 우리 회사의 1차 목표”라고 말한다.

“쓰레기가 소중한 자원이 되고, 문화도 되고, 놀이도 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쓰레기도 돈이 될 수 있다는 경험을 하면서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이 바뀌면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쓰레기를 모으는 장소는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곳이라고 여기잖아요. 그런 인식을 바꾸기 위해 네프론을 더 예쁘게 만듭니다.”

네프론 옆에는 재활용 문화체험공간 ‘숲박스’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숲박스는 현재 어린이대공원과 서울시 동대문구, 경기도 의왕시 등에 설치돼 있다. 그런가 하면 한국코카콜라, 세계자연기금 한국본부와 함께 쓰레기로 쇼핑을 할 수 있는 ‘쓰레기 마트’도 6월 28일부터 9월 5일까지 서울 연남동에서 운영한다. 페트병, 캔 등 쓰레기를 갖고 와서 얻은 포인트로 친환경 제품을 살 수 있는 마트다. 젊은 층이 재활용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힙한 장소의 대명사 연남동에서 열었다. 반응을 살핀 후 상설 마트를 설치할 계획도 있다.


코스틸 그룹 CEO 출신

연남동에 위치한 ‘쓰레기 마트’. 쓰레기를 통해 얻은 포인트로 친환경 제품을 살 수 있다.
쓰레기 처리와 환경 문제는 국가의 과제이자 전 세계가 함께 풀어야 할 문제다. 김 대표는 어떻게 이 문제에 뛰어들어 사업화할 생각을 했을까? 코넬대 경제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40대 초반에 철강회사 코스틸 그룹의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다. 좋은 학벌로 빠르게 성공한 것 같지만, 사실 그는 입사하려고 지원하는 곳마다 서류 전형도 통과하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제대로 안 했습니다. 재수하면서 열심히 했지만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죠. 춘천에 있는 한림대 경제학과에 입학했고, 주말마다 빨랫감을 싸 들고 서울 집으로 왔습니다. 그때 지하철 2호선에서 명문대 이름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 왠지 초라해지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했고, 3년 만에 조기 졸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학벌만 관심 갖지, 제 노력을 보지 않는 것 같았어요. 입사지원서를 내는 곳마다 서류 전형에서 떨어졌으니까요. 영어 실력이라도 늘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미국에 어학연수를 갔고, 유학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그는 오리건대 수학과에 편입해 1년 만에 졸업하고, 코넬대 경제학과 석·박사 통합과정에 진학했다.

“하루에 18~20시간씩 이 악물고 공부했습니다. 지도교수가 ‘내가 가르쳤던 학생 중 상위 1% 안에 들 정도로 뛰어나다’라고 강력한 추천서를 써주셨고, 장학금을 받고 코넬대 경제학과 석·박사 통합과정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하지만 박사 논문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공부보다 현장에 더 맞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다시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 들어갔습니다. 학자금 대출을 받으면서 한 유학 생활은 녹녹지 않았어요. 열이 펄펄 날 정도로 아파도 약 사 먹을 돈이 없었으니까요.”


약점을 도약의 계기로

어린이대공원에 위치한 재활용 문화체험공간 ‘숲박스’.
하버드대에 있을 때 삼성화재 핵심 인재 채용팀에 발탁돼 2003년부터 한국에서 일했다. 10여 년 동안 삼성화재와 컨설팅 회사를 거쳐 코스틸 그룹 대표이사 사장까지 올랐다.

“2014년 코스틸 그룹에서 나온 후 스타트업을 키우는 액셀러레이터 회사를 운영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일을 하려고 보니 제가 창업 경험이 없다는 게 약점인 거예요.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먼저 경험한 창업 선배의 지도를 받고 싶어 하더라고요. 그렇다면 나도 창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약점을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로 삼는 것 같다. 자신의 약점을 느꼈을 때 피나는 노력으로 강점으로 바꿔놓는 그다. 일단 창업을 결심하자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고, 쓰레기 문제에 주목했다.

“재활용 가능한 쓰레기도 소각하거나 매립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환경 문제를 일으키잖아요. 태평양에 사는 새들의 배 속에서 플라스틱 쓰레기가 잔뜩 발견될 정도로 쓰레기 문제는 전 세계의 환경을 위협하고 있어요. ‘첨단 기술을 활용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까?’ 생각했고, 2015년 6월 수퍼빈을 설립했습니다. 돈벌이만 목표로 삼는 게 아니라 사회적인 목표와 철학을 가진 회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공무원이신 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제게 그런 가치관을 심어주신 것 같아요.”

그는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기술을 융합해서 재활용 가능한 폐기물을 인식하고 분류, 처리하는 로봇 ‘네프론’을 개발했다. 인공지능의 딥러닝 기술을 가진 네프론은 인간의 눈처럼 보면서 재활용 폐기물을 판별한다. 수퍼빈은 2016년 8월 시제품을 출시하고, 2017년 미래창조과학부 미래성장동력 챌린지 데모데이 최우수상, 한국일보 대한민국 우수특허 대상을 받았다. 2018년 10월에는 휴맥스에서 20억 원, 2019년 4월에는 벤처투자사에서 10억 원을 투자 받았다. 수퍼빈은 주로 지방자치단체와 기업에 네프론을 판매하면서 쓰레기 수거와 처리 등 관리도 대행한다.


재활용 문화를 다시 써 나갑니다

의성초등학교에 설치된 ‘네프론’.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여러 기술을 융합해야 하니 개발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고, 판매도 쉽지 않았다. 처음 보는 로봇이라 선뜻 채택하려는 곳도 없었다. 네프론이 하나둘 눈에 띄기 시작하면서 요즘은 관심을 갖는 곳이 부쩍 늘었다. 네프론이 들어서면 사람들이 앞다퉈 쓰레기를 모으면서 동네가 깨끗해졌다. 공원, 학교, 주민센터, 극장, 마트 등 네프론을 설치할 수 있는 곳은 무궁무진하다.

“설치 장소에 맞춰 다양한 크기와 디자인으로 만들 수 있어요. 이동형도 개발할 계획입니다. 네프론은 처음부터 재활용할 수 있는 쓰레기만 분류해서 모읍니다. 또 세계 최초로 폐기물 빅데이터를 구축하는 기술도 갖췄고요. 지금은 수거한 폐기물을 재활용 업체에 넘기지만, 궁극적으로는 저희가 직접 재활용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려 합니다. 페트병을 재활용한 섬유로 만든 가방은 가볍고 질겨서 인기가 많죠. 우리도 재활용 쓰레기를 새로운 자원으로 만드는 일까지 하고 싶습니다.”

김정빈 대표는 “그저 분리수거 기기를 파는 회사가 아니라 재활용 문화를 다시 써 나가는 회사로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 2019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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