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 김하온

하온과 바람과 별과 시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이젠 어떻게 해야 돋보일 수 있고 독보적일 수 있는지 알겠고 정말 말 그대로 시간문제다.
게을러 보이기도 하겠지만, 기회를 준다면 2년 안에 성공하고 호강시켜 드린다고 장담할 수 있다.
(학교에서의) 여덟 시간이 세 번 연속되면 24시간을 낭비하는 건데 그건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그들이 틀렸다는 걸 내가 증명해내겠다.”


경기도 남양주시 호평동에 위치한 판곡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하온은 부모님에게 위와 같은 내용의 자퇴 계획서를 제출한다. 여기에는 학교를 다니는 일이 자신에게 왜 무의미한지, 그렇게 얻은 시간을 어떻게 의미 있게 보낼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도 담겨 있다. 이 계획서에서 눈길을 끄는 건 ‘이젠’이란 단어다. 그는 “이제 어떻게 해야 돋보일 수 있고 독보적일 수 있는지 알겠다”고 했다.
결연한 이 문장에도 ‘돋보’와 ‘독보’의 라임이 들어 있다.
김하온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이미 〈고등래퍼 시즌1〉에 출연한 바 있다. 당시에는 이렇다 할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쇼미더머니 시즌6〉에도 도전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하지만 김하온은 “이제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말을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듯, 〈고등래퍼 2〉에서 최종 우승 고지에 올랐다. 그것도 여유롭고 자유롭게. 당시 심사위원들은 “특이한 친구인 줄 알았는데 잘하는 친구”였다고 평하면서, “관객의 감정을 모두 흡수할 줄 아는 능력을 지녔다”고 말했다.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 후, 그의 삶은 비상했다. 박재범이 이끄는 레이블 하이어뮤직(H1GHR MUSIC)의 소속 래퍼가 되어 금목걸이를 목에 걸었고, 유재석이 진행하는 〈요즘애들〉에 고정 패널로 출연 중이다. 그의 말대로 “성공하고 호강하게”된 삶인데 김하온은 어쩐지 ‘핑 돌아 튕겨서 제자리 반복’하는 느낌이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김하온을 만났다. 이제 고등래퍼가 아닌 프로 래퍼의 삶, 산과 들과 별이 아닌 빌딩숲에 둘러싸인 생활이다. 도시의 ‘핵인싸’가 된 삶은 그를 더 외롭게 만들었을까. 단정한 청년이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김하온의 음악은 랩이라기보다 하나의 시 같다는 평을 받습니다. 스스로 쓴 가사처럼 ‘머리 위 먼지들을 불어’ 먼지가 날아간 뒤 남은 말들을 적은 것 같기도 하고요.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인생은 여행인 것 같아요. 그 여행 안에 희로애락이 있고요. 사람은 현재밖에 살 수 없지만, 모든 게 ‘잠시’라는 걸 기억하려고 해요. 제 음악이 길이 될 수는 없겠지만 하나의 이정표가 되기를 바라요.”


그래서 스스로를 ‘여행자’라고 소개하는군요.

“어디 멀리 가지 않아도 사는 게 여행이라고 생각해요. 학교를 그만두고 매일 음악을 들으면서 산책했어요. 산속을 걷기도 했고요. 동네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 모든 순간이 저에게는 기분 좋은 여행으로 남아 있어요.”



힙합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나 랩과 거리가 먼 사람들도 김하온의 노래는 거부감 없이 받아들입니다. 형식은 비슷한데 가사와 태도에 거칠거나, 사납거나, 부정적인 느낌이 없죠.

“저도 다른 사람을 흉내 낼 때는 그렇게 했어요. 힙합이 원래 그런 건 줄 알았고, 주목받으려면 더 세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고 나서는 제가 그런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요. 저는 평화를 좋아하고 고요함을 사랑해요. 제가 쓰는 가사 역시 저를 담기 때문에 달라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 모든 게 〈고등래퍼 시즌2〉 전에 일어난 일이군요. 사실은 우승자 김하온 역시 여러 번 실패의 경험이 있었고, ‘쭈구리’ 시절도 있었다는 게 위안이 되기도 했거든요.(웃음) 그런데 당시 그런 상태였다면, 우승하지 않았더라도 크게 연연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불행하지 않았을 거예요. 우승하겠다는 각오로 나간 것도 아니고요.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었어요. ‘내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 그런 마음이었고 그걸로 충분했죠.”



그런 것치고는 스킬이나 딕션 면에서도 우수한 모습을 보였는데요.

“워낙 다이나믹 듀오의 음악을 좋아했어요. 칼딕션으로 떨어지는 래핑을 많이 따라 했죠.”


경연 중 몹시 긴장한 동료 이병재에게 “너는 그냥 너이면 된다니까”라고 말했던 장면도 인상적이었죠. 두 사람은 ‘바코드’라는 노래를 통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함께 부르죠. 김하온의 바코드는 ‘우리 추억’이었고, 이병재의 바코드는 ‘마지막 존심’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고등래퍼〉를 통해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추억도 많이 쌓았어요. 병재도 그렇고요. 우리가 무언가를 간절하게 원하면 에너지의 불균형이 생겨요. 그 기우뚱한 상태에서 행복하긴 어려워요.”



그의 말은 그가 학교를 쉬는 동안 인상적으로 읽었다는 《리얼리티 트랜서핑》의 메시지와도 상통한다. 러시아 물리학자가 쓴 이 책은 ‘원하는 미래가 점점 더 멀어지는 이유’를 에너지로 분석한다. 부추겨진 욕망은 그것을 얻을 가능성만큼이나 완전히 좌절할 가능성도 증가시킨다. 이는 ‘에너지의 불균형’을 만든다.

파도를 원하는 대로 치게 할 수는 없지만, 파도를 타고 갈 수는 있다. 먼저 모든 상황을 초연하게 바라봐야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다. 김하온이 또래 친구들과는 다르게, 또 오디션 연습생답지 않게 ‘초연한’ 모습을 보였던 이유가 여기 있었다. 그가 쓴 ‘바코드’ 가사는 이렇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것은 어디에도 없으며 동시에 어디에나 있구나 / 우린 앞만 보고 살도록 배웠으니까/ 행복을 놓쳐 빛나지 못하는 거야’



지금은 어떤가요?

“(서울로 이사 온) 지금은 걸으려고 해도 빌딩만 눈에 보여요. 고요하고 평화로운 순간을 찾기가 어려워요. 위태위태한 기분이랄까요. 전과는 다른 관계들도 많이 생겼고, 제가 책임져야 할 부분도 많아졌고요. 저는 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추구했지만, 그때도 저의 원칙은 ‘주변에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거였거든요.”


그런데 새로운 틀이 생겼군요.

“배부른 소리라는 걸 알아요. 그런데 우승하고 나서 오히려 목표를 잃은 기분이에요. 그전의 나는 분명히 행복하고 자유로웠는데, 지금도 그런가를 생각해보면 잘 모르겠어요. 다시 제가 살던 동네, 그 산책길로 돌아간대도 그때 같은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요.”


그리운 길이네요.

“산에 오르다 보면 수진사(修眞寺, 남양주 호평동 천마산 입구에 있다)라는 사찰이 나와요. 그 길을 걷고 있으면 청설모와 마주칠 때가 있어요. 청설모랑 눈을 딱 마주친 순간, 섬광처럼 지나가는 어떤 느낌이 있었어요. 그 순간의 평화와 신비로움을 잊을 수가 없죠. 너무 그리워요. 내가 지금 얻은 것들이, 그때 그것들과 바꿀 만큼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길을 잃은 것 같나요?

“길을 찾는 중인 것 같아요. 저는 틀을 깨려고 했는데 지금의 틀 이나 관리에 익숙해져가는 것도 슬프고, 그러지 않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막막해요. 음악 작업을 한다고 매일매일 앉아 있긴 한데 멍할 때도 많아요. 명절에도 작업실에 있었어요. 지금은 사실, 잘 모르겠어요.”


지난 1월 18일 발매된 ‘꽃’에는 ‘국어, 수학, 영어는 배웠지만/ 어른이 되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는 탄식이 들어 있죠. 그런 마음인가요?

“학교에서 만났던 친구들이나 함께 어울렸던 시간은 그립지만 학교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대학에 가고 싶지도 않고요. 학교에서 배우는 건 한계가 있어요. 길을 찾는 것도 결국은 제 몫인 것 같아요.”



‘요즘 애들’은 어떤 애들인가요?

“도로시요.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 같아요. 동화 속에서 도로시가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오즈에 가잖아요. 그렇게 휩쓸려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것 같아요.”


인터뷰를 마치고 김하온이 산책할 때마다 들었다는 음악을 들어봤다. 일본의 재즈힙합 뮤지션 누자베스(Nujabes)의 ‘Aruarian Dance’, 은은하게 울리는 편안한 연주곡이었다. 그 음악을 들으며 찍었다는 동영상에서 김하온은 해맑았다. 앞에 앉아 있는 청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도 마치 타인을 바라보듯, 영상 속의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김하온은 자신의 음악이 하나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이정표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힙합을 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할지 몰라 다른 사람을 흉내 내던 그는 결국 자기만의 길을 찾아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세계를 좋아하는 김하온의 음악은 비슷한 세계관을 가진 이들과 공명했다.

오디션을 준비하는 이들은 많지만, 그 이후를 준비하는 이들은 적다. 막상 정상에 오르면 거기엔 뜻 모를 허망함이 있을지도 모른다. 스무 살의 김하온은 다시 자기만의 길을 찾고 있다. 휩쓸리듯 오즈의 나라에 갔지만, 성공의 샴페인에 도취되지 않고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그 분투는 어느 날 영롱한 노래가 되어 세상에 나올 것이다. 동시대를 사는 도로시들에게는 그 노래가 길 잃은 날의 이정표가 되어주리라.
  • 2019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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