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희의 속 깊은 인터뷰

‘우아한 성실주의자’ 김창완

“단조로운 일상이야말로 삶의 가장 중요한 캔버스죠”

글 : 김민희 기자  / 사진 : 김선아 

김창완은 곳곳에 있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그의 노래를 듣고, 그의 드라마를 시청하고, 그의 음성이 흐르는 라디오를 청취해왔다. 의식하든 안 하든, 알게 모르게. 1977년 그룹 ‘산울림’으로 데뷔, 43년 차 현역은 넓은 스펙트럼으로 쉬지 않고 존재감을 심어왔다.
그를 기억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50대 이상은 그룹 ‘산울림’의 리더로, 40대는 ‘산할아버지 구름모자 썼네~’나 ‘꼬마야~ 꽃신 신고 강가에 나가 보렴’ 같은 동요로, 30대는 드라마 〈하얀거탑〉의 노련한 악역 연기자로, 20대 이하는 가수 아이유와 함께 ‘너의 의미’를 부르는 아저씨로 기억할지 모르겠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 아빠나, 어린이 드라마 〈요정 컴미〉 명태 아빠로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또 있다. 출판계에서 김창완은 ‘기본 부수가 보장된 에세이스트’로 알려져 있다.

그가 이번엔 동시집을 냈다. 제목은 《무지개가 뀐 방이봉방방》. 올해 그는 소위 ‘지공대사’(지하철 공짜로 타는 나이인 65세)가 됐다. 65세에 최초로 동시집을 내다니. 시간을 거슬러 간 듯한 감성의 행로는 어떻게 가능한 걸까. 김창완의 나이 듦의 방식이 궁금했다. 또 보이는 ‘느림’ 이미지에 감춰져 있을 ‘성실’의 방식도 궁금했다.

그를 만났다. 연두와 초록 사이 빛깔을 띤 잎들이 연트럴파트를 꽉 메운 5월 초, 서울 마포구 연남동. 헐렁한 면바지에 무심하게 걸친 듯한 점퍼 차림으로 나타난 그는 예의 그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동자(童子)와 신선은 한 끗 차이라 했나. 꼬마아이의 천진난만함과 세상을 해탈한 할아버지의 표정이 겹치는 미소였다.

보이는 모든 것을 태어나 처음 보는 양, 호기심 가득한 눈초리로 보는 그와 마주 앉았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동시 ‘내가 지금 보는 것’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지금 보는 것은 / 내가 처음 보았던 것이다/ 내가 지금 보는 산은/ 내가 처음 보았던 산이고… 지금 나의 그리움은/ 누군가를 그리워하던 그 처음의 그리움이다…”

그의 동시집을 펴면, 면지에 그의 사인이 있다. ‘얘들아 노올자~’라는. 이 구절을 보고 빙그레 미소 짓다 울컥, 북받쳤다. 20대 초반,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 토토로〉를 보다가 건드려진 그 감정선과 흡사한 감정이다. 오랜 동안 잊고 있던 내 안의 동심을 만났을 때 주체할 수 없이 솟구쳐 오르는 아련함.


동시를 읽다 여러 번 울컥했어요.

“아, 그래요? 내가 이런 분을 만나고 싶었어요. 아! 좋다. 동시를 통해서 자신의 어떤 모습이든 자기를 직시하게 되면 최고의 태도라고 생각해요. 저도 동시를 쓰면서 허식을 벗어버린 내 모습을 대면하면서 미소 짓게 됐으니까. 그런 경험을 하길 바라요. 그러다 보면 웃음도 나겠지만, 폐기했던, 이미 사라진 줄 알았던 사랑스러운 자신을 만나게 될 것 아니에요. 그러면 눈물이 나죠.”


동시집을 내면서 “감히 폐기해버리려 했던 동심을 내 안에서 다시 만난다는 게 보통 축복이 아니다”라고 했지요. 그 동심은 어떻게 해야 만날 수 있나요?

“노력해야 해요. 솔직해지려는 노력.”


‘솔직’은 어떤 차원이죠?

“모든 종류의 솔직이에요. 아이였을 때 생각해보세요. 요만한 거짓말을 했는데 천둥 치면 피해 다니면서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잖아요. 그런 자각이 몇 날 며칠을 괴롭히고. 그 마음을 잃지 않고, 잊지 않고 사는 게 중요해요.”


동시의 언어는 찾아오나요, 아니면 샅샅이 찾으러 다니나요?

“떨어지는 거예요. 뚝 떨어져요. 그냥. 목련 지듯이 속절없이 떨어지는 어떤 말들. 어떤 것은 곰곰이 캐고 캐서 잡은 것이 없지 않지만, 그렇게 포획된 말들은 별로 없어요. 대부분은 목련꽃 맞듯이, 누가 치는 것같이 그렇게 떨어져요.”


그렇게 ‘툭’ 떨어진 말들은 어떻게 언어화합니까?

“누가 날 쳤지? 뭐가 날 스쳐간 거야? 하는 그 순간의 그 무엇이 언어로 포착될 때도 있지만, 언어로 포착되면 이미 이성의 필터를 거쳤기 때문에 감흥이 별로 없어요. 글쎄, 뭐가 있는데, 그래 맞아. (창밖을 보면서) 저게 연두라고 하기엔 너무 지났고, 아직 여린 봄빛이 남아 있는데, 저게 뭘까? 연두가 아니라 뭐라고 해야 할까? 그런 순간이 있는 거예요. 그다음엔 속어법으로 들어가요. 파스텔은 아니야, 햇살도 아니고, 하는 식으로 뭔지 모르지만 아닌 것만 아는 거예요. 그렇게 들어가다가 언어로 걸러질 때도 있고, ‘못 찾겠다 꾀꼬리’ 할 때도 있고.”


찾을 확률은요.

“대부분은 ‘에잇, 모르겠다’ 하고 술이나 먹자 해요.(웃음)”


언어로 포획하기 위한 비결이 있다면.

“있어요. 이미지나 상태를 가두리에 몰아요. 심리적인 여러 상태가 막 화학작용을 일으켜요. 사물이라는 건 아무리 쳐다봐도 본질을 알기 힘들잖아요. 연상 작용을 하죠. ‘그때 누구랑 있었지, 왜 하필 거기에 있었을까’ 식으로 다른 방식의 연상을 해요. 좀 더 구체화된 실체에 접근할 수 있죠.”


동시집의 동시들은 언제 찾아온 언어인가요?

“다 최근이에요. 적어도 50대 이후에. 일상에서 꾸준히 써왔어요. 내가 매일 라디오(SBS 파워FM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오프닝 멘트를 쓰잖아요. 아침 일찍 자전거 타고 가다가 오프닝 멘트를 써서 보내고, 그래도 봄기운이나 여흥이 남아 있으면 꽃밭에 있다가 생각이 나기도 하고 그래요. 이제까지 쓴 동시가 200점이 넘어요. 그중에서 50점 정도를 골라서 책을 냈고.”


65세에 첫 동시집이라니요. 마음의 나이를 거꾸로 거슬러 가네요.

“내가 올해 65세가 된 걸 몰랐어요. 나이 의식을 안 하고 살아요. 나이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어요.”


‘나이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른다’는 게 정설이지요. 20대에는 시속 20킬로, 30대는 30킬로, 60대에는 60킬로로 간다고요.

“난 아니에요. 어릴 때 시간이 훨씬 빠르게 흐르는 것 같아. 다들 그렇게(나이 들면 시간이 빨리 간다) 합의를 보신 것 같은데, 만약 그렇다고 해도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백수 시절에 방에서 해를 가만히 보고 있을 때가 생각나요. 캄캄한 방에서 그림자를 계속 보고 있으면 벽지 무늬에 해가 ‘사악~’ 가는 게 보여요. 그렇게 무료하고 할 일 없는 백수의 시간이 길다고 할 수 있을까? 안 길어요. 요즘 사람들 100만분의 1초씩 사는 것 같아도, 원두막에서 오후 내내 참회 하나 깎아 먹은 할아범보다도 더 시간을 물같이 흘리는지도 몰라요.”



김창완은 지난 43년간 다방면에서 쉼표 없는 멀티플레이어로 달려왔다. 펴낸 음반 20개, 드라마 70여 편, 영화 20편, 등장한 CF 40여 편, 출간한 책 10권…. 그의 성실성이 도드라진 영역은 라디오다. 1978년 TBC 〈7시의 데이트〉로 DJ를 시작한 후 KBS 〈11시 팝스〉, MBC 〈김창완의 추억의 팝송〉, KBS 〈김창완의 라디오를 켜라〉, MBC 〈김창완의 골든디스크〉를 진행했고, SBS 파워FM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를 10년째 생방송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의 20여 년 장수 매니저이자 소속사 대표인 지주현 실장은 김창완의 현재에 대해 ‘제9의 전성기’라는 표현을 썼다. 전성기가 아닌 적이 없었다는, 우스개 표현이다.


그 많은 활동을 소화하면서도 여유로워 보여요. 시간 관리 룰이 있나요?

“특별히 없어요. 다만 뭐든 그 자리에서 바로 해요. 즉결하고, 즉시 행해요. 미루기를 안 합니다.”


천성인가요?

“아니에요. 습관을 그렇게 만들었어요. 그게 좋은 면도, 나쁜 면도 있는데, 저는 그게 좋았어요. 삶을 활기차게 하죠. 미룬다는 건 여기(가슴)에 담아둔다는 거잖아요. 담아두는 건 다 짐이에요. 행복도 지금 행복하면 되고, 슬픔도 지금 슬퍼하면 돼요. 새들은 주머니가 없어요. 인간이 그토록 희구하는 새의 자유로운 삶은 거기에서 나와요. 자유롭고 싶으면 주머니가 없어야 해요. 담아두는 게 없어야 해요.”


누군가가 미우면요? 담아두지 않고 티를 냅니까?

“미워할 수밖에 더 있어요. 내가 무슨 재주가 있겠어요. 티를 낼 수밖에요. 우리 세 식구 카톡에서 나와버린 게 수십 번이에요. 한마디만 빈정 상하면 바로 탈퇴해요.(웃음)”


아들 김신화 씨가 구글코리아를 나와 AI 관련 벤처회사를 운영하지요. 회사는 잘되나요?

“괜찮은 것 같아요. 아버지라는 자격으로 대책 없이 걱정하지 않으려 해요. 대책 없는 걱정은 걱정이 아니에요. 내가 걱정하는 걸 알아달라는 거지. 그따위 걱정을 왜 해요. 나는 걱정이 돼도 안 하는 척할 거예요.”


아들에게 “발자국이 찍히지 않은 눈밭을 선물하고 싶다”고 하셨지요. 그게 되던가요?

“쉽진 않지만, 그렇게 키우려 했어요. 나의 쓸데없는 시각이나 이런 ‘썰’에 아들이 영향받지 않기를 바랐어요. 본인은 불안할 거에요. 불안하겠지요. 그런데 불안을 능히 극복할 거라 생각해요. 부모 입장에서는 자칫 다른 아이와 비교하기 쉬워요. 안 그러려고 해요. 그런 생각을 하느니 ‘새알은 왜 완전한 느낌을 줄까? 아, 그래서 레이디 가가가 새알에서 나오는 퍼포먼스를 하나 보다’ 이런 생각을 하려 해요.”


가수, 연기자, DJ, 작가 등 활동 영역이 넓지요. 언제가 가장 나다운가요?

“어우, 술 마실 때죠.”


그럼 두 번째는요?

“2차 갈 때?(웃음) 그런데 어떤 날은 따분한 수십 년의, 혹은 지난봄의, 혹은 지난여름의 어느 한날 같은 오늘일 수도 있지만, 또 어떤 날은 내 생애 첫날같이 ‘번쩍’ 하고 열리는 날이 있어요.”


그런 날은 느닷없이 오나요?

“그렇죠. 언제 올지 알 수 없죠. 그건 추억과는 너무나 다른 희열이에요. 그런데요, 나 지금 쫄아 있잖아요. ‘그런 경이로운 순간이 언제였어요?’라고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하나, 싶어서. 그런데 딱 생각났어요. 작년이었어요. 자전거 타고 집에 가는데, 집에 가면 집인데, 그냥 가기 싫은 거라. 아라뱃길로 그대로 갔어요.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꽤 걸려요.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어요. 그때 거기서 바라보던 마포대교 밑 한강. 캬! 참 좋았어요. 지금도 참 좋아요. 햇살이 좍 비치고, 살랑거리는 바람에 연두가 흔들리고.”


대화를 나눌수록 스스로에게 엄격한 모습도 보입니다.

“엄격하죠. 무지하게 엄격해요. 아까 시간 이야기도 나왔잖아요. 저는요, 똑!딱!똑!딱! 이 위에서 움직이는 사람이에요. 일상에서만 왔다 갔다 하죠. 어느 단편영화가 생각나요. 오늘은 해가 두 개 뜨고, 내일은 해가 반개만 떴다가, 모레는 별이 무수하게 뜨고, 그다음 날에는 달이 없는 그런 세상이 배경이에요. 그런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겠어요. 심심하고 단조로운 일상이야말로 오늘의 변화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캔버스예요. 일상이 롤러코스터처럼 다이내믹하다면 뭐를 할 수 있겠어요? 아무것도 못하죠. 극히 단조로운 일상을 만들어놓는 것이야말로 내가 술맛을 즐기고, 어떤 꿈을 꾸고, 멋진 상상을 할 수 있는 기틀이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가 무지하게 다이내믹한 일상을 살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아니에요. 이제까지 국내외로 무수한 공연을 다녔지만, 저는 아무 데도 안 가요. 여행도 안 다녀요.”


쉼 없는 전성기의 비결은 뭔가요?

“그러게요. 그게 뭘까?”


질문을 바꿔볼까요. 다방면에서 사람들이 왜 선생을 계속 찾을까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게 있어요. 저는 사람들이 있는 데 가서 있었어요. 사람들이 저를 찾은 게 아니라, 제가 사람들을 찾아다닌 거예요. 농담 같지만 진짜예요. 저를 누가 찾아요. 눈에 띄는 데 있었던 거죠.”


쉬고 싶다는 생각은요.

“그런 사치스러운 생각은 못 했어요. 그래서 ‘늘 사람들이 있는 곳에 있었습니다’ 하는 거예요. 사람들은 제가 무슨 쓰임이 있어서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늘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해왔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하면서 살아왔을 뿐이에요. 우리 아들도 그렇게 말해요. ‘아버지는 어떤 이미지야?’ 물었더니 ‘성실하세요’ 한마디로 말해요. 여유가 체질적으로 안 맞아요. 워낙 빡빡한 삶에 익숙해서인지.”


사기 캐릭터 같습니다. 겉과 속이 다른.

“남들은 어떻게 살길래? 그런데 왜 다들 나보다 바쁜 척할까?”


선생은 왜 바쁜 티가 안 날까요? 많은 일을 소화하려면 조급해져서 ‘지금 이 순간’을 즐기기 힘든 게 일반적인데요.

“사람들은 분열적이라 그래요. 자기가 에고와 딱 밀착이 안 돼 있어서 그래요. 지금의 내가 실존적으로 나를 만나고 있으면 바쁘지 않아요. 내가 누구이고, 누구의 누구이고 이런 식으로 나를 거쳐서 다가가는 게 아니라, 지금의 내가 나인 거예요. ‘시간’이라는 내 노래가 있어요. 나중에 한번 들어보세요.”

“이런 햇살에서는 술 한잔을 했어야 하는데” 내내 아쉬워하던 김창완은, 다음 스케줄에 맞춰 뭉그적거리며 자리를 떴다. 연트럴파크에서 이어진 사진 촬영에서도 그의 폭넓은 인기를 실감했다. 지나가던 20대들이 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서 콩콩 뛰며 그를 보고 좋아했다.

그가 들어보라던 ‘시간’의 노랫말은 이렇다.

“시간은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하지만/ 언젠가 풀려버릴 태엽이지/ 시간은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하지만/ 찬란한 한순간의 별빛이지…”

김창완의 지난 43년은 찬란한 한순간 한순간의 합이다. 지금, 여기, 내 자신에게 집중한 삶은 그를 그 ‘우아한 성실주의자’로 만들었다. 과거와 미래로 분열되지 않고 오롯이 ‘여기’에 존재하는 주체는 충만하다. 그래서 그는 아무리 바빠도 분주하지 않았고, 스스로의 가능성을 무한 확장하면서 점점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다.

  • 2019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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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최명규   ( 2019-05-30 ) 찬성 : 3 반대 : 0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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