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의 서재’ 연 최인아 대표

목구멍까지 차오른 도시인들을 위한 공간

페이스북 독서광들의 성지, 분위기 깡패, 나와 세상 간 공간을 주는 곳, 나만의 서재…. 최인아책방에 쏟아지는 수식어들이다. 강남 한복판에 들어선 최인아책방은 기존의 책방 개념을 깨부순, 전에 없던 공간이다.
동네 책방처럼 오밀조밀하지 않으면서 대형서점처럼 차갑지 않다.
책방과 서재 사이, 휴식과 공부 사이, 안락과 각성 사이 그 애매한 경계에 독자들을 서 있게 한다.
‘혼자의 서재’를 연 최인아 대표를 만났다.
1년 9개월.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있는 최인아책방의 나이다. 최인아책방의 영속성 혹은 변화상은 출판계와 독서광 사이에서 초미의 관심사였다. 강남 한복판에 들어선 고품격 살롱 같은 서재는 방문객들에게 고마움과 걱정을 동시에 안겼다. ‘도심 속 오아시스’로 찬사받는 동시에 ‘과연 돈이 될까?’라는 의구심도 들게 한다. 그래서 책방지기 최인아 대표는 “건물주신가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아왔다.

걱정은 기우였다. 최인아책방은 오히려 더 커졌다. 4층만 쓰던 책방은 3층까지 확장했다. 4층은 종전대로 책방과 콘서트홀로, 3층에는 ‘혼자의 서재’를 열었다. 혼자의 서재는 최인아 대표의 숙원이 이루어진 공간이다. SK D&D가 사회환원 차원에서 최인아 대표의 꿈과 뜻에 힘을 보탰다고 한다.

‘혼자의 서재’에는 말 그대로 혼자의 서재가 오밀조밀 있다. 좌석은 21개. 취향에 맞는 사이즈와 스타일의 소파와 작은 테이블을 골라 ‘찜’ 하면 나만의 서재가 된다. 어떤 서재는 아예 독립된 공간까지 갖추고 있다. 시간당 이용료를 받는다. 2시간 기준 3만 원, 차와 쿠키가 제공된다. 싼 편은 아니지만 목구멍까지 뭔가가 차오른 도시인들은 기꺼이 비용을 치르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최인아 대표는 바빴다. 약속된 시간에도 손님과 대화 중이었고, 인터뷰 중에도 책방 ‘마담’을 찾는 전화벨이 수시로 울렸다. 최 대표의 생각을 인터뷰 등을 통해 몇 차례 들여다본 적이 있던 터라 그의 분주한 상황이 아이러니했다. 그에게 먼저 ‘이렇게 바빠도 괜찮은지, 마음은 안녕한지’를 묻고 싶었다.

인터뷰는 최인아책방에서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제일기획 부사장 출신의 스타 카피라이터답게 그의 언어는 명징하면서도 깊이 있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그토록 강조해왔는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어 보인다. 딜레마다.

“자본주의 사회가 이런 거구나 싶다. 내가 바쁘려고 해서 바쁜 게 아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이것조차 유지되지 않는다. 한 친구는 그러더라. ‘30년간 바쁘게 살고, 또 바쁘게 살고 싶냐’고.(웃음)”


강남 한복판에 이런 공간이 점점 커진다는 게 기적 같다.
책방을 연 이후에 세상을 만지는 온도는 어떤가.


“더 따뜻하다. 시간과 돈을 내서 여기까지 오신 고객들이 나한테 감사해 한다. 처음부터 이런 공간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많이 받았다. 손까지 꼭 잡으며 ‘괜찮으세요?’를 묻는 분들이 꽤 된다. 나 역시 이런 분들이 고맙다.”


혼자의 서재를 열게 된 계기는.

“어느 날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게 아니다. 관심 갖고 조몰락거렸던 뭔가가 발아했다고 할까.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는 오랜 관심사 중 하나였다. 혼자만의 시간에는 그에 어울리는 공간이 필요한데 이 시대의 주거공간으로는 어렵다. 혼자 울 공간도 없지 않나. 평면으로 된 아파트에서는 서로 마주치니까. 또 하나, 피로시대다. 사회생활을 몇 년 하고 나면 다들 목에 뭔가가 이만큼 차 있는 것 같다. 일에서 관계에서…. 자기 없이 자기를 지키는 게 힘들다. 이런 생각들이 있던 차에 마침 SK D&D에서 연락이 왔다. 하드웨어만으로 가치를 만들기 어려워졌다고 판단해 콘텐츠가 필요한 시점이었던 것 같다.”



혼자의 서재의 실제 고객층은.

“30대 중반 여성이 가장 많다. 목구멍에 이만큼 차올랐을 때 이 정도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 20대는 돈이 없고, 40대 이상은 욕구는 많으나 액션을 취하지는 않는 것 같다.”


‘모색’을 주제로 강연회를 많이 열고 있다.
혼란의 시대를 뚫고 나아갈 키워드는 뭘까.


“‘생각’과 ‘자각’이다. 어떤 문제든 해결을 위해서는 ‘그렇구나’ 하는 자각이 첫 단계다. 그런데 다들 자각 없이 그저 쫓아서 가고 있는 것 같다. ‘적어도 이런 건 하지 말아야지’ 하는 고민이 많지 않다. 해나 아렌트는 사유한다는 것은 논리적・과학적 사고방식이 아니라 옳은 것과 그른 것, 아름다운 것과 못난 것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생각과 고민이 없는 것 같다.”


생각하는 힘은 어느 시기에나 중요한 가치 아닌가.

“지금은 더하다. 그야말로 생각하는 힘이 힘인 시대다. 단어는 똑같이 ‘생각’이지만, ‘창의성’, ‘기획력’ 관점으로 생각을 풀어낼 뿐이다. 그래서 책방 수업을 설계할 때에도 토론을 강조한 소규모 강의를 열었다.”



‘토론하고 공부한다’는 ‘토공’ 수업 시간엔 실제로 토론이 잘 되나.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선생님조차 일방적으로 가르쳤다. 그런데 회를 거듭할수록 사람들 사이의 서먹함이 깨지면서 조금씩 토론이 이루어지더라. 절반 정도는 나도 수업에 참여한다.”


‘토공’ 수업의 16석은 의미가 있나.

“있다. 토론이 가능한 수. 아이 콘택트가 되면서 주거니 받거니 하기 위해서는 이 인원을 벗어나면 힘들 듯하다.”


토공 프로그램이 다양하더라.
‘김시덕 교수와 함께하는 일본사 공부’, ‘인생의 질문에 대한 예술가들의 대답’ 등. 2030세대를 타깃으로 한 프로그램도 있나.


“한 기업과 일종의 멘토링 클래스를 열고 있다. 임원을 바라보는 중간관리자 여성이 대상이다. 왜 일해야 하는지, 리더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책을 통해 함께 고민한다. 책을 미리 읽어온 후 반은 토론식으로, 반은 강연식으로 진행한다.”



삼성그룹 공채 출신의 첫 여성 임원으로 유명했고, 스타 카피라이터로서 몸값이 높았다.
‘박수칠 때 떠난’ 신화로 인구에 널리 회자된다.
갈림길에서 선택의 기준은 뭐였나.


“살면서 뭐가 맞는지, 뭐가 옳은지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았다. 그때 그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지금 이렇지 않을 것 같은 결정적 순간이 몇 번 있었다. 나의 선택의 기준은 유불리가 아니었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선택을 해왔다. 그게 최소한 자존심과 자존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분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두고 사회와 국가를 위한다는 사명감을 운운하는데, 이런 표현은 겸연쩍다. 인생을 살면서 ‘내가 하는 일이 내 재미에 그치지 않고 조금 가치가 있으면 좋겠어’ 하는 정도다.”


최근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은 뭔가.

“내 앞에 있는 시간은 내가 했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생각한다. 시간에 쫓기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왜 했지?’ 생각이 들었다.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사서 보고, 좋은 카페 있으면 가면 되는데 왜 이걸 한다고 해서 끙끙대고 있을까? 하는. 안에서 올라온 답은 ‘감당하기’였다.”


‘감당하기’라.

“‘좋아하는 걸 하려면 감당해야 하는구나’를 깨달았다. 보통 (어떤 일에) ‘관심 있어요’ 하는데, 관심 있고 좋아하는 걸 실제로 하려면 감당해야 하는 것이 많다.”



현재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기성세대가 꼭 해야 할 역할은 뭐라고 보나.

“우리 세대는 내가 잘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측면이 있었다. 시대와 시스템의 덕을 본 거다. 취업 걱정 덜 하고 살 수 있었고. 지금은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우리 세대의 역할은 조금씩 옆 사람을 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생각의 경계가 ‘우리 집’을 넘어서지 않았던 것 같다.”


얼마 전엔 특강 연사로 10대, 20대를 초청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불안해도 내 뜻대로 살겠어’가 분명한 이들이었다. 이런 사람은 우리 사회의 소수다. 처음부터 남의 인생을 살겠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처음엔 자기 길을 걷다가도 남들이 다른 곳을 보면 ‘나는 틀렸나봐’ 하면서 쫓아가고, 금방 열매가 안 나오면 또 쫓아간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불안해도, 흔들려도 자기 길을 꿋꿋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불안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집단주의 문화에서의 불안이다. 대한민국에서 마이웨이를 가기는 미국인 슈미트 씨나 프랑스 폴 씨보다 몇 배 어렵다. 스스로 자각해서 ‘내가 불안하구나. 그래도 내 길을 가야지’ 하지 않으면 어느 틈엔가 이만큼 와 있다. 나중에 ‘어? 나 저기 가려고 했는데’ 하고 뒤늦게 깨달을 확률이 높다.”



‘최인아’는 독서계의 브랜드가 됐다. 목표가 있나.

“회사 다니면서 매년 목표를 정하는 게 이상했다. 목표는 북극성처럼 바라보고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극성으로 가기 위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최인아책방이 바라보는 북극성은.

“이 공간이 생각의 숲이 되는 거다. 책의 저자와 책을 읽은 독자1이 만나고, 독자1이 독자2와 만나서 생각이 넓어지고 깊어지는 생각의 숲이 되고 싶다. 우리는 숲의 깃발을 먼저 들었을 뿐이다. 처음 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독자들과 함께 가꾸어나가고 싶다.”

다음 달부터 ‘최인아의 책갈피’가 연재됩니다.
최인아책방 최인아 대표가 매달 한 권의 책을 엄선해 독자 여러분의 흔들리는 삶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 2018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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