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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은 내 인생의 전부”

평창올림픽 ‘불꽃’의 주인공 이장철 한화 불꽃프로모션팀 차장

글·사진 : 서경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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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에서 개·폐막식 프로젝트매니저(PM)를 맡았던 이장철(45) 한화 불꽃프로모션팀 차장. 그는 평창올림픽 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불꽃’ 얘기만 나오면 눈이 제일 먼저 반짝였다고 한다. 평창올림픽에서 어떤 불꽃을 준비할지는 끝까지 극비였다고 한다.

한화그룹은 평창동계올림픽 공식 스폰서였다. 올림픽 기간 내내 문화행사와 성화 봉송, 개·폐막식, 시상식 등 전반에 걸쳐 협찬했다. 이장철 차장은 그중 개·폐막식 불꽃쇼를 맡았다.


‘월 500만 원 보장, 화학류 관리기사 1급’

이장철 차장이 불꽃에 처음 매료된 건 고등학교 3학년 때다. 진로를 고민하던 때 우연히 TV 뉴스에서 화약을 터트려 건물을 해체하는 장면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고 한다. ‘저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품고 고향인 제주에 있는 국립대 화공학과에 진학했다.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할 무렵에 외환위기가 터졌다. 문 닫는 회사도 많았고, 목표했던 회사는 그해 신입사원을 뽑지 않았다. 그동안 달려온 수고가 눈앞에서 무너지는 듯했다. ‘자포자기’한 그의 눈에 광고 문구가 들어왔다.

‘월 500만 원 보장, 화학류 관리기사 1급 시험’

“학교 게시판에 붙은 입시학원 광고였는데, TV에서 봤던 건물 폭파 장면이 커다랗게 인쇄되어 있었어요. 심장이 쿵쾅거렸습니다. 고교 시절 꿈이 현실로 다가온 거죠.”

이 차장은 그 길로 바로 서울 보라매공원 인근 하숙촌으로 들어갔다. 타지에서의 ‘고시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필기는 항상 합격인데, 면접에서 번번이 떨어졌다. 시간은 흐르고 합격 소식은 들려오는 곳이 없으니 초조해졌다. 주변에서 하나둘 고향으로 내려갔지만, 그는 뚝심으로 버텼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떨어지면 집에 돌아가자’ 하는 심정으로 시험을 치르러 갔던 2000년 3월, 드디어 기사1급 시험에 붙었다. 1년 반 만의 일이었다. 하지만 고시 생활을 마쳤어도 기사 일자리는 쉽게 나지 않았다.

어깨가 축 처진 그에게 손을 뻗은 이는 대학 시절 담당 교수였다. 교수 연구실에서 일했던 그를 눈여겨본 교수가 대기업 신입사원 모집에 추천서를 써줬다.

“지방대학 출신인데 되겠나 하면서도 놀면 뭐하나 싶어 원서 접수를 했죠. 부모님께는 잠깐 서울 놀러 간다고 말씀드렸죠. 정말 1%도 기대 안 했는데, 덜컥 합격했습니다.”

2000년 6월, 이장철 차장은 꿈을 향해 사회로의 첫발을 내디뎠다.

입사 동기 20여 명 중에 그는 인천에 있는 한화연구소로 발령받았다. 방산 분야를 연구하는데 화약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요청이 있었다고 한다. 화학류 관리기사 1급 자격증이 꽤 쓸모가 있었다. 이 차장이 주특기를 살린 분야는 프레젠테이션이었다. 당시에 플래시(애니메이션 제작 소프트웨어)가 처음 소개될 때였는데, 무기가 어떻게 운용되어 화약이 터지는지를 애니메이션 플래시로 만들어 시뮬레이션으로 보여줬더니 고객사에서 감탄했고, 주위에서 그를 믿어주기 시작했다.


다시 봐도 뭉클한 월드컵 개막식 불꽃쇼


연구소에서 1년 넘게 근무하던 무렵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2000년 10월, 한화가 처음으로 서울세계불꽃축제를 주최했다. 불꽃을 보러 가는 길이 막혀 원효대교에 멈춘 채로 폭죽이 터지는 장면을 지켜보는데, ‘내가 꿈꾸던 길이 여기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심장이 요동쳤다.

“연구소에서 개발했던 게 박격포인데, 불꽃과 똑같은 원리예요. 이걸 사람을 향해 쏘면 무기인 거고, 하늘을 향해 쏘면 불꽃이 되는 거죠.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당장 인사팀으로 달려가 연화사업팀, 지금의 불꽃프로모션팀에 가고 싶다고 했죠. 그로부터 1년 만에 드디어 자리가 생겼어요. 입사하고 처음 본사로 들어간 거죠.”

막상 팀에 발령받아 왔는데 그에게 맡겨진 일은 불꽃이 아닌 선박의 ‘신호기’ 사업이었다. 당장이라도 불꽃을 만들 줄 알았지만, 준비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는 고요한 바다에 핑크빛 신호탄이 터지기만을 기다렸다. 기회는 의외의 순간에 찾아왔다.

“2002년 월드컵이 열리던 기간에 회사가 서울세계불꽃축제를 진행했어요. 그러다 보니 불꽃 팀 모든 인원이 그쪽에 쏠렸죠. 일손이 부족해 제가 월드컵 전야제와 개막식 불꽃 행사에 투입됐습니다. 불꽃에 대해 하나도 몰랐던 저에게 중책이 주어진 거죠.”


이 차장의 가슴에 불꽃보다 더 뜨거운 열정이 솟아올랐다. 집에도 가지 않고 사우나에서 쪽잠을 자며 밤새 준비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기억하시나요. 당시 상암 월드컵경기장 지붕 위로 동그랗게 피어오른 불꽃을요. 특수 제작된 튜브에 화약을 담아 지붕을 두르고 한꺼번에 터트린 거죠. 그날 불꽃은 동종 업계에서도 화제가 됐습니다. 애국가가 흐를 때 그 장면이 나오는데 볼 때마다 뿌듯하고 뭉클해요.”


모든 작업에는 물론 앞서서 이끌어준 선배들의 도움이 있었다. 월드컵 개막식을 계기로 그는 히딩크 감독처럼 ‘올 라운드 플레이어’로 달렸다. 신호기를 맡고 있었지만 불꽃이 필요한 곳이라면 언제든지 달려갔다.

그런 노력의 결과 그에게 ‘제주들불축제’ 총책임 자리가 주어졌고 10여 년 동안 문화행사를 맡아 했다.

“1999년에 한화가 제주도 들불축제의 불꽃을 담당하며 연을 맺었어요. 제주들불축제는 오름 하나를 통째로 불태우는 게 하이라이트인데, 그 전까지는 사람이 직접 횃불을 들고 가서 불을 붙였죠. 우리 회사가 축제의 모든 행사를 맡으면서부터는 특수 튜브로 오름을 한 바퀴 두르고 화약을 터트려 불을 붙이는 방식으로 바꿨습니다. 그때 얻은 아이디어를 월드컵 때 시도한 거죠.”


‘불꽃쟁이’들은 새로운 시도가 성공했을 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한다. ‘마약’ 같은 중독은 그를 더 불타오르게 했다. 2002년 월드컵을 신호탄으로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 부산 APEC 정상회담, 여수엑스포, 인천아시안게임 등 굵직한 국가행사와 제주들불축제, 부산불꽃축제, 포항국제불빛축제, 서울세계불꽃축제 등 전국에서 열리는 주요 불꽃축제 현장에 그가 있었다.

이 차장은 이제 불꽃에도 디자인이 필요하고 콘텐츠 개념을 입힐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서울세계불꽃축제의 이전과 이후의 차이라면 불꽃이 국경일 행사 피날레를 장식하는 데서 더 나아가 하나의 메인 행사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에요. 불꽃 ‘놀이’를 ‘축제’로 명명하며 하나의 예술문화 콘텐츠로 승화시켰죠. 이전까지의 불꽃이 단순히 기술이었다면 이제는 예술이고 문화입니다. 나폴레옹도 대포 소리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하죠. 가끔 가상현실(VR)로 불꽃을 담겠다는 의뢰가 들어오는데, 사람들에게 그 느낌을 전할 수 있을까 의문입니다. 소리와 음압, 눈앞에 펼쳐지는 환상적인 불꽃 그 모든 것이 합쳐져야 심장 안에서 살아나니까요. 불꽃은 순간, 찰나의 빛으로 발하지만 그 빛은 마음속에 오래도록 여운을 남깁니다. 불꽃은 이제 저에게 ‘중독’이자 ‘인생 전부’입니다.”
  • 2018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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