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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할 때 누구보다 예쁜 배우”

영화 〈부산행〉 정유미

‘한국영화에 없던 얼굴’, 배우에게 이보다 좋은 칭찬은 없다. 단편영화 〈폴라로이드 작동법〉으로 ‘전에 없던 얼굴’을 보여준 정유미는 이후 여느 배우와도 겹치지 않는 행보를 보였다. 혼자 돋보이려 애쓰지 않으면서도 연기할 때는 누구보다 예쁜, 한국영화가 사랑하는 배우 정유미를 만났다.

사진제공 : NEW
그러니까 좀비 영화에 정유미가 출연한 게 아니라, 정유미의 일상 속에 좀비가 침투한 기분이다. 한국형 재난 블록버스터 무비, 제69회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돼 기립 박수를 받은 작품. 〈부산행〉에 대한 상찬은 차고 넘친다. 막상 영화를 보니 거기에는 ‘친정에 가는 느낌으로’ 부산행 KTX에 올랐다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린 한 임신부가 있다.

그러고 보면 영화나 드라마 속의 정유미는 줄곧 그랬다. 〈로맨스가 필요해〉 〈연애의 발견〉 등으로 로코퀸, ‘정블리’라 불릴 때조차 정유미가 로맨스 물에 출연한 게 아니라 사랑에 빠진 한 여자를 우연히 만나 관찰하게 된 느낌이었다. 영상과 일상의 괴리를 최소화할 줄 아는 배우는 인터뷰에도 그렇게 임했다. 홍보를 위해 만난 게 아니라 대화를 위해 만난 오랜 친구 같은 느낌.


일상으로의 초대

정유미는 언론배급시사회에서 영화를 보지 않는다. 관계자, 동료들과 함께 영화를 보면 제대로 볼 수 없을 것 같아 그런다. 한 명의 관객으로 영화관에 잠입(?)해 영화를 보기 위해 그 역시 개봉을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다. 영화관에는 관객으로, 촬영장에서는 배우로 있고 싶다. 그가 아역배우들과의 연기를 좋아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는 영화 〈부산행〉을 선택한 이유로 “김수안의 전작을 인상 깊게 보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도가니〉에서 만난 아이들, 〈맨홀〉에 함께 출연한 김새론, 그리고 〈부산행〉의 김수안은 그에게 소중한 동료이자 스승이다.

“저는 이미 어른이 되어버려서, 아이처럼 그렇게 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잖아요. 단순하게 살고 싶어도 단순하게 안 되고요. 영화나 드라마로 그런 순수한 연기를 봐도 감격스러운데 직접 같이 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어요. 이번 영화는 장르물이라 정서적으로 상대와 교감할 수 있는 장면은 많지 않은데 수안이랑 그게 되더라고요. 마지막 장면에서 저희 둘이 같이 걷거든요. 카메라는 멀리서 비추기 때문에 저희가 뭘 하는지는 잘 보이지 않아요. 그때 수안이가 제 손을 꼬옥 잡아주는데 그 순간 처음으로 이 영화를 찍으면서 ‘뭉클’ 했어요.”

정유미가 연기한 성경은 만삭의 임신부다. 작품에 등장한 남자 배역들이 서울에서 부산을 향해 달리면서 변화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여자 배역들은 한결같이 성숙한 모습을 보인다. 이들은 ‘모든 생명은 존엄하다’는 단단한 믿음으로 연대한다.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라면 최선을 다해 돕고,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기꺼이 도움을 받는다.

“만삭 설정에 대한 부담은 하나도 없었어요.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저에 대한 오해가 가끔 있어서예요. 어떤 작품은 제가 아이 엄마 역할이라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실은 그 이유가 아니었거든요. 그걸 어떻게 자연스럽게 표현하는가가 제 일이지, 그걸로 제 이미지를 어떻게 만드는 게 제 일은 아니에요. 평상시라면 곤란하겠지만 영화 안에서 ‘아줌마’라고 불리는 건 괜찮아요(웃음).”

오히려 그의 걱정은 ‘성경’이라는 이 깊은 인물을 잘 담아낼 수 있을 것인가였다.

“저는 (성경 같은) 그런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런 캐릭터를 통해 배우게 되는 게 참 많아요. 이런 멋있는 인물을 만나서 저를 돌아보게 되면 너무 좋아요. 〈도가니〉나 〈부산행〉에서처럼 좋은 인물을 연기하고 나면 제 못난 모습에 대해 알게 되고 그만큼 성장하게 돼요.”

정유미는 생각이 많다. 현장에서는 그 생각을 끊고 현장에 몰입하는 게 그의 숙제다. 촬영장에서 그는 밥을 잘 먹지 않는다. 대신 마이구미류의 젤리를 먹는다. 적당히 허기진, 갈급한 상태로 단순해지려는 노력이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면 영화에 몰입을 못 해요. 제 정서가 오히려 영화에 방해를 줄 수도 있거든요. 영화의 정서와 제 정서를 잘 구분하려고 노력하죠. 제일 중요한 건 ‘오늘 내가 여기서 해야 할 일을 잘 아는 것’이니까요.”

〈부산행〉처럼 많은 주연 배우가 등장하는 영화에서는 그 구분이 더 중요하다. 혼자 돋보이려는 노력보다 함께 사는 노력이 더욱 요구된다. 그 하모니를 이루는 법도 현장에서 배웠다.

“주연 배우가 많았던 영화로 〈히말라야〉가 있었어요. 〈히말라야〉는 제가 영화를 오랜만에 찍기도 했고, 주인공이 아니어서 여유가 있었어요. 몇 회차 안 되지만 선배님들 연기하는 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귀한 경험이었어요. 그 열악한 상황에서 황정민 선배님이 연기자로서의 책임감과 주연으로서의 몫을 감당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고요. 이런 선배들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참 충만하다는 느낌과 따라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건 이번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아내를 자기 목숨보다 사랑하는 남편 역의 마동석과의 호흡은 어느 로코물 부럽지 않았다. 마동석은 “정유미는 원래 예쁘지만, 연기할 때 더 예쁘다”면서 아내바보(?)의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마동석 선배에게는 제가 어마어마하게 좋은 에너지를 받았어요. 그 덩치만큼이나요. 저희 둘이 끈끈해 보였다면 그건 다 남편 덕분이었다고 생각해요. 굉장히 섬세하더라고요. 그 짧은 순간에 상대 배우와 깊은 호흡을 나눠요. 저는 연기한 지 10년이 넘어가는 데도 여전히 첫 촬영, 첫 호흡이 너무 떨리거든요.”


정유미가 걸어온 꽃길


어떤 작품은 정유미에게 위로를 주고, 어떤 작품은 질문을 던진다. 드라마 〈직장의 신〉이 전자였다면, 〈부산행〉은 후자다.

“모든 작품이 제가 위로받기 위해 선택하는 건 아니지만 〈직장의 신〉은 그런 느낌이었어요. 당시 〈직장의 신〉의 비정규직 정주리는 꼭 저 같았어요. 연기에 대해 고민이 많은 때였는데, 김혜수 선배를 만난 것도 축복이었죠. 모든 배우와 스태프가 좋았어요. 한 작품에서 2~3명이 합이 맞을 수는 있지만 10여 명이 그러기는 어렵거든요.”

배우로서의 변곡점을 잘 넘은 덕분에 다음 작품부터는 흔들림 없이 걸을 수 있게 됐다. 어디쯤 왔는지, 얼마만큼 가야 하는지를 살펴보면서.

“〈부산행〉을 찍으면서 나는 어떤 존재일까, 나는 어디쯤 왔을까를 생각했어요. 공유라는 배우를 보는 것도, 마동석 선배를 보는 것도, 연극계의 대모이신 예수정 선배님과 함께한 것도, 이제 막 떠오르는 최우식, 안소희 배우를 본 것도, 그리고 수안이와 함께 호흡을 맞춘 것도 제게는 다 배움이었어요.”

지나온 길과 앞으로 가야 할 길을 현장에서 본다. 그의 시작이었던 단편영화 〈폴라로이드 작동법〉(2004), 이 한 편의 영화가 지금의 정유미를 만들었다. 그가 일부러 문을 두드리지 않아도, 그 작품에서 정유미라는 배우에게 좋은 느낌을 받은 이들이 그를 찾아왔다. 그는 그 이전에 ‘한국영화에 없던 얼굴’이었으니까.

“대학교 때 얼떨결에 데뷔를 하면서 스스로 ‘준비가 되어 있나’ 늘 질문했어요. 제 부족함을 저는 너무 잘 아니까요. 그래서 저는 제가 꽃길만 걸었다고 생각해요. 흥행과 상관없이요. 데뷔도 좋은 영화로 했고, 그다음 작품들도 좋았어요. 작품이 저를 힘들게 한 적은 없어요. ‘한순간에 빵’ 뜨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한 만큼 조금씩 알아보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도 좋아요. 제가 컨트롤할 수 있는 만큼씩 알아봐주시는 것 같아요.”

차기작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 인간 정유미를 충만하게 채우는 게 그의 계획이다. 그중에는 몰래 극장에 들어가 〈부산행〉을 관람하는 것도 있다. 혹시나 어느 영화관에서 그를 보게 되더라도 놀라지 말자. 정유미의 일상은, 항상 영화와 연결되어 있으니까.
  • 2016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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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ㅁㅇㄹㄴ   ( 2016-07-24 ) 찬성 : 36 반대 : 27
나는 이 배우가 참 좋더라~ 기사 잘 봤습니다. 인터뷰이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담겨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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