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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와’의 왕이 되면 모든 페르가나를 지배한다

동서문명의 십자로, 중앙아시아를 가다 ⑥ 황금 세공의 길목, 쿠와

말을 탄 채 반갑게 인사하는 페르가나 소년들.
페르가나는 우즈베키스탄 서쪽에 있는 그리 크지 않은 도시다. 시내를 벗어나면 곧바로 초원지대다. 이따금 운이 좋으면 말 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고질적인 걱정거리가 있다. 이곳이 지진 다발 지역이라는 것이다. 이 지역은 약 100만 년 전 인도양의 일부가 융기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하지만 페르가나 계곡의 산들은 아직도 힘이 넘치는 청년기다. 이런 까닭에 지진이 자주 발생한다. 그래서인지 페르가나에는 고층건물이 없다.

“진동이 오는 듯한 느낌인데?”

“흔들릴 정도 아니면 상관없어요. 이곳은 매일 지진이 있어요.”

“매일? 이곳 사람들은 지진 걱정에 살기가 힘들겠다.”

“하루에 지진이 38번이나 난 적도 있어요.”

“세상에나! 이곳에서 어디 살고 싶겠어?”

“그래서 돈 벌어서 다 떠나고 싶어 해요.”

무서운 지진도 매일 접하면 무감각해지는 법인가. 페르가나의 사람들은 오늘도 지진을 옆에 달고 일상의 삶에 전념한다. 이들의 가난한 삶은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바쁘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지진에 무감각한 것이 아니라 ‘지진’이라는 업보를 하나 더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다른 도시로의 이사는 남다른 의미다. 이는 곧 업보로부터의 해방이요, 기지개를 켜고 생활전선을 달릴 수 있는 행복함이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 전통 문양의 비단 옷을 입고 있는 소녀.
현재의 페르가나에서 북쪽으로 20km 떨어진 곳에는 마르길란시가 있다. 이곳은 고대 페르가나의 중심 지역이었다. 주변을 흐르는 시르다리야가 풍요로운 오아시스를 만들어 주었고, 사막을 건너온 실크로드 상인들은 이곳에서 상업과 휴식을 병행하였다. 이 도시는 10세기부터 시작된 양잠과 견직물로 유명하다. 이러한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지금도 우즈베키스탄 최대의 견직물 공장이 있다. 특히 이곳에서 생산하는 비단은 빛에 따라 색이 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세로줄 무늬 비단은 중앙아시아의 전통 문양이기도 한데 색채의 화려함으로 인해 더욱 이국적이고 아름답게 보인다.

비단은 고대 중국에서 생산하는 귀중품이었다. 가볍고 부드러우며 광택과 염색성이 뛰어난 특성은 순식간에 서구인들을 사로잡았다. 비단은 서역 국가들과의 교역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략 물품이자 무기가 되었다. 특히 한나라 때의 비단은 금값과 맞먹을 정도였는데 ‘한금(漢錦)’으로 불리며 서역에 본격적으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로마에서는 귀부인들이 앞다퉈 비단옷을 입었다. 그 때문에 비단은 황금과 똑같은 기준으로 거래되었다. 비단 수입이 극에 달해 국고가 위태로워지자 로마 황제는 비단 사용을 금지하는 포고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로마는 비단 수입에 얼마나 많은 국고를 탕진하였을까. 로마제국의 정치가이자 학자인 플리니우스는 “로마인들은 세리카(중국)의 비단을 사기 위해 해마다 1억 세스테르스나 되는 은화를 지급하고 있다. 로마 귀부인의 치장을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고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당시 노동자의 일당은 4세스테르스였으니 실로 어마어마한 국고가 매년 중국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비단은 중세 교역 물품 중에서도 최상의 상품이었기에 서로가 비단 제작의 비밀을 알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중국은 이를 알고 철저히 봉쇄했다. 하지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했던가. 일급비밀은 이민족의 군주에게 출가한 화번공주에 의해 유출되고 만다. 공주가 비단옷과 사치스러운 생활을 계속하고자 뽕나무 씨앗과 누에 애벌레를 머리 장식의 안감에 숨겨 가지고 가는 데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중국의 비단은 그 독점권을 상실하고 비단 제조기술은 서방으로 전해지게 되었다. 고선지 장군이 탈라스전투에서 패배하여 종이를 내어준 것과 함께 중국으로서는 치명적인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그 결과, 이후의 실크로드 무역의 주도권은 서양으로 넘어가게 된다.

7세기 중엽, 중국은 당나라의 시대였다. 당나라는 세계적인 제국답게 다문화 정책을 폈다. 수십 년간의 태평성세는 수도인 장안을 세계적인 도시로 만들었다. 서역의 상인들은 물론 각국의 인재들도 장안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대당제국의 뛰어난 선진문물을 익히고자 서로가 앞다퉈 유학하였다. 당과 관계가 돈독하였던 신라의 많은 유학승들도 장안으로 갔다. 그들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승려가 바로 혜초다.

“다시 강국에서 동쪽은 발하나국(페르가나)인데, 왕이 두 사람 있다. 시르다리야라는 큰 강이 한복판을 지나 서쪽으로 흘러간다. 강 남쪽에 있는 왕은 대식에 예속되어 있고, 강 북쪽에 있는 왕은 돌궐의 관할하에 있다. … (중략) … 언어는 각별하여 다른 나라와 같지 않으며, 불법을 알지 못한다. 절도 없고 승려도 없다.”

8세기 초, 중국 유학을 마친 혜초는 천축국인 인도를 순례한다. 그리고 파미르고원을 넘어 장안으로 되돌아가는 길에 이곳 페르가나 지역을 지난다. 혜초는 인도 순례를 마치고 《왕오천축국전》을 지었다. 이 책은 8세기 페르가나를 비롯하여 중앙아시아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알려주고 있다.

중앙아시아는 8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시르다리야를 경계로 남쪽은 아랍의 우마이야왕조가 있었고 북쪽은 서돌궐의 돌기시가 지배하였다. 두 지역 모두 불교를 믿지 않았다. 혜초의 기록은 이를 잘 뒷받침해준다. 그런데 혜초는 이러한 지역에도 불교국가가 있다는 놀라운 정보도 알려준다.

“발하나국 동쪽에 나라가 하나 있는데 골탈국이라고 부른다. 이 나라 왕은 원래 돌궐 종족 출신이고, 이곳 백성의 반은 호족이고 반은 돌궐족이다. … (중략) … 왕과 수령, 백성들은 삼보(三寶)를 믿는다. 절과 승려가 있으며 소승법이 행해진다.”

혜초가 알려준 불교국가 골탈국은 어디일까. 페르가나에서 동쪽으로 40km 떨어진 곳에 작은 도시 ‘쿠와(Kuwa)’가 있다. 이곳에는 불교사원이 많고 유물도 다량 출토되었다. 이곳이 혜초가 이야기한 ‘골탈국’일 가능성이 높다.

페르가나 시내에서 만난 고려인이 운영하는 음식점.
쿠와는 소그드어로 ‘꽃 핀 거리’라는 뜻이다. 페르가나 계곡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시르다리야 북부지역의 중심이 아크쉬켄트(Aksikent)라면 남부지역의 중심은 쿠와였다. 특히 쿠와는 수많은 실크로드 중 황금세공 교역이 이뤄지는 길목에 위치한다. 그래서 당시에는 ‘쿠와의 왕이 되면 모든 페르가나를 지배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실크로드 무역의 중추는 소그드인들이 담당했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이익이 남는다면 어느 곳이든지 마다하지 않았다. 소그드인들의 이러한 정신은 그들만의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탄탄한 중개무역을 구축하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소그드어가 실크로드 무역의 공용어가 되었다. 소그드인들이 실질적으로 실크로드 무역을 장악한 것이다.

소그드인들의 종교는 개방적이었다. 불교, 마니교, 조로아스터교 등 다양한 종교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실크로드무역에서 필수적인 것이었다. 상인정신이 우선시되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종교도 무역의 수단인 셈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이러한 종교관 덕분에 종교의 전파가 훨씬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중앙아시아에 불교가 성행하고, 중국에 마니교와 조로아스터교가 전해진 것도 이러함 때문이다.

쿠와로 가기 전에 페르가나 시내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고려인 4세가 운영하는 식당이 있다고 하여 찾아갔다. 식당 이름이 ‘옹상’이었다.

“옹상이 무슨 뜻이지?”

“희망을 나타내는 ‘꿈’이라는 의미인데요.”

“그럼, ‘몽상’이라는 말을 쓴 것 같은데. 꿈에도 갈 수 없는 조국을 생각한다는 뜻인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랜 세월 고국을 떠나야 했던 고려인들. 그들이 잊지 않으려고 애쓰며 사용하는 언어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는 애련함이 가슴을 적신다. 80년이란 세월이 만든 이치가 이러함에 수백 년이 지난 역사의 이치를 파악하는 것은 또 얼마나 애잔한 일이던가.

쿠와로 가는 길에는 도시 이름에 어울리게 도로변에 꽃담장이 듬성듬성 있다. 도로포장도 비교적 잘 되어 있어 페르가나 시내에서 30분이면 충분하다. 쿠와 유적지에 도착하니 유적지는 보이지 않고 동상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10세기에 이곳에서 태어난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아흐마드 알 파르고니이다. 그는 일식과 수심을 측정하는 기계를 만들고 지구가 둥글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이러한 업적은 11세기에 라틴어로 번역되어 유럽에 알려졌다. 13세기에는 세계의 주요 언어로 번역되어 소개될 정도였다고 한다.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오도 파르고니의 주장에서 힘을 얻어 이를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이리라.

옛날부터 중앙아시아 지역은 천문학과 수학 분야에서 많은 위인을 배출하였다. 이는 아마도 실크로드무역과 관련이 깊을 것이다. 천문학은 카라반을 이끌고 밤낮으로 오랜 기간을 여행하기 위해서 필요하였고, 수학은 각국의 물품들을 거래하기 위한 수치와 도량형의 계산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전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파르고니를 참배하러 온 신혼부부.
우즈베크어로 페르가나는 ‘파르고나’라고 한다. 파르고니의 이름을 그대로 도시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업적은 그 자체가 이곳 우즈베크인들의 자긍심인 까닭이다.

“결혼식을 올린 신혼부부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이곳에서 기념촬영을 합니다.”

“파르고니를 엄청 좋아하는구나.”

“그렇기도 하지만, 정작 다른 의미도 있어요.”

“파르고니처럼 뛰어난 2세를 얻기 위해서?”

“네, 맞아요. 자녀들이 모두 훌륭한 위인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지요.”

파르고니 동상이 있는 광장을 넘어서니 쿠와 유적지가 펼쳐진다. 그러나 쿠와 유적지는 폐허인 채 잡초만 무성하다. 유적지 한 귀퉁이에서는 젊은 고고학도들이 비지땀을 흘리며 발굴 작업이 한창이다. 어떤 유물이 나왔는지 궁금했다.

“이곳 쿠와에서 바미안 대불 다음으로 큰 불상이 발굴되었지요.”


바미안 대불은 아프가니스탄에 있다. 높이가 55m의 거대한 불상이다. 2002년 탈레반 정권이 파괴하기 전까지 세계문화유산이었다. 이곳에서 발굴된 것은 불두(佛頭)인데 크기가 93cm이다. 이를 바탕으로 계산해본 결과 불상은 최소 4m가 넘을 것이라고 한다. 인류의 공동유산인 바미안 대불이 사라진 지금, 이곳에서 출토된 불교 유적은 더없이 소중하다 하겠다. 그래서 쿠와에서 출토된 불교 유적은 이곳 박물관에서 보관하지 않고 수도인 타슈켄트의 국립역사박물관에서 보관·전시하고 있다.

쿠와는 기원전 1세기경에 도시가 형성되고 5세기에 번성하였다. 혜초 스님이 다녀간 8세기 초에는 불교가 성행하였다. 당시, 이 넓은 들판은 불교사원으로 촘촘하였을 텐데 지금은 이름 모를 풀들만 그날을 되새기려는 듯 내 발목을 부여잡는다. 번성했던 유적은 흔적 없고 먼지뿐인 폐허에서 혜초를 떠올린다. 이 시대에 혜초가 이곳을 지난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달밤에 고향 길을 바라보니
뜬구름만 너울너울 휘돌아 가네.
가는 편에 편지 한 통 부치려 하지만
바람은 급하고 화답은 없구나.
내 나라는 하늘가 북쪽에 있는데
몸은 남의 나라 서쪽 모퉁이에 있네.
따뜻한 남쪽은 기러기마저 없으니
누가 내 소식 전하러 계림으로 날아가리.


8세기 후반, 아랍의 이슬람교도들이 이곳을 점령했다. 불교사원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일 것이다. 그들이 건설한 이슬람 건축물 역시 칭기즈칸의 침략 때 폐허가 되었다. 모든 것은 시간적 차이는 있을지언정 언제나 자연으로 돌아간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곧 진리를 터득하는 것이요 세상사의 사필귀정인 것이다.
  • 2018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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