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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다대학’ 졸업생

1950년 정월이었다. 창가학회 제2대 회장 도다 조세이 선생님이 엄숙한 얼굴로 내게 말씀하셨다.

“경제도 혼란한 시기이고 일도 점점 더 바빠지고 있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 자네가 다니는 학교를 단념해줬으면 하네만.”

나는 그 자리에서 대답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엄한 눈초리로 상냥한 빛을 발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대신 내가 책임지고 자네의 개인 교수를 해주겠네.”

이윽고 도다 선생님은 매주 일요일이면 나를 댁으로 불러 일대일 개인 교수를 해주셨다. 혼과 혼이 빛을 발하는 ‘도다대학’의 강의는 오전부터 오후까지 계속됐으며, 자주 저녁밥을 얻어먹고 상쾌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점차 일요일만으로는 시간이 부족해지자, 선생님은 회사에서도 매일 아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강의를 해주셨다. 선생님께서 회사에서 해주신 이 강의는 1952년 5월 8일 목요일부터 1957년까지 계속됐다. 이 기간은 도다 선생님이 회장 취임 1주년 직후부터 서거하시기 직전까지다.

이 ‘도다대학’의 교실은 이치가야 빌딩에 있던 선생님의 회사 사무실이었다. 본래 나 한 사람을 위한 수업이었지만 다른 사원 몇 명도 수강을 허락받았다. 그때 함께 수강한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그리운 동지다.


살아 있는 학문

강의를 시작할 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고등 교육에 관한 모든 것을 가르치겠다. 우수한 대학 이상으로 가르치고 싶다. 대학을 나왔다 해도 대부분 무엇을 배웠는지 잊어버리게 마련이다. 남는 것은 대강(大綱) 정도가 고작이다. 나는 자네에게 살아 있는 모든 학문을 가르치고 싶다.”

강의 시간은 원칙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인 아침 8시부터 9시 무렵까지로 약 한 시간 정도였다. 선생님은 출근 시간만큼은 엄격히 지켰다. 나는 선생님보다 먼저 회사에 나와 청소와 걸레질을 모두 마치고 선생님이 오시길 기다렸다.

선생님은 “오…”라고 한마디 하시고는, 들어와서 곧바로 진지하게 강의를 시작하셨다. 선생님 바로 앞에 내가 앉고 다른 사원들이 의자를 가져와 주위에 둘러앉았다. 먼저 수강생이 교과서를 순서대로 낭독하고 이어서 도다 선생님이 자유롭게 강의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어느 때는 그 교과서를 파절하는 일도 있었다.

“이 이론은 사리에 맞지 않다.”

“이 설은 무리가 있다.”

“이것은 깊이 사색하지 않은 논설이다.”

“이 학자는 일부 논리로 모든 것에 끼워 맞추려 한다.”

그 예리하고 천재적인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수강 중에는 메모를 할 수 없었다. 선생님은 한마디 한 구절을 생명에 새기길 바라셨기 때문이다. 왜 메모를 하지 못하게 했던가. 선생님은 이런 설화를 이야기해주셨다.

어느 난(蘭) 학자가 나가사키에서 오란다(네덜란드) 의학을 공부했다.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받아 적었기 때문에 필기장이 고리짝을 가득 채울 만큼 엄청나게 많았다. 그런데 공부를 마치고 바다를 건너 돌아갈 때, 배가 가라앉아 그것을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학자는 살아남았지만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자네들은 모두 머릿속에 넣어두게. 메모는 안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한 번 한 번의 수업이 진검승부였다. 후에 함께 공부한 동료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도다 선생님은 내가 없을 때, “다이사쿠는 해면(海綿,갯솜)처럼 잘 흡수한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과목은 우선 경제학부터 시작했다. 다음에는 법학이었다. 그리고 화학, 천문학, 생명론 등 모든 과학이었다. 또 일본사, 세계사, 더 나아가 한문까지. 그런 다음 정치학이라는 큰 흐름으로 진행됐다.

사용한 교재도 대부분 당시로선 최신 것에 해당하는 것을 선택했다. 예를 들면, 과학에서는 《신과학대계》라는 연재물을 사용했는데 신간이 나온 지 며칠 후에 벌써 아침 강의 교재로 쓴 적도 있었다. 거기에는 ‘시대의 선구를 걸어야 한다’는 도다 선생님의 훈련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기록한 〈젊은 날의 일기〉를 넘겨보면 곳곳에 선생님께서 강의하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런 구절도 있다.

‘선생님, 몸도 돌보지 않으시고 제자를 육성해주시는 은(恩)-나는 어떻게 갚아야 하는가. 지금이다. 힘, 힘, 힘을 축적할 때는. 모든 힘을 후대(後代)의 주비로서 축적하자.’

이것은 1953년 12월 22일 일기다. 내가 25세였을 때다.


훌륭한 인재는 일대일 연대로써

‘도다대학’에서 러시아 출신 과학자 가모프(1904~1968)의 우주론도 배웠다. 1999년이 저물 무렵, 러시아에서 모스크바대학교 사도브니치 총장 일행이 일본에 오셨다. 영광스럽게도 내게 ‘러시아 국제고등교육 과학아카데미’의 명예 회원 칭호를 수여하기 위해 오신 것이다.

수여식이 끝나고, 21세기의 교육을 전망하는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 대화에서 세계적인 수학자이신 총장은 절실한 심정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말 훌륭한 인재는 큰 교실에서는 육성되지 않습니다. 일대일로 교수 곁에 앉혀두고 육성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건물로서의 학교가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의 인격에서 생기는 학교여야 합니다”라고.

나는 즉시 이렇게 말했다.

“제 은사께서 지금 하신 말씀을 들으시면 틀림없이 기뻐하셨을 겁니다. 실은 저도 도다 제2대 회장의 개인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입니다. ‘도다대학의 졸업생’입니다.”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SGI 회장은 세계 각국의 지성인과 대화하면서 세계 평화와 문화·교육 운동을 해오고 있다.
유엔평화상, 세계계관시인상 등을 수상했고, 대한민국 화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21세기를 여는 대화》(A. 토인비), 《인간혁명과 인간의 조건》(앙드레 말로), 《20세기 정신의 교훈》(M. 고르바초프), 《지구대담 빛나는 여성의 세기로》(H. 헨더슨) 등 세계 지성인들과의 대담집을 냈다.
  • 2019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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