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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하는 사회 창조를

헤르만 헤세의 명작 가운데 《아우구스투스》가 있다. 아우구스투스는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 소년의 이름이다. 소년이 태어날 때, 어느 신비한 할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아이를 위한 소원을 한 가지 들어주겠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망설인 끝에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말했다.

어머니의 소원대로 사람들은 소년을 소중히 대했다.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는 생활이었지만, 사람들이 금지옥엽으로 떠받드는 바람에 아우구스투스는 으쓱해져서 냉정하고 거만한 사람이 됐다. 그래도 사람들은 아우구스투스를 친절하게 대해줬다. 아우구스투스는 사람들의 그런 호의까지도 역겹고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탐욕을 부리고 호화찬란하게 놀아도 봤지만 마음은 더욱 초조해지고 공허할 뿐이었다.

이윽고 아우구스투스는 자살해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해주자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죽으려는 바로 그 순간, 예전의 그 신비한 할아버지가 다시 나타났다. 아우구스투스는 할아버지에게 이번에는 반대로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라고 울면서 부탁한다.

그때부터 아우구스투스의 생활은 완전히 뒤바뀌어버렸다.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지금까지 살아온 그의 삶을 욕했으며, 마침내 그는 투옥되고 말았다. 출옥했을 때 아우구스투스는 보기 흉하게 늙어 있었다. 물 한 잔 얻어 마실 수도 없을 만큼 냉대를 받았다. 하지만 아우구스투스는 아무리 냉혹하고 매정한 대우를 받아도 모든 사람이 사랑스러웠다. 서둘러 학교에 가는 아이들, 양지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노인들, 피곤에 찌들어 귀가를 서두르는 노동자들… 모든 사람들이 다 자신의 가족처럼 여겨졌다.

세계를 유랑하며 불행한 사람을 위해 헌신하다 보니 그의 마음은 따뜻해졌다. 더 이상 공허하지도 않았다. 아우구스투스는 행복했다.

이런 이야기지만,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전반생(前半生)의 아우구스투스를 동경하며 사는 것은 아닐까? 타인에게 존경받고 인정받는 인생을 목표로 지위와 부를 찾아 헤매고, 성공하면 거만해지고 실패하면 패배감에 휩싸인다. 그 결과 모두 마음이 가난해진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도 아이들에게 자신과 똑같은 삶밖에는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다른 삶도 있다. 옛날 오스트리아 빈의 어느 신문에 한 어머니의 편지가 실렸다. 그 어머니의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안고 있었다.

“당시 난 열여덟 살이었습니다. 난 아이를 신을 숭배하듯 받들고 한없이 사랑했습니다. 가엾은 이 어린아이를 구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썼습니다. 그러나 헛수고였습니다. 아이는 걸을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난 젊었기 때문에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낮이고 밤이고 일했습니다. 오로지 귀여운 딸에게 좋은 음식과 약을 사주기 위해 일했습니다. 그리고 딸의 작고 야윈 팔을 내 목에 걸치도록 한 뒤, ‘아가야, 엄마를 사랑하니?’라고 물으면 딸아이는 내게 꼭 안겨 미소를 지으며 작은 손으로 내 얼굴을 어루만졌습니다. 그럴 때 행복했습니다.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어도 한없이 행복했습니다.”(프랭클 저, 《그래도 인생에 예스라고 한다》)

아마 이 세상에 그녀의 딸만큼 무력한 존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단지 능력이 있기 때문에 존귀한 것이 아니다. 사회에 쓸모가 있기 때문에 위대한 것도 아니다. 어느 누구라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것만으로 둘도 없이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작은 딸아이가 그것을 가르쳐줬다.

내가 잘 아는 사람 중에도 자녀가 심신(心身)에 장애를 안고 있는 분이 적지 않다. 얼마나 괴로워했을지 나로서는 헤아리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 괴로움 속에서 어느 어머니가 이렇게 말했다.

“아이가 제게 인생의 진수를 가르쳐줬습니다. 아이가 없었더라면 생명이 진정으로 소중하다는 것도 몰랐을 것입니다.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오만한 인간인 채로 인생을 마쳤을지도 모릅니다. 아이가 바로 제 스승이 되어줬습니다. 나에게 그것을 가르쳐주려고 일부러 아이는 괴로운 모습으로 태어난 것이 아닐까요.”

나는 이 아이들의 실상(實像)은 결코 ‘장애아’가 아니라 생명의 존엄함을 가르쳐주는 ‘세상의 보물’이라고 생각한다. 보물인 아이들을 무엇보다도 우선하여 소중하게 여길 줄 모르는 사회야말로 오히려 ‘장애 사회’가 아닐까?

가장 약한 처지에 놓인 사람에게 봉사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위한 지식인가. 무엇을 위한 부(富)인가. 무엇을 위한 권력인가.

‘배려’란 ‘마음을 쓴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을 말한다. 자애를 베푸는 일이다. 멀리까지 마음을 쓴 만큼 내 마음은 넓어진다. 마음이 크게 넓어진 만큼 많은 행복을 담을 수 있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타인에게 봉사하며 살도록 가르쳐야 한다.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SGI 회장은 세계 각국의 지성인과 대화하면서 세계 평화와 문화·교육 운동을 해오고 있다.
유엔평화상, 세계계관시인상 등을 수상했고, 대한민국 화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21세기를 여는 대화》(A. 토인비), 《인간혁명과 인간의 조건》(앙드레 말로), 《20세기 정신의 교훈》(M. 고르바초프), 《지구대담 빛나는 여성의 세기로》(H. 헨더슨) 등 세계 지성인들과의 대담집을 냈다.
  • 2019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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