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련의 일상 철학

아무것도 아닌 자(No One)

글 : 김수련 

전 세계적으로 큰 열풍을 일으킨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 중후반에 가면 ‘아무것도 아닌 자(No One)’ 이야기가 나온다. 윈터펠 영주인 스타크 가문의 둘째 딸 아리아 스타크가 자유 도시 브라보스에 가서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는 훈련을 받는다. 그의 스승은 끊임없이 묻는다.

“너는 누구냐?”

그는 대답한다.

“아리아 스타크입니다.”

스승은 즉시 반격을 하면서 말한다.

“너는 아무것도 아닌 자이다.”

이 드라마에서 ‘아무것도 아닌 자’는 다면신(多面神)을 모시는 자들이 얼굴을 바꾸며 사람을 죽이는 암살자가 되기 위한 과정이지만, 자아를 지우는 이 훈련은 많은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는 모두 ‘특별한 사람(Somebody)’이 되기를 원한다. 내가 ‘나’라고 믿는 그 모습을 많은 이가 인정하고 기억하는 그런 특별한 사람. 하지만 내가 ‘나’라고 주장하고 믿는 그 모습이 진짜 나(眞我)일까를 생각해본다. 그리고 또한 남들이 말하는 ‘내’가 진짜 ‘나’일는지. 우리는 그렇게 ‘나(我)’에 매달린다. 그래서 자신에 대해 타인이 오해의 말을 던지면 속으로 항변한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그리고 자신이 믿는 ‘나’를 그들이 알아주길 바란다. 타인의 말과 시선을 스스로 동일시하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나에 대한 타인의 견해에서 자유로워진다.


장자는 ‘아무것도 아닌 자’를 이렇게 말했다.

도(道) 안에서 걸림 없이 행동하는 사람은 그 자신의 이해에 얽매이지 않으며, 또 그런 개인적인 이해에 얽매여 있는 사람을 경멸하지도 않는다. 그는 재물을 모으고자 애쓰지 않으며, 그렇다고 청빈의 덕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자신의 길을 걸어가며, 또한 홀로 걸어감을 자랑하지도 않는다. 대중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대중을 따르는 자를 비난하지도 않는다. 어떤 지위와 보상도 그의 마음을 끌지 못하며, 불명예와 부끄러움도 그의 길을 가로막지 못한다. 그는 매사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으며, 긍정과 부정에 좌우되지도 않는다. 그리하여 옛사람들은 말하기를 도를 깨달은 사람은 알려지지 않는 채로 남아 있다. 완벽한 미덕은 아무것도 만들어 내지 않는다. 무아(無我)는 진아(眞我)이다. 그리고 가장 위대한 자는 아무것도 아닌 자이다.

우리는 수많은 선입견과 편견,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 만물에 대한 각자의 견해로 꽉 차 있다. 마치 물을 흠뻑 먹어 더는 수분을 흡수하지 못하는 스펀지처럼 말이다. 고인 물은 언제나 썩는 법이다. 그 고인 물의 출발점은 내가 ‘나’라고 여기는 그 믿음일 것이다. 그 믿음에서 우리는 늘 서로 충돌한다.

《논어》 학이편에 나오는 그 유명한 말.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으니 군자가 아니겠는가?

‘아무것도 아닌 자’는 무엇을 바라지 않는다. 그것은 자존감이 낮아서가 아니라, ‘나’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자아를 투명하게 만드는 데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스펀지를 햇볕에 말려 보송보송하게 만들면 물은 더는 스펀지에 고이지 않고 흘러 곰팡이도 피지 않고 썩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흐르는 물을 통해 더 많은 세상과 소통한다. 필자와 더불어 많은 사람의 고통의 근원은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지 못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글쓴이 김수련은 소설 《호텔 캘리포니아》 저자다. 대학에서 철학과 교육학을 전공했고 삶의 다양한 길 위에서 수많은 질문을 만났다.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해 ‘소설’의 형태로 그 질문을 세상에 다시 던진다.
  • 2018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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