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주메뉴

  • cover styory
  • focus
  • lifestyle
  • culture
  • human
  • community
    • 손글씨
    • 1등기업인물
    • 나도한마디
    • 기사제보
  • subscription
special issue

강아지를 안고 고양이를 바라본다는 건…

김수련의 일상 철학

글 : 김수련 

  • 글씨 더 크게 보기
  • 글씨 더 작게 보기
반려동물인 강아지와 함께 살다가 처음 고양이가 우리 집에 왔을 때, 이건 놀라운 체험이었다. 일과를 마치고 현관문을 열면 강아지 아띠와 레오가 꼬리를 흔들며 뛰어나온다. 그리고 저 멀리서 고양이 꼬미가 아주 느린 걸음으로 걸어온다. 꼬리를 세차게 흔드는 녀석들을 안으면서 천천히 내게 다가오는 고양이를 바라본다. 그 자태가 아름답다 못해 황홀하다. 그 느린 우아한 발걸음. 절대 먼저 다가오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강아지를 안고 고양이를 바라본다.

그런데 아쉽다. 꼬미도 안고 싶은데 언제나 그냥 도망가 버린다. 가끔 부엌에 서 있으면 자신의 털을 내 다리에 살짝 스치고 지나가면서 그나마 관심과 애정을 표현한다.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그런 꼬미가 강아지들과 서식하면서 조금씩 개냥이(개+고양이)가 되어가고 있다. 이제는 내가 현관문을 열면 강아지들과 함께 뛰어나오는 것을 보기도 한다. 고양이의 정체성에 혼란이 온 걸까?

너무도 다른 강아지와 고양이의 태도를 보면서 어쩌면 내가 원한 것은 개냥이가 아니었는지 생각해본다. 사람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강아지가 때로는 귀찮으면서도, 언제나 거리를 유지하는 고양이는 늘 서운하다. 사람 관계도 그렇다. 가까우면 버겁고, 멀면 서운하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 딜레마(Hedgehog’s dilemma)가 떠오른다.

어느 추운 겨울날, 많은 고슴도치가 체온을 유지해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서로 바싹 달라붙어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자신들의 가시가 서로 찌르는 것을 느껴 다시 떨어졌다. 하지만 추위에 견딜 수 없어 다시 한 덩어리가 되었다. 그러자 가시가 서로를 찔렀고 그들은 다시 떨어졌다.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마침내 상대방의 가시를 견딜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쇼펜하우어, 《여록과 보유 Parerga and Paralipomena》 중에서


고슴도치 가시 길이만큼의 거리. 그걸 찾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그 가시에 찔리고 상처받으면서 가까워졌다 멀어지는 걸 반복한다. 외로워서 함께하지만, 함께 있으면 ‘자아(ego)’라는 이름의 가시로 서로를 찌른다. 에고가 강할수록 ‘나’와 ‘너’가 대립하고 마찰하기 때문에 고슴도치의 가시 길이는 길 것이다. 그래서 에고가 강한 사람일수록 그 지난한 과정을 반복해서 겪을지도 모른다. ‘나’를 강조하면 결국 ‘나’와 ‘너’만이 남고, ‘우리’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타자와 마찰이 잦을수록 그의 자아는 더욱 공고해진다. 그만큼 관계에서 오는 고슴도치의 가시 길이는 길어지게 된다. 물론 자기 내면의 성찰을 통해 ‘나’를 주장하는 것이 옅어지면 ‘너’를 받아들고 타인을 이해하게 되면서 ‘너’와 ‘나’가 아닌 ‘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그렇게 되면 고슴도치의 가시 길이는 짧아질지도 모른다.

꼬미가 개냥이가 되어가는 일. 자신과 다른 강아지의 몸짓언어를 이제 이해한다. 막내 레오가 반갑다며 같이 놀자고 엉덩이를 치세우며 몸을 낮췄을 때, 그것이 고양이의 언어로 공격 자세라고 생각하며 털을 세우고 ‘하악질’을 했지만, 이제 각기 다른 객체의 몸짓언어를 익히고 타인을 받아들이면서 경계를 늦추고 조금씩 다가온다. 그렇게 ‘나’를 통해서 ‘너’를 읽는 것이 아니라, ‘너’를 ‘너’로 읽으며 그를 받아들이고 있다. 어쩌면 인간도 ‘나’를 통해서만 세상을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고슴도치의 가시’ 길이가 길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끊임없이 찔리고 상처받아야만 ‘너’를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이 관계 속에서 ‘우리’가 되어가는 것을 끊임없이 배우고 익혀나가는 일일 것이다.

조금만 더 그 가시를 줄이자. 서로의 온기가 느껴질 수 있을 정도의… 그 온기가 각자의 가시를 뭉툭하게 만들어 찔러도 아프지 않도록.

글쓴이 김수련은 소설 《호텔 캘리포니아》 저자다.
대학에서 철학과 교육학을 전공했고 삶의 다양한 길 위에서 수많은 질문을 만났다.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해 ‘소설’의 형태로 그 질문을 세상에 다시 던진다.
  • 2018년 07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하단메뉴

상호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