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이종분 뮤즈챔버오케스트라 악장

스스로 기획하는 무대의 즐거움

글 : 김미량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피아노 등 클래식 연주가와 작곡가 10명으로 구성된 뮤즈챔버오케스트라는 협동조합 음악단체다. 필요한 클래식 무대의 기회를 직접 만들고, 스스로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모인 음악가들은 변두리의 작은 초등학교를 방문하고, 길거리 축제를 찾아다니며 클래식 음악을 소개하고 있다. 대중과 소통하는 클래식 음악을 꿈꾸는 뮤즈챔버오케스트라의 리더 이종분 악장과 만났다.

사진제공 : 뮤즈챔버오케스트라
뮤즈챔버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음악인을 위한 음악’을 꿈꾸며 모인 협동조합원이다. (가운데 이종분 악장)
대중과 소통하는 클래식 음악

“우리(바이올린)가 먼저 들어가고 나중에 (피아노가) 들어오는 게 낫지 않아?”

“음…, 원래대로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함께 들어가는 게 더 좋아요.”

“그래? 그럼 다시 맞춰봅시다.”

뮤즈챔버오케스트라(이하 뮤즈)의 리허설이 진행되는 동안 이종분 악장(단장 겸임)은 수시로 연주의 구성에 대해 단원들의 의견을 묻고 경청했다. 조합원 모두의 의견을 평등하게 반영하는 민주적 의사결정이 협동조합 운영의 기본이지만, 일반적으로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나 악장의 지시는 그대로 따르는 게 관례인 만큼 뮤즈의 연습실 풍경은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이종분 악장은 “오케스트라를 협동조합으로 운영하며 가장 좋은 점은 바로 모두가 주체가 됨으로써 존중받는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뮤즈의 구성원들은 지시에 따라 단순히 연주만 하지 않는다. 단원 모두가 직접 프로그램의 기획에 참여한다.

“연주가 자신이 직접 기획한 프로그램에 따라 연습하고, 관객과 소통할 때 느끼는 정서적 만족감은 정말 대단해요. 자율성과 창의성이야말로 예술을 하는 기쁨의 핵심 요소거든요.”

하지만 클래식 연주를 업(業)으로 삼은 사람들에게 자율성과 창의성을 보장받으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정부 및 지자체 산하 단체에 소속된 연주가들을 제외한 다수의 클래식 연주가들은 무대에서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잡는 것조차 쉽지 않다.


굵직한 음악단체 몇 곳을 제외한 대부분의 소규모 단체는 꾸준히 공연을 할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는다. 비정기적인 프로그램에 필요한 연주가를 모집해 공연을 하고 연주비를 지불하면 다시 흩어지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이종분 악장의 말대로 “비정규직도 아닌 아르바이트와 다름없는” 근로 환경에 처해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많은 연주가들이 생계를 위해 개인 레슨을 선택하지만, 정식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해 근로자에게 주어지는 제도적 지원을 받기도 어렵다.

뮤즈는 바로 이런 현실적 고민에서 출발했다. 외부의 도움 없이 클래식 연주가들이 필요한 무대를 직접 만들면 지속적인 음악활동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협동조합 탄생의 배경이다. 이 과정에서 산파 역할을 한 사람은 뮤즈의 구심점 우영제 이사장이다. 이종분 악장도 그의 제안으로 협동조합 발기인에 이름을 올렸다. “음악인으로서, 선배로서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도전” 이라는 생각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이종분 악장은 바이올리니스트로서 탄탄대로를 걸어왔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국립음대와 그라츠 국립음대, 러시아 모스크바 예술종합학교에서 학위를 받고, 부산, 대전, 청주 등 시립교향악단에서 수석 및 악장을 역임했다. 하지만 그는 뮤즈를 이끌어가기 위해 자신의 이력과 나이를 내려놓았다.

차 없는 거리 공연.
이사장과 자신을 포함한 모든 단원이 ‘동일한’ 법정 최저임금을 받고, 일정 시간 봉사연주를 해야 하는 원칙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는 ‘악장’이 갖고 있는 권위적 이미지에서 내려오기 위해 스스로 명함에 악장 대신 ‘리더’라는 직함을 새겨 넣었다.

뮤즈의 단원 모집에 오디션도 없애고, 오직 인터뷰에만 집중했다. 이력과 실력보다 뮤즈의 창립정신과 함께할 수 있는 마음을 확인하는 일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오케스트라가 생긴다는 소식에 많은 인재가 찾아왔지만, 그들의 대부분은 발길을 돌렸다. 2014년 9월 협동조합 뮤즈를 설립한 후 6개월 동안 오케스트라의 단원이자 조합원으로 참여할 연주가들을 찾는 여정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2015년 4월, 수십 년 경력의 선배들과 이제 막 음대를 졸업한 까마득한 후배들로 구성된 뮤즈 챔버오케스트라가 탄생했다.


음악인이 주체가 되어 음악만 생각하기로

찾아가는 음악회.
“클래식 연주가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적은 이유는 대중이 찾지 않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은 클래식이 어렵다고 해요. 하지만 사실은 낯설다는 표현이 정확합니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클래식 음악을 경험할 기회가 없으니 잘 모르는 게 당연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찾지 않게 되죠. 결국 클래식 음악 수요를 확대하려면 교육이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뮤즈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뮤즈의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은 초등학교를 직접 찾아가 공연하는 ‘빈 아파트에 사는 빈악파들’이다. 오스트리아 빈을 중심으로 창작활동을 한 작곡가들을 총칭하는 빈악파 중 한국에서 인지도가 높은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대표 곡들을 시와 해설을 곁들여 선보이는데, 학생과 교사들의 반응이 폭발적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도 지금처럼 안정되기까지는 적잖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지난해 처음 대전교육청의 사업으로 인정받기 위해 신발이 닳도록 찾아다니며 프레젠테이션을 했고, 어렵게 시범 공연의 기회를 얻었지만 곧 메르스 확산으로 공연 불가 방침이 떨어졌다. 그렇게 마음을 졸이다 예산 심사 기한을 20여 일 앞두고 겨우 허가를 받아 10곳의 학교를 이틀에 한 번꼴로 찾아다니며 공연을 강행했다. 다행히 교육청과 학교, 학생들의 평가가 기대 이상으로 높았고, 극적으로 예산을 지원받아 올해 공식 프로그램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실내악의 밤’ 공연.
그러나 학교를 대상으로 하는 ‘찾아가는 연주회’와 정기공연, 크고 작은 이벤트 공연 등으로는 늘 살림이 빠듯할 수밖에 없다.

언젠가 좋은 프로그램을 기획했는데, 돈이 없어서 공연을 할 수 없는 상황과 맞닥뜨린 적이 있다. 순간 너무 아쉬워서 그만 “투자를 받으면 해결될 텐데…” 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와 버렸다. 뮤즈의 리더인 자신이 그런 심정이니 단원들은 오죽했을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지도 못하고 눈치만 살피는데, “외부의 지원을 받게 되면 당장 살림살이는 나아지겠지만 결국 지금까지 반복해온 문제들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우 이사장의 한마디가 깊게 다가왔다. 그날 단원들은 오랜 시간 토론을 이어갔고, “우리가 협동조합을 하는 이유를 잊지 말자”며 다시 서로를 토닥였다.

구청 정오음악회.
“음악인이 주체가 되어 음악만을 생각하자는 약속은 뮤즈를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다. 뮤즈는 이 약속을 위해 조합원의 자격을 ‘음악인’으로 한정하고 있다. 혹여 비음악인이 뮤즈의 설립 목적에 맞지 않은 의견을 내고, 여기에 다수가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뮤즈는 향후 공공기관의 유휴시설을 이용한 상설공연을 계획 중이다. 1만원 정도의 비용으로 3~4인 가족이 부담 없이 클래식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인데, 단원들의 기대가 크다.

“클래식 고유의 틀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대중이 듣지 않으면 우리가 존재할 이유가 없죠. 얼마 전 김수희의 ‘애모’를 연주한 적이 있어요. 처음 해보는 시도였는데, 관객들이 정말 좋아하더군요. 저희도 ‘이렇게 아름다운 멜로디를 그동안 왜 연주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죠. 무대는 대중 속에 있어야 합니다. 악기를 들고 대중이 있는 곳에 서면 그곳이 바로 공연장이죠. 클래식을 부담스러워하는 인식의 장벽을 허물어야 기회가 생깁니다. 그건 우리 음악인들이 직접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 2016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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