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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직하면서 섬세한 ‘아재 파탈’ 배우 조진웅

주연을 맡았지만 들뜨지 않는다. ‘아재파탈’의 선봉장에 올랐는데 싱긋 한 번 웃을 뿐이다. 잠시 지나가는 인기보다 오래 가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 그 우직함과 섬세함이 〈시그널〉의 이재한 형사와 〈사냥〉의 쌍둥이 동근, 명근으로 나타났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연기하는 배우 조진웅을 만났다.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대학까지 나왔다. 학교와 극단생활을 합쳐 10년 정도 연극을 하고 나니, 서울로 올라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무대에 오르던 선배가 물었다. 지난 10년 동안 극단생활이 너에게 남긴 것은 무엇이냐고. 그는 “사람이라는 냄새를 가지고 가는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부산에서 서울로, 연극에서 영상으로. 2004년 인생의 변곡점이 된 〈말죽거리 잔혹사〉를 찍었다. 스태프에게 전화가 왔다. 엔딩크레디트에 어떤 이름을 올리겠냐고 물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미 이름이 있는데, 어떤 이름을 올리겠느냐니. 마침 아버지가 집에 계셨다. 혹시 아버지의 이름을 올려도 될지 물었다. 그의 이름은 조원준, 아버지의 이름은 조진웅이다. 아버지는 “하다하다 집에서 별걸 다 갖고 간다”며 웃었다. 그때부터였다. 그가 ‘아버지의 이름에 먹칠하지 않는’ 배우가 되리라고 다짐한 것은. 그 후 숱한 작품을 찍었다. 대부분은 조직의 일원이었다. 커다란 덩치를 가진, 걸쭉한 사투리 구사가 가능한 그에게 찾아온 작품은 한정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연기는 한정적이지 않았다. 〈야수〉의 구룡파 조직원일 때, 〈비열한 거리〉의 영필일 때, 〈폭력서클〉의 홍규일 때 그는 모두 다른 사람이었다. 비로소 2012년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작품을 만났고, 영화계에서 ‘무섭게 연기하는 배우가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절대 현장에 가지 않는다”는 이 배우는 동료들과 왁자하게 떠들다가도 홀연 다른 사람이 되어 카메라 안을 성큼성큼 누볐다. 동물적인 감각과 스마트한 인간미를 고루 갖춘 사람, 세상 둘도 없는 상남자인 것 같지만 혼자 영화관에 앉아 눈물을 쏟으며 첫사랑을 떠나 보내는 남자. 조진웅의 매력은 〈시그널〉의 이재한 형사를 만나면서 비로소 수면 위로 드러났다. ‘아재파탈’ ‘꽃중년’이라는 수식으로 배우 인생의 전성기를 맞은 조진웅을 만났다. 그의 새 작품은 〈사냥〉이다. 전작인 〈아가씨〉에서 코우즈키를 연기하느라 체중 조절을 했다고 들었다. 당시에는 노인 분장을 하느라 드러나지 않았던 턱선과 콧날이 날렵했다. 그렇게 담백해진 얼굴로 그는 기름기 하나 없는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람냄새 나는 배우

“주연을 맡아서 어떠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사실 마냥 좋진 않아요. 긴장도 되고요. 완성작을 보며 아쉬워하는 분들도 많아요. 영화나 문화예술을 보는 대중은 주관적인데 여러 명의 주관적인 시선이 같은 의견이어야 보편성을 얻을 수 있는 거니까요. 작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겸허해야 합니다. 영화 작업을 할 때는 행복하고 즐겁지만 공개됐을 때는 항상 떨리죠.”

그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명료하다. 그를 잡아끄는 한 순간이 있는가다. 〈시그널〉도 처음엔 고사했다.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딱 한 문장이 그를 잡았다. “20년 후에도 거긴 그럽니까? 뭔가 바뀌었겠죠?” 조진웅은 그 말을 “내 입으로 하고 싶었다”고 했다. 〈사냥〉도 그랬다. 1인 2역의 어려움, 산에서의 고생은 생각하지 않았다. 하고 싶었다. 그 이유 중에는 안성기 선배도 있었다.

“8년 전에 처음 안성기 선배님과 연기했을 때 양아들 역할의 조연이었어요. 그때는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번에 촬영을 시작하면서 선배의 첫마디가 “진웅아, 나한테 호칭을 선배라고 해줄래?”였어요. 이 문장이 담고 있는 의미가 많아요. 선배는 현장에서 대선배가 아니라 동료였어요. 연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줬습니다. 항상 ‘더 세게 해도 돼’라고 하시고 ‘저 진짜 세요’라고 하면 ‘너무 아프게 하진 말고’라며 웃으셨어요. 나도 저런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현장에서 조진웅은 ‘분위기 메이커’다. 조진웅이 있는데 술자리가 없는 경우는 드물다. 그에게는 이 자리가 작업의 연장이다. 연기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갖는 자리다. 하루의 노고는 하루에 털고 간다. 그래야 그의 표현대로 ‘국어시간에 국어를, 수학시간에 수학을’ 풀 수 있다. 하나를 끝내야 다음 작업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번 작업은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행복했어요. 특히 엽사들이랑은 연배도 비슷했고요. 펜션 한 동을 빌려서 야외촬영 때 같이 생활하면서 바비큐 파티도 하고 지나가는 스태프들도 들러서 같이 식사하기도 했어요. 한 번 촬영에 스태프가 100명은 되니까, 술자리 할 이유도 100가지는 됩니다(웃음). 그리고 저는 작업이 들어가기 전에 제작진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매우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 준비가 안 된 상태로는 내가 두려워서 못 갑니다.”

컨디션보다 중요한 게 집중력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번 촬영은 주로 산에서 이루어졌다. 장비팀의 고생을 생각해서 돕고 싶었지만, 그 팀 나름의 질서가 있었다. 그렇다면 그 분위기를 존중해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보다 중요한 게 좋은 영화다.

“다같이 약간 제정신 아닐 때 해야 더 잘될 때도 있어요(웃음). 이렇게 잦은 뒤풀이를 갖는 게 엄청 비중이 큽니다. 자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그런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 건, 그만큼 의미 있는 시간이라고 믿기 때문이에요.”


‘눈 가리고 아웅’ 하지 않는 연기


영화에서 조진웅 이름 석 자를 알린 작품이 〈범죄와의 전쟁〉이었다면, 드라마에서는 〈솔약국집 아들들〉이다. 당시 그는 넉살 좋은 ‘브루터스 리’ 역을 맡았다. 드라마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이었는데 욕도 많이 먹었다. 역할에 맞게 살을 찌운 상태였는데, 외모에 대한 악플이 많았다. 함께 출연하던 배우 손현주가 ‘웬만하면 게시판에 들어가 보지 말라’고 할 정도였다.

“손현주 선배랑은 〈사냥〉에서도 또 만났습니다. 〈솔약국집 아들들〉 이야기를 하면서 둘이 엄청 웃었어요. 저희가 ‘꽃중년’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까요. 누군가는 ‘아재파탈’이라는 말도 하더라고요. 〈아가씨〉 때 행사를 갔는데, 객석에서 손 하트를 하고 있어서 처음엔 욕인 줄 알았어요. 김태리양이 ‘하트’라고 알려줘서 좋은 의미구나 했지, 나가는 길에 한마디 하려고 했습니다(웃음).”

팬이 많아졌을 뿐 아니라 연령대도 낮아졌다. 톱스타만 찍는다는 이동통신사 광고도 찍었다. 그가 등장하는 곳마다 찾아오는 팬들도 제법 많다. 조진웅은 그런 ‘친구’들을 보면 혼을 낸다.

“지방에도 찾아오는 경우가 있어요. 그럼 차비나 비용이 많이 들잖아요. 제가 그 친구들이랑 대화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술자리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요. 제 팬들은 착하고 수줍음이 많아요. 얼마 전에는 국가고시 준비한다고 6개월 동안 보기 힘들 것 같다던 친구가 3개월 만에 나타났더라고요. 그냥 어깨 툭 두드려줬죠, 뭐.”

열심히 준비해도 길이 잘 열리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을 그는 잘 안다. 하지만 길이 열렸다고 해서 마냥 행복한 것만도 아니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 그만큼의 책임과 무게가 조진웅의 이름에 따라온다. 이제는 아버지의 이름을 돌려드려야 하지 않을까 고민이 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인간은 분명히 실수합니다. 저 역시 그럴 거예요. 다만 그 범위가 줄어들기를 바랄 뿐이죠. 청렴결백하게 살고자 하는 건 아니지만 열심히 살아보려고 합니다.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이 아니라 가깝게 느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솔약국집 아들들〉 때 악플을 남겼던 사람이 생각이 변해서 선플을 남겼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그게 사실 솔직한 반응이거든요. 저도 그런 솔직함이 좋고요.”

주연의 자리에 올랐지만 조연이나 단역의 자리도 언제든 환영이다. 그에겐 비중이 있는 역과 없는 역이 있는 게 아니라, 끌리는 역과 끌리지 않는 역이 있을 뿐이니까. 그렇게 지금까지처럼, 우직하면서도 섬세하게 배우의 길을 가고 싶다.

“모든 사람이 배우를 해봤으면 좋겠어요. 배우는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반성하거든요. 제 삶도 그랬으면 합니다. 정정당당하게 살고, 어떤 결과가 오든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솔직하게요. 앞으로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삶은 제 DNA가 거부해주길 바라요.”
  • 2016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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